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정산 병풍암 석불사 / [2] 만덕사지
* 202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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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풍암 석불사
️금정산 병풍암 / 좌측에 석불사가 있다. 그늘져서 보이지 않는다.
️진입 비탈길 도로변에 거대한 불자
️병풍암 옆, 협소한 지형에 자리잡은 석불사 입구.
종각
종각
대문앞
문은 단 하나.
️1927년 일현당 용선선사(조일현)가 창건
️먼산은 금련산과 황령산
종각
대웅전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길고 좁은 마당
3층석탑
3층석탑
️좌측 대웅전과 우측 칠성각 사이길로 올라가면 양쪽 암벽에 29위 마애석불이 웅장하게 조성돼 있다.
정면에 11면관세음보살 입상
11면관세음보살 입상
11면관세음보살 입상
좌벽 비로자나불과 사천왕/ 정면 흰것은 11면관세음보살 입상
️11면관세음보살 입상 위에도 작은 미륵존불이 있다.
️제일 위에 아주 작은 전각은 독성산령각.
29불이 조각된 전체모습
29불이 조각된 암벽 모습
️우측 석벽에 두 사천왕이 가장 왼쪽의 약사여래를 호위한다.
️우측 석벽에 두 사천왕이 가장 왼쪽의 약사여래를 호위한다.
️우측 석벽에 두 사천왕이 가장 왼쪽의 약사여래를 호위한다.
️좌로부터 약사여래 /남방증장천왕 /동방지국천왕
️우측 석벽에 두 사천왕이 가장 왼쪽의 약사여래를 호위한다.
️좌측 벽에는 두 사천왕이 가장 오른쪽의 비로자나불을 호위한다.
️좌로부터 서방광목천왕 / 북방다문천왕 /비로자나불
️서편 계단을 오르면 석가모니불, 좌우에 제화갈라보살(좌), 미륵보살(우)이 협시한다.
좌벽 24위 불상
️석가모니불 우측으로 미륵보살과, 16나한 중 8분이 있고, 그리고 맨 오른쪽 직부사자가 나한들을 호위.
️석가모니불 우측으로 미륵보살과, 16나한 중 8분이 있고, 그리고 맨 오른쪽 직부사자가 나한들을 호위.
️석가모니불 좌측으로는 제화갈라보살과 16나한중 8분이 있고, 감재사자가 나한을 호위한다.
️석가모니불 좌측으로는 제화갈라보살과 16나한중 8분이 있고, 감재사자가 나한을 호위.
전방 칠성각
전방 칠성각
️소나무가 선풍이 나도록 다듬어 가꾸었다.
이상 석불사 배관을 마치고 아랫마을로 하산하니~
석불사 아랫마을 만덕동, 만덕사지 부근 소나무
️석불사 아래 마을에는 벌써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피고 있는 산수유꽃
석양의 나무
️해는 졌지만 만덕사지를 더 둘러보았다.
[2] 만덕사지
고려시대 절터
만덕사지에 가건물 암자
만덕사지에 대하여
1) 상학산(금정산 줄기의 하나, 정상은632m) 중턱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만덕사의 건물터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으로 전해진다.
2) 1990, 2001~2002년 발굴, 절의 면적은 12,728㎡이며,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등 확인.
3) 기비사(祇毗寺)라는 절터 이름 새겨진 기와 발견.
4) 범어사 대웅전 4배 규모의 금당지터가 발굴됐다. 황룡사 것과 비슷한 대형 기와 치미가 발굴 되어 절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치미는 길상과 벽사의 상징인 봉황치미. 치미는 용머리 양쪽 끝장식.
5) 삼층석탑은 수습하여 부산박물관 뜰에 옮겨 복원함.
6) 대웅전 남쪽으로부터 190m 지점에 당간지주가 서 있다. 두개중 한개만 남았고 한개는 최근에 보충해 세웠다.
7) 유물로 유추해 보면 고려초기부터 있던 절로 추측된다.
8)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공민왕이 고려의 28대 충혜왕의 서자인 석기 왕자를 삭발하여 만덕사에 유폐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기비사라는 기와장이 나와 석기가 거처했다는 만덕사가 여기인지는 의문되는 바가 있다. 왜냐하면 만덕사명이 5곳이나 되기때문이다.
️공민왕이 반원책을 쓰면서 친원파인 석기를 개경에서 가장 먼 동래 만덕동으로 귀양, 유폐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9) 지금은 1986년에 지어진 가건물 암자가 만덕사지터를 관리하고 있다.
️만덕사지에 있던 삼층석탑은 부산박물관 뜰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만덕사지에 있던 삼층석탑은 부산박물관 뜰로 옮겨짐./ 다소 훼손된 것을 수습하여 복원한 것이다.
️만덕사지에서 발굴 된 치미(부산박물관 전시)
만덕사지
만덕사지 석축
️제1만덕터널로 가는 도로 육교 위에서 바라본 만덕사지 전경, 길다란 석축이 잘 보인다.
️같은 나무 인데 방향에 따라 달리 보였다. 만덕사지를 둘러 보고, 그 주위 마을에서 본 나무, 까치집이 유난히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