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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선생과 눈치양반
이 홍사
2016년을 하루 앞둔 날 아침!
미얀마 양곤의 어느 임대 아파트를 재임대하여 충청도의 눈치양반과 전라도의 염치선생이 홈 쉐어를 하고 있었다. 2015년 12월 31일, 바로 오늘 아침 하루 남은 달력을 들여다보며 눈치양반은 심사가 꼬이고 뒤틀려 중얼거린다.
-염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눈치양반은 책상 앞에 앉아 새벽 담배를 꼬나물고 그 말을 중얼거리는 게 아니라 질겅질겅 씹는 듯했다. 아마도 오지게도 염치가 없는 염치선생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염치에 눈치마저 없으면 싸잡아 싹바가지가 없다고 하는 겨.
눈치가 석 단인 눈치양반은 담배를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비벼 끄며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 싹바가지를 들먹였다. 싹바가지? 싹바가지는 싸가지를 일컫는 충청도 사투리고 싸가지는 또 싹수의 방언이다. 싹수가 무엇인가? 싹수의 정확한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이나 인간이 앞으로 얼마나 잘 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말하는데, 싹수라고 일컫는 경우는 드물고 싸가지라고 운을 띄우면, 뒷말을 듣지 않아도 부정적인 경향이 짙어 버릇없음과 동시에 비인간적인 행태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싸가지하고는........ 이렇게 말끝을 흘리면 듣는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불쾌한 말이 된다. 눈치양반 입에서 싸가지를 운운하는 걸 보니 염치선생이 수가 틀리는 일을, 눈치양반의 염장을 지르는 일을 또 저지른 모양이다.
-이거 참! 말을 하자니 양반체면이 말이 아니고 안 하자니 복장이 터져 암만혀도 내 명까지 살기는 어렵겠구먼, 남의 나라꺼정 와서 이게 건 뭔 지랄이여?
눈치양반은 버릇처럼 담배를 빼내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다시 담배 곽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눈치양반은 집에 없다. 외박을 한 것이다.
눈치양반과 염치선생이 홈 쉐어를 시작한 것은, 지난봄이었으니 거의 반년이 넘었다. 홈 쉐어가 뭔가? 홈(home)이 집이라는 건 다 아실 게고 쉐어(share)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공유하다, 함께 쓰다는 말로 집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신조어다. 물론 들어가는 집세와 생활비는 공평하게 반반으로 부담한다. 집을 혼자 사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이국 생활에 적적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눈치양반은 한국에서 작년, 그러니까 나이 쉰에 명예퇴직을 당하고 한국에서 일거리를 찾다가 여의치 않아 미얀마까지 날아오게 되었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놀고 있을 나이가 아니었다. 공무원으로 명퇴했다면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겠지만 눈치양반은 그런 실정이 아니었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시장을 겨냥해서 뭔가 일을 찾아야 한다는 걸 눈치가 빤한 눈치양반이 모를 리가 없다.
처음에는 남들 이야기를 듣고 중국과 베트남을 염두에 두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현지에 체류하는 교민들의 카페에 들락거리며 그 나라를 읽었다. 암만 훑어보아도 중국은 기대이상으로 약아졌고 베트남으로 나가기에는 후발주자가 된다. 그러던 중 미얀마가 외국자본에 대한 경제 개방을 시작했다는 소리를 듣고 만만한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 날아오게 되었다. 시장조사가 우선이었다. 와서 시장조사를 하며 느낀 것은 회사생활을 너무 오래 했다는 점이다. 마흔 중반에 비전이 없는 회사를 버리고 과감하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시도했어야 되었는데 하려는 일마다 선점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호텔 생활을 했었다. 싸구려 한국인 호텔에 장기 투숙자로 있었다. 그 호텔에는 눈치양반이 아니어도 시장조사를 하러 온 작자들이 늘려있고 정보가 교류되었지만 터무니없는 정보도 있었다. 한국인 컨설턴트 에이전트들이 그렇게 날아든 철새를 보고 흡혈귀처럼 달려들었다. 거기에 휘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눈치양반이 누구신가? 그저 눈치만 보고 쓰다달다 말없이 속으로 짐작만하고 어림을 잡고 있었다. 매일 보는 것이 교민회에서 나오는 정보지고 매일 듣는 것이 누가 어떤 사업을 해서 왕창 벌었다는 부풀려진 말이다. 거기서 나오는 정보를 망라하면 가당찮게도 미얀마에 오기만 하면 벼락부자가 되는 걸로 되어 있었다. 누가 뭘 개업했다고 하면 우르르 가서 보고 오고 누가 땅을 본다고 하면 우르르 가서 둘러보는 영양가 없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는 투숙객의 주류인 한국 투자자들이 정보를 파악하라고 초고속 인터넷을 두 대나 설치해놓았지만 거기에 들어가서 파악하는 정보도 마찬가지다. 눈치양반이 그 호텔에서 파악한 정보는 투자기준의 잣대만 흐려놓는 그 싸구려호텔을 빨리 벗어나야한다는 정보였다. 눈치양반은 그리 바쁠 게 없다. 아내와 한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은 일 년간 관망한 후에 뭔가를 시작하기로 되어있다. 일 년간은 세상물정에 대한 수업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천천히, 느긋하게 미얀마를 배우고 나서 투자처를 찾기로 마음먹고 있다.
