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노트 52
2. 질문 : 몸에 통증이 있을 때는 통증을 알아차려야 하는가요? 아니면 호흡을 알아차려야 하는가요?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답변 : 몸에 괴로운 느낌 때문에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이 방해를 받지 않으면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려라. 그러나 몸의 괴로운 느낌 때문에 일어남 꺼짐이 방해를 받으면 이때는 몸의 통증을 알아차려라. 이렇게 알아차려서 일어남 꺼짐이 사라지면 앉음과 닿음을 하라. 그런 뒤에 일어남과 꺼짐이 확실하게 사라지면 ‘앎’을 하라.
< 참고 >
대상의 선택은 수행자의 자유이나 몸에 통증이 있을 때는 먼저 통증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몸의 통증은 괴로운 느낌으로 매우 중요한 대상의 하나입니다. 호흡에 비해 통증은 단조롭지 않고 알아차릴 대상이 많습니다. 그리고 통증이 있을 때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고 졸음도 오지 않아 어떤 측면에서는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데 유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미한 통증은 무시하고 호흡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통증 때문에 싫어하고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호흡을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일은 마음이 하는데 일하는 마음이 통증 때문에 싫어하면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집중이 되지 않으면 호흡을 알아차려도 주의 깊게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언제나 일하는 마음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통증을 알아차릴 때는 먼저 통증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통증의 실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통증은 부르기 위한 명칭으로 관념입니다. 그래서 아플 때는 무조건 싫어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미 싫어하는 반응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증을 알아차려도 정성스럽게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통증 때문에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은 빠르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통증의 실재는 찌르고 당기고 화끈거리고 쑤시고 욱신거리는 여러 가지의 느낌입니다. 이것이 통증의 실재입니다. 관념의 통증이 아닌 실재의 통증을 알아차리면 의외로 견딜 만합니다. 이렇게 통증의 실재를 알아차리면 간헐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약간의 마음의 여유도 생깁니다. 이렇게 알아차려서 통증이 사라지면 이때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통증을 알아차려서 사라진 뒤에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리고, 일어남과 꺼짐이 사라진 뒤에 앉음과 닿음을 알아차리고, 앉음과 닿음이 사라진 뒤에는 ‘앎’을 하도록 한 것은 일련의 수행의 순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스승은 주어진 현상에 대한 답변을 합니다. 이런 현상이 사라지고 난 뒤에 해야 할 것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수행자에게 현안이 아닌 뒤에 올 다른 사항을 말하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현재의 문제도 감당하기 힘든데 다음 것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수행입니다. 또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말하면 현재의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문제까지 지적한 것은 이 답변을 하신 분이 큰 스승이 아닌 작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수행은 매우 미세한 부분에 있어 스승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수행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내가 하는 수행이 최고고, 내가 최고라고 하는 도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수행은 무엇이 옳다는 비교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자기 선업의 공덕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