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신앙의 영적 거장이 될 수 있다
2023년 12월 10일 / 약 5:17-18 / ♬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1. 나도 신앙의 영적 거장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종들 중에 위대한 인물들이 많다. 모세와 엘리야 다윗과 다니엘 같은 신앙인들은 우리가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신앙의 소유자로 오랜 세월 많은 신앙인들의 표상이 되어 왔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가르켜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이가 없다 할 정도로 칭찬을 하시기도 했다.
이들 신앙의 선배들에 공통점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것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하나님을 아는 수준을 넘어 성령의 이끌리어 살았다.
성경을 교양적인 지식으로 접근하는 자는 성령을 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실존의 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많이 배우나 교양과 지식의 수준에서 멈춘 신앙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모든 역사는 성령을 통해 일어난다. 성령이 나를 통제하고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갈 5:24-26). 자기를 정결(거룩)하게 해야 한다(딤후 2:19-20). 그리하면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약 5:17-18).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우주의 주인이요 세상을 다스리는 창조주이시다(마 16:15-16). 역사상 그 누가 사람의 영혼을 심판하는 권세가 있었나? 누가 사람의 죄를 심판하며 운명을 좌지우지할 권세가 있었는가? 오직 창조주이신 우리 하나님 밖에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기에 우리를 자꾸 깨우쳐 우리가 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억제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도저히 죄를 이길 힘도 벗어날 능력도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버려진 느낌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버려진 것이 아니라 영적 갈급함을 통하여 주를 찾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과 사단의 시험 속에도 나는 예수님의 신발끈 풀기에도 감당못할 사람이라고 겸손한 신앙으로 오직 주님만 높이며 사명을 잘 감당했다.
위대한 신앙인들도 나약함이 있었고 세상 살기에 두렵고 버거움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다.
사람들에게 육신의 평안함이 찾아오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 것에 관심을 같게 되고 그것은 곳 죄로 이어진다(계 3:!4-22).
하나님이 이런 어려움을 주심은 나를 너무나 잘 아시기에 죄악의 길로 갈 수 없도록 깨어 근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베푸시는 은혜다. 부모에게 책망 받고 훈계를 받을 때에는 그것이 쓰고 괴롭지만 결국 그 자녀를 살리는 길이 된다(신 8:2-3).
약이 입에서 쓰나 몸을 살리는 역할을 하듯 하나님의 훈련 방법은 고난을 통하여 나를 살리시는 사랑이 숨겨져 있다. 우리 모두는 나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속에 묻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히 12:1-13)
앞에서 말한 성경의 인물들 또한 우리와 같은 인생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주안에 거하여 산다면 우리도 신앙의 영적 거장이 될 수 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 거장으로 만드는 공사를 하시는 중이시다.
2. 한국 기독교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로버트 하디 선교사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3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1903년 원산 부흥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1909년 백만 구령운동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부흥운동이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었고, 원산 부흥운동은 평양 대부흥 운동의 모체역할을 했으며, 백만 구령운동은 평양 대부흥 운동의 후속 활동 같은 성격을 가진 대대적인 전도운동이었다.
원산 부흥운동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한국 선교의 시작
한국교회는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다. 그 소식은 영국과 미국 선교 보고지에 보도됐고, 이로 인해 조선은 서구 기독교계에 알려지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정식 선교사로 입국한 후 뒤이어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오게 됐다.
원산 부흥운동의 시작
1899년에서 1901년까지 청나라는 민간 결사대들이 일어나 외세 배척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데 이를 의화단 사건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했고 이를 피해 원산에 와 있던 남감리교 여선교사 메리 화이트와 캐나다 장로교 여선교사 루이즈 맥컬리는 암담한 조선을 위해, 조선교회와 선교사들 가운데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두 선교사의 기도모임의 소식이 알려지자 원산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이 이 기도 대열에 참석했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원산지역 선교사님들은 공개 기도집회를 열고 토론토 의과대학 출신으로 원산에 파송됐던 하디 선교사에게 ‘효과적인 기도를 위한 필수 요소들’이라는 주제로 세 차례 강의를 부탁했다. 당시 하디는 학력으로나 직업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노력에 비해 열매가 초라한 실패한 선교사였다.
원산부흥의 주역으로 쓰임 받은 하디 선교사
로버트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 한국이름 하리영)는 1865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에 잠시 교사로 일했으나 대학 2학년 때 SVM 운동에 참여하며 선교사의 꿈을 갖게 된다. 의사가 되어 병든 이웃들을 돕고 싶어 토론토 의과대학에 진학한 마가렛 켈리와 비전을 나누며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곧이어 그들 부부는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선교사로서 토론토 지역 의대생들로 구성된 기독청년회의 파송을 받아 8년 계약으로 부산으로 오게 된다. 부산지역과 서울 제중원, 다시 부산에서 의료선교사로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8년 계약이 끝나자 감리교 원산 선교부의 초청을 받아 남감리교 선교사로 원산에서 사역하게 된다.
원산에 주재하면서 의료선교 사역과 함께 강원도 지역을 순회하면서 교회를 설립하게 되는데, 1901년에 15명에게 세례를 주고 강원도 최초의 교회인 지경터 교회를 세웠고, 같은 해 10월에 양양교회를 세웠고, 이어 강릉중앙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사역의 열매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1903년 8월에 열리는 원산 주재 선교사 기도회의 강의를 준비하던 중에 누가복음 11장 13절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역에 실패했음을 깨닫게 된다.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회개하던 하디는 기도회 강의시간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했다.
