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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폐셜 61회.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 (2000.03.18.)
61회: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방송일: 20000318 조회수 : 5509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역/사/스/페/셜 담당PD: 윤한용/ 작가: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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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I D E O A U D I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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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흑막의 두개골이 프레임인 되며 화면 왼쪽에서 정지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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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U B - T I T L E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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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1
# 고분 앞에서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고대사에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이 있습니다.
순장,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순장이라는 장례풍습도 그 가운데 하납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 끔찍하고 잔인한 풍습을 왜 했는지, 도대체 누가, 어떤 사람들을 순장했는지,
그리고 산사람을 어떻게 묻었는지, 참 많은 의문들이 생깁니다.
오늘 역사스페셜은 이 이상한 장례풍습, 순장을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분위기 바꿔서)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실테고,
또 순장이라는 것이 부여시대에 있었던 풍습이라는 것까지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 基死 夏月皆用氷 殺人殉葬, 多者百數
"장사를 치를 때, 여름에는 모두 얼음을 쓰고, 사람을 죽여 순장하는데 많게는 몇백에 이른다"
얼음이라는 물건과 순장자의 수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한 걸 보면 옛날 우리나라에서 순장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여에서는 기록만 있을 뿐, 구체적인 유적이 발굴되지 않아 순장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록은 없지만 순장의 흔적이 남아있는 무덤들이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먼저 무엇이 순장묜지 확인부터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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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1 무엇이 순장묘인가?
# 경산 임당지역 들어가는 12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넓은 벌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나지막한 구릉 위에 크고 작은 무덤들이 밀집해 있다.
# 일행들 뒷모습 5 현장음 "82년 1차 조사한 지역이고"
# 사적비 13 지름 20여미터, 높이가 2, 3미터나 되는 대형 고분 만도 수십여기,
임당지역 고분군이 처음 발굴된 것은 지난 82년, 우연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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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정영화 교수 이 지역의 고분이 도굴... 밀반출하려고 하다가 적발...
이 고분의 성격, 여러가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발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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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현장 자료화면 풀샷 32 발굴은 16년 동안 계속되었다.
가시덤불과 과수원을 걷어내고 땅 속 깊이 파내려가자, 그 곳에 수많은 구덩이들이 있었다.
대형고분에서 작은 옹관묘까지 모두 1700여기-
1500년 전의 역사가 그곳에서 발견됐다.
(이하 그림 흘림-)
# 발굴하는 사람T.S 15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대부분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유물들을 모두 걷어냈을 때, 무덤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는 인골들이 있었다.
# 인골 사진들 9 (음악으로 흘리고-)
# 무덤 안 그래픽 33 길이가 4미터나 되는 긴 구덩이-
무너져 내린 돌들 사이에 세사람이 머리방향을 달리하고 누워있었다.
(PAUSE)
그리고 그 옆의 구덩이에서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두 사람의 인골이 발견됐다.
한 무덤 안에 다섯명의 시신이 함께 묻혀있는 이상한 죽음, 그것은 일반적인 무덤과 모습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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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정영화 교수 발굴해 보니까 주인공이 묻히는 주곽이 있고, 옆에 부곽이 있어..
이렇게 두 개가 하나의 큰 무덤을 형성하고 있는데, 중요한 건 사람이 묻혀있다는 것...
지배계급의 죽음을 위해 묻혔기 때문에 주종 관계가 분명히 나타나고 순장된것이 증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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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골 표시가 된 주곽에 41 주곽에 묻혀있는 세사람 중 머리방향을 동쪽으로 둔 이의 주변에서
화려한 장신구들이 출토됐다.
(PAUSE)
머리에 쓰는 금동관식, 세밀한 장식의 은제 허리띠와 길고 큰 칼-
이 유물들은 무덤의 주인공이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배자임을 말해 준다.
별다른 유물없이 주인공의 반대푠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지배자를 위해 순장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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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용성박사 주곽 속에는 주피장자가 영남지방에서 대개 그렇듯이 동침을 하고 있고,
순장자는 서침을 하고 있는데 주인공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묻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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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주부곽 팬 9 순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 무덤 안에 묻힌 사람들의 신분 차이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한꺼번에에 묻혔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 그림보는 4 봉분의 판축상태를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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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보며 설명하는 김박사 봉토가 쌓여 올라간 상태인데, 여기 하나의 돌이 많이 섞인 흙이 들어가고,
점토가 들어가고.... 수평으로 이렇게 남아있는 건 ... 봉토를 쌓은 다음에 봉토를 한 번도 안건드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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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입체적인 그래픽 22 무덤의 주인공이 사망하자, 구덩이 안에 나무곽을 만들었다.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한 주인공이 곽안에 안치되고 반대방향으로 순장자들이 놓여졌다.
