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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은 왜 장충동일까요?”
“원조를 두고 경쟁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을 가도 족발은 있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족발’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매장만 전국 1만7902곳에 달합니다. 방방곡곡 위치한 수많은 족발 식당을 두고도 우리가 ‘족발!’하면 장충동을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요. 진짜 원조는 ‘실향민’ 음식 장충동 족발 골목에 가면 유독 많이 보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원조’인데요. 족발 앞에 원조가 빠지면 괜히 허전한 기분마저 들죠. 족발 앞에 원조가 붙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입니다. 수많은 족발 식당들은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 원조를 내걸었죠. 장충동 족발의 성공은 1960년대 들어 장충동을 족발의 메카로 만든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장충동 족발 골목의 성행엔 마장동 축산물 시장의 역할이 컸는데요. 1960년대 국내 양돈 산업이 발달하면서 마장동 축산물 시장도 성장했습니다. 돼지 목살이나 삼겹살뿐 아니라 족발, 곱창 같은 부산물을 구하기도 쉬워졌죠. 장충동 족발 골목과 마장동 축산물 시장은 자전거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데요. 장충동 족발집들은 멀지 않은 마장동에서 신선한 족발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충체육관 출입문에서 장충동 족발 골목 초입까지 걸어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3분 정도입니다. 직선거리로는 161m에 불과한데요. 1970~80년대 장충동을 경험한 세대는 장충체육관의 인기가 장충동 족발 골목을 만들었다고 회상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은 장충동 족발 골목에서 허기진 배를 달랬습니다. 장충동 족발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될까? 실향민이 자리 잡은 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장충동 족발 골목의 모습은 어떨까요. 장충동 족발 골목은 서울의 주요 상권으로 성장했는데요. 서울특별시가 장충동 족발 골목을 포함한 장충동 일대 7만1435㎡를 주요 상권으로 지정할 만큼 상권이 확대됐습니다. 서울시가 ‘우리마을가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변화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충동 족발 골목 상권을 찾는 사람이 줄고 있는데요. 특정 상권에서 길을 걷고 있는 인구를 측정하는 ‘길 단위 상존인구’란 수치가 있습니다. 장충동 족발 골목 상권의 길 단위 상존인구는 2020년 6월 기준 1㎡당 2만2650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6.8% 감소한 수치입니다. 상권 안에 있는 건물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인구를 집계하는 ‘건물 단위 상존인구’도 1㎡당 9만3165명으로 지난해보다 31.2% 줄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