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경계를 지나 얼마간 달리다보니 비로소 작은 도시가 나타났다. 와이오밍 주의 주도인 샤이엔이라고 했다. 주도라고는 하지만 규모는 우리네 읍 정도의 크기인 듯싶었다. 그곳에서 아점을 하기로 한 탓에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둔 베트남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거의 도시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는데 동네 규모에 걸맞지 않게 꽤 컸다.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는 대부분 음식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했는데 신기하게도 대부분이 군인들이었다. 아들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이 주변 가까운 곳에 미사일 기지가 있다고 한다.
미사일-
북한의 김정은 탓에 말만 들어도 별로 달갑지 않은 무기 이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쌀국수를 주문했다. 모처럼 고수까지 듬뿍 집어넣고 그 집만의 양념을 곁들이니 먹음직했다. 미국에서의 일인분은 내게 늘 너무 많았다. 늘 그랬듯이 엄청난 양에 그 맛있는 음식을 다 먹지 못했다. 미국은 식당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것이 일상이다. 음식점으로서는 음식 찌꺼기를 처리할 수 있어 좋고 고객은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서 다른 식구들과 나눌 수 있을 테니 좋은 일이다.
우리는 푸짐하게 상을 차려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듯하다. 음식점을 선택할 때도 우선은 맛을 고려하지만 같은 맛이라면 반찬이 잘 차려내는 식당을 선호한다. 그래야 뭔가 대접을 받는 듯하다. 그렇다고 주문한 음식이나 반찬을 모두 깨끗이 비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뭔가 음식을 남겨야 잘 먹은 듯한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런저런 음식들이 찌꺼기로 남는 일은 당연하게 여긴다. 결국 그렇게 남은 음식들은 음식 쓰레기로 모두 버려지게 된다. 우리의 음식은 먹다 남은 것을 집으로 가져가기도 어렵다. 대부분이 국물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음식 문화는 다소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음식을 남겨도 가져갈 방법이 없다. 줄곧 차를 타야하고 가져가도 달리 누가 먹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면을 모두 건져먹는 것으로 식사를 마쳤다. 양이 지나친 탓에 배를 이기기 힘들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별로 크지 않은 마을을 차로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동네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기에 주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바로 고속도로로 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길은 점심 먹기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주변은 온통 푸른 초원뿐이었다. 유행가처럼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이 끝도 없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넉넉했다. 분명 고속도로임에도 길은 다니는 차량도 별로 없어 적막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인디언들이 말을 달려 나타날 것도 같은 분위기 같기도 했다. 이곳은 원래 그들 인디언들의 땅이었다. 백인들은 늘 그렇듯이 황금을 찾아 왔고, 인디언들을 몰아세웠다. 이 땅이 백인들의 차지가 되자 황금이 나지 않는 대부분의 평원은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지금도 평원은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얼마간 달리다보니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차가 별로 없으니 속력을 낼 일도 없었고, 차선을 바꿀 필요도 없으니 자칫 졸음운전을 하기에 딱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히 마주 오는 차를 만나기도 하고 저 멀리 뒤에서 따라오는 차량이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들 텅 빈 도로에서 느긋했다. 고속도로가 3차선이나 되었지만 뒤에서 오는 차는 처음의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본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고속도로에서도 과속을 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어디에도 감시 카메라가 달려있지 않았다. 나는 자주 고속도로에 차량이 별로 없다 싶으면 그 도로를 아우트호반 쯤으로 여기며 과속을 일삼았었다. 이곳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니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귀국을 하면 다시는 과속을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얼마 후 비는 멎고 두 번째 마을인 러스크에 닿았다. 러스크는 주도인 샤이엔보다도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동네는 누구 하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적막감이 돌 정도로 조용했다. 아들이 미리 인터넷으로 체크를 해 둔 커피숍을 찾아서 들어갔다. 그 집은 시골답게 음식점과 커피숍과 스포츠 중계를 즐기는 카페를 겸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쉴 겸 커피와 토스트를 주문했다. 음식을 먹는 중에 노부부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음식을 먹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래도 식당 주인이며 직원은 느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