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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진고개-동대산-두로봉-구룡령
0. 위치 : 강원 양양 서면 현북, 홍천 내면, 강릉 연곡, 평창 진부 도암면 0. 코스 : 진고개-동대산-두로봉-만월봉-응복산-약수산-구룡령 (상행)
다시 진고개에 섰다. 이곳에서 지난번엔 대관령으로 내려갔지만 이번엔 구룡령을 향해 위로 올라가는 거다. 첫 번째 관문인 동대산 길은 처음부터 오름길이지만 잘 다듬어졌다. 돌로 바닥을 깔아 계단을 만들고 침목으로 버팀목을 삼기도 하여 제법 탄탄하게 정비하여 놓고 입산통제를 하니 모자란 상식으로는 수긍이 가질 않는다. 1.7km 동대산을 45분 만에 거뜬하게 올라선다. 내딛는 발길은 대체로 흙길로 축축하여 부드럽다. 새벽바람이 청량한 느낌에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넘어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기도 한다. 누구 말마따나 참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다. 감히 대간을 막고 누워 길을 터줄 생각을 않다니. 정말 싹수없는 녀석이다. 하기야 싹이 없으니 죽은 녀석임에 틀림없고 몸뚱이가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거대한 하얀 돌덩어리 세 개의 차돌백이(1200m)다. 특이한 석질이니 어디선가 날아와 뚝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채 5시도 안되어 동이 터버렸다. 안부인 신선목이로 두로봉에 오르는 길목이다. 두로봉은 정상에 가까우면서 오히려 펑퍼짐하고 주목도 보인다. 진고개에서 8.4km를 3시간여 만에 올랐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야간산행을 한 셈이다. 벌써 산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깊은 산속에 부지런도 하다. 먹이를 찾고 있는 건가. 우리를 환영하는 건가. 그도 아님 불청객이 오고 있다고 경계의 비명을 지르는 건가. 그러나 목청이 곱기만 하다. 오대산은 비로봉(1563m)을 비롯해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2m) 동대산(1434m)의 다섯 봉우리가 둥글게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이들 산줄기는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형성된 지맥으로 오대산맥을 형성한다. 오대산은 겉보기와 달리 여성적인 산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금강산이 지닌 위엄과 조화와 변화의 미까지 골고루 갖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성산으로 손꼽혀 오고 있다.
오대산은 오대신앙의 본산이 있는 곳으로 불교와 인연이 깊다. 오대산의 ‘오’는 “석가모니 관음보살 문수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을 의미하고 ‘오대’란 이들이 상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대산자락 다섯 곳을 ‘동대 만월산 관음암’ ‘서대 장령산 수정암’ ‘남대 기린산 지장암’ ‘북대 상왕산 미륵암’ ‘중대 풍로산 사자암’으로 칭하고 각 대에 암자를 두었다. 특히 중대의 사자암 위쪽에 석가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있다. 왼쪽으로 꺾으면 대간에서 벗어나 상왕봉 비로봉 호령봉으로 이어진다. 옆에 초소 하나가 들어섰는데 산불감시초소라기보다는 출입을 통제하는 곳인가 보다. 정상에 힘겹게 올랐다고 마냥 머물 수는 없다. 갈 길이 아득하게 멀기만 하다. 두로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다가 되돌아와 약간 왼쪽 길로 다시 접어들었다. 음지쪽이라 쌓인 눈이 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질퍽인다. 굽이굽이 대간능선을 되찾아 신배령을 향해 돌진한다.
평탄한 길에 원시림 속을 걷는 것 같다. 그 밑에는 온갖 들꽃이 피어났다. 마치 봄날의 천상화원 같다. 신배령을 벗어나 꽃밭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약삭빠른 사람은 비탈을 타고 내려가 곰취를 뜯고 의기양양 하다. 이곳은 멧돼지의 텃밭이었던가. 온갖 꽃이 또한 약초려니 그 뿌리를 캐먹고 힘이 펄펄 날 것이다. 주둥이로 들쑤셔 놓은 것이 밭을 경작하는 것 같다. 메마른 웅덩이도 보이는데 때로는 목욕탕의 역할까지 할 것이다. 1210봉에 올라섰다. 오른쪽은 복룡산(1014m) 길이다. 왼쪽으로 꺾어 만월봉(1281m)을 넘고 응복산(1359m)을 넘었다. 왼쪽 계곡이 홍천군 명개리다. 이제 오늘 산행의 마지막 고비가 될 약수산(1306m)으로 향한다. 가파른 길을 자꾸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야 한다. 오르락내리락 그게 산행이다. 오늘은 높은 봉우리를 많이 오르내린다. 그만큼 에너지도 많이 소모된다. 안부서 숨을 고르며 충전을 한다.
1126봉인가 마치 사다리를 세워놓고 오르는 것처럼 힘겹게 한다. 바람이 간간이 불어 땀을 식혀주며 컨디션을 조절하였는데 바람조차 어디론가 사라졌다. 후텁지근해지며 나른하다. 간간이 이름 모를 들꽃이나 이제 막 터지는 새싹에 눈길을 주기도 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어 약수산에 오른다. 한참 진달래가 수놓고 있다. 제대로 봄날을 만난 것이다. 멀리 엿가락 같은 도로 일부가 드러난다. 도로를 따라 저기가 구룡령일 것이다. 안내판의 왼쪽 상단에 한계령이 그려져 있다. 이제 설악도 멀지 않았구나! 그러고 보면 참으로 많이도 왔다. 하기야 벌써 서른 번째 산행이 아니던가. 이제 구룡령 고갯마루까지는 30여분, 급한 내리막으로 오름보다는 수월하지만 제법 땀을 흘리게 한다.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를 연결하는 구룡령은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 같은 높은 장벽에 막힌 산지와 해안 지역의 동서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해냈다.
*. 2008년 02월 15일~16일 무박 9시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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