미얀마에 날아온 지 석 달이 넘는 늦은 봄날, 무료한 아침나절 호텔로비가 조용한 틈을 타 인터넷의 한인회 카페를 뒤적이다가 방금 올라온 글 중에서 홈 쉐어를 구한다는 따끈한 소식을 접했다.
홈 쉐어?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텔생활이 경비도 많이 들뿐더러 안목을 흐려놓는 작자들이 자꾸 나타나 냉철하고 엄정해야할 시각을 들쑤셔놓으니 어디 게스트하우스라도 찾아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떨거지들을 떨쳐버리고 조용한 둥지로 옮기고 싶어 하던 참이었다.
-이거 혹시 어느 여편네가 올려놓은 거 아녀?
여자라면 곤란하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 글을 꼼꼼히 훑었다. 풀 퍼니쳐! 가구는 다 있다는 말이고, 볕이 잘 드는 조용한 방! 방을 혼자 쓸 수 있다는 표현이고, 한국음식 잘하는 가사도우미 고용! 가정부까지 두고 있다는 말이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있으니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양반은 단박에 눈치를 긁었다. 방과 주방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첫 이미지는 정갈해보였다. 무엇보다 구미가 당기는 말은 그 아래 적혀있었다. 타국에서 혼자 밥 먹는 행위가 너무 따분해서 홈 쉐어를 구하기로 작정.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앞서며 찾던 둥지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런 조건이면 식기 전에 얼른 눈치양반의 몫으로 굳혀야 한다는 걸 눈치가 빤한 눈치양반이 모를 리가 없다.
적힌 전화번호에 그 자리에서 전화를 때렸다.
상대방의 목소리로 미루어 사십대 후반쯤의 사내로 감이 잡혔다. 집의 위치가 어디냐는 질문에 시내 변두리에 있는 임대 아파트라고 했다.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괜찮겠냐고 또 물었다. 상관없다고 했다. 그 쪽에서 눈치양반에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무슨 호텔이라고 하자 하필이면 그 호텔이냐고 핀잔을 주며 오늘 빠져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 하는 행위를 두고 빠져나온다는 고약한 말로 표현했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 호텔을 두고 도둑놈 소굴 취급을 하는지 빠져나온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좀 고약했지만 가능하다고 했다. 눈치양반의 짐이라곤 여행용 캐리어 두 개가 고작이다. 짐을 싸는데 십 분이면 족할 것이다.
제의하지 않았건만 먼저 그쪽에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정확히 사십 분 후에 짐을 싸서 호텔 로비에 내려와 있으라는 것이었다. 눈치양반은 상대에게 차가 있느냐고 물었다. 택시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알겠다는 대답으로 전화를 끊고 방으로 올라가 짐을 꾸렸다. 호텔이라지만 한국의 여인숙 수준이다. 그곳에서도 경비를 아낀다고 방을 같이 쓰는 사람이 있었다. 중고 자동차 수출업자인 김 사장에게 고향 후배의 집에 얹혀 지내기로 했다고 둘러대고 눈치양반은 자신의 물건만 골라서 짐을 꾸렸다. 캐리어를 들고 로비로 내려와 밀린 방값을 계산하고 나니 택시 한 대가 호텔 좁은 마당으로 들어왔다.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지금 호텔마당에 택시가 서 있으니 짐을 들고 그쪽으로 오라는 지령이 내려졌다.
-이게 뭔, 개털 같은 007 작전이여?
캐리어를 끌고 로비를 나가자 얼굴이 새까만 택시 기사가 내려서 오더니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그때까지 앞좌석에 탄 작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거 참, 염치없는 자식이구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짐을 싣고 택시 뒷좌석에 탔다.
