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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04시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출발 5분전, 출발 3분전, 출발 1분전, 출발.......
에누리 없이 04시에 잔차에 긴장된 몸으로 올려 놓고 있는 해돋이도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으려고 어둠속으로 빠져 들었다. 진부령 초입까지는 거의 평지였나 보다. 뭉쳐서 어둠을 뚫고 달리던 행렬이 달리면 달릴수록 선두권에 포함된 사람들과 서서히 간격이 벌어지면서 늘어지기 시작했다. 앞에 가는 사람들과 벌어지더라도 쫓아가려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내 힘을 파악하면서 달리는데도 무릎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종아리도 땡기는 것 같기도 한 것이 긴장이 아직 덜 풀렸나 보다. 이때 주의할 사항이 있었다. 많은 인원이 라이딩 할 땐 다른 라이더들을 위해 잔차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빨리 길 밖으로 잔차를 옮겨야 되겠다. 한 참가자가 라이딩 도중에 잔차에 문제가 생겼는지 도로 중간에서 멈추는 바람에 뒤따르던 다른 라이더들과 충돌을 유발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도 어둠속에서이니 오죽하랴. 나도 놀라서 피하긴 했어도 "주의! 주의!"라고 외치면서 지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도로가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서서히 나타나는 고개의 심적 부담감,
진부령에 가까워오자 고개길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여기가 첫 고개인데...... 잘 넘어가야지 하면서 앞을 보면 선두에 달리는 참가자들도 높아지는 고개만큼이나 멀어지고 있었다. 에휴~ 무리하지 말고 넘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페달을 구르고 올랐다. 진부령 정상을...... 이미 선두를 달리던 참가자들이 떠나고 몇 명만 남아서 쉬고 있었다. 잠시 쉬면서 사진찍고 있을때 장고님이 올라왔다.
여기부턴 내내 장고님과 함께 했다.
진부령 정상에 올라(앞으로 펼쳐질 고생길은 모를 뿐만 아니라 잔차타다 다친 이가 보기 흉한 줄도 모르고 이를 보이고 있다. ^^.)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던 고개가 해발 520M라니...... 앞으로 펼쳐질 길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여기서 잠시 사진 찍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였다. 모모님은 일행을 기다리느라고 뒤에 남았다.
요번 랠리의 가장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가 사진을 찍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냅다 달리기에만 몰두한 점이다. 그래서 랠리의 마음속 여운은 오래도록 남을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되새길 흔적들은 놓치고 말았다. 이렇다 보니 랠리코스 부분부분의 진한 구간은 기억에 남아있고 나머지는 슬며시 지워지기 시작하였다. 더 지워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아 게으름이여.
진부령을 넘어 다운힐을 하는데 바람의 심술로 시원한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르막처럼 페달의 도움으로 달렸다. 이런, 오르막의 고통을 내리막에서 보상 받는 재미로 올라왔는데...... 맞바람 때문에 내리막길에서도 페달을 굴려야 한다니 장고님과 함께 바람을 원망하면서 달렸다.
일단 코스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필름을 돌려야 겠다. 곳곳에서 우리가 지나친 추억이 남아있어야 할 지도이다.
어제 차로 원통에서 진부령 넘어갈 땐 금방 넘어갔는데 잔차로 진부령에서 원통으로 오는 길은 왜 이리 길게 느껴질까? 진부령을 넘어 원통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이때가 대략 07시에서 08시정도 되었으리라..... 이미 김밥을 챙겨 내뺀 팀들도 있고 우리가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도착하는 팀도 있었다. 조용하던 원통이 라이더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해지기 시작했다.(뻥 좀 보태면^^) 마음이 급해진 장고님과 나는 비상식량용으로 김밥을 두 줄씩 챙겨서 배낭에 넣고 서둘러 서화, 해안 방면을 향해 출발하였다.
김밥집에서 찰칵! 숨가쁘게 라이딩하느라고 모습 구겨지는 것 신경 못쓴다.^^
식사를 마친 후 서화, 해안 방면으로 달리니 바로 오르막 길이다.
