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야 할 길♡
성경: 사도행전 20장 24절.
찬송: 439, 249, 491, 240
설교: 이 경준 목사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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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려고 목숨을 건 신앙의 달음질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빌립보서 3장 1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고 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신앙생활을 달리기에 비유했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빌립보서 3장 10절의 말씀과 함께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라고 했으며 히브리서 12장 1절로부터 3절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달음질은 우리가 아는 마라톤을 말합니다. 마라톤의 유래는 기원전 490년경 아테네군 1만 명과 페르시아군 10만 명이 아테네 동북방으로부터 40.2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벌였던 대전투에서 비롯됩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페르시아군을 물리쳤고,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려갔었는데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 도착해서 시민들에게 “기뻐하라, 우리가 이겼다.”라는 말만을 전하고 지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페이디피데스가 달린 거리가 42.195km인데 이를 기리기 위해 마라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42.195km의 거리는 인간이 달릴 수 있는 한계의 거리라고 합니다. 이 거리를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의 달음질도 이 같은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출발점과 결승점이 정해져 있어서 뛰어야 할 거리가 일정하지만, 신앙의 경주는 출발점과 결승점이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평가는 누가 얼마나 열심히 끝까지 달렸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에 따라서 상급이 정하여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간혹 마라톤 경기 중에는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서도 그와 같은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마라톤 경기의 중도 포기자는 그냥 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신앙의 경주자는 중도 포기를 하여도 경기장에서 이탈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끝이 나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마라톤은 뛰어야 할 거리를 알기 때문에 도착할 시간을 나름대로 예측하고 철저한 계산 속에서 뛰지만, 신앙의 경주에는 결승점이 어디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뛰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결승점이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인생의 끝을 알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을 것도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도 나오는데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종착점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은 결승점에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서 우승이 가려지지만, 신앙의 경주에서는 누가 얼마나 열심히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달렸느냐에 따라서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끝나는 시점까지 정말 신실하게 마지막 결승점을 향하여 꾸준히 달려가야 하는데 그렇게 열심을 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유혹도 뿌리치고 게으름도 물리치며 결승점에 도착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가 20 일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어떻게 달려왔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신실하게 달려왔었는지, 또 최선은 다했었는지,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면, 왜?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까지 달려온 우리를 보시고 어떻게 평가를 해주실까요? 잘했다고나 하실까요? 만일 믿음이 부족해서 신실하지도 못하고 세상 유혹에도 기웃거렸었다면 올해의 남은 날들이 내 인생에서 달릴 수 있는 마지막의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 보면 바나바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성경은 바나바를 이렇게 평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신앙인에게는 이런 칭찬이 따르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섬기시는 교회의 목사님이나 교우들에게 어떻게 평가되고 있습니까? 또 직장 동료들이나, 아내나, 남편에게, 또 자녀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이 여러분을 믿을만하고 신실하다고 평가한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름지기 신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 같은 사람들이 결승점에 도달하게 되면 주님께서는 열심과 충성을 다한 종이라고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의 요직이나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도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들이 다 정직하고 바른길로만 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될 것이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인이면서도 거짓말을 일삼고, 국민에게 비방 받을 일을 한다면 그들의 경주는 헛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일컬어 타락한 신자 곧 낙오된 신자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나라를 위하여 많은 기독교인을 귀하고 높은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漫忽)이 여기고 더럽히는 일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신앙의 경주는 어디 어느 자리에 있거나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결승점까지 달려가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마태복음 3장 10~12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하십니다.
신앙의 달음질을 하되 세상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결승점을 통과한 후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십시오. 충성은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남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도 열심히,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한 것은 귀한 만큼 값을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받고자 하는 상급은 우리의 생명을 다 드려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 상급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대가로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고백도 조만간 맞이하게 될 그 날에 사도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고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도 이제 20 여일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 한해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뒤돌아보며 우리의 영원한 사명인 복음을 위해서는 어떤 열심을 가지고 달려왔는지 생각해 보게 하시고 우리의 달려온 길이 우리 일신의 영달과 세상적인 목표로 일관된 시간 들이었다면 다가오는 새해에는 다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고 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어 풍성한 열매 맺는 우리가 되게 하시어 하늘의 상급을 쌓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코로나 상황이 다시 재유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며 기도하오니 코로나가 멈추고 다시 온전한 일상이 회복되게 하시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구촌 분쟁지역의 분쟁이 멈추게 하시어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시고, 추운 겨울을 맞이하여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과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사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도우소서!
이 땅에 세우신 지도자들이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하시며,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게 하시며, 국민들도 우상과 사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므로 모두가 행복한 나라되게 하시고,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명철 독수리 날개 치는 새 힘을 주시어 당리당략을 떠나 합력하여 어려운 시대를 극복해 나가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