-김 염치라고 합니다. 이 호텔 주인과 사이가 안 좋아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앞좌석에 탄 왜소한 사내가 돌아보며 손을 내밀고 인사를 청했다.
-저는 이 눈치라고 하는구먼요. 잘 부탁혀요. 앞으로 염치선생이라 부르면 되겠구먼요.
내민 손을 잡으며 그렇게 인사를 하고 양곤 시내에서 강 건너 임대아파트에 도착했다. 완공된 지 겨우 이 년밖에 안 되는 새 아파트인데 워낙 싸구려로 지어서 이십 년은 넘은 아파트로 보인다. 아파트의 구조는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미얀마만의 독특한 구조다. 복도식인데 복도를 중간에 두고 양쪽으로 집을 배열해서 꼭 교도소 같은 분위기가 난다. 거기다 집집마다 설치한 철제 방범창이 교도소분위기를 더 자아내게 만들었다. 복도에는 볕이 들지 않아 낮에도 중간 중간에 불을 켜둔다. 그래도 염치선생은 외국인이라 현지인과는 차별이 나게 현지인이 사는 아파트 두 개를 턴 아파트를 임대하여 살고 있었다. 화장실이 딸린 마스터 룸은 먼저 차지한 염치선생 몫이고 베란다가 있는 방이 눈치양반의 몫으로 굳어졌다. 삐걱거리는 싸구려 싱글침대 하나와 책상이 하나 놓인 방이다. 볕이 잘 들어온다고는 하지만 밑의 상가에서 올라오는 거친 소음에 창문부터 닫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짐을 풀면서 눈치양반은 그렇게 자신을 달랬다.
집세와 생활비를 계산해서 염치선생과 공평하게 나누니 호텔생활의 반 밖에 들지 않는다. 날마다 소득 없는 짓거리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떨거지들을 떨쳐버렸다는 생각에 그저 홀가분한 게 날아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얀마를 제대로 알려면 미얀마 현지인 깊숙이 들어와서 속살을 보고 실체를 파악해야하는 법인데 그런 곳에 진지를 구축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염치선생의 말에 의하면 이 아파트 단지는 집세가 싸서 한국 교민 여럿이 살고 있다고 했다. 듣던 중 그건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한국인은 남들 하는 일에 어지간히 끼어들려고 한다. 괜히 참견해서 잣대를 흐려놓기 일쑤다.
-그렇게 잘되는 사업이면 지가 혀지? 왜 남한테 권하는 겨?
눈치양반이 늘 하는 소리다. 먼저 자리 잡은 한국 교민은 누가 한국에서 투자를 하고 싶어 왔다고 하면 일단 관심부터 가진다. 뭘 조심해야 된다. 뭘 조심해야 된다는 말은 너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그 조심하라는 말 중에는 먼저 온 한국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항상 들어있다. 그때마다 눈치양반은 속내로 웅얼거린다. 글타먼, 그대마저도 조심혀야겄네유? 그런 눈치양반의 속을 알 턱이 없는 상대는 그 다음에 따라오는 말이 있다. 투자비는 얼마정도를 예상하고 있냐는 질문이다. 이건 판에 박힌 질문이다.
-아직 마땅히 투자를 한다는 생각은 없고 그저 놀기 삼아 둘러보러 온 거쥬!
눈치양반의 대답은 한결같다.
눈치양반은 염치선생과 홈 쉐어를 시작한지 여섯 달이 넘도록 미얀마를 살피고 있다. 눈치양반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미얀마의 속살을 혼자 힘으로 훑어볼 작정이다. 관심 없는 일부를 제외하고 입술이 얇은 교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자기가 아니면 되는 일이 없고, 자기가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뭘 바라고 그런 말을 하는지 저의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염치선생은 눈치양반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누구를 데려와도, 거의 매일 청하지도 않은 한국인을 데려온다. 얼굴을 익혀둬서 나쁠 게 없다는 건 염치선생 생각이고 눈치양반은 그저 귀찮을 따름이다.
눈치양반이 염치선생에게 부러워하는 점이 하나있다. 그건 바로 언어다. 염치선생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점이다. 눈치양반은 요즘 간단한 미얀마 말과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미얀마 말은 너무 어려워서 혀가 돌아가지 않고, 영국의 지배를 백 년 이상 받은 관계로 변형된 영어가 미얀마 말에 녹아있고 영어가 상시로 소통되는 나라다. 가령, 전화를 받을 때 헬로! 대신에 할로우! 라고 하고 달력을 두고 까렌다라고 하며 공책을 노트싸옵이라 일컫는 게 미얀마 표준말이다. 영어만 쓰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겠지만 눈치양반은 영어가 먹통수준을 넘어 거의 깡통이다. 짬이 나면 중학생이 보는 영단어집을 붙들고 앉아 수시로 한숨을 쉰다. 나이 탓인지 하나를 외면 둘을 잊어버린다. 눈치양반이 넘기에는 언어의 장벽은 엄청 높고 견고하다. 눈치양반은 안다. 자신이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로 눈앞만 보고 살았다는 사실을.
