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동아일보 현상 문예공모에 당선된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집필한 저자 심훈의 문학산실 당진필경사
채영신 이라는 개화여성을 모델로 소설 상록을 쓴 심훈은 1933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당진으로 내려와
한동안 아버지와 한집에 살면서 영원의 미소, 직녀성등을 집필하였다.
지금은 간척지로 변했지만 그당시 당진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부친의 집에서 심훈은 '직녀성'을 집필하여 조선 중앙일보에 연재하여 그 고료로 1934년에 부친집 인근에 땅을 믈려 받아 서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직접 설계하여 집을 짓고 '필경사' 라고 이름하였다.
심훈이 쓴 필경사 잡기의 기록에 보면 '필경사의 옥호는 1930년에 '그날이 오면'이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가 일제의 검열에 걸려
내지 못하였는데, 그 시집 원고 중에 있는 필경이란 시의 제목에서 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작은 농로길을 가다보면 문득 넓은 공간이 나오면서 심훈기념관이 보이고 그 왼편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필경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필경사 중심 왼편에 상록수를 형상화한 기념물과 의자가 자리잡고 있어서 이채롭다.
우리나라 농촌소설의 대표작중 하나인 '상록수'가 필경사에서 집필 되었으며, 1935년 동아일보 15주년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백원을 받아 상록학원을 설립하였다.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 옹이 사들여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기부하였는데 낮은 자연석
기단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측면 중앙 기둥을 중심으로 앞뒤로 나누어 공간을 구성한 것이 특이하다.
심훈(1901~1936)은 소설가이자 영화인으로 대중적이며 계몽적인 소설을 많이 썼으며, 영화 '먼동이 틀 때'를 각색하고 감독하기도
하였던 심훈은 3·1 운동에 참가하여 복역하였으며 중국 상해로 건너가 망명 생활을 하였다.
심훈의 시중 가장 널리 알려진 “ 그날이 오면” 이라는 시는 1919년 심훈이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서대문형무소에서 어머님께 보낸 편지로, 발표된 심훈의 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그 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종로)의 人磬(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頭蓋骨(두개골)은 깨어져 散散(산산) 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그날이 와서
六曹(육조)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行列(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구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필경사 가는길에 만나는 부친의 생가 들어길에 세워진 비석에 심훈의 시중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의 강산이여” 이라는 시가
조각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심훈의 애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의 강산이여 -심훈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 뿌리의 어여쁨이여
아지랑이 속으로 시선이 녹아드는 곳까지
오똑오똑 솟았다가는 굽이쳐 달리는 그 산줄기
네 품에 안겨 딩굴고 싶도록 아름답구나
소나무 감송감송 목멱의 등어리는
젖 물고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허리와 같고
삼각산은 적의 앞에 뽑아든 칼끝처럼 한번만 찌르면
먹장구름 살아질 듯이
아직도 네 기상이 늠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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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252- 12 / 041-360-6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