고개에 올라 원통쪽을 바라보니 이제서야 도착하는 참가자들이 줄지어 달려 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우리보고 짐승이라고 말 할 지 모른다. 푸하하.... 장고님이랑 둘이 라이딩하면서 우리 앞에 가는 모든 참가자들은 "짐승"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짐승들은 아마도 평속 15Km 이상일 것 같다. 에구 평속 15 라면 초보잖아! 라고 판단하시면 않된다. 고개 오를 때 평속을 말했으니 말이다. 이 짐승들은 지금도 느긋한 식사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얘기처럼 우린 거북이처럼 쉬는 시간을 줄이고 꾸준히 달리기로 하였다.
첫 날 아침식사를 해결한 원통부근 상세도 (이곳을 지나면 화천까지 많은 인원이 식사하기 마땅한 곳이 없다)
고개를 넘어서니 완전히 고립무원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래서 비상식량을 챙기라는 정보를 주었나 보다. 가도 가도 고만고만한 시골 모습이었다. 서울에서는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여 푸르름이 산을 덮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서는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이 꼬리를 치우지 않고 있는 듯 드문드문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가을 낙엽 수북한 곳에 노랑 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어서 겨울과 봄이 함께 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면서 달리는 도중에 우리를 앞지르는 라이더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짐승들,아침식사시간을 줄이면서 까지 일찍 출발한 우리를 추월하여 달리는 실력이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리 실력에 맞게 달리고 달렸다. 아차!!! 뒤에 달리던 장고님이 나와 접촉하여 넘어지셨다. 다행이 큰 부상은 없었으나 왠지 앞서가면서 감속하거나 잔차를 흔들었는지 미안할 뿐이다.
무심히 달리면서 중심을 잠깐 잃었다고만 말했다. 여기서도 교훈하나 확인했다. 아무리 주의해도 아차하면 실수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장고님, 미안합니다. 그러면서 아침에 식사하고 칫솔부러진 이야기를 해주면서 조짐이 이상해서 주의할려고 했다는 말씀을 하였다. 정말로 계속 라이딩할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장고님이 다치거나 잔차가 이상이 생겨서 라이딩을 중단해야 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자주 쉰다. 쉰다는 것은 허기를 달랜다는 것의 다른 뜻일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서로의 육포를 꺼내 들고 서로에게 주었다. ^^
구비구비 달려오니 왠지 낮설은 분위기의 지형이 나타난다. 바로 해안이다.
산으로 빙 둘러 쌓인 모습이 장관이었다. 비탈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어 농토로 바뀐 모습이
경이롭고 다른 나라에 온 듯하다. 그런 분위기에 주변을 둘러보면서 달리다 보니 벌써 언덕이 나타난다.
휴, 앞을 가로막고 선 산..... 바로 도솔산(두솔산?)이다. 아직 이파리가 나오지 않아 을씨년스런 분위기인 이산을 잔차로 넘어야 한다. 고개에 오르기 전 준비한 영양식으로 힘을 보충하기로 하고 장고님과 휴식을 취하였다. 물론 서로의 물건(초콜렛, 육포)을 빨리 소비하려고 자기 것을 먹자고 하였다. ^^
생각해보라. 서로의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 서로에게 권하는 모습을...... 이것은 순전히 가을 논에서 벼를 서로 옮겨 놓던 형제의 아름아운 동화가 아니라 자기배낭무게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면 웃자고 한 이야기다. 고생스런 라이딩으로 자연스럽게 이심전심의 상대를 위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도솔산 오르기 전에 간식을 열심히 먹으면서(쉴 땐 먹는 것이 전부다^^ 다음 랠리 땐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
큰산(신광섭)님이 찍은 펀치볼 모습 아마도 도솔산고개를 오르면서 찍은 듯하다
해안의 지형을 상상해 보시라! 왜 펀치볼(Punch bowl)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참고로 일산mtb 황토(조동안)님이 작성한 자료를 보면......