글로벌 시대에 시장은 방대하고 할 일은 무한하다고 했는데 회사 다니면서 그 많은 자투리시간에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눈치양반은 후회를 한다. 후회는 언제해도 늦은 법, 최소한 보디랭귀지를 쓰더라도 버스를 이용하여 양곤시내를 자유자재로 들락거리기 전까지는 투자 결정을 답보시킬 작정이다.
그런 눈치양반의 작정을 모르는 염치선생은 매일 무슨 정보를 물고 들어온다. 열흘 전에는 시내에 괜찮은 통닭집을 차리라고 사흘간 졸랐고 어제는 적당한 아파트 단지에 현지 미용사를 고용해서 깔끔한 미용실을 차리면 돈을 벌 것이라고 했다. 염치선생은 눈치양반의 주머니 사정이 어지간히 궁금하다. 통 내색을 않고 있으니 답답하다. 얼마를 투자할 능력이 되는지를 알아야 종목을 정해주겠는데 눈치양반은 그저 묵묵부답이라 염치선생은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다.
답답한 건 염치선생뿐이 아니라 눈치양반도 상대를 보니 복장이 터진다. 눈치양반이 보기에는 염치선생은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주제넘게 남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같이 살면서 들어보니 염치선생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무슨 해운회사 미얀마 지사장 자격으로 양곤에 날아왔다. 물류 운송과 통관에 관해선 전문가다. 그러나 물이 있어야 고기가 노는 법, 그 회사가 일 년 전에 공중분해가 되고 염치선생은 길 잃은 철새로 미얀마에 체류하고 있다.
염치선생이 시도 때도 없이 들먹이는 아들, 코치란 녀석이 내년이면 대학을 가야하기에 인생에 있어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점에 실업자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염치를 앞세워 남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눈치양반의 오감을 엄청 거슬러 놓는다. 눈치양반은 매달 일정금액의 생활비가 한국의 아내로부터 송금되어 오지만 염치선생은 그런 루트가 없다. 오로지 미얀마에서 스스로 충당해야 한다. 염치선생이 밥을 구하는 곳은 미얀마 세관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선례 없는 기계나 화공약품 등 세관입장에서 골치 아픈 물류가 와서 통관을 못할 적에 어느 선에 손을 쓰는지, 그런 것을 통관시켜주고 커미션을 뜯어먹고 산다. 정확한 액수는 눈치양반도 모르지만 한 건 하면 제법 짭짤한 모양이다. 그런 돈을 두고 좀 아껴 쓰면 좋으련만 주머니에 돈이 몇 푼 들면 못 견디는 작자가 염치선생이다. 한 건하면 들어와서 눈치양반에게 생활비 대납한 것을 정산하고, 또 빌려간 푼돈을 갚고 바로 나간다. 나가는 염치선생의 뒤통수에 대고 눈치양반은 목젖아래 들어붙은, 누런 가래를 토해내듯이 한마디를 간신히 토해놓는다.
-거! 빌려간 담배는 안 갚는겨?
-거? 들어올 때 한 보루 사올 거랑게요.
눈치양반 방에 있는 담배를 툭 하면 한 곽씩 꺼내간다. 돈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눈치양반은 담배를 박스 채 책상위에 두고 피는데 어떤 때는 겨우 서너 곽을 피웠는데 박스가 비는 경우도 있다. 나머지는 다 염치양반이 가져갔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한 곽 빌려 간당게요. 일방적인 동의를 구하더니 이젠 툭하면 들어가 자기 것처럼 태연하게 들고 나온다. 한국사람 담배인심이 좋다고 하는데 그런 걸 말하자니 옹졸하고, 돈이 생기면 사놓겠지 하고 넘어간다.
