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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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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249749114
이번 일정은 용인이다.
낯선 곳으로 여정이 정해지면 늘 설레인다.
물론 지명으로 용인이야 낯설지 않지만,
머무를 일이 없었으니 내게는 불모지에 다름 아니다.
출장지 인근에 숙소를 정하면
인터넷 지도를 열어 범위를 넓혀가며 산지를 확인한다.
가급적 멀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곳,
동료와의 식사시간을 고려해 정한 장소가
'돌봉산'을 지나 '석성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환복하여 길을 나선다.
돌봉산 동남쪽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찾아
용인시외버스터미널 방향에서 용인중앙시장을 지나
용인경전철(에버라인) 운동장, 송담대역 철교를 넘어간다.
스마트폰을 보며 등산로를 찾아 골목으로 접어든다.
길이 있어야 하는데 쌓인 쓰레기더미를 보니
도무지 길이 있을것 같지않다.
다시 돌아나오니 편의점이 보여 들어선다.
종업원이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길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종업원은 모르겠단다.
다행히 얘기를 나누던 아주머니가
쓰레기더미가 치워진 길이 있을것이라 한다.
얼마전까지 꽉 막혀있었는데
최근에 정리를 해 들어갈수 있을것이라 한다.
다시 돌아가보니 과연 통행로가 보인다.
막연한 선입관에 돌아선 내가 어리석었다.
쓰레기에 갇힌 집을 돌아가자
산으로 이어지는 길, 등산로가 보인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
겹겹이 쌓인 낙엽에 가볍게 걸음이 미끄러진다.
조심스럽게 흙이 드러난 곳을 밟으며 오른다
방금 올라온 길을 돌아본다.
경사가 느껴진다.
산허리와 능선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간다.
드문드문 보이는 진달래가 수줍다.
능선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니 등고선을 보며 예상했던대로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수령이 오래지 않았지만
곧게 뻗은 소나무가 깊은 숲에 들어선듯 빽빽하다.
애써 산에 들면 누리는 기쁨 중 하나,
멀리 산을 올려다 보면 알수없는 원색의 꽃들을 볼 수 있다.
진달래가 화사한 꽃을 피웠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이 편하게 이어진다.
낙엽 쌓인 길 끝나는 곳 왼쪽에
다른 곳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내가 방금 올라온 길은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길로 짐작된다.
고갯마루에 이정표가 있다.
예전에는 산 건너 마을을 이어주는
돌봉고개, 돌봉치였다.
왠일인지 지명이 땅에 떨어져
푯말 기둥 바닥에 세워져있다.
진달래가 작은 무리를 이루고있다.
사방을 가린 소나무가 하늘까지 가릴 기세다.
능선길은 곳곳에서 갈라지면서 합류한다.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가 보인다.
인근 주민들이 벤치에 앉아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스쳐지나는 주변 풍경은 변화가 없는듯하다.
하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소나무가 고만고만하다.
그럴 여유가 있어서 자세히 본다면
어느것도 비슷하지 않다.
뻗은 가지, 비늘같은 껍데기, 굵기, 방향...
사실 자세히 보지않아도 알수있다.
단조롭게 지나가는 풍경에서 무심한 착각을 한다.
더군다나 산에서 길을 잃거나
어떤 장소를 찾는다면 난감한 상황에 빠지겠다.
능선길, 소나무 사이로 난 갈빛 흙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인다.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평일, 널리 알려지지않은 산에서
생각보다 자주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만큼 접근하기 쉽고, 걷기에 편하고,
거기에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파란날을 기대하며 산에 오르지만
하늘은 흐리다.
오후 늦게부터 비소식이 있다.
등산로를 향해 굽은 나무가
등산로, 사람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능선이 고갯마루로 떨어지는 곳에 벤치가 있다.
점심을 거르고 출발한 걸음이라
혹시나 싶은 생각에 김밥 한 줄과 음료수를 준비했다.
사실 산에서 소풍같은 기분을 낼 욕심도 한몫했다.
꿀맛같은 간식을 즐기고
아니온듯 흔적을 지우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고갯마루 지나 능선길을 계속 따라간다.
스마트폰 지도를 확인하니
우측으로 빠질 삼거리임을 알게된다.
저 곳에서 우측으로 길을 접어든다.