도솔산 높이가 1000고지가 넘어간다...... 헉~ 우리가 이런 길을 잔차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지겹도록 페달을 돌렸다. 엉덩이에 불이 났다. 오르고 올라 모퉁이 돌아가면 또 오르막길이 있다. 힘들어서 자세를 바꾸기 위해 신발을 클릿에서 분리시키고 엉덩이 들고 페달을 돌려보기도 하면서 오르고 또 올랐다. 장고님도 길바닥만 보고 올랐나 보다. 모래알을 세었으니...... 백만하나, 백만둘...... 흐억 힘들다. 정상에는 길 옆이 바로 군부대 입구라 군인이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을 한 줄씩 먹었다. 라이딩 중간에 수시로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허기가 찾아온 다음엔 아무리 먹어도 힘을 낼 수 없단다. 이미 늦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달리다가도 먹고 쉬면서도 먹었다. 이쯤에서 달리면서 먹을 때 발생한 쓰레기를 그냥 버린 사실에 대한 양심고백을 해야 하겠다. 처음엔 발생한 쓰레기를 배낭에 잘 챙겼으나 힘이 들수록 잔차를 타고 가면서 먹어야 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이때는 길 옆에 그냥 던졌다. 마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생수를 마시고 생수통을 집어 던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자연을 더럽힌 죄 묻히지 않으리라...... 크흑~ 라이딩 주변의 아름다운 산과 숲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질 않는다.
도솔산 정상에서 김밥을 먹고 난 후 찰칵~(역쉬! 배가 불러야 여유가 생긴다.^^ )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도솔산 내리막길을 무지막지하게 달렸다. 사실은 60이상 넘기지 않았다. 남산의 내리막길에서 넘어진 후 내리막공포증이 마음한구석 쪼그리고 있기 때문에 60을 넘으면 속도를 줄인다. 다른 라이더들은 80을 넘겼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장고님은 앞서 달리면서 "오르막의 고통"을 시원하게 보상 받는다. 야호.......
중간에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어본다.
도솔산의 봄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이렇게 다운힐의 기분으로 한 층 힘을 얻어 달리다 보니 또 다시 고개가 나타날 조짐이 보였다. 이제 평화의 댐을 지나 가기 위한 고개들이다. 길고 긴 오르막길, 너무나 짧은 내리막길이었다. 힘든 것으로 보면 말이다. 그래도 오르막은 오르막 나름의 "힘든 오르막을 올랐다는 즐거움"이 있고 내리막은 안장의 진동을 느끼면서 내달리는 내리막 나름의 기쁨이 있다. 요기서도 오르기 전에 준비한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 아름다운 들판을 화장실로 생각한 일 반성합니다. ^^
내가 다녀 갔음을 알리는 모습(장고님 사진도 올립니다. ^^ 차마 원본은 못 올립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과 산, 그 사이로 난 랠리코스 보기만해도 환상적인 길이다.
구불구불 돌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그림으로 만 보아도 가슴이 뜁니다.
장고님 말씀 "터널 앞 500미터 라이트를 켜라는 표지판"이 나타나야 언덕을 넘을 수 있단다. 그 표지판이 보이면 터널이 보이고 터널을 지난다는 것은 고개를 하나 넘었다는 것과 바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떠올리고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표지판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터널 앞 500미터가 아니라 5Km정도로 멀어 보였다. 몸이 지치면 한 발자국도 천근만근인 이때에 500미터는 너무 멀었다. 그래도 간다. 왜? 길이 있으니까!
랠리 코스로는 정말 좋은 곳이다. 산과 산뿐인 이곳에 길이 있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잔차를 굴리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달리고 있다. 여러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여 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에 도착하였다. 이런, 관광버스가 떡 허니 서 있었다. 헉헉거리며 도착한 우리를 어쩌란 말이냐? 저 느긋함이 묻어있는 관광객과 그 버스를..... 그래도 그 곳 노점에서 꼬치어묵을 하나씩 먹으면서 물도 보충하고 사진도 찍었다.
평화의 댐 위에서(오래 전 자동차로 갔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평화의 댐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출발하여 오늘의 마지막 관문인 해산터널을 향해 달렸다.