그리고 두껑돌을 덮고 한층 한층 봉토를 쌓아 올렸다.
# 임당고분군으로 DIS. 9 임당지역에서 발굴된 고분들은 바로 순장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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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2
# 벌판에 서있는 MC
한 무덤 안에 신분의 차이가 분명한 사람들이 한번에 묻혀있어야만 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순장의 흔적이 확인되는 무덤은 경산 임당지역 고분군 뿐만이 아닙니다.
# 순장고분이 있는 지역이 지도에 표시된다.
(경산 임당지역고분군, 경주 황남대총, 영덕 괴시동고분, 의성 탑리고분, 양산 부부총, 김해 대성동고분,
부산 복천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성주 성산동고분군, 함안 말산리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경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는 황남대총도 순장묩니다.
그리고 양산 부부총에도 한명의 여자와 두명의 남자가 순장돼 있고,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도 서너명씩
순장된 흔적이 여러 무덤에 남아 있습니다.
합천 옥전고분군, 고령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도 순장묘라고 확인됐습니다.
이밖에 김해, 함안, 의성, 영덕 등지에 있는 고분에서도 순장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참 많은 지역에서 순장이 행해지지 않았습니까?
이 고분들은 모두 3세기에서 6세기 사이의 무덤들입니다.
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순장이라는 장례풍습이 꽤나 유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순장의 형태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 고령지산동 고분의 봉분이 나타난다.
이 곳은 지산동 고분군 가운데서도 가장 큰 무덤으로 직경 27m, 높이 6m나 되는 무덤입니다.
이 무덤은 대가야의 최고 지배자급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무덤 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들어가 보겠
습니다.
# 봉분 안으로 MC 들어간다.
(주실과 남, 서석실 근처로 걸어가며)
들어와보니 뚜껑돌이 덮혀있는 구덩이 3개가 보입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서석실로 이동하며 뚜껑 열어본다.)
안에는 토기와 유물이 가득차 있군요 아, 그 사이에 인골이 한 구 보입니다.
다른 구덩이도 한 번 볼까요?
(남석실로 이동하면서)
여기에도 좀 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역시 유물과 인골이 한 구 들어있습니다.
바로 이 두 개의 구덩이가 주인공을 위한 유물과 순장자가 묻히는 부실입니다.
(주실로 걸어가면서)
무덤 한 가운데 크게 마련돼 있는 이 구덩이가 주인공이 묻혀있는 주실인데요,
어휴, 상당히 깊군요, 한 번 내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주곽의 단면이 보이는 땅 속으로 내려간다.
길이가 9M, 폭이 1,7M, 높이가 2M나 되는 큰 구덩입니다.
이렇게 목관 안에 누워있는 사람이 바로 무덤의 주인공이고 그 바깥 쪽, 주인공의 발치와 머리쪽에 유물과 함께
뒤섞여 묻혀있는 두 사람이 순장잡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누워있는 주실에 순장자가 두사람,
유물을 넣어둔 2개의 부실에 각 1사람씩 모두 4명이 순장돼 있군요.
# MC 원래의 위치로 올라와서 주위의 순장곽을 둘러보며
그런데 특이한 것은 주실과 부실을 삥 둘러싸듯이 조그만 석곽들이 방사형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 순장곽 하나를 열어본다.
하, 이곳에도 사람의 인골이 들어있습니다.
# 옆의 순장곽을 열어본다
그 옆에 있는 석곽도 열어볼까요?
이 곳에는 두사람의 인골이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하고 들어 있군요
그러니까 이 석곽들은 순장된 사람들이 들어있는 곳인가 봅니다.
# MC 걸어나오고, 순장곽에서 사람의 형체가 일어난다.
이곳에는 이렇게 한두명씩 들어가 있는 석곽이 모두 서른두개나 됩니다.
주실과 부실에 순장된 네사람까지 합치면
결국 이 한 무덤 안에는 적어도 서른여섯명 이상이 순장되어 있는 셈입니다.
# 사람의 형체들이 뒤에 둘러선다.
서른여섯명이 한 사람의 죽음을 위해 희생되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례의식이었을 겁니다.
한사람을 순장하든, 서른명 이상을 순장하든지간에 산 사람을 무덤에 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도망치고 싶은 법, 과연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무덤 속에 집어 넣었을
까요? 그냥 산채로 생매장을 해버렸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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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2 어떻게 죽였나?