여전히 한가로운 길을 따라 걷는다.
그렇게 접어 도착한 돌봉산이 너무 초라하다.
주민들을 위한 간단한 운동기구와 의자 몇 개,
원형탁자가 보인다.
어디에서도 정상표지를 확인할수 없다.
산길샘 앱으로 확인한 고도가 250미터다.
경험상 실제로는 더 낮다.
그래도 명색이 산인데, 셀카 한 장을 남긴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돌아나오려는데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올라온다.
이 시간에 올라올 사람들이라면 주민으로 짐작된다.
이곳이 정상인지 물어본다.
확신은 못하지만
조금 더 가서 만나는 봉우리가 더 높은것 같단다.
조금 더 지나쳐 가볼까 싶었지만,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
그리고 스마트폰 지도도 믿을만하다는 결론이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길이 싫지않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굴곡없는 날이 있지않은가?
새삼 인생을 단련할 것도 아니고
스스로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평범함이 주는 행복에 길들여진
자신을 용서하기에 내 나이가 너무 이른가?
좌우를 따라오던 수종이 바뀌었다.
참나무들이 헐벗은채 따라온다.
비탈에 무리지은 진달래가
참으로 곱고 단아하다.
산너머 동네를 오가던 고갯마루,
왼쪽에는 돌탑이 서있다.
다른 한 쪽은
최근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다시 야트막한 봉우리에 오른다.
운동기구가 보인다.
전방을 막아선 철조망에 잠시 아연해진다.
스마트폰 지도에서는 확인할수 없었던 시설물이다.
하기사 군부대가 표시될리 없다.
길 흔적을 찾아 더 나아간다.
철조망 옆으로 정비된 길을 조금 따라가니
이내 길이 끊어진다.
분명히 스마트폰 등산로 표시를 따라 잘 들어섰는데
어디에서 잘못 접어들었을까?
아마도 오류로 판단된다.
겹겹이 낙엽 쌓인 야트막한 비탈을 따라
오른쪽 인가가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사람 다닌 흔적이 없다.
마침 초봄이라 풀이 짙지않아 걱정은 없다
왼쪽에 보이는 능선에 길이 있을것같다.
능선에 올라서니 길이 보인다.
하지만 길이 다시 자취를 감춘다.
가까이 보이는 민가 뒷편으로 내려선다.
성산로가 지나는 굴다리 못미처 왼쪽으로 접어든다.
잠시 들었던 산 능선이 나즈막히 뻗어있다.
용인시청을 두른 석성산은
용인시의 진산이라고 소개되어있다.
낮지않은 산인데도 스마트폰 지도에 등산로 표시가 없다.
전문 등산 앱 '루가(LUGA)'에서 미리 확인해둔
'지장실출발점'을 찾아가는 길이다.
도로변 안쪽 턱에 앉아있는 주민에게
석성산 오르는 길을 묻는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 마을로 들어가라고 알려준다.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마을길로 접어들며 멀리 산을 본다.
방향으로 보아 석성산이 맞는것 같다.
여기 저기로 갈라지는 길을 주의깊게 본다.
오른쪽에는 출입금지 푯말이 있다.
바로 보이는 길로 걸어가는데
루가앱 지도 길을 벗어난다.
다시 돌아내려와 왼쪽길을 따라가니
방향을 일치시킨다.
흙길로 접어드니
왼쪽은 계곡, 오른쪽은 밭이다.
끝에 철책이 막혀있고 왼쪽으로 길 흔적이 보인다.
앱은 왼쪽으로 방향을 가르킨다.
산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간다.
이곳으로 등산길을 찾는 사람은 많지않은 듯 하다.
겹겹이 쌓인 낙엽이
가풀막 비탈을 오르는 걸음을 더디게 한다.
좀처럼 볼 수 없던 돌 무더기가 보인다.
정상이 가까웠다는 신호일까?
비탈 위로 하늘이 보인다.
봉우리는 아니다.
조금 더 올라가 안부에 닿는다.
공사중인 흔적이 보인다.
이곳에 무슨 시설물을 만들려는 것인가?
나중에 내려오면서 확인하니
등산로 재해방지 예방사업을 시행중이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본다.
석성산 정상이 앞으로 1킬로미터 남았다.
