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2일 하늘언어교회
공동체소식
1. 예배 조율
세상의 예배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부단히 조율해 가야 합니다.
순서를 개편하고 부족한 요소를 보충하고 예배가 예배답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각도로 보완해야 합니다.
우선 대표기도와 중보기도 등 기도시간과 찬양시간을 늘릴 예정입니다.
그 외에 개편되거나 조율되었으면 하는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가능한 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2. 명절 윷놀이
오늘은 예배후에 윷놀이를 하겠습니다. 즐거운 윷놀이와 함께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3. 하늘언어교회 주일 예배
하늘언어교회는 가정교회이긴 하지만 엄연히 교단에 등록된 공식교회입니다.
교회는 주일 예배가 필수입니다.
하지만 제가 목자인 동시에 양이라는 이중의 성경적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목요일에는 목회자로서 예배를 인도하고, 주일에는 평신도로 타교회에 출석하며 주일을 성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교회 또한 최소한의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일에 한 분이라도 본 공동체에서 예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주일 예배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4. 오늘 예배후에 읽을 말씀은 시편 1편부터 5편까지입니다.
예배시작
공동기도
1. 예배처소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요.
우리는 소리를 높여 찬양과 기도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 중에는 고도난청 등으로 큰 목소리로 소통해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큰소리로 예배드리면 층간소음으로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가능한 한 아무에게도 민폐을 주지 않으면서 목청껏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위해 함께 간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 감사기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에 따라 모든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습관화하시기 바랍니다.
강론
성경봉독: 창세기 2장 23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제목: ‘죽은 언어 살리기’ 조영찬 전도사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주셨을 때 아담의 기쁨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최초의 남자인 아담에게는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연인도 없었습니다. 온 세상에 사람은 오직 아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외로움은 대중 속에서 느끼는 현대적 외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태고의 외로움, 우주적인 외로움, 절대적 고독이었습니다.
그런 아담에게 나타난 하와는 아내이면서 친구이면서 유일한 타인이었습니다. 아담은 불후의 명시를 남긴 것입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사랑의 시는 수없이 많지만 최초의 남자인 아담의 표현을 능가하는 연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와가 나타나기 전까지 세상에는 여자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아내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친구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아직 하와가 생기기 전 아담에게 여자, 아내, 친구라는 말들을 들려주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즉 하와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러한 말들은 죽은 언어에 불과했습니다. 하와가 나타나고서야 비로소 그 언어들은 생명력을 가지고 약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번성해 왔습니다. 그래서 남자도 많아지고 여자도 많아졌습니다. 친구도 많아지고 지인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기쁨과 행복이 넘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생기고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의 빈구석은 너무나 방대해서 충분히 채워질 수 없는 무저갱 같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완전한 건강체로서 번성하지 못하고 왜곡되고 결핍된 상태로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상태에서의 번성은 수많은 문제와 결핍의 급증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의 상태를 알고자 한다면 그의 언어세계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의 모든 상태와 문제가 그의 언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를 살피면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상태가 밝고 건강하다면 언어도 밝고 건강할 것입니다. 사람의 상태가 어둡고 병들어 있다면 언어도 어둡고 병들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의 언어가 건강하면 사람도 건강하고 그의 언어가 병들면 사람도 병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언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면 그의 언어세계를 조명하고 해부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언어세계란 무한하고 방대하기 때문에 완전한 파악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의 돋보기, 현미경, 망원경 등을 통해 언어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언어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개념을 통해 살펴보는 것입니다. 살다, 죽다, 먹다, 놀다, 믿음, 사랑, 추억 등 수많은 개념들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와 빛깔을 가지고 있는가를 통찰해보면 그 사람의 언어세계를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믿음을 예로 든다면 내 안의 믿음이란 개념은 어떤 상태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밝고 건강한 믿음인가? 하나님을 무섭고 공포스러운 분으로 여기고 억지로 믿는 어둡고 우울한 믿음인가? 이렇게 그 믿음의 상태를 살펴보면 그가 건강한 신앙인인지 병든 신앙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속에 있는 개념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개념들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미지화 해보십시오. 개념들을 강아지나 팬더 등 동물에 비유해도 좋고 사람, 자동차, 별 등 무엇으로 이미지화해도 좋습니다.
놀다라는 개념을 토끼로 이미지화해본다면 그 토끼는 건강하고 밝은 토끼인가, 중독되고 병든 토끼인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유익한 놀이를 하고 있다면 놀다라는 토끼는 산과 들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계속해서 먹다, 친구, 기쁨, 행복, 사랑, 외로움, 공부, 책 등 무수히 많은 우리 안의 언어들을 살펴보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해보는 것입니다. 부모라는 개념은 고아에게는 까맣게 멍들고 큰 슬픔으로 채색된 언어일 것입니다. 빛이라는 개념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죽은 언어가 됩니다. 책이라는 말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지개 빛으로 빛나겠지만 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재미없고 지루한 종이 뭉치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람의 전 존재가 건강할수록 그의 언어 세계도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합니다. 여러가지 상처와 결핍이 많을수록 그의 언어세계는 온통 어둠과 슬픔과 외로움으로 멍들게 됩니다.
세상에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세상에 완전히 어둡기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언어세계가 완전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언어세계가 완전히 타락한 존재는 사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세계는 사탄과 하나님의 중간에서 스펙트럼을 이루게 됩니다.
언어세계가 하나님께 가까울수록 천국에 가까운 것입니다. 언어세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천국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안의 밝고 건강한 천국 언어들은 십분 활용해서 하나님의 광영을 참연히 드러내야 합니다. 자기 안의 언어 중에 극심한 영양실조와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영양을 공급하고 상처를 싸매야 합니다.
우리공동체 식구들은 아픈 언어, 텅빈 언어, 고독의 언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을 잃은 빛, 소리를 잃은 소리, 기쁨을 맛보지 못한 기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언어들이 우리 안에서 구원과 치유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한 갈망에 대한 현실적인 구원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방편은 다만 어느 정도의 도움과 부분적 치유를 제공할 뿐입니다.
궁극적인 치유는 오로지 완전하신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언어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결핍과 텅 빈 우리의 언어세계를 완전한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해주시는 분입니다.
아버지를 여읜 고아에게는 세상의 어떤 위로라도 그의 아버지라는 공백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완전한 아버지이신 하나님만이 아버지의 공백을 완전히 메꾸어주실 수 있습니다.
빛을 잃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보조기기와 고가의 장비도 빛의 공백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완전한 빛이신 하나님만이 그의 빛을 완연하게 회복시켜주실 수 있습니다.
자기 안의 상처받고 메마른 언어들을 사랑과 긍휼로 보듬어주십시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완전한 치유와 참된 위로를 하나님께 의탁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이라는 완전하고 전능한 언어님을 우리 안에 깊이 모시고 사랑하고 의지하고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안의 무수한 상처와 혼란과 공백들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언어로 치유되고 채워지고 구원되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