돈이 생겨서 나가는 염치선생 뒤통수에 대고 눈치양반은 늘 하는 소리가 있다. 베라묵을 자석! 같이 나가자고 입에 발린, 헛소리도 않는구먼! 그렇다. 염치선생은 돈이 생기면 눈치양반을 아는 척도 않는다.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같이 어디를 나가자고 졸라도 주머니에 돈이 들면 약속이 있다며 혼자 나간다. 혼자 나가서 하는 짓거리를 눈치양반은 눈치를 채고 있다. 양곤 시내에 두어 개 있는 한국인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치며 적당한 작자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한국인 노래방에 간다. 거기서 현지인 노래방 도우미 하나를 사서 외박을 하는 눈치다. 그런 걸 다 열거하면 입이 더러워진다.
홈 쉐어를 같이 하면서 눈치양반이 느낀 것은 홈 쉐어가 아니라 불편한 동거다. 염치선생의 행동거지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성장과정이 어땠는지 숟가락 쥐는 법부터 시작해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눈에 거슬린다. 아침마다 욕실에 들어가면 치약 쓰는 법부터가 다르다. 치약을 뒤에서부터 짜서 쓰면 좋으련만 중간을 꾹 눌러 짜서 쓰고는 뚜껑을 닫지 않는 것이다. 그 놈의 치약을 바로 해 놓으면 다음날 또 마찬가지다. 비누도 어떻게 쓰는지 반으로 분질러 놓기 일쑤고 무슨 정신머리로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자기가 쓴 때수건도 빨아놓지 않고 비누 떡칠을 해서 그냥 욕실바닥에 던져둔다. 화장실은 가사도우미들과 따로 쓴다. 염치선생과 눈치양반은 마스트 룸에 딸린 욕실을 쓰고 가사도무미들은 주방에 딸린 화장실과 욕실을 쓴다. 아침에 청소담당 처녀가 욕실 청소를 한 번 하면 그 욕실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홈 쉐어하는 집에서 그런 사소한 것에 상대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건 염치선생은 모른다.
아침은 어떤가. 가사도우미들이 아침을 정성들여 해놓으면 염치선생은 일어나지 않는다. 눈치양반이 혼자 숟가락 들기가 뭣해서 주방에서 소리쳐 깨우면 아침은 먹지 않겠다고 그때서야 선언한다. 눈치양반 혼자서 아침을 먹고 나면 어중간한 아침나절에 일어나서 가사도우미들에게 라면을 끓이라고 시킨다. 혼자서 밥 먹는 행위가 싫어 홈 쉐어를 구한다는 말은 입에 발린 말이다. 순전히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생활비를 반으로 줄이기 위함이리라. 어쩌다 밥을 같이 먹어도 불편하다. 입에 맞는 반찬하나가 나오면 거기에 집중공격을 한다. 아예 반찬 접시를 제 앞으로 끌어당겨놓고 허겁지겁 먹느라 눈치양반의 눈치를 볼 겨를이 없다. 편식이 심한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눈치양반은 짐작하고 넘어간다. 어쩌다 옛날이야기가 나와서 염치선생의 성장과정의 얘기를 들어보면 눈치양반과 달리 어지간히 귀하게 자란 사람이다. 고생이라곤 전혀 해보지 않고 귀하게 작자다. 독자로 자란 그는 계란이 밥상에 올라오지 않으면 밥을 먹지도 않았다고 했으며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면 큰 누나가 도시락을 들고 따라왔었다고 했다.
눈치양반과 염치선생이 홈 쉐어하는 아파트는 이 층이다. 얼마 전에 사 층에 한국인 세 사람이 이사를 온 모양이다. 그 사실도 눈치양반은 염치 선생에게 들어서 안다. 세 사람 모두가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서 온 모양이다. 미얀마는 물가가 싸고 인건비가 아직은 싸서 일거리가 마땅찮은 한국 사람들이 무작정 푼돈을 들고 날아오는 곳이다. 염치선생에게 들은 바로는 소문만 듣고 무작정 날아온 사람들이 분명하다. 거기에 뭐 뜯어먹을 게 있는지 염치선생은 짬만 나면 사 층에 가서 산다. 집에 있는 가사도우미에게 안줏거리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걸 들고 올라가 거기서 술을 마시고 취하면 거기서 자고 오기도 한다. 워낙 주제와 오지랖이 태평양인 작자니 그러려니 했다. 사람 알아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염치선생의 생각이고 눈치를 보고 사람을 골라가며 만나야한다는 것이 눈치양반의 지론이다. 염치선생은 사 층에 이사 온 사람들을 정보교환 차원에서 한번 만나보라고 하지만 소득 없는 짓거리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싫어서 만나지 않고 있다. 세 명 다 한국에서 인테리어를 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인테리어업자가 미얀마에서 일을 찾는다는 건 현지 수준을 감안할 때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들으나마나 몇 달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작자들이 분명하다. 그런 작자들과 정보교환이 아니라 그냥 지닌 푼돈을 아끼는 차원에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남의 일에 초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염치선생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는 이유는 미얀마에 대해서 아는 척 하는 염치선생의 말이 먹혀들기 때문이고 또 푼돈을 지닌 작자들이라 아직은 뜯어먹을 게 있기 때문이리라.