동백지구 이정표가 보이고
하산길로 잡은 용인시청이 이곳에서 3.2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표지는 공사중인 곳을 가라고 알려주지만
조금 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포장도로 오른쪽에 목책을 두른 길이 보인다.
왠지 정상이 멀지않았으리란 느낌이 든다.
왼쪽, 목책 위로 희마한 길이 보인다.
잠시 따라 들어섰다가
제법 길이 험해보여 돌아나온다.
도로 갈림길에서 접어들었던 목책길은
저 아래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등산로 정비공사를 하며 임시로 사용하는 우회로다.
아마도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이용하던 길로 짐작된다.
공사중인 등산로 오른쪽 비탈면에
철제기둥과 로프를 쳐놓았다.
통화사 못미처 모롱이에 돌무지가 쌓여있다.
그 틈으로 야트막한 돌탑이 앙증맞다.
오른쪽으로 물소리가 들려 들여다보니
파이프로 물이 흘러내린다.
약수라 하기엔 입구가 나무에 가려 이용하기 힘들다.
사찰이 바로 너머라 딸린 건물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좌우측 벽면에 그려진 그림이
사찰과 연관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몇 분에게 물어보지만 알지못한다.
궁중에서 연회하는 장면이다.
불교적인 느낌은 나지만
학, 거북 등 장수를 기원하는 민화적 요소가 더 짙다.
오른쪽이 통화사 가는 길,
왼쪽은 석성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통화사 넘어가는 길 정면으로 탑이 보여 올라본다.
사리탑이다.
아마도 사찰 창건이나 중건에 공이 있는 스님을 모셨으리라.
삼층석탑이 보인다.
본당인 원통보전 건물 나무가 예사롭지않다.
짐작컨대 수백년은 능히 버텨온듯하다.
하지만 지난 번 속은 경험이 있으니 예단할수 없다.
대웅전 처마 너머 삼성각과 천불전이 보인다.
종무소라고 생각했는데 '육화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넓지않는 경내 측면을 바로본다.
통화사 초입에서 만난 바위 위에
조그만 돌을 얹어 쌓았던 돌들이 무너져 돌무지가 되었다.
석성산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흙길을 지나 잠시 더 올라간다.
왼쪽 능선부 아래 제법 큰 건물이 보인다.
통신부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부대 생활관으로 보인다.
꽤 많은 인원이 주둔하고 있는것 같다.
잘 정비된 목책 계단이 이어진다.
해발이 4백미터를 넘어섰지만
시야를 가린 나무는 여전히 어지럽다.
운동기구가 있는 평지 위 계단 왼쪽으로
돌을 쌓은 것이 보인다.
석성산,
1,500여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 삼국시대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패잔병을 쫓아 남하했던 고구려 장수왕이
이곳을 장악했을 당시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혹여나 확인하고 싶어 몇 분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안내문에
석성이 약 2킬로미터 자연석성이라고 하니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능선 육중한 바위들이 성을 이룬듯 하다.
혹시 자연석성이란 저것을 이르는 것일까?
계단을 따라 다시 능선에 오른다.
봉수대 있던 자리가 공사중으로 통행을 막아놓았다.
이곳에서 남산까지 거리가 직선거리로 40킬로미터라
예전부터 봉수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 능선 비탈을 오른다.
산너머 비탈이 상당한 경사로 떨어진다.
정상 전망대가 훤히 트인 서쪽을 향했다.
석성산 해발 471.3미터,
정상표지석이다.
마침 올라온 등산객이 있어 사진을 부탁한다.
동백마을 전망이 시원하다.
이곳에서는 아파트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제는 돌아 갈 시간이다.
올라오며 등산로 목책이라고 착각했던 것이
철조망임을 확인한다.
지난 봄 싹을 틔워 울창하게 자랐던 수풀이
그대로 말라 철책에 엉켜붙었다.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아랫쪽 등산로를 따라간다.
앞쪽 석축부분이 정비된 등산로,
로프를 쳐놓은 곳이 정비할 곳이다.
아마 대부분 산객은
이전 자연스러운 모습을 더 선호할것 같은데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걸까?
아래로 떨어지는 각도가 꽤 급하다.
안전을 위해 하는 공사라면 난간설치가 필요해 보인다.
