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적수업에서는 죽음이란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신체적인 불멸성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수업에서는, 영은 불멸하기에 죽음이란 없다고 가르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그대로이다”라는 문장은 워크북 안에서 그날의 관념으로 세 번 등장하며, 이는 200~220과 사이에 있는 복습 기간의 중심 테마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그리스도)만이 영원하다는 개념의 중요성과, 육체들의 이 세상은 천국에 대한 정반대로서 만들어져왔기에 불멸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의제로 삼고자 한다는 것을 강조해줍니다. 텍스트의 앞부분에서는 에고가 “영원성”에 도달할 능력이 없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습니다.
(T-4.V.6:1-3) 에고는 영원한 것이라면 무조건 헌신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영원은 에고가 개발하려 노력했으나 완전히 실패한 기능이다. 3에고는 진정한 질문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는 주제들을 다뤘던 같은 방식으로 영원이라는 주제와도 타협한다.
게다가 육체들은 오직 꿈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삶life이라고 부르는 환각들 속에서만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 “삶life”의 길이는, 영의 영원한 생명life은 말할 것도 없이, 실재와도 절대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체적인 불멸성이라는 말 자체는 모순어법이며, 이 말은 기적수업의 신학에 대한 오해를 반영하고, 실재와 허상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개념은, 분리되어 있는 수많은 마음들이 탐닉하고 있는 에고의 또 하나의 계략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해서 에고는 자신의 사고 체계와 자신의 세상을 실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기적수업의 참된 의미를 곡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지요.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언급했듯이, 악마는 성서를 자기 자신의 목적에 따라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기적수업 학생들의 에고들도 이와 똑같은 책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육체들)이 불멸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들의 신념체계를 뒷받침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적수업의 문장들을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쉽게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로, 교과서 19장에서 평화를 가로막는 세 번째 장애물인 “죽음의 매력”을 보면, “썩지 않는 몸”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다음의 글이 있습니다.
<b style="text-align: justify; font-size: 9pt;">육체가 너의 거룩한 목적에 쓰이는 한, 네게는 육체를 썩지 않고 완벽하게 유지할 다른 헌신의 대상이 있다. 몸은 감정을 느낄 수도 없지만 죽을 수도 없다... 죽음이 실재라면 죽음은 소통을 최종적으로 완전히 끊는 것이며, 그것이 에고의 목표이다. (T-19.IV.C.5:1-2 ; 6:5)</b>
몸이 불멸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맥락에서 분리시켜 인용되는 또 다른 구절이 교사용 매뉴얼에도 하나 더 있는데, 이 글의 제목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일단 여기서는 해당되는 문장만 제시를 하고, 전체 문단은 다음 번 질문을 다룰 때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b style="text-align: justify; font-size: 9pt;">역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죽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M-27.6:8)</b>
위 구절들만 따로 볼 때, 기적수업 학생들은, 신체적 정신적 개인들로 존재하게 된 자신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그분처럼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면 위 구절들은 신체적 불멸성이 참이라는 것을 확증해주는 이론적인 근거로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착각은 분명,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말로 개인들로서, 몸들로서 창조하셨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참으로 태어난 것”은 그리스도, 우리의 자아Self이며, 이 자아는 오직 영이고, 영원하고 결코 죽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자아입니다. 물리적 정신적 정체성을 가진 거짓된 자아는 꿈속에 있을 뿐이며, 출생과 삶과 죽음의 허상이 있는 곳은 오직 이곳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떤 학생들은 위 구절들을, 몸이 부패할 수 없다는 점을 진술함으로써 예수가 신체적 불멸성을 옹호했다는 증거로 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정 부분만 인용하고 나머지 부분들은 제거함으로써, 위 구절들(과 거기에 붙여진 소제목)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실패해왔습니다.
“몸은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은 죽지 않고” 죽음이 참인 아닌 이유는, 몸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 몸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몸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잠자고 있는 마음의 허상적 꿈들 안에서만이, 몸은 과연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아시는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몸의 죽음이라는 개념에는 그에 앞서 몸에 생명이 있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몸의 죽음이라는 개념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도 다음의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몸 자체는 썩거나 썩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몸은 아무것도 아니다. 몸은 부패라는 정신 나간 작은 관념의 결과이며, 그것은 교정될 수 있다. (T-19.IV.C.5:3-6)
그러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살아 있지도 (살 수도) 없고, 따라서 그것은 죽지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기적수업 교과서 안에서 우리는, 몸에는 존재성being이 절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기술해주는 훨씬 더 강력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는 몸이라는 것은 생명이 없는 꼭두각시와 같다고, 꼭두각시를 부리는 자의 바람들을 그대로 실행하기만 한다고 기술합니다. 몸이 꼭두각시라면 여기서 꼭두각시의 주인이란 당연히 마음을 말합니다.
T-28.VI.1. 육체를 벌하는 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2여기서 작은 간격[=분리]을 보게 되지만 간격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육체는 자신을 심판한 적도 없고, 자신을 자신이 아닌 것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4몸은 고통을 기쁨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영원한 즐거움을 먼지에서 찾지도 않는다. 5몸은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네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6몸은 무언가를 뜻하거나, 좋아한다거나, 의심하지 않기에 희생시키지도 않는다. 7몸은 자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8따라서 경쟁할 필요도 없다. 9몸은 희생될 수 있지만 자신을 희생자로 느끼지는 못한다. 10몸은 아무 역할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공격하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한다.
T-28.VI.2. 볼 수 없는 것에게 본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듣지 못하는 것에게 네가 좋아하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고 탓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관점이다. 2몸은 감정이 없기에, 네가 내린 벌로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3몸은 네[=마음속 결정권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뿐, 결코 선택하지 않는다. 4몸은 태어나거나 죽지 않으며, 5그저 정해진 경로를 목적 없이 따를 뿐이다. (T-28.VI.1:1-2:5; 이탤릭체는 저자가 표시한 것임).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분리에 대한 아들의 꿈 속에서 몸은 진정 태어나고, 살고, 죽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허상의 세상 속에서만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생명 또는 존재being은 오직 영의 실재 속에만 있고, 이것은 에고에게 속해 있는 신체적인 존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이 텍스트의 앞부분에서 예수가 허상적 존속existence의 구체성을 존재being의 추상적인 실재와 대조하는 이유입니다. (T-4.VIl.4,5).
그러므로, 우리는 기적수업이 오직 영만이 불멸한다는 점을 가르치는데 있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가 다른 어떤 상태 속에서, 즉 물리적 상태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리의 꿈을 하나의 실재로 만들려는 에고의 시도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실재 안에서 우리의 개별적인 정체는, 에고가 삶이라 부르는 허상을 우리가 믿게 함으로써, 보증이 됩니다. 그리고 물론 이 시도는 수업의 궁극적인 목적과 정확히 반대됩니다. 수업의 목적은 우리 모두가, 개별성에 대한 꿈으로부터 우리의 참된 정체인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불멸하고 유일한 아들로서 깨어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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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1) 기적수업에서는 죽음이란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신체적인 불멸성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기적수업 한국 모임) | 작성자 모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