-제 코가 석자인데 뭘 거들어준다고 그러는 겨?
염치선생이 사 층으로 올라가는 눈치를 보이면 눈치양반은 속으로 비아냥거린다. 염치선생은 요즘 돈이 떨어졌다. 강 프로가 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안다. 강 프로는 프로골퍼라고 하는데 그와 같이 골프를 친 일이 없으니 실력은 모르지만 한국 골프관광객들이 오면 호텔 잡아주고 골프장 부킹을 해주고 같이 골프를 쳐주며 거기서 나오는 푼돈으로 사는데 염치선생과 어지간히 친하다. 염치선생이 돈이 생기면 늘 강 프로와 붙어산다. 같이 당구를 치고 노래방을 가고 외박을 하거나 툭하면 술을 먹고 들어와 염치선생 방에 같이 잔다. 하여 염치선생 방에는 여분의 싱글침대가 하나 더 있다. 눈치양반이 보기에 빈대기질로 따지자면 강 프로는 염치선생보다 분명 한 수 위다. 둘이서 홈 쉐어를 하면 좋았을 것을,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 프로는 봉제공장을 하는 고향 선배 집에 얹혀산다. 하긴 둘이서 홈 쉐어를 하면 살림이 될 리가 없다. 둘이서 산다면 손가락을 빨고 있는 날이 더 많을 게다.
강 프로가 오지 않는 걸 보니 염치선생 주머니가 빈 게 분명하고, 주머니가 비었다는 사실을 또 한 군데서 확인을 했다. 그건 바로 미용실이다. 얼마 전에 아파트단지 상가에 한국인 미용실이 하나 생겼다. 염치선생이 눈치양반에게 미용실을 차리면 돈을 벌겠다고 했던 그 즈음이다.
미얀마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류 열풍이 불어 한국 미용실에 가니 한국인은 없고 현지인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한국 미용실이라고 하면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현지인들은 한 명이 머리를 자르러 오면 둘이 들러리로 따라 온다. 들러리로 따라와서 염색은 얼마이고 파머는 얼마이고 가격만 묻는 것이다. 들러리로 따라온 현지인이 우글거리는 걸 보고 염치선생은 미용실을 차리면 돈을 벌 것이라고 했지 싶다. 현지 아낙네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이발을 하다가 눈치양반 또래쯤으로 보이는, 주인인 한국 아주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저어기 놀랐다. 처음가지만 미용사인 주인아주머니는 눈치양반을 잘 알고 있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어떻게 알고 있나 신기했지만 답은 금세 나왔다. 염치선생이 먼저 이발을 하러 와서 미주알고주알 나불댄 것이다. 더 놀란 것은 염치선생이 이발을 하고 염색까지 하고서 외상을 했다는 점이다. 처음 가는 미용실에서 가능한 일인가? 속으로 그것이 더 궁금했다. 눈치양반은 아파트 후문에 있는 길거리 이발사에게 이발하기를 좋아한다. 돈이 없으면 그런 곳에서 깎아야지 왜 비싼 한국인 미용실에 가서 외상을 한단 말인가? 머리 안 깎으면 어느 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하나?
참 염치도 좋다.
한국인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아보니 길거리 이발사의 열 배 요금이 나왔다. 아파트 단지 내에도 미용실이 서너 개가 있다. 현지인 미용실이다. 눈치양반은 그 미용실을 두고 아파트 단지 뒤에 있는 길거리 이발사에게서 이발을 한다. 아파트 단지 뒤쪽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아파트담벼락에 나무판자와 함석을 덧대어 만든 길거리 이발소가 있다. 치마처럼 생긴 미얀마 전통복장 론지를 입어서 어디까지 잘렸는지는 몰라도 한쪽 발이 플라스틱인 이발사가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대나무로 만든 비취용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다리를 꼬고 늘 낡은 기타를 친다. 눈치양반은 그걸 보고 적선하는 차원에서 저기서 머리를 한번 깎아야지 벼르고 있다가 어느 날 머리를 깎아보니 마음에 들게 참 마음에 들게 깎아주었다. 요금은 한국인 미용실 십 분의 일, 집에 와서 머리를 감으며 계산하니 한국의 담배 세 개비 값과 맞아떨어졌다. 잔돈을 받지 않으려다가 상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기꺼이 받았다. 눈치선생은 지나다니며 그 길거리 이발소의 이름을 속으로 지었다.