# 수장고 문이 열린다. 6 흘린다.
# 수장고 TR 30 영남대 박물관 지하 수장고,
임당지역 고분군에서 출토된 만이천여점의 유물들과 함께 순장인골들이 특수처리되어 보관돼 있다.
이 인골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과연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순장된 것일까?
# 부산대 의대 10 순장자들의 인골을 가지고 사망원인을 추정해 보기로 했다.
# 분석하는 교수진 16 특히 두개골만 남아있는 순장자의 경우, 외상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분석은 고대인골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부산대 해부학교실 김진정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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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김진정 교수 길게 금이 나있는 것을 선상골절이라고 한다. 예리한 것으로 맞았을 때는 함몰된다.
이건 그대로 있다. 둔한 물체에 부딪혔을 때, 선상골절이 온다. 선상골절은 사후에 깨진 것이 아니라
사전에 깨진 걸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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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레이 보는 교수진 18 X-RAY로 촬영한 사진을 통해 골절의 정도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해봤다.
두개골에 난 골절이 뼈 안쪽까지 깊숙히 파고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상태보다 훨씬 치명적인 외상이다.
# 두 개골 팬 9 그렇다면 순장자는 생매장된 것이 아니라 둔기에 맞아 숨진 것일까?
# 단국대 외경 13 고조선과 중국고고학을 연구해온 복기대 박사를 만나
고대 중국의 순장묘 발굴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하 현장음 살리고)
# 사진 30 중국에서 순장이 성행했던 시기는 2500년전, 상나라와 서주시대-
보통 한 무덤에 백명 가까운 사람들이 순장됐다.
순장자의 수만큼이나 묻혀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두개골만 매장된 구덩이가 있는가 하면, 꿇어 앉은 채 살해 당한 순장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 구덩이 안에서 수십명씩 겹쳐져 매장된 순장자들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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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복기대박사 살해방법에는 두가지로 보인다. 한가지는 시체가 정연하게 된 경우,
사전에 살해돼서 묘 주위에 같이 묻혔을 경우...
구덩이 한꺼번에 죽여서 어지럽게 시체를 집어던지 형태가 있다.
그건 현장에서 죽여서 순장을 한 것이 아닌가 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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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 슬라이드실 18 그렇다면, 임당묘의 순장자들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살해됐을까?
피흘리거나 목만 남은 시신들, 그리고 반듯한 자세의 순장자들도 있었다.
# 슬라이드 보면서 -------------------------------------------------------
INT> 김용성 박사 좌측이 주인공의 뼈, 우측이 순장자의 뼈다.
여기가 주인공의 무릎 부분... 염을 한 흔적이 있다.
순장자 역시 양무릎이 아주 가깝게 있는 것으로 봐서 염을 해서 집어넣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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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 20 주곽의 순장자에게서 발견된 염의 흔적은 생매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 비틀린 자세의 순장자 그러나 부곽에 묻힌 순장자의 경우는 비틀려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왜 이런 모습으로 발견된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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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용성 박사 주곽에 순장된 사람들이 뼈가 가지런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사체처리를 아주 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에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사체처리를 했다는 것...그에 비해 부곽에 산만하게 뼈가 출토되고 있는 것은
신분차이 직능차이에서 나타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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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24 순장자의 인골에서 다양한 죽음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머리만 남아있거나 외상의 흔적이 분명한 순장자, 염까지 해서 주인공 곁에 묻혀있는 순장자,
이들은 1500년의 침묵을 깨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생매장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살해당했다고...
ST. 3
# 기본세트
(MC, 독백처럼 중얼거리며) 사전살해라...
외상이 분명히 남아있는 순장자는 흉기나 무기로 살해됐겠지만, 얌전하게 묻혀있는 순장자는 어떤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을까요?
여러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독극물로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겠고, 목을 조르거나 굶겨서 목숨을 잃게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 구체적인 살해방법을 밝힐 방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순장자를 죽인 다음, 처리 방법을 달리 했다는 겁니다.
주인공 가까이 묻힌 순장자는 염까지 해서 가지런히 눕혀있는 반면에, 부곽에 묻힌 사람들은 유물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습니다.
순장 당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노예나 전쟁포로 쯤으로 생각되는데, 이런 사람들을 죽인 다음 다르게 대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순장자들 사이에도 신분의 차이가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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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어떤 사람들이 순장됐나?
# 부산대 해부학교실 13 먼저 한 무덤 안에서 발견된 다섯구의 인골을 가지고 정밀한 분석을 실시했다.
인골 분석을 통해 이들의 나이와 성별 등, 순장자의 기본적인 신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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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진정 교수 골반뼈에 각도가 있는데 이 각도가 예각일 때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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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반뼈 비교 12 골반뼈의 각도가 좁을 때는 남자, 넓을 때는 여자다.
