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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 시 90:1-17, 벧후 1:1-11
구약 렘 5:25절에 보면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신다. 창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만들어 주시고 예비해 놓으신 다음에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맡기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하셔서 우리를 위해 한없이 주고 싶어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면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 위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죄와 허물’이 있는 것이다. 이 죄와 허물이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물리치며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모든 좋은 것을 우리가 다 받아 누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허물을 고쳐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이다. 이 믿음은 너무나도 귀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도 이 믿음이 없다면 저주받은 것이다. 구원도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 믿음으로써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된다. 요 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이것은 정말 굉장한 것이다. 하나님 아래 천사가 있고, 그 제일 밑바닥에는 마귀가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저주받은 인간으로서 천사보다 못한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는 천군천사들이 부러워하는 존재로서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할 자가 된 것을 말한다. 또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복락을 누리는 자가 될 것을 말한다. 이 모든 축복은 믿음을 가짐으로써 얻게 된다. 그래서 벧후 1:1절에 보면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했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이다. 믿음장이라는 히 11장에 보면 믿음의 조상, 곧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믿음의 선진들은 그 인물의 잘남을 자랑하지 않는다. 학벌이나 재산, 건강, 힘 등을 자랑했다는 말이 없다. 그들은 세상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나 믿음이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중생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중생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계속해서 성화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과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은 순간적이고 단회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성화는 점진적이며 연속적이다. 성화는 한마디로 말해 본문의 말씀대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 곧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다. 조선 왕조에 철종이 있다. 그의 조상 때 강화도 귀양을 와서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자라다가 어느 날 왕이 되었다. 전주 이씨의 피를 타고 났기 때문에 왕이 되기는 했지만, 그는 왕답지 못한 삶을 살다가 일찍 죽고 말았다. 왕이 된다는 것과 왕답게 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성품에 아직도 마귀의 성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구원은 똑같이 받을지 모르나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받을 상급과 영광이 다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려고 하면 어떻게 힘써야겠나?
1.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했다.(5)
좋은 믿음은 덕을 세우는 믿음이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덕을 세우지 못하면 결코 좋은 믿음이 아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면 교회에 유익이 없다. 덕은 근본적으로 탁월함이다. 헬라어에서 이 말은 어떤 것이 그 목적을 완수했을 때 쓰인다. 땅이 큰 수확을 내었을 때 그 땅은 목적을 완수했으므로 탁월한 것이며 덕이 있는 것이다. 본문 4절을 보면 성도는 썩어질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 목적을 따라 살 때 덕을 소유한 자가 된다. 이 목표를 잃어버리고 썩을 것을 구하는 자가 된다면 덕을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활기있고 만족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는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고전 10:31-33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면 결국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된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 교회가 손해를 보게 된다. 덕을 세울 때에야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다. 고전 14:26절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방언도 예언도 다 귀하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을 세우는 일인 것이다.
2.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덕에 지식을 더하라고 했다.(5)
우리가 덕을 세우는 데에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영적 통찰력을 의미한다. 모세가 몇 살까지 살았나? 어느 산에서 죽었나? 이런 문제에 대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변두리 지식일 뿐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나 하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이런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될 때 우리는 덕을 갖출 수가 있다. 탁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자녀로 삼으셨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질 때, 우리는 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탁월한 삶을 살 수 있다. 예배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바른 지식을 갖게 될 때 우리는 탁월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을 보충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보충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바로 알아야 바로 믿을 수 있으며, 어떻게 덕을 세우는지도 알게 된다. 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성서를 보고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딤전 3:6절에 보면, 감독의 직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 말하면서도 ‘새로 입교한 자’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되어 지도자가 되면 교만해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마귀를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곧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직이다. 섬기는 일이다. 서로 종노릇하는 직책이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교회 안에서 교만이 생기고 불행이 생기나? 한마디로 말해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을 다해 수고해도 집사나 교사 등의 직분을 맡기면 안된다.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군이 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
