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들 1/ 최윤정
벽돌이 되지
구석이 모여
지붕이 되고
담벼락이 되지
물길 건너가다
죽은 새들이 되기도
물들어가곤 하지
회색에서 붉은색으로
*
구석은 구름처럼 생각이 많고
죽은 새의 뼈를 불면 무슨 소리가 날까
불붙지 못한 구석들
입을 뻐끔거릴 때마다
곰팡이꽃이 눈처럼 쏟아진다
*
죽은 새의 환영이 창틀마다 끼여있다
놓칠 것도 던질 것도 없는 계절
물방울들 무겁게 떠 있고
걸음 멈춘 창틀이 간간이 늑골을 삐걱인다
꿈틀거리며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구석마다 몰려 있던 구름들
등 곧추세우고
햇살에 흩어지는 먼지 사이
바람의 혈관이 붉게 부풀어 오른다
안부를 묻고 멀어지는 구름의 발자국처럼
*
여긴 여전히 빙벽
춥고 미끄럽다
다리가 퉁퉁 부은 바람은
무릎에 손을 짚고 참았던 숨 몰아쉰다
각각의 빙벽은 춥지만
둥글게 모이면 따뜻하지
손가락을 오므린다
무얼 담지?
-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작
■ 최윤정 시인
- 1969년 대구 출생
- 영남대 수학교육과 졸업
《 심사평 》
150편이 넘는 응모작 중 예심 과정을 거쳐 심강우, 안은숙, 이유천, 최윤정, 한율 등 다섯 사람의 작품을 고른 후 다시 집중적인 검토를 하여 최종적으로 두 사람의 작품으로 압축을 하였다. 안은숙과 최윤정의 작품을 놓고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였다. 두 사람의 작품이 모두 뛰어난 감성과 노련한 기량을 내장하고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한 사람을 당선시킨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
안은숙의 작품은 내용이 다양하고 상상력의 폭도 넓었다. 물의 심상에서 뼈와 종이 같은 광물 이미지까지 다채로운 감각이 시상을 드러내는 방향에 맞추어 적절히 안배된 점이라든가, 점력, 전도, 경추, 흉담 등 한자어를 적절히 활용하여 의미의 밀도를 높이려 한 점 등은 오랜 습작의 내공을 충분히 모여주었다. 자신의 생활 체험을 밀도 있는 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어느 지점은 모호하거나 관념적인 언술이 보였고 생의 단면을 가볍게 스케치하는 관조적 성향이 드러나기도 했다. 세상의 외관을 충실히 관찰하기는 하지만 생의 문제를 안고 고민한 자취가 드러나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쉬웠다.
최윤정의 시는 어떤 경우 다소 서술적인 문맥이 보이기는 하지만, 생의 내벽과 부딪친 자아의 상처가 있고, 탈출과 돌진의 시도가 무위로 끝난 다음 갖게 되는 침묵의 망설임이 있고, 시간의 흐름 속에 삶 전체를 통찰하려는 구도적 진정성이 있다. 그리고 많은 후보작들이 그렇게 떨쳐버리려 애를 쓴 서정성을 시의 윤기로 활용하는 내면의 저력이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점에서 최윤정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 탈락한 후보자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 심사위원: 황학주, 이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