평화의 댐 위로 지난 도로를 따라 구비구비 돌아가는 이 길은 정말 지금까지 올라왔던 어떤 고개보다도 지겨웠다. 그래도 지금은 몇 키로 짧아졌다지만 이것은 모퉁이 돌아가면 또 다른 오르막, 오르막 올라가보면 또 다른 모퉁이 돌아가는 길, 수 없이 반복되었다. 다른 라이더들은 잘 도 오르는데...... 장고님과 나는 바닥에 있는 모래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느리게 올랐다.
중간쯤 갑자기 허기가 찾아 오는 것 같아 장고님에게 부탁하여 쉬자고 말한 후 남겨놓은 김밥 한 줄을 뚝딱 해 치웠다. 라이딩 중간 중간에 먹은 초콜렛이며, 육포, 연양갱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나 보다. 오르막 길 중간에 쉬면서 김밥 한줄 먹으니 허기가 가셨다. 그리고 또 다시 업힐, 업힐, 업힐, 지겨운 업힐 중간에 손바닥 만한 다운힐이 나타나도 좋아서 "야~ 다운힐이다" 환호하였다. 심한 고통으로 인간이 단순해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
해산 터널입구에 있는 가게 주인인듯한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길 언제 쯤 내리막길이 되나요?" 우리의 고통과는 전혀 무심하게 "터널지나면 되요"라고 대답했다. 희망이다. 첫날 라이딩 도착지점인 화천 대이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이다. 이제 터널 지나 다운힐이다. 다운힐은 모든 고통을 바람과 함께 날려보내고 있다. 시원한 바람소리 때문에 귀가 멍할 정도이다. 축축히 젖어 있던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화천에 가까워지면서 내리막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좋겠다. 평속 30은 나오는 것 같다. 중간 갈림길에서
확인하고 화천대이리를 향해 달렸다. 잠시 후 드디어 도착한 곳이 대이리 민박집이다. 아침 04시에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간은 약 17시 경이다. 이미 도착하여 씻고 저녁 식사를 하는 팀도 있고 우리보다 늦게 도착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간단하게 씻고 강 건너 어죽집에서 어죽과 동동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오늘 밤 숙면을 위한 반주였다. 그리고 숙소를 배정 받고 곧바로 잠을 청했다. 코고는 사람 기준으로 배정된 숙소에 장고님과 함께 잠들 수 있었다. 단지 피곤하면 코고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고님과 한 방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ㅎㅎㅎㅎㅎ
참, 라이딩 중간에 메시지로 힘을 주신분이 있다.
그러나 코고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머리에 무언가 닿으면 잠드는 실력인데다가 몸이 피곤하니 곧바로 꿈 없는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제3일(4월 30일 일요일. 랠리 둘째 날)
잠시 후 술렁이는 소리에 깨었다. 벌써 새벽인가보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잠든 듯 한데 벌써 둘째 날 라이딩이 시작되려나 보다. 서둘러 짐을 챙기면서도 매일 면담하는 실장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혀 기미가 없다. 아무래도 너무 고생해서 신체리듬이 변했나 보다. 속으로 당혹감을 느끼면서 있는데 장고님은 해결했단다. 간절히 바랐다. 출발 전에 면담이 이루어지길..... 정말 라이딩 도중에 면담 신청 오면 곤란하다. 만약 들판에서 실장님의 호출을 거부하면 사태가 심각해 질 수 있기도 하거니와 같이 라이딩하는 장고님에게 시간을 지연시킬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오늘도 실장님과의 면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면담하면서 느낀 점인데 속이 타 들어 간다는 결과가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 그래도 성공했으니 다행이다.
오늘부터는 큰 언덕 없이 라이딩하리라는 희망으로 있었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다른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비에 대배해 신발과 안장을 비닐봉지로 감싸거나 준비한 우비를 걸치면서 출발 준비에 분주했다. 드디어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05시에 출발, 출발 5분전, 출발 1분전, 출발!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에선 일정대로 출발하는 매정함이 행사의 진행요령이란다.)