무덤의 주인공은 남자며 옆에 묻혀있는 순장자는 여자였다.
# 대퇴골 25 또 하나의 근거는 대퇴골이다. 이 뼈가 온전히 붙어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성장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발육이 계속되는 나이에는 물렁뼈가 완성되지 않아 가벼운 충격에 의해서도 쉽게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성인으로 완전히 성장한 다음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는 한,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 그래픽 11 골반뼈와 대퇴골로 분석해 본 결과, 주인공은 남자 성인이며
순장자는 나이 어린 여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 뼈들 꺼내놓은 30 무덤에서 온전히 발견된 치아는 발육 단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서 20대
까지는 정확한 나이를 판단할 수 있다.
(이하 현장음- 구멍이 나있어서 13세 정도로)
# 두 개의 어금니 15 보통 두 번째 어금니는12세에 나서 15세 정도가 되면 뿌리 부분의 구멍이 완전히 메꿔진다.
구멍의 정도로 봐서 순장자는 13세로 판단된다.
# 그래픽 11 순장자들은 어린 여자아이와 중년의 남자들이었다
# 환두대도 24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은 순장자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다.
화려한 장신구들은 대부분 무덤의 주인공이 착용하고 있던 것들이다.
# 금동 귀걸이 15 그런데, 금동으로 만들어진 귀걸이 두쌍이 여자 순장자들에게서 발견됐다.
순장자들이 착용하기엔 화려한 장신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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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용성박사 부인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다른 무덤에서 아주 화려한 귀걸이를 착장하고 있어..
첩이 아니냐는 생각도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순장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거
같습니다. 시녀나 시동이나 이러한 사람들로 볼 수 있는데 이런한 사람들의 신분이 높았다는것을 금동귀걸이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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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복원 그래픽 20 당시 세력을 떨치던 50대 남자가 사망하자, 가까이서 모시던 열세살과 예닐곱살된 어린
시녀가 함께 묻혔다.
그리고 각종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부장곽에는 평소 이 물건을 지키거나 사용하던 사람들이 순장됐던 것이다.
# 지산동 헬기 15 36명의 순장자가 발견된 고령 지산동 고분, 이곳엔 보다 다양한 신분의 순장자들이 있지
않을까?
# 지산동 왕릉전시관 29 현재 고령에서는 지산동 무덤을 재현하는 순장 전시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주인공이 묻힌 주실과 유물이 든 부실, 그리고 순장자들이 묻힌 32개의 순장곽이 그대로 복원되고 있다.
# 책에서 팬하면 박천수 교수 25 인골분석과 유물을 토대로 무덤에 묻힌 사람들의 신분을 복원하는 작업은
경북대 박천수 교수가 진행 중이다.
특이하게도 각자 자신의 순장곽에 유물과 함께 묻혀있다.
때문에 유물의 성격이 순장자의 신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 두사람 묻혀있는 그림 8 별다른 유물 없이 순장돼있는 사람들은 평민으로 추정된다.
# 기마무사 6 화려한 말장식을 부장한 순장자는 기마무사-
# 호위무사 9 그리고 각종토기와 무기들을 부장하고 있는 순장자는 주인공을 가까이서 보좌하던 호위무사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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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박천수 교수 지산동 44호분 순장자들이 가지고 있던 유물, 철기라든지 장신구, 귀걸이죠. 토기등으로
볼 때 크게 봐서 세등급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무기의 무장이 뚜렷한 사람, 귀걸이만 한 사람,
토기만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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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위 인물들 그래픽 10 무덤안에는 호위무사와 시녀부터 농민까지 다양한 신분을 가진 순장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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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박천수 교수 지산동 44호분 발굴 이전에는 순장자들이 대체로 노예, 전쟁포로로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결코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립적인 무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 가운데는 장신구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생전에 왕을 모시던 보좌하던 호위무사, 시종, 일반민들이 아니었나.
왕을 보좌하던 집단들이 동시에 묻힌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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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4
# 수장고 세트가 생긴다.
여기는 임당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보관돼 있는 영남대 박물관 수장곱니다.
이 곳에는 특이한 부장품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 MC 몸을 틀고 시선을 바꾸면, 토기류들이 있다.
무덤에 가장 많이 부장돼 있는 유물은 토기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릇은 살림목록 1호지요.
# 시루가 보이고 MC옆으로 나온다.
이건... (시루 한바퀴 회전하며 구멍이 보이면)
아, 바닥에 구멍이 촘촘하게 뚫려 있는 걸로 봐서 시룬거 같습니다.
