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국에 사는 걸리버 부자]
1999. 7. 2. 경향
눈가에 자글자글 세파의 흔적이 완연한 아버지 김도문(47),
까무잡잡한 피부에 도톰한 입술의 아들 김영준(15).
동화 속 요정처럼 작은 키, 작은 몸집에 ‘한심해’와 ‘두심해’라는 예명으로
밤무대를 누비는 두 사람은 형제처럼 보이는 부자지간.
*가슴엔 눈물이 철철, 입에선 웃음이 철철.
11살 때 집을 나와 나이트클럽, 서커스단, 유랑극장을 전전하다가 꿈꾸던 밤무대에 선 도문.
노래를 못해 휘청이던 그에게 고운 목소리로 함께 나선 아내. 대도시를 거쳐 제주까지 진출한 ‘도시의 천사들’.
하지만 신세대 가수와 재담꾼에게 밀리던 두 사람. 아내를 대신해 춤으로 짝 지은 5살짜리 아들 영준.
‘한심해 부자의 코미디 쇼’로 다시 일어선 도문과 영준.
*운명의 물결에 휩쓸려 거인국에 표류한 우리의 걸리버.
술을 따르라는 손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라고 위협하는 건달, 손찌검하는 손님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들이 보는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단호히 맞섰던 도문.
“장애인이라고 동정 받거나 멸시당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가르칩니다.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어야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인생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태어난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신은 가장 사랑해.
아내가 임신 중 기도했다. ‘부디 나를 닮지 말았으면···.’ 소원은 반만 이루어졌다.
아들은 아빠 닮고 딸은 엄마 닮고…. 작은 키로 격렬한 댄스를 익히고, 노래와 만담과 마술을 펼치는
밤무대 생활이 힘들지만 집에 들어오면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해한다. 키 작은 아빠와 오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린 딸과 아내가 고맙고, 밝게 자라주는 딸이 자랑스럽다고.
*신은 결코 인간을 외면하는 법이 없어.
‘키만 작다뿐이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그의 아내는 말한다.
“서로 사랑하며 살다 보니 내 남편 키가 120㎝라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남들과 똑같이
가족을 사랑하고, 때로는 가부장적인 고집도 부리며 삽니다. 가끔은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서
왜소증이 된 것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지만, 부자가 아이디어를 짜내며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볼 때
그도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미소 지을 때가 더 많습니다.”
*‘나’를 잊으면 모든 게 재미있고 의미로워.
영준은 안다. 장대같이 큰 사람도 험한 세월을 이겨낸 아버지에게 깍듯이 절을 하듯,
사람의 크고 작음은 외양이 아니라 제 인생을 얼마나 값지게 사는냐에 달려있음을….
영준은 안다. 키야 내가 키우지 못하지만 마음이야 하늘 닿게 키울 수 있는 것을, 그리고
거인들이 사는 나라에서 걸리버 혼자 작더라도 주인공은 분명 걸리버임을….
*기뻐하는 감독의 모습이 보여. 격려의 박수 소리가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