빗속을 뚫고, 어둠속을 뚫고 달리는 라이더들의 행렬, 화천시내로 갈 수록 빗 줄기가 세어지고 있었다. 그 저 견딜만한 것이 아니었다. 벌써 바퀴를 타고 올라 튀긴 물방울로 엉덩이가 축축해지고 신발은 질퍽이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대열에서 벗어나 준비한 우의를 덮어씌우고 다시 출발했다. 간단하게 오리라고 생각한 내가 틀렸다. 드디어 화전시내에 진입하여 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여기서 난리가 났다. 식당주인집에서 가지고 있는 김장봉투(?)는 다 달라고 해서 우의 대용으로 개조하여 우중라이딩에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나중엔 조그만 비닐봉투도 없었다. 역시 라이딩경험이 많을 수록 이런 때 대비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김장봉투를 몇 군데 구멍을 내니 우비가 되고 바지가 되었다. 크하하..... 역시 실전이 중요하다. 나는 겨우 조그만 비닐봉투로 안장을 감싸는데 만족하고 말았다.
수많은 라이더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던 식당^^
정신 없이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빠져 나와 라이딩을 시작했다. 어제처럼 쉬는 시간을 줄이는 작전으로 앞에 나서야 중간에 쳐져도 덜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주변 경관을 즐기지 못하고 달리기만했다. 그 점이 요번 휴전선랠리에서 제일 아쉬운 점이다.
우중 라이딩 중간 작은 고개를 만나 고생하는 장고님과 나의 모습( 요 정도는 아주 작은 언덕인데...... 심술궂은 비바람 때문에 )
이렇게 오랜 동안 비바람으로 펄럭이는 판초(poncho)우의차림으로 라이딩하였다. 비가 서서히 잦아들고 이제 습기만 가득한 공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때 우의를 벗었다. 시원했다.
그동안 두툼한 바퀴와 펄럭거리는 차림으로 힘들게 라이딩하면서 갈 생각에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협조해 주는 바람에 외투(?)를 벗고 가볍게 라이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마음먹었다.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하자. 여기서부터 큰산(신광섭)님을 만나 같이 라이딩하였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작년 8월부터 잔차 생활한 것이 전부인데 황토(조동안)님의 멘트 "몰랐다면 불행이고 알고도 못했다면 후회한다"에 혹해서 도전했단다. 대단한 분이다. 그래서 이제 셋이 되었다. 장고님,큰산님,나. 셋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김화를 향해 달렸다. 우리가 분단국임을 확인할 수 있는 군사지역을 수없이 달리면서 나라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꼈다. 내가 군 생활 할 때는 이곳은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을 텐데......
김화-철원을 거처 신탄리에 이르는 길은 말고개를 제외하고는 무난했다. 이제 500미터 이하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말고개를 힘들여 힘들여 올라갈 때 동서울 가는 버스가 지나갔다. "장고님 저거 잡아서 잔차 실으면 집에 갈수 있어요" ㅎㅎㅎㅎ 업힐이 얼마나 지겨우면 그런 생각을 했겠는가? 그렇지만 모든 지역이 군사지역이라 흔적을 남기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다음 기회 있을 때 느긋하게 달릴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면 사진 찍으면서 달리고 싶은 길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날씨가 땡볕이 아니고 우중충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계절적으로도 랠리에 적격이다. 코스를 몰라 이길 저길 생각하고 빗속을 뚫고 라이딩하면서 주민들의 시선을 받아보고 한적한 코스만 골라 골라 라이딩할 수 있는 이 길..... 마치 사막에서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면서 목적지를 향해가는 스릴을 맛 보았다. 김화를 거쳐 철원을 지나 신탄리를 향하는 중에 "노동당사" 건물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맛보았다. 내가 젊었을 때 대마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출입이 까다로워서 민간인은 원주민 외에는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포장된 길을 달리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쫄병으로 자대 배치할 때 을씨년스런 분위기로 걸어가던 그 길이 포장되어 민간인이 아무 제한 없이 다닐 수 있게 변해 있었다.