시루라면 흔히 떡을 쪄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당시만해도 쇠솥으로 뜸을 들여 밥을 짓기
보다는 이런 시루로 밥을 쪄먹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 시루 원위치되고 고개를 돌려보면 방추차와 다리미가 보인다.
(방추차 들고서) 이건 방추찹니다.
옷이나 화문석 같은 것을 짜는데 사용하는 도구인데,
예전에 할머니들이 여기에 실을 걸어 물레로 옷감을 짜곤 하셨죠.
# 다리미 날아오면
아, 옷감을 짜던 방추차만 있는 게 아니군요.
옷을 다리던 다리미까지 들어있습니다.
# 농기구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며
자, 이 쪽도 한 번 볼까요?
낫, 도끼, 쇠스랑 같은 농기구들과 각종 무기들도 가득 쌓여 있군요.
# 숫돌 날아오면
재미있는 건 이런 철제품이 녹슬면 갈아 쓸 수 있도록 숫돌까지 부장돼 있다는 겁니다.
# 철정 앞에 멈춰서며
그리고 이 작은 철덩어리는 철정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철제품을 만드는 기본소재로 당시 사람들은 이걸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덤 속에 돈도 들어있었던 셈이죠.
# 항아리 안에서 볍씨를 꺼내며
오우, 여기 있는 토기들은 다른 것들에 비해서 상당히 크군요. 밑이 둥근 걸로 봐서 지상에 놓고 사용하는
항아리가 아니라 땅 속에 묻어두고 쓰던 항아린 거 같습니다.
# 안을 들여다보며
안에 뭐가 들어있는데요? 한 번 꺼내볼까요?
# 볍씨를 거내며
아, 볍씨가 들어있군요.
# 옆 항아리에서 콩을 꺼내며
허, 그럼 그 옆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여기에는 콩입니다.
# 또 다른 토기에서 복숭아를 꺼내며
또... 여기에는- 먹음직스런 복숭아가 들어 있군요.
(복숭아를 들고서)
무덤 속에 별의 별게 다 들어가 있죠?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 뿐만 아니라, 이 먹을거리까지 토기에 가득 채워두고 있는데,
왜 죽은 자의 무덤 속에 이런 것들을 넣어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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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사후세계관
# 영남대 박물관 외경 25 영남대 박물관에서는 임당지역에서 출토된 많은 동물의 뼈를 분류하는 작업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항아리 속에 담겨져 있는 뼈 가운데는 육안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낯익은 동물의 뼈도 있다.
# 닭뼈 들고 설명하는 12 현장음 "머리뼈 같은데..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마리 분이 들어있는 것 같다."
# 토기 안의 닭뼈 18 (닭뼈 흘리고-)
여러 동물 뼈 가운데 말의 뼈도 출토됐다. 사냥으로 잡은 멧돼지의 이빨과 노루뼈.
# 뼈들 팬- 그리고육지에 사는 동물들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가져온 조개와 생선뼈도 함께 부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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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용성 박사 무덤 속에 있는 항아리나 그 주변에서 상당히 많은 먹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육지에서 나오는 닭이라든지, 돼지, 개 등이 나오고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종류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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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수박사 분석하는 14 이름도 알 수 없는 동물들을 확인하기 위해, 고대 자연 생물을 연구하고 있는
김건수 박사를 초빙했다.
# 복어턱뼈 들고 설명 23 현장음 -복어 턱뼈다. 턱뼈로 봐서 큰 거 같다.
-50에서 60CM 정도.. 복추부분이 결락된 거 같다.
# 방어뼈 TS 7 척추부분과 가시가 그대로 남아있는 이 생선은 우리나라 동해에서 주로 잡히는 방어다.
# 피뿔조개 14 내륙에 있는 경산지역에서 이런 바다생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상어뼈 분석하는 풀샷 16 현장음
- 이건 항아리 안에 있던 게 아니라, 바깥에 길게 나와있던 건데 상당히 큰 어류같애
-형태로 봐선 완전히 상어다.
# 상어척추뼈 3 둥글고 큰 척추뼈를 가진 어류의 정채는 상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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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건수 박사 상어뼈는 특징적인데 척추 중간 부분에 구멍이 두 개씩 뚫려 있어..
그래서 누구나 첫눈에 상어라는 걸 알 수 있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이가 없어서 무슨 종륜지는 구별하기 곤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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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어척추뼈 9 몸통 길이만 해도 7, 80CM나 되는 상어-
당시 내륙지방 경산에서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 시장 스케치 10 (풀샷 흘리고)
혹시 이 지역 사람들은 상어를 아직도 특별한 음식으로 먹고 있을까?