현악 이용소!
한쪽 발이 플라스틱인 삼십 대의 이발사는 손님이 없으면 기타로 외롭고 쓸쓸하게 기타 줄을 뜯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에 성의 없이 떠오르는 대로 지었다. 눈치양반은 현악 이용소의 단골이 되어 이발을 하는데 한국인 미용실이 생겨서 구경하는 차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며 염치선생이 외상을 하고 갔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염치선생은 이발을 하며 눈치양반의 모든 정보를 미용실에 흘려놓았다. 염치선생은 외상을 하려고 보증인 차원에서 눈치양반의 정보를 흘려놓았겠지만 눈치양반 입장에선 보통 불쾌한 일이 아니다. 이발을 마치고 눈치선생의 외상값을 갚아주려다가 수가 틀려 그냥 나왔다. 요금은 길거리 이발소보다 열 배나 비쌌지만 이발을 한 머리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치양반이 한국인 미용실에서 이발을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하니 그 주인아주머니를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이 아주머니 맛있게 생기지 않았나요?
눈치선생이 며칠 전 휴대폰에 찍힌 사진을 들이밀며 물었다. 보여주는 화면에는 눈치선생과 오십 대의 한국 아주머니 얼굴이 함께 박혀 있었다.
-뭐 그저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섹시하게 생겼어요.
사진을 대충보고 흘려버렸는데 그 아주머니가 미용실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이발을 마치고 나서 나오면서 뒤늦게 알았다. 이발료를 외상하고 무슨 수작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진의 주인공이 미용실 아주머니가 틀림없다.
염치선생은 어디를 가던 카메라부터 들이대기를 좋아한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다. 어디를 혼자가면 어떤 개체든 사진을 찍어서 눈치양반에게 자주 보여준다. 한국인들과 땅을 보러가서 그 땅의 사진을 찍어 얼마짜리 땅이라며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한국 노래방에 가서 현지인 도우미의 사진을 찍어서 오밤중에 메시지로 날려주기도 하며 자신의 아내가 메시지로 보내주는 아들 코치 녀석의 사진은 열 번도 넘게 보았다.
땅의 사진은 특징이 없어 그 땅이 그 땅 같지만 염치선생은 이 땅은 무엇에 쓰면 좋고 이 땅은 얼마짜리며 어떤 조건이라고 설명을 하지만 눈치양반은 늘 건성으로 듣는다. 땅은 눈치양반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있다지만 길을 가다가 남이 싸우면 그런 것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참 못 말리는 작자다. 싸움하는데 괜히 카메라를 들이대면 불난 데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모른다. 하여 시비에 휘말려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책에서 읽은 바로는, 미얀마 시골 소수민족 중에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함께 날아간다고 믿는 종족도 있다. 누차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일렀거늘, 염치없이 아무 곳에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보기 싫어 눈치양반은 염치선생과 같이 다니려고 하지 않는다. 같이 다니려고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쩌다 같이 볼일을 보러 나가서 택시를 타면 택시비는 눈치선생 몫이다. 염치선생은 택시비고 점심 값이고 한 번도 낸 적이 없다. 염치선생은 당연하다는 듯하다. 혼자 나가면 버스를 탈 것인데 눈치선생이 있으니 택시를 탄다는 투다.
눈치선생 방에는 괜찮은 양주가 한 병 있었다. 지금은 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이미 뚜껑을 딴 양주니까. 양주를 얘기하기 전에 비자부터 얘기하자. 미얀마 비자는 좀 특수하다. 멀티비자라도 칠십 일로 체류기간이 한정되어 있다. 체류 칠십 일을 넘겨 오버스테이가 되면 페널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가까운 방콕이나 하노이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면서 갱신한다. 양주는 눈치양반이 비자가 만료되어 비자 갱신차원에서 방콕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면서 방콕 공항면세점에서 산 것이다. 염치선생은 이거마저도 사진을 찍어서 사 층에 올라가 하릴없는 작자들과 검토분석을 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눈치양반이 없는 틈에 들고 올라가 반병을 마시고 반병을 남겨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박스에 그대로 들어있어서 눈치양반은 모르고 있었다. 눈치양반은 결정적인 순간에 괜찮은 정보를 제공하는 현지인에게 선물로 주려고 아끼고 있는 물건이다.
