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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행을 마치며
바르셀로나 공항을 12시 15분에 출발하였다 모스크바 공항까지 약 4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비행 중에 창밖을 내다보니 산 정상에 하얗게 펼쳐진 설경이 보였다. 알프스 상공을 지나는 모양이었다. 비행기 내부 화면에 나타난 비행경로를 보니 프랑스의 니스를 거쳐 이태리의 베로나와 베니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거쳐 모스크바에 이르게 되어 있었다. 니스를 지나 모나코의 상공을 날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날씨가 쾌청해서 그런지 비행기가 낮게 떠서 날아가는 듯 했다. 지상에는 푸른 초원이 한창 펼쳐지더니 농경지와 마을 모습이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농경지와 시골 마을들이 하늘에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과 잘 조화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지상의 모습은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다. 온 세상이 하나같은 느낌이다. 여러 나라 국경을 거침없이 통과하고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지상으로 내려가면 지구촌에 국경선을 설정해 놓고 나라마다 자기 땅 단속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외국을 여행하려면 국경을 통과할 대마다 비자다 여권이다 수속을 밟느라 절차가 복잡하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이러한 철차가 무척이나 못 마땅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러기’라는 시를 통하여 본인의 심중을 나타내 보였다.
「너른 땅 금 그어 놓고 내 집이야 네 집이야.
하늘에 줄 쳤던가? 가느니 못 가느니.
제 물에 얽힌 인생을 끼룩끼룩 웃노라.」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기러기를 통하여 제도에 얽힌 인간세상을 비웃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못살던 시절 외국에 한 번 나가기가 어려웠다. 경비도 문제려니와 국가의 격이 떨어지니 자연히 상대국으로부터 비자 받기가 어려웠고 입국심사도 까다로웠다. 뿐만 아니라 여권을 받으려면 외무부 공무원들의 행패도 감수해야했다. 이제 여행이 자유로워졌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알프스 지대를 벗어나면서부터 높은 산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로 들어서면서 산등성이에 누런색의 농토가 드러났다.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듯 경계가 제멋대로인 농경지가 넓게 펼쳐졌다. 이곳에는 초지농업보다 경지농업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마을들 모습이 많이 보였다. 러시아의 농촌은 유럽서방에 비하여 정리가 덜 된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 삭막하고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면 나의 기우일까!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이 17시 25분. 스페인과 1시간의 시차가 생겼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간단한 쇼핑과 휴식을 가졌다. 이곳에서는 유로와 달러가 다 통용되었고, 물가가 다소 싸게 느껴졌다. 스페인에서는 통용되지 않아서 지니고 다니던 달러로 보드카 두병을 샀다. 그런데 같은 물건인데 가격이 달랐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케이스에 들어 있으면 값이 비싸단다. 케이스 값을 별도로 지불해야하는 것도 러시아의 문화의 일면이다. 갑판 대에 진열되어 있는 인형이나 장난감 모습들도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모양이나 색감이 특이하여 또 다른 문화의 특질을 느끼게 했다.
저녁 21시 20분 모스크바 공항을 이륙하니 곧 밤이 되었다. 잠간 눈 붙이고 나니 날이 밝아 있었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으니 밤이 짧아진 샘이었다. 비행경로를 확인 해 보니 카자흐스탄 북쪽 국경에 가까운 러시아 남부지역을 비행하고 있었다. 비행경로에 표시된 도시이름들이 모두 생소하였다. 러시아에 대하여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을 자책해본다.
이륙 후 약 8시간 비행 끝에 인천공항 가까이에 닿았다.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온다. 아마도 착륙을 준비하라는 안내인 것 같았다. 이어서 우리말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이었다. 우리나라에 취항하면서 한국인 승무원 하나도 고용하지 않은 러시아 항공사의 심사에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10분. 이로써 9박 10일 간의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을 마쳤다
여행을 즐겁고 값진 것이다.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많은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여행은 또한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는 여정과 같은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세계사 속에 한발 비켜 서 있던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무어인의 침입과 가톨릭교도의 국토회복운동, 그리고 그 과정 속에 형성된 문화의 자취들을 피상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종교에 대하여 관대했다. 이슬람교, 유대교, 가톨릭교도들이 한데 어울려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가톨릭교도들이 스페인을 통일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탄압과 축출이 벌어졌다. 가톨릭지역에 남아있는 이슬람교도를 무데하르라 불렀다. 그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랍인을 모리스코,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태인을 콘베르소라 하여 차별하였다. 이들 비 순혈 자들은 교육받을 기회를 제한받고, 성직이나 관직을 박탈당하고, 종교재판에 회부되거나 밀고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당하였다.
많은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죽음을 피하여 스페인을 떠났다. 과학, 기술, 학문 등에서 나라를 움직이던 실력자들, 그리고 농사를 짓던 농촌일군들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농산물 생산량이 떨어져 곡물가가 뛰어오르고, 상업과 금융이 마비되어 경제가 흔들거렸다.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800년간 벌였던 국토회복운동을 통하여 생긴 적대감이 종교적 정신적으로 가톨릭순혈주의에 젖게 하였다. 가톨릭순혈주의는 정치와 무력만 남게 되고 산업과 기술을 등한시 함으로써 결국은 스페인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다.
종교의 편협함. 그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죄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마다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성당들. 그 이면에는 파괴되어 없어져버린 이슬람사원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였다. 반면 이스탄불에 서 있는 소피아성당을 생각하니 내부를 개조하여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하고 보존해온 아랍인들의 지혜와 관용이 두드러져 보였다.
여행 중에 메모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지나온 여정과 내용들을 정리하여 기행문을 적어보았다. 이 기행문이 여행에 함께 했던 분들, 그리고 앞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첫댓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읽었습니다
장편의 역사있는 두나라의 여행 글. 상세하게 쓰신 글을 읽을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잘 읽었습니다. 그들의 편협한 가톨릭 종교관이 잉카와 마야의 문명을 말살시켰고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자랑하는 많은 문화 유적들이 그 약탈의 흔적임을 생각할 때 깊은 생각에 젖게 합니다. 좋은 곳 다녀오셨습니다. 많이 배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