# 어물전을 찾은 PD 38 현장음 -상어있습니까?
-돔배기 말이지요. 제수용품으로 사용해..
# 돔배기 T.S 24 산지에서 보통 토막내서 운반되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상어를 돔배기라고 부른다.
"잡아서 오나 보네" "네"
이름 그대로 토막나 있어서 어떤 종류의 상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경산을 비롯한 영남지방에선 옛날부터 이 상어를 제삿상에 필수품목으로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울산 반구대 29 경남 울주군 대곡리에 남아있는 청동기시대의 암벽 벽화-
고대인들의 수렵생활을 묘사한 이 벽화에는 멧돼지, 노루 등 들짐승과 날짐승은 물론, 지느러미와 꼬리가
상세히 묘사된 상어도 그려져 있다.
오래 전부터 상어는 고기잡이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상어 풀샷 10 우리나라 인근에서는 어떤 상어들이 잡히고 있을까?
# 청상아리 14 길이가 1미터에서 2미터 정도되는 청상아리는 성질이 사납고 날쌔서 쉽게 잡기 힘든 종류다.
# 귀상어 8 머리모양이 마치 망치처럼 생긴 이 상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종류인 귀상어다.
# 까치상어 7 그리고 낚시하기 쉽고 횟감으로도 많이 이용되는 까치상어- 임당지역에서 출토된 상어도
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 수면 위로 올라가는 상어 8 그런데, 무덤의 주인공은 왜 상어를 무덤 속에 넣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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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김세기 교수 고대사회에는 이 현재의 생활이 죽어서도 계속된다는 계세사상이 있었기 때문인데,
즉 계세사상이라는 것은 현세의 생활이 죽어서 무덤 속에서 계속된다는 생각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던 물건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의복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서 많은 물건들을 집어넣고 거기에 더
나아가서 왕이나 귀족과 같은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은 노비나 그밖의 봉사를 받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사람까지도 같이 집어 넣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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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토기류 15 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서 현세와 똑같은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현세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은 물론 가까이 있던 사람까지 무덤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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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5
# 고분군 앞에서
죽은 다음에도 살아있을 때의 생활이 그대로 지속된다는 고대인들의 내세관이 순장이라는 풍습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럼 순장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물론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었을겁니다.
그들의 입장도 당시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겁니다
이 세상의 지위와 신분이 다음 세상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면 어차피 다음 세상에서도 자신의 주인을 위해 봉사
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주인을 따라 죽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시종이나 하인이 있다면 누구나 순장할 수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순장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따로 정해져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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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순장묘의 주인공은 누군가?
# 전시실
-유물들 스케치 18 임당지역의 고분들에서 출토된 부장품 가운데 특이한 것이 있다.
주인공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작은 항아리-
그 안에는 자그마한 토기와 납작한 돌, 그리고 크고 작은 흙구슬들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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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용성 박사 토제품 같은 경우는 어릴 때 쓰던 사방치기와 똑같고, 흙구슬도 많이 가지고 놀던 거고,
작은 토기도 소꼽놀이 하던 것 같으니까...장난감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인공은 아이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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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관T.S 11 무덤의 주인공이 착장하고 있던 화려한 장신구들-과연 이 금동관의 주인공은 아이였을까?
# 길이재는 14 금동관의 길이를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해 봤다.
(PAUSE) 금동관의 길이는 46CM였다.
# 아이의 머리둘레 11 올해 아홉 살인 아이의 머리 둘레가 52CM-
무덤의 주인공은 이 아이보다 더 어린 지배자의 아이였을 것이다.
# 사진에 표시되는 11 아이가 묻힌 구덩이에서는 20대 여성의 인골도 함께 발견됐다.
# 무덤 그래픽 10 지배자의 자식이었던 무덤의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자. 생전에 시종을 들던 유모와
평소 아끼던 장난감이 함께 묻힌 것이다.
# 봉분 앞 8 아이의 무덤은 지배자의 자식이나 가족이 사망했을 때도 순장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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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김용성 박사 이 무덤은 어린 아이 무덤으로 보이는데, 3세대에서 4세대에 걸쳐 형성된 무덤으로 보인다.
아버지 무덤 앞에 묻혀있는데 가족묘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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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묘 그래픽 27 임당지역 고분군은 가족묘로 이뤄져 있다.
한 집안의 아버지가 숨지면 독립된 순장묘를 하나 만든다.
그 후 부인이나 자식이 사망하게 될 때, 아버지 무덤의 봉토를 일부 파서 연이어 순장묘를 만든다.
임당지역 고분들은 바로 최고 지배자 일족의 순장묘역이었던 것이다.