명문 토론토 의대 출신이라는 학력과 의사라는 신분에 대한 교만함, 백인 우월주의, 조선인들을 미개하고 무식한 백성으로 생각했던 오만,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과 학력을 의지했던 영적 무지와 미숙과 어리석음 등을 눈물로 고백했다. 이 기도회는 선교사들의 눈물의 회개로 이어졌다. 하디는 그 다음 주일 사역하던 원산 감리교회의 주일예배에서 또 다시 자신의 죄와 성령충만하지 못함을 성도들 앞에서 눈물로 고백했다. 그의 회개는 성도들의 공개 회개로 이어져 통회를 동반한 부흥이 원산 전역에 퍼지게 된다. 은혜 받은 하디는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처럼 얼굴에 은혜의 광채가 났고 눈빛과 성품이 180도 달라졌다. 전에 조선인 환자들은 하디의 거만함과 쌀쌀함 때문에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참고 그에게 치료받으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은혜 받은 후의 하디는 표정과 성품과 어투가 완전히 변해 하디가 환자의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성령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자 하디는 그가 처음 세웠던 교회이자 자신에게 실패감을 안겨주었던 지경터 교회를 찾아가 12일간 집회를 인도했다. 원산에서처럼 선교사의 죄 고백과 회개, 성도들의 눈물의 참회가 동반된 영적 각성이 일어났다.
1904년에 하디는 서울과 개성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모두 똑같은 성령의 강한 역사와 회개를 통한 각성운동이 일어났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에게도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학생들이 서로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안식년을 떠나기 전에 하디는 서울, 제물포, 평양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가는 곳마다 성령님이 그와 함께하심으로 부흥이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고, 가는 곳마다 회개와 각성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안식년 마치고 1906년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하디 선교사를 강사로 평양 선교사 가족사경회가 열렸다. 하디는 자신이 변화되기 전의 교만과 성령에 대한 무지, 주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는지 나눴다. 성령께 사로잡힌 하디의 설교는 선교사와 그 자녀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이 됐다.
구체적인 내용이다.
1. 하디선교사는 의사였던 하디선교사는 대단히 성실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조선 사람들에게 정말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쳤지만,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을 얻기를 갈망하였다.
2. 그러나 조선 교인들에게서 ‘분명하고, 지속적인 회개의 구체적인 열매’를 보지 못하여 깊이 좌절하고 있었다.
3. 그러던 중 1903년 원산에서 열린 선교사 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할 준비를 하다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하디에게 조선 사람들에게서 진정 회개의 열매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다.
4. 조선 교인들에게서 진정한 회심의 열매를 얻고자 하는 동기도 옳고,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좋으나,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이 문제임을 깨달았다.
5. 성령님을 체험한 하디 선교사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의 학력과 의사라는 직업, 영국시민이라는 교만이 있었음을 회개하였다.
6. 성령님께서는 하디에게 그것을 고백하게 하셨다. ‘성령님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님의 첫 번째 요구는 내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그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7. 하디는 이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했다. 선교사 수양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동안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선교의 결실이 없었던 원인이 자신의 ‘교만과 강퍅함, 믿음이 부족한 연고’라고 공개적으로 통회했다. 하디의 고백은 동료 선교사들의 회개로 이어졌다.
8. 그리고 하디는 조선 교인들 앞에서도 낱낱이 고백하고 눈물로 참회하고 회개하였다. 조선 교인들은 하디 선교사의 고백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드디어 회개가 터졌다. 이것이 하디 대부흥의 시작이었다.
9. 하디 선교사를 통해 선교사들과 조선 교인들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디 선교사의 회개 후 하디 선교사의 성품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10. 같은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은 은혜를 받기 전 하디와 은혜를 받은 후 하디가 180도로 달라졌다고 했다. ‘은혜를 받은 후 하디는 마치 40일을 금식한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얼굴에 광채가 나던 모세의 얼굴과 같았고, 베드로가 처음 갈릴리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와 베드로서를 쓸 때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11. 성령님을 체험하고 공개 회개를 하기 전, 하디 선교사는 솔직히 환자들이 기피하는 엄격하고 쌀쌀맞아 교만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의사였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이 완전히 변했다고 한다.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다’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를 받기를 주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을 정도이다.
12.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과 삶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하디는 조선 교인들에게 진정한 회개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에도 그는 회개에 대해서 설교했지만 그 실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회개의 설교와 더불어 자신의 회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회개가 실제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13. 이렇게 원산 부흥은 일어난 것이다. 1906년 8월에 평양에서 선교사들의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이 있었을 때, 강사로 초청된 하디는 자신이 경험했던 은혜를 간증했다. 은혜를 받기 전 얼마나 자신이 교만했는지, 그런 자신에게 어떻게 성령님께서 찾아오셔서 자신을 변화시켜주셨는지를 진솔하게 전했다.
14. 이날 하디는 이렇게 외쳤다. ‘사람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무엇을 잘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 슬프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역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되는가!’
15. 선교사들은 이때부터 1907년 초에 모일 겨울사경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의 열매가 1907년 평양대부흥이었다.
♬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고형원
이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나라 이땅에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