3.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고 했다.(6)
지식이 많은 것은 좋으나 절제하지 않으면 큰일이다. 지식 곧 통찰력은 절제를 통해서 얻어진다. 지식이 많이 빠지게 되는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인간은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가릴 줄 알고 알맞게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알다 보니까 매사에 말을 많이 하기 쉽다. 아무리 좋고 바른 말이라고 해도 많이 하면 잔소리가 된다. 그러므로 지식이 많아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4.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고 했다.(6)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은혜로운 체험을 한 성도라 할지라도 세상은 재미있고 멋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힘써 인내의 훈련을 해야 한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절제를 하려고 해도 절제하지 못한다.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잘 참지 못하고 어른은 잘 참는다. 사람과 짐승은 모두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본능은 힘의 근원이다. 짐승은 본능에 의해 죽을 힘을 다해 먹을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은 먹고 싶은 본능이 있어도 아무 것이나 무조건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안되는 것인지를 가려서 먹는다. 이성의 판단을 다르고 결심을 하면 40일 동안 금식도 한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 본능의 충동에 따르지 않고 이성의 판단에 의해 잘 참고 견뎌야 할 때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이다. 특히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아무리 화낼 일이 있어도 화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서에 보면 화를 잘내는 사람은 다 망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재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 재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을 때 가인은 분을 내면서 살인까지 하게 되었다. 또 웃시야 왕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드리는 일을 하다가 대제사장이 말릴 때 그 순간 화를 냈다가 나병이 생겨서 고생하다가 죽었다. 사울 왕도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화가 났을 때 그 마을에 잇는 제사장과 그 모든 자녀들, 그리고 짐승까지 다 죽여버렸다. 그러나 화가 나더라도 잘 참고 풀어비리면 복을 받는다. 아람 나라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갔을 때, 엘리사가 나와보지도 않음에 화를 내고 돌아가려 하다가 충성스런 신하의 충고를 듣고서 화를 풀었다. 그리고 말씀대로 요단강에 몸을 씻을 때 몸이 낫는 복을 받지 않았나? 분을 오래 품으면 신앙과 인격에 유익이 없음을 물론이고 건강에도 해를 준다. 바울 사도는 엡 4:26절에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라고 했다.
5.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인내에 경건을 더하라고 했다.(6)
어떤 공수부대 출신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공수부대 근무 3년을 하니까 못할 것이 없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 공수 특전단의 훈련이 사람을 육체적으로 강한 자를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은 돈(뇌물)을 먹을까 말까 하는 유혹 앞에서 공수부대의 훈련 경력은 큰 도움이 안된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는 것은 경건이다. 인내는 자신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건의 능력을 소유할 때 인내는 제 빛을 발한다. 이 경건의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온다.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겅건의 능력을 소유할 때 욥과 같이 시험을 당해도 잘 참고 견딜 수가 있다. 요셉과 같이 여자의 유혹을 받아도 정욕의 노에가 되지 않고 누르고 참고 이길 수가 있다. 다니엘과 같이 사자 굴에 들어가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승리할 수가 있다. 또 사도 바울과 같이 감옥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고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다윗과 같이 사울을 죽일수 있는 형편에 처했어도 기름 부음받은 자를 죽이지 않고 참을 수가 있게 된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길 수가 있는 것이다.
6.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라고 했다.(7)
경건하게 보이는 사람 중에도 세 사람만 모이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큰 문제이다. 진리 문제가 아니면 잘 참고 이해하고 우애있게 지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우애있게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세상에는 사울 왕같이 변덕많고, 시기 질투가 강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윗처럼 참으며 대할 수밖에 없다. 빌 1:1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을 배척하는 사람으로서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하든지 투기와 분쟁으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라 했다. 성자다운 태도가 아닌가?
7.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다.(7)
형제끼리 우애있게 지내지 못하는 것은 사랑, 특히 아가페의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가페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믿음의 형제와 우애있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로써 사람의 인격은 바른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절제하고 인내할 수 있느냐, 얼마나 믿음의 형제들과 우애있게 지내느냐, 얼마나 사랑이 있느냐에 따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만큼 인격의 폭이 넓어지고, 미워하는 만큼 인격의 폭은 좁아진다. 또한 사랑은 영안을 밝게 하고 멀리 보게 하고 친구를 많게 하며, 오라는 데가 많아 자유의 폭도 커진다. 그러나 사랑이 없을 때 영안은 어두워지고 맹인인지라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원수가 많아지고 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
본문 11절에 ‘이같이 하면’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에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더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라고 한다.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올 사람들은 보배로운 믿음 위에 일곱가지 하나님의 더하심을 보충받아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성도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자기 자신의 죄가 무엇이고, 허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좋은 것을 준비하셔서 때가 되면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데 왜 우리가 그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죄와 허물이 있다면 이제 버려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1997-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