등기, 세법 전문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돈 버는 게 억수로 좋은 세속적 인간이다.
고졸 출신에 빽도 학벌도 없다는 나름의 열등감을 속물적 사업 수완으로 극복해간다.
성공하기까지 그에게 너무도 가혹한 세계였기에, 바위 같은 세상의 질서를 바꿔보겠다고 데모질하는 학생들이
치기어려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가 국가보안법 관련 시국사건을 의뢰받게 된다.
처음엔 이를 정중히 거절하나 폭력과 비상식을 용납할 수 없게 된 그는 적극적으로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서게 된다.
영화의 절반은 인간 송우석의 휴먼 스토리에, 이후의 절반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 법정에서 펼쳐지는
다섯 차례의 공판을 다룬 법정 드라마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영화가 소재로 삼은 부림사건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의 회원들은 영장도 없이 잡혀가 불법 감금되어 길게는 2달 동안
구타와 온갖 살인적 고문을 당했다. 80년 광주에 놀란 신군부가 부산지역 사상단속을 위해 조작한 용공사건이었다.
반복되는 공판과정을 통해 관객은 등장인물과 함께 상식과 준법에 대한 상승되는 열망을 공유하게 된다.
법은 편리하고 가까워야 한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에 국가란 무엇보다 국민이다.
영화 속 공안정치가 만들어낸 맹랑한 조작들에 분노하게 되다가도, 낯설지 않은 과거의 모습에 문득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영화 『변호인』은 한 속물 변호사의 회심의 영웅담이 아니다. 법에 충실하려는 한 원칙주의자가 펼치는 진지한
사회물이자 인정 많은 보통 사람이 펼치는 꽤나 몰입도 높은 휴먼 드라마다.
좌우 진영의 프레임에서가 아니라 상식의 논리에서 보자면 상당한 몰입감을 이끄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대중적 만듦새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올해 세 번째 주연작이건만 여전히 신선감을 주는 송강호의 괴물 같은
연기력이 압권이다. 『변호인』은 송강호가 씩씩하게 짊어지고 가는 작품이다. 상식의 영화이자 진심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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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흥행세가 놀랍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영화 『변호인』은 이날 낮 누적 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12일 만이다.
1,362만 명이 관람한 역대 흥행 1위 『아바타』의 기록(15일) 보다 빠르다.
게다가 영화 『변호인』은 사회성이 짙은 영화다. 1981년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변호인』의 흥행 요인으로 시대정신을 꼽았다. 그는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정치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영화 『변호인』이 시대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말했다.
또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영화가 이 정도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명대사로 꼽히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영화평론가 최광희씨는 "관객들의 결핍과 열망을 영화가 투영할 때 흥행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영화 『변호인』에 대해 "상실된 절차적 민주주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적 상황이 대중의 무의식을
깨우면서 광범위한 공감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기보다
지금 이 시대의 결핍을 확인하고 정의와 상식적 세상에 대한 열망을 투영한다"고 분석했다.
보통 500만 이상이 관람한 흥행작은 개봉 초반에는 20∼30대 관객이 주를 이루다 40∼50대 관객으로 번지면서
장기흥행으로 이어진다. 반면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40∼50대 관객이 먼저 움직였다.
『변호인』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한 퍼스트룩 이윤정 대표는 "보통 시사회에는 40∼50대 관객이 거의 없는데,
『변호인』시사회 때는 40∼50대 관객이 20∼30%를 차지했다. "투캅스(1993) 이후 영화관을 처음 찾았다는
관객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40∼50대 관객이 살았던 시대를, 이들이 신뢰하는 배우 송강호씨가
연기한 것이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은 이데올로기를 강조한 다른 영화와는 달리 그냥 봐도 재밌는 잘 만든 영화라는 평가가 나왔다.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 김형호 팀장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소재의 영화는 남성, 30대 관객이 압도적인데 반해
여성 관객이 55%로 많고, 40대 이상 관객이 42%"라고 했다. 김팀장은 "평가항목 중에서 배우가 9.75점(10점 만점),
재미 부문이 9.48점으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며 영화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재미를 흥행요인으로 꼽았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한 인간이 변화하는 이야기는 정치적 유무를 떠나서 감동적인 소재"라면서
"사실적인 소재에 탁월한 연기력이 받쳐지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했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