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의 「백구와 그네」
화자인 ‘나’는 떠난지 십년이 지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낯익은 개 백구와 그의 주인 놘(暖)을 만난다. 두 사람은 청소년 시절 고향의 학생 문예선전대에 참여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었다. 놘은 고향에 잠시 머물던 인민 해방군의 ‘차이 대장’을 연모하여, 그가 돌아 오는 날 함께 고향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청회색 달빛이 번뜩이던 날 ‘내’가 밀던 그네를 타고 하늘 높이 오르던 놘은 그만 그네줄이 끊어져 아카시아 나무 덤불로 튕겨 나가고, 가시에 찔려 한쪽 눈을 잃는다. 그 밤의 사건으로 ‘나’와 놘은 각기 다른 세상으로 떨어진다.
‘나’는 고향을 떠나 공부를 하고 대학 강사가 되었다. 문화혁명기였다면 인민의 적이었고 교화의 대상이었을 ‘내’가 신문화의 상징인 청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끌고 나타나자 가난에 눌린 가오미 둥베이향의 사람들은 선망과 경멸의 눈길을 동시에 보낸다. 놘은 벙어리인데다 술고래인 남편과 결혼하여 “난폭한 수평아리 같은” 아들 쌍동이 셋을 “주룩주룩, 개새끼 낳는 것처럼” 낳았다. 자본주의와 도시화에 적절히 적응해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창백하고 위축된, 뿌리 없는 지식인의 얼굴을 갖게 된 ‘나.’ 무자비하고 원시적인, 야수와 같은 생명력을 가진, 출구도 퇴로도 없는 고향이란 결계에 갇혀 버린 놘.
놘에 집에 들러 벙어리 남편과 세 아이를 만난 후 안타까움, 그리움, 죄책감, 무력감을 느끼며 놘의 남편이 건네는 술잔들을 받아 마신 ‘나’는 다음날 아침 그녀의 집을 떠난다. 길목에서 다시 만난 백구는 ‘나’를 병풍과 같이 빽빽한 수숫대 안 쪽으로 이끈다. 그곳에 놘이 기다리고 있다. 인연을 믿는, 아직도 차이 대장이 머리에 입맞춤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운명을 간절히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놘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거침없이 말한다.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를 원해… 내가 내 뜻을 받아 두면 그게 날 살리는 거야. 거부하면 그건 날 죽이는 일이고. 천 가지, 만 가지 핑계가 있다 해도 절대 말하면 안돼.” 소설의 마지막은 말이 없다. 모옌의 이름과 같이. 莫言.
모옌의 소설이 모티브가 된 장 이모의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인상 (원시성, 폭력, 부조리)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읽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압도적이었다. 도륙한 날고기를 늘어 놓은 것 같이 생생하고 처절한 표현 때문에 몸을 몇 번이나 움찔거리고 질끈 눈을 감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오미 둥베이향은 모옌의 실제 고향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문학적 고향이라고 한다.「백구와 그네」에 처음 등장하여 그 이후 모옌의 거의 모든 소설에 밑그림이 되었다. 「백구와 그네」를 쓰기 전, 소재의 고갈 때문에 고심했다는 그는 가오미 둥베이향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떠올리며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 만난 듯, 끊임 없이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소설 속 화자를 고향으로 이끈 백구는 그러니까 모옌 또한 고향으로 이끌었나 보다. 가오미 둥베이향은 모옌이 “세계를 담고, 세계로 내보이는 그만의 공간이자 결코 벗어날 수도,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 고립된 세상이자 열린 세상”(360)이다.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그래서 존재하는 것 보다도 더 실재가 되어 버린 세상.
“쓸쓸하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눈을 가진 백구는 마치 신묘한 존재처럼,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놘과 나 사이를 오가며 놘이 갇혀 있는 가오미 둥베이향이라는 결계에 틈을 낸다. 그 밤, 놘이 결계에 갇혀 버린 그 순간에 함께 있다 온전히 살아 남은 백구는, 아마도 그 순간 결계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영험한 존재가 되어 버린 듯하다. 백구는 놘과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놘의 욕망으로 연결된 그 선에 ‘나’를 자극할 죄책감과 그리움을 미끼로 묶어 “나”를 고향으로 이끈다. 불구가 되어 버린 “놘”이라는 고향으로. 고향에 붙박혀 살다 어느새 고향의 원시적 생명력을 체화해 버린 놘에게로.
모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다가, 중국 현대 문학의 인물을 묘사하는데 “민간(民間)”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을 배웠다. “민중”처럼 억압에 저항하여 무리지어 우르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메바처럼 카멜레온처럼, 부단한 자기 변형을 통해 질긴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이 민간이라 한다 (백지운, “세계문학 속의 중국문학, 모옌이라는 난제” 창작과 비평, 41(4)). 봉건의 찌까기와 민주의 정수 사이(間)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길을 도모하는 민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버렸지만 어떻게 해서든 틈새를 내어 숨을 쉬려하는 민간, 놘에게 무슨 잣대를 들이 대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莫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