눈치양반이 말을 안 하지만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염치선생의 빨래거리다. 아무리 청소와 빨래담당 가사도우미를 두고 있다지만 염치선생은 한번 입고 나갔던 옷이면 무조건 벗어 빨래 통에 던져 넣는다. 눈치선생보고 빨라는 건 아니지만 청소담당 처녀가 염치선생의 빨랫감과 씨름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빨래 통에 넘치는 옷이기에 눈치양반이 일삼아서 헤어보니 어떤 날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빨랫감을 내놓는 날도 있다. 한국의 집에서도 저렇게 하는가? 그렇게 하면 어느 여자가 붙어살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눈치양반은 팬티는 매일 갈아입지만 겉옷은 이틀씩 입는다. 더운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그게 정상이다.
눈치양반이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에어컨 사용 문제다. 눈치양반과 염치선생 방에는 똑 같은 크기의 벽걸이 에어컨이 달려있다. 눈치양반은 잘 적에 에어컨을 끄고 잔다. 허나 염치선생은 에어컨을 켜고 이불을 덮고 잔다. 염치선생이 늘 코감기가 걸려 감기약을 찾는 건 순전히 에어컨 탓이다. 잘 적에는 에어컨을 끄고 자라고 누차 일렀거늘, 콧물을 달고 사는 건 염치선생 사정이고 하필이면 눈치양반 방의 창문 앞에 달린 에어컨 외기가 돌아가는, 툴툴거리는 소음에 눈치양반은 매일 밤 시달려야 한다. 염치선생은 방을 비우면서도 에어컨을 그대로 켜둔다. 눈치양반이 시끄러워 에어컨을 끄고자 하면 항상 방문이 잠겨있다. 전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에 공동으로 내는 전기세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면서 소음에 시달리는 건 곤욕이다. 어제도 밤새 에어컨이 돌아갔다. 그러나 염치선생은 방에 없었다. 외박을 한 것이다.
눈치양반이 새벽부터 화를 내는 건 에어컨 소음이나 전기료 때문이 아니다. 바로 소주 사건이다. 눈치양반이 일주일 전쯤에 시내에 있는 컨설팅회사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한인마트에 들러 소주를 한 박스 사서 들어왔다. 아파트 상가에도 한국 소주를 파는 곳이 있지만 가격이 곱절 비싸다. 미얀마에서 소주는 인기가 있는데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한인마트에서 박스채로 산다. 소주 한 박스는 스무 병 들이다. 눈치양반과 염치선생은 매일 저녁을 먹으며 반주로 소주를 마신다. 많이 마시는 건 아니고 눈치양반 혼자 있으면 반병이고 염치선생과 둘이 마시면 두 병이다. 한 박스를 사다 놓으면 근 보름이상은 먹어야 하는데 가사도우미 처녀가 어제저녁에 혼자서 밥상을 받는데 소주를 내놓지 않는 것이었다. 눈치양반이 소주를 달라고 하자 없다는 것이었다. 한 박스를 들여놓은 지 겨우 일주일 남짓 한데 소주가 바닥났다니 그 영문을 몰라 소주를 다 어쨌냐고 가사도우미를 닦달하자 염치선생이 매일 가방에 서너 병씩 넣어가지고 메고 나갔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세 병을 싹쓸이해서 나갔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홈 쉐어를 하고 있지만 소주는 염치양반과 반반으로 사는 게 아니다. 그런 것까지 반반으로 하기에 박절하다는 생각으로 소주가 떨어질 만하면 눈치양반이 눈치껏 사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술 없이는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방에 있는 양주를 들고 나왔다. 양주를 열어보니 더 기가 찼다. 말짱하던 양주가 반병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화가 극에 달했지만 눈치양반은 양주를 마시지 않고 가사도우미들에게 버리라고 했다. 반 남은 액체가 뭔지 알고 마신단 말인가. 눈치양반은 밥을 먹지 않고 씩씩거리다가 가사도우미들에게 아파트 상가에 가서 소주를 두 병 사오라고 시켰다. 저녁반주로 화를 다스린다고 소주 두 병을 다 해치웠다. 얼큰한 기분에 들어오면 한마디 하려고 벼르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염치선생의 방에 에어컨은 여전히 툴툴거리며 돌아가고 방문은 그대로 잠겨있었다. 염치선생이 외박을 한 것이다. 아마도 사 층에서 술을 먹고 거기에 끼어 자는 모양이다.
-거 싹바가지하고는.......
눈치양반은 싹바가지를 거듭 들먹이며 또 담배를 꺼내 문다. 줄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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