# 석양 14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무덤 속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절대적인 권력- 경산 일대를 군림하던 지배자들은 어떤 세력이었을까?
# 삼국사기 14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서기 146년 일성왕 때, 경산의 옛지명이었던 압독국을 정벌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 경주 트래킹 14 어떻게 작은 지방의 수장들이 순장을 행할 수 있었을까?
당시 신라 중앙의 경주와는 어떤 정치적인 관계가 있었을까?
# 경주 대릉원, 황남대총 10 경주 대릉원의 고분들- 임당지역과 비슷한 5세기대에 축조된 대규모 무덤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이 황남대총이다.
# 무덤 그래픽 18 남분과 북분으로 이뤄진 이 거대한 무덤에서도 순장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큰 목곽 안에 왕족으로 추정되는 60대 남자가 관에 안치돼 있고,
15세 여성으로 밝혀진 순장자가 관 밖에 묻혀있다.
# 황남대총 유물들 25 신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지배자의 무덤답게 여지껏 보지못한 화려한 유물들이
황남대총에서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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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이한상 학예사 황남대총에서 비로소 완성된 형태의 금동관, 귀걸이 등이 만들어져 묻혀..
동시기에 경산, 부산등지에서 비슷한 형태의 금동관과 장신구가 출토되는데 정치적인 관계에서 보면 경주에서
만들어져 지방에 순장을 하던 무덤, 순장 주인에게 하사했던 물품으로 생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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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당지역 유물들 24
화려한 위세품과 순장은 최고지배자의 상징물이다
경주의 신라왕실에서는 새롭게 편입된 지방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세품까지 하사하며
각 지방의 수장에게 순장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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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주보돈 교수 4,5세기 당시에 경주 지배 집단은 새로이 신라 영역에 들어왔던 지역에 대해서 지방관을
직접 파견해 지배해 나갈 체제를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의 지방세력을 이용할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위세품을 부여하는데,
위세품을 부여받은 지배세력은 당연하게 정치력, 경제력을 가지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큰 규모의 봉토를
가지게 되고 순장도 가능하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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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당지역 부감 14 경산에서 순장을 할 수 있던 지배세력은 신라에게 복속된 후에도 여전히 실질적인 세력을
떨치던 압독국의 후손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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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6
# 신라왕궁 분위기
순장이라는 장례풍습은 당연히 없어져야 할 풍습이었습니다.
6세기 초,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순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 삼국사기 책에서 순장폐지 기사 나온다.
三年 春三月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下令禁殉葬
삼국사기 지증왕 3년조에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전에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각 다섯명씩 순장해 왔는데 춘삼월 이를 금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약 200여년 동안 지속돼 오던 순장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금지시킨 것입니다.
왜 이 시점에 순장 폐지령이 내려지게 된 것일까요?
지증왕대 일어났던 정치적인 사건들 속에서 그 해담을 찾아보겠습니다.
# 始用牛耕
순장 금지령이 내려진 같은 달에 우경을 국가적으로 보급하는 경제개혁 조치가 일어납니다.
소를 이용해 농업생산력을 증대시키려는 것은 농업을 국가경제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의지입니다.
노동력 확보라는 중요한 당면과제 앞에 인적자원이 순장으로 낭비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던 것이죠.
# 德業日新, 新羅四方
그 다음해, 나라이름도 새로 확정했습니다.
사라, 사로, 신라라고 다양하게 사용되던 국호를 신라라고 확정하게 된 것입니다.
신라라는 나라이름은 왕의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의 영역에 두루 미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백성을 위세나 힘으로 다스리지 않고 덕으로 다스리겠다는 지증왕의 통치이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왕은 모든 백성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데 산 사람을 물건과 함께 무덤에 부장하는 순장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악습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 王親定國內 州郡縣
그리고 곧이어, 지증왕은 전국에 주군현을 정하고 지방관을 파견합니다.
지방 수장에게 위세품까지 내리며 순장을 허락하던 간접 통치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모든 지역을 왕이 직접 다스리는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통치 방식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런 정치, 경제적 개혁 속에서 순장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가 급변한다 하더라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순장이 금지된 이후, 무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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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6 순장이 폐지된 그 이후-
# 경주 박물관 전시실 6 (흘리다가)
경주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작은 흙인형, 토용-순장이 폐지된지 200여년이 지난 7C말,
통일신라 시대의 무덤에서 다양한 토용들이 출토됐다.
# 토용들 29 한뼘정도 되는 크기의 토용들은 문관이나 무사,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표현하고
있다.
(이하 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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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권오영교수 토용이 발견되는 무덤은 대개 통일신라시대 무덤이다.