아까 지났던 용인시청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잠시 호기심이 동해
군부대 올라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모퉁이를 두 개 꺽고 만나는 언덕이다.
위병소를 보러가는 것도 아닌데 싶어
다시 내려와 용인시청 이정표를 따라 내려간다.
주로는 아래쪽이지만 언덕을 따라 올라간다.
역시 합류한다.
물론 모두 그런건 아니다.
정상 부근 말고는 대개 완만한 굴곡을 이루고있다.
송전탑 위용이 하늘에 닿았다.
나무가지 사이로 방금 올랐던 정상부근을 바라본다.
물론 정상은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은 군 사격장이 있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순화된 경고문이다.
멀리 가건물이 하나 보인다.
산중 고개마루에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매점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철조망 뒤로 군 초소가 있다.
철조망이 한창 동행한다.
철조망 너머 바로 접한 곳이
잘 정비된 길이 있다.
그 길로 사복차림 군인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군부대 철조망과 멀어지는가 싶지만
머지않아 다시 나타나
한동안 철로처럼 평행으로 나아간다.
메주고개, 멱조현이라고 한다.
인근 삼가리라는 마을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지런히 일해 땅 몇 평을 일궈 콩을 심었는데
농사가 잘 되어 메주를 만들고 있었다.
만들어놓은 메주에
쇠파리가 앉아 있는것을 아내가 보았다.
주걱으로 내려쳤으나
쇠파리는 잽싸게 날아가 다른 메주에 앉았다.
다시 내려쳤으나 또 날아가 다른 메주에 앉았다.
화가 난 아내는 메주가 엉망이 되는줄도 모르고 내려치다
밖으로 날아가 버린 쇠파리를 맨발로 쫓아 이고개를 넘었다.
그 후 이곳을 멱조현, 메주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나무 뒤로 원형운동장이 보인다.
용인시민체육공원이다.
이제 길은 날머리에 가깝다.
소나무 숲길은 감싸듯 여전히 따라온다.
입구 가까운 곳 운동기구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볼품없다.
빽빽한 나무 너머 언뜻 하얀 건물군이 보인다.
이제 건물들은 또렷해진다.
날머리, 도로 건너 용인시청이 보인다.
방금 나선 날머리를 보며
아쉬운, 고마운 인사를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용인경전철 철교가 금학천을 따라 이어진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안개에 다소 품위를 잃었다.
그 아래 철교 위가 용인대,시청역사다
금학천변을 따라 걷는다.
징검다리가 보인다.
명지대역이다.
천 변을 공원으로 가꾸었다.
금학소공원이다.
이름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 영춘화다.
무리지은 모습을 멀리서 보면 개나리같다.
김량장역이다.
김량장 명칭유래를 보면
고러시대에는 이곳에 국가관청 '김령역'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김령역', '김령원'이 있었다.
이곳에 장이 서면서 '김령장'이라고 불리다
'김량장'으로 변음되었다는 설명이다.
다른 설에 의하면
이곳에 김량이라는 사람이 처음 장을 개설하여
그의 이름을 땄다고도 한다.
김량장은 조선 영조시대 읍지에도 기록되어 있을만큼
유서가 깊고
지금은 용인중앙시장이 그 맥을 잇고있다.
천변으로 내려선다.
멀리 운동장, 송담대 역사가 보인다.
이쪽편 천변 산책로는 더 갈 수 없다.
계단을 올라 나오니 용인중앙시장이다.
천변으로 시장을 따라가는 끝,
카페에 붙박인 안내문을 본다.
수여선 철길이 지나던 자리.
1930년 부터 1972년 까지 운행했던
철길이 지나던 자리였다.
일제가 우리 자원을 수탈하기 위하여
1930년 수원, 용인, 이천을 잇는 53.1킬로미터를 가설하고
1931년 이천과 여주 20.3킬로미터를 개통하였다.
총 연장 73.4 킬로미터,
레일폭은 일반 열차의 반 정도인 76.2센티미터 협궤열차였다.
연료는 가솔린과 증기를 병용하였다.
광복 후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였으나
도로 확장과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수요가 급감하여
1972년 폐쇄되었다.
지도를 보니 먼 길을 돌아왔다.
정보도 없이 나선 길,
낯선 세계 속으로 잠시 빠져드는 시간이
나름대로 보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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