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 최종호
추석을 10여 일 앞두고 광주에 사는 형제들과 성묘하러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참 가난한 동네였어.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니까.” 차를 타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며 작은형이 건넨 말이다. 맞다. 지금이야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풍요롭게 보이지만 옛날 사람들은 작은 논밭 뙈기나 가꾸고 조개를 잡으며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나마 일제 강점기에 제방을 쌓아 만든 간척지가 논으로 바뀌어 살만한 시골 마을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염전이 마을 가까이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물레방아처럼 생긴 수차로 평평하게 만든 땅에 바닷물을 퍼 올려 햇볕에 물을 증발하는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제방 근처에는 소금기가 많아 농사를 짓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땅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곳에는 나문재나 퉁퉁마디가 드문드문 자라고, 농게나 방게가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고 한가롭게 놀았다.
바닷물이 밀려오면 마을 앞 수로는 물이 방방했다. 가끔 그곳에서 농어 새끼가 뛰었다. 가끔 마을 사람들이 물길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 양쪽을 막고 양동이로 물을 모두 퍼내서 망둑어와 장어 등 고기를 잡기도 했다. 날씨가 제법 풀리면 촘촘하게 짠 그물로 물길을 지키고 앉아 유리처럼 투명하고 가는 새끼 장어를 노리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실처럼 가늘어서 ‘실장어’라고 불리었는데 그녀석을 찾으면 행여나 다칠세라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서 한곳에 모았다. 어찌나 가늘고 투명한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일락 말락 한다.
수로 옆에 있는 작은 둑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바닷물을 막으려다 그만둔 것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옹벽이 나오는데 그 앞은 물이 깊어 낚시하기 좋았다. 물이 빠지면 내려가서, 물이 들면 옹벽에 앉거나 서서 망둑어를 낚았다. 이 녀석은 먹성이 어찌나 좋은지 별다른 미끼가 필요 없다.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갯고등을 돌로 깨거나, 이마저 번거로우면 잡은 망둑어를 잘게 썰어 낚시 바늘에 꿰면 훌륭한 미끼가 되었다. 여자들은 뜰채를 이용한다. 바위에 붙은 생굴을 깨뜨려 관자가 붙은 껍데기를 넣어두어 작은 물고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올리기만 하면 된다.
큰 제방 너머에는 바다인데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커서 물이 밀려오면 잔잔한 호수가 되지만 빠져 나가면 너른 갯벌이다. 해변 한쪽의 모래밭에서는 ‘긁개’를 사용해서 백합 조개를 캤다. 이 조개잡이 도구는 호미 두 개를 길쭉하게 펴서 날끼리 붙여 놓은 것처럼 생겼다. 연결 대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치며 모래를 긁어나가는데 조개가 있으면 덜커덕하고 걸리기에 쉽게 잡을 수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는 물이 많이 빠지면 드러나는 작은 바위섬이 있었다. 한여름에는 물이 들 때까지 이곳에서 큰 소라를 잡기도 했다.
바닷가뿐만 아니라 나지막한 앞산과 뒷산도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숨바꼭질, 업기 싸움(기마전처럼 업힌 사람끼리 싸워 땅으로 떨어뜨리는 경기), 닭싸움 등을 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웬만한 주전부리는 산이나 들판에서 해결했다. 봄철에는 칡을 캐고, 삐비를 뽑았다. 송순과 찔레 순을 꺾어 껍질을 벗기면 훌륭한 간식거리다. 가을에는 정금(정금나무 열매)과 깨금(개암나무 열매)을 찾으러 다녔다. 가끔 달콤한 즙이 나오는 잔디 뿌리도 즐겼다.
“뒷산에 가보려고 했는데 길이 없어져 버렸어야.” 성묘를 마치고나서 작은형이 말했다. 어려서는 너나없이 많이도 오르내리던 곳이다. 놀이 삼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땔감으로 쓸 잔가지나 썩은 그루터기, 솔잎을 긁어모으려면 이만한 곳도 없다. 달라진 게 어디 산길뿐이랴. 앞산에 있던 큰 소나무들도 거의 베어져 팔려나갔다. 그 자리에 굽은 소나무 몇 그루가 남아있었지만 그마저도 언제 베었는지 사라지고, 고추밭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지금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밭 대부분이 새까만 그늘막으로 쳐져 있다. 다른 지역의 업자가 그곳에 인삼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학년이 아홉 명이나 되었다. 그중 세 명은 서울로, 탄광으로 돈 벌러 가더니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한 친구만 농사를 지으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는 명절에 그와 술도 한잔 기울이곤 했는데, 지금은 왕래마저 끊겼다. 마을길에는 젊은이는커녕 늙은이도 보기 드물다. 인적조차 없어 텅 빈 느낌이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산과 봉우리에 솟아 있는 바위는 그대로다. “인자 마을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 허참!” 큰형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 세대가 저물고 있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지금은 바닷가에 나가도 그리 멀지 않는 곳에 크게 자리잡은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옛 정취가 온데간데 없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첫댓글 바닷가는 모르고 자랐으나 저도 산으로 들로 다니며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하하!
정말 그리운 옛날이네요.
찔레를 먹던 기억이 아삼합니다.
그 시절의 간식거리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시골이 고향인 사람은 모두 실향민이 될 것 같아요.
어린시절 주전부리들이 정겹네요. 잘 읽었습니다.
삐비, 송순, 찔레순, 정금, 깨금 중 하나밖에 못 먹어봤네요.
정지아 소설가가 그러더라고요.
본인은 '시티걸'이었다고요.
저도 그 축에 들까요?
아님 세대 차이?
하하하!
저는 삐미,깨금, 칡까진 먹어봤네요. 마을에 찔레꽃이 없었어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