문제는 통일신라시대는 순장이 폐지된 단계다. 그리고 반대로 순장을 행하던 단계는 토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토용을 순장의 대체물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또 토용중에는 죽음을 애도하고 무릎을 꿇고 있거나
아니면 엎드려서 우는 그런 모습이 보인다. 토용이 죽음의 애도, 토용의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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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애도하는 토용들 27 끝내 참지 못한 눈물을 옷깃으로 훔치는 여인, 음악으로 애도를 표하는 악사,
그리고 무릎 꿇고 통곡하는 남자는 모두 주인공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 근신의 모습 10 흙으로 빚은 이 토용들은 무덤의 주인공과 함께 순장됐던 시녀나 측근의 또 다른 모습이다.
# 토우총 외경 11 순장자 대신 토용이 출토되면서 무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경주시 서악동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토우총-
# 문을 열고 들어가는 19 무덤 안 네모퉁이에서 토용이 각 1점씩 출토된 통일신라시기 무덤이다.
# 문이 열리고 내부로 22 (무덤의 문이 열리면)
무덤의 입구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와 돌짝들이 설치돼 있다.
큰 돌을 지붕으로 삼고, 작은 돌로 벽면을 쌓아올려 방처럼 만든 이 무덤에는 순장 무덤들과는 달리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묻힐 수 있는 시상대가 마련돼 있어서, 언제든지 추가로 시신을 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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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이한상교수 이 무덤은 토우총이라고 한다. 예전에 여기서 토우가 나왔기 때문이다.
무덤의 구조는 횡혈식석실이다. 무덤의 한켠에 입구를 만들어서 여러번 사람을 묻을 수 있도록 돼있다.
횡혈식 석실은 신라의 경우, 아마도 순장이 폐지된 시기, 6세기 전반경에 처음으로 도입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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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석 목곽분 그래픽 8 순장이 발견되는 적석목곽분은 규모가 크고 금관이나 장신구같은 위세품이 많이
부장돼 있다.
# 횡혈식 석실분 그래픽 12 그에 비해 토용이 출토되는 횡혈식 석실분은 훨씬 규모가 적고 유물도 거의
출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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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 이한상 교수 그 당시 사회가 달라진 것이 아니냐, 적석목곽분만 하더라도 후왕의 권위나 묻히는 사람의
권위는 그 곳에서 나오는 유물이라든지 규모를 가지고 강조를 해야했던 단계였다.
하지만 횡혈식 석실이 주묘제로 등장하는 6세기 7세기로 하는 사회는 이제 더 이상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교라든지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자신들의 지위를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단계로 변화되었따...
즉 새로운 세기,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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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21 지증왕의 순장폐지령 20여년 후, 중요한 조치들이 내려졌다.
율령이 반포되어 국가로서의 행정적, 제도적인 틀이 비로소 갖춰졌다.
그리고 불교가 공인되면서 자비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났다.
# 전쟁 화면 24 이 이후 고대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진 신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고 마침내는 삼국통일을 향해 약진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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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권오영 교수 순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장례풍습이다. 장례는 저승세계애 대한 인식, 즉 내세관의 반영이다.
순장의 폐지는 내세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내세관이 변했다는 건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어 나간다.
인격을 무시하는 단계에서 소중히 생각하는 단계,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한 측면,
불교 유입에 의한 사상이 전반적인 변화를 낳아. 순장의 폐지 잔존물로 토용이 생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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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용들의 얼굴들 DIS 24 사람을 물건처럼 부장하던 순장의 시대.
인형을 사람대신 부장한 새로운시대 토용은 인간을 보다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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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7
# 역사스페셜 세트, BACK으로 삼국사기가 흐르고 만사를 처리하던 옛 영웅도 죽어서는 한 줌의 흙이 되어,
나뭇꾼과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굴을 팔 것이다.
그러니 헛되이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역사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사람을 수고롭게 하더라도 나의 혼백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장례의 절차는 철저히 검소하게 해야 할 것이다.
순장이 폐지되고 180년이 지난 681년, 문무왕이 사망하며 남긴 말입니다.
왕의 장례는 점점 간소해졌고
살아있는 사람을 함께 순장하는 잔인한 풍습은 다시는 역사에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순장에 대한 몇가지 의문들을 추적해봤습니다.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순장이 폐지된 사회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보다 성숙되고 다양화된 사회로 발전해 있었던 겁니다.
즉 그 사회를 이루는 개개의 인간이 존중될 때, 비로소 역사는 진일보하며 발전한다는 사실을,
순장이라는 비인간적인 풍습이 오늘날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