옛날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런 곳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이곳을 지나 신탄리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체인에 오일을 바르고 출발했다. 날씨가 다시 빗방울이 후두둑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꺼리낌이 될 수 없었다. 우린 이미 목적지인 오두산통일 전망대가 눈에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신탄리 지나서 달리고 달리면서 차량도 많아지고 길도 복잡해졌다. 백학저수지, 문산을 지나 통일전망대 부근의 축구대표트레이닝센타까지 달리는 길은 "이길이 아닌게벼"가 많았다. 여기서 사자팀 세분을 만나서 나란히 달려 올 수 있었다.
이미 모모님, 호단님은 출발전에 인사드렸기 때문에 너무나 반가운 조우였다. 물론 불곰님도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대단한 힘을 소유하신 것 같다. 처음으로 함께하였지만 두툼한 바퀴를 굴리는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어 힘이 넘쳐보인다. 이처럼 잔차의 세계는 다양하면서도 좁은 것이다. 어디서든 사람의 기본은 해야 한다. 항상 처신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는 곳이다.이렇게 재야에 숨은 고수분들이 많다.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동네 아이들이 우릴 보고 경쟁을 했다. 물론 잠시지만 말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조심해서 달리라고 말해 주었다. 동네 녀석이 물었다. "아저씨 어디까지 가요?" 내가 대답했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지 말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라고 그랬더니 순진한 녀석이 "어디서부터 오셨어요?"라고 바로 질문을 날렸다. 속으로 "으흠"하고 "응 동해안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다"라고 대답하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푸하하..... 놀래서 경쟁을 포기하는 동네 꼬마녀석들을 뒤로 하고 느긋하게 페달을 돌렸다.
문산지역에 다다르니 길바닥에 노란색 스프레이로 "휴전선"이란 글과 함께 화살표를 한곳이 보였다.
워낙 갈림길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길을 헤매이는 라이더들을 여럿 만났다. 오디랠리 관계자로 보이는 털보님(너무 멋있어 보였다. 털보님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외국인들, 그리고 다른 참가들과의 엇갈림을 겪은 다음 자유로 옆을 따라 문산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목적지에 이르기 전 야트막한 언덕은 얄궂었다. 자동차도 많이 지나갔지만 왜 이리도 힘든단 말이냐! 지나온 고개에 비하면 야트막한 것인데도 온 몸이 저려왔다. 마지막이다. 힘내자..... 이렇게 목적지인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 입구에 도착하였다. 햐~ 해냈다는 생각뿐이다. 380여 키로를 잔차로 달려왔다는 꿈같은 일을 내가 해 내고 말았다. 오후 17시 15분경이다. 컷오프시간이 17시인줄 알고 완주를 포기하고 달렸다.
도착하여 확인하여보니 19시 몇 분이었다. 우리는 중간 정도로 도착하였다. 첫 도착시간이 14시경 무렵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단한 분들이다.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진행하시는 황토님에게 기념사진도 부탁했다.
무슨 표현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완주자들의 고통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휴전선랠리를 완주해보라.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라고....
이상으로 휴전선랠리 후기를 마친다. 미흡한 부분은 해돋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표현 못한 것이다.
너무 많은 점을 놓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새로운 휴전선랠리가 벌써 기다려진다.
아울러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랠리를 마련하신 황토님, 초로객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 드립니다.
2006.4.29~30(토,일요일) 휴전선랠리 라이딩후기를 가 씀
첫댓글 장문의 후기를 보면서 해돋이님의 됨됨이가 보입니다. 너무나도 성실하고 바르다는 느낌... 진정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 이땅을 잔차로 즐기고 싶은 사람, 어디든 저와 함께 투어를 같이 가고 싶은 사람. 해돋이님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잔차로 다른 세상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모두가 승리자입니다~~ 해돋이님 덕분에 완주했다고 생각합니다~~황토님과 초로객님에게 감사할뿐입니다^^ 신광섭님에게 인사도 못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완주를 할 수 있었지요. 혼자는 못합니다. 제가 도리어 감사합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는 군요 글들이 살아 있습니다 장고님 안녕하세요 잘지네시죠
마지막까지 같이해서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도 라이딩 기회가 올때 같이할땐 큰산님을 못 따라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