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사 오르는 길에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시인 김영랑이 생각나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님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의 시 한 수 생각나네요. 수줍은 누이처럼 빨갛게 물들었네요
시산사는 勉菴 崔益鉉(1833~1906)을 추모하여 세운 사당이다.
현재 칠보초등학교에 있었는데 일본강점기 때 허물어 버려진 것을 1975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었다. 최익현 등과 같이 의병활동을 하신 고현동 출신 유생 金直述,金箕述 등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시산사에 오르는 본래 길
懸板과 색갈이 바래진 글씨 詩山祠
永慕堂
영모당에서 내려다 본 단풍과 松亭의 뒷면
松亭
칠보면 무성리 城隍山
광해군 13년(1621) 인목대비를 유폐하려는 사건에 항의한 김응빈 등 이른바 十賢이 세운 정자이다.
십현은 金應빈(1555~1632), 金灌(1575~1635), 金堪(1590~?), 金汲(1591~1643), 宋致中(1591~?),
金友直(1594~1659), 宋民古(1592~?), 梁夢禹(1589~?), 李逴(1581~?), 金鼎(1587~1636)이다.
靜中觀物化 -조용한 가운데 사물을 보는 변화?-
이효종 학예사가 泰仁 古縣洞 鄕約 圖錄을 들고 고현동 옛지명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송정의 주련
저의 주관적인 해석임 -권진순-
月潭夜御金鷄唱 (달이 못에 비친 밤에 금 닭이 우는 것을 制御하고)
松蔭雲遊白鶴翔 (소나무 녹음에 흰 학이 날아 오르며 구름속에 놀듯이)
晩年覺培求斷道 (늙으막에 끊어진 道를 구하고자 깨닳고 북돋우니)
半世浮休樂此生 (반세기 붕 뜬 것처럼 이 생애를 즐기로다)
十賢은 위에 언급하였으므로 七狂을 아래에 적는다.
蔡龍臣(한말 고종 어진을 그린 화가)이 1910년에 그린 七狂圖에 그림으로 남아 있다.
金大立(1550~?), 김응빈,김감, 송치중, 송민고, 李尙馨(1585~?), 이탁 이다
유유히 흐르는 동진강 지류와 멀리 보이는 정읍 칠보 수력발전소가 보인다
전우가 쓴 後松 글씨가 선명한 岩刻書
後松亭四十二員碑
처음에는 光武3년(1899) 金直述이 十賢을 추모한다는 뜻으로 十松亭이라고 불렀다가
언제 부터인지 後松亭이라고 불리어졌다
태산선비문화사료관장 이신 안창렬선생님의 강의가 끝나자 봉사자 여러분께서
힘찬 박수로 보답하고 있다
不憂軒 丁克仁 (1401~1481)
정극인은 단종이 폐위되자 태인에 낙향하여 국문학사상 최초의 가사 상춘곡을 짓고
이 가사에는 혼탁한 정치현실을 떠나 자연에 묻쳐살며 봄 경치를 완상하고
安貧樂道하는 모습이 賞春曲에 나타나 있다.
불우헌이란 號도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 버리고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정조 10년(1786)에 후손 丁孝穆이 불우헌집을 목판으로 간행했으며
1969년 丁氏敍倫堂에서 책을 다시 간행하였다.
정극인의 상춘곡은 이어 宋純(1493~1582)의 俛仰亭歌,白光弘(1522~1556)의 關西別曲과
鄭澈(1536~1593)의 星山別曲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상춘곡시비
상춘곡
일부 원문 과 해석
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生涯 엇더ㅎ.ㄴ고
녯 사ㄹ.ㅁ風流ㄹ.ㄹ 미ㅊ.ㄹ가 ㅁ.ㅅ 미ㅊ.가
天地間 男子몸이 날만ㅎ.ㄴ 이 하건마ㄴ.ㄴ
山林에 뭇쳐 이셔 至樂을 ㅁ.ㄹ.ㄹ 것가
數間茅屋을 碧溪水 앏픠두고 松竹 鬱鬱裏예
風月主人 되여셔라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이 나의 생활하는 모습이 어떠한가?
옛 사람의 운치 있는 생활을, 네가 따를까, 못 따를까?
천지간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와 같은 사람이 많건마는,
어찌하여 그들은 나처럼 산림에 묻혀 사는
자연의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송죽이 울창한 속에 풍월주인이 되어 있도다
洞閣
고현동 향약을 보관하고 실시하는 곳이다.
조선 세조 癸未年(세조 9년,1463)에 정극인이 세워 藍田呂氏의 향약으로 권선징악하니
뒤에 송세림,정언충,김정 등이 보수했고 철종 갑인(1854)에 金鏞,宋彦浩,金龜欽이 중수했다.
지금 한창 보수공사중이다
동각의 대문에 주인님 문패와 삼강오륜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延安府使를 지낸 礪山 宋氏 宋繼性의 遺墟碑閣과 그 옆에 비운의 왕비
端宗妃 定順王后 宋氏의 비석이 최근에 세워졌다.
流觴臺와 洞閣사이 주차장에 있는 단풍진 喬木
유상대는 지금 보수중이라 출입을 할 수 없어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신라 定康王1년(866) 최치원이 태산군 태수로 부임하여 재임기간동안 劒丹大師와 더불어
流觴曲水(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던 놀이)로 소요하던 곳이다
안채의 우측 며느리방의 부엌. 부엌과 며느리방과는 음식물이 드나드는 작은 눈곱자기창 같은 것이 없다
안채
안주인이 기거한 곳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양측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좌우에는 큰방과 작은방, 양측에 부엌을 배치하여 큰방은 시어머니,작은방은 며느리가 기거하였다
안채의 좌측 시어머니방의 부엌. 부엌과 안방 곁마루에는 작은 창이 있어 음식이 드나들 수 있었다
우물
안채의 정면. 좌측 시어머니방과 부엌,우측은 며느리방과 부엌
祠堂-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
아름다운 부엌의 창
답사후기
태인 고현동 향약 답사를 마칩니다.
참고자료 : 2008년 11월 특별전 '한글노래의 풍류-시조.가사' 도록
2009년 11월 특별전 '태인 고현동 향약' 도록
사진 및 편집 권진순
2011년11월4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