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이 되려면
정동식
“여기 기전실입니다. ○○○동 ○○○호죠? 거기 베란다 괜찮습니까?”
기사님의 목소리가 비디오폰으로 흘러나왔다.
“잠깐만요, 확인해 볼게요. --------, 아이고 기사님 엉망진창입니다!”
도서관에 갔다가 방금 도착한 나는 베란다 상황을 확인하고 바로 응답했다.
“물이 많이 넘칩니까? 언제부터 그랬나요?”
기사님의 두 번째 질문은 상황파악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고, 배수구에서 하얀 거품이 올라왔고, 물이 거실 쪽 베란다까지 넘쳤습니다.
빨리 좀 와 주이소.”
나는 기사님께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영문을 모르던 나에게 아내는 작년의 일을 기억해
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더 화가 난단다. 그때는 다행히 우리가 먼저 발견해서 큰 피해는 없었다. 그동안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세탁을 자제해 달라는 방송이 여러 번 있었고, 오늘도 불과 20~30분 전, 블라인드를
걷을 때만 하더라도 괜찮았는데, 누군가 그 사이에 세탁기를 돌려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아내는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화가 날만 했다. 나도 고위층 이웃이 원망스러웠다. 이제 이사를 가야 할 때가 되었나, 어쩌나? 생각 중에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리하러 온 기사님인가 생각했는데 나가보니 2층 사는
아가씨였다. 천정에 물이 새서 관리실에 신고를 했는데 사진을 한번 보라고 했다. 2층 상황을 알려주려고 올라
온 것이다. 나는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추운 날씨에 세탁기를 안 돌려야 하는데 위층에서
돌린 사람들이 있나 봐요. 방송 들으셨죠?, 그러니 아래층에 있는 배수관이 얼어붙어서 물이 넘친 겁니다.
작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여기는 지금 난리 났습니다. 기가 막힙니다!”라고.
그리고 지금 할 일은 기전실에 빨리 작업독촉을 해서 배수관을 녹여야 한다. 는 사실도 덧붙였다. 아가씨는 이해가 가는 듯 돌아갔고 기전실에서 2명이 나와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아내와 나는 홍수가 지나간 베란다를 청소하여 거실보다 더 반짝반짝하게 닦아놓았다. 잠시 후 아들이 케이크 하나를 들고 왔다.
2층 아가씨가 건네준 ‘파운드케이크’인데,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전해주고 가더란다. 아마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본인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고, 3층도 피해자란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우리도 몇 년 전에 2층에 피해를 주어 배상을 해 드린 적이 있다.
싱크대에 있는 정수기 연결호스가 끊어져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었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서 2층 주방에 물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 생전에는 장구소리와 발바닥 안마기의 소음으로 자제요청이 들어왔고 심지어는 걸음걸이까지 조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다. 바닥에 두툼한 이불을 깔고 진동소리가 느껴지지 않게 나름대로 예방조치를 했는데도 불편함을 느꼈다면 우리가 조심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우리도 2층 이웃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받아들인다.
같은 층에 사는 우리 앞집과는 참 사이가 좋다. 음식도 나눠 먹고 받은 접시는 빈 접시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여러 아파트에 살아봤지만 이런 이웃을 만나기 쉽지 않다. 아들, 딸과 4 식구인데 간혹 외출하다가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최근에는 E.V 앞에 세워둔 아들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는다. 입대했는지 취직을 했는지, 소식이 궁금하나 최근에 만나지 못해 물어보지 못했다.
이처럼 아파트 생활에서는 옆집과는 평온한 분위기, 위층과 아래층은 긴장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2000년까지는 단독주택, 그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줄곧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다. 살아보니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는 개인의 사정과 취향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주거형태와 관계없이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므로 이웃과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는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가족의 문턱을 넘으면 이웃과 만나게 된다. 이웃은 더 큰 사회로 나가기 전 단계이므로 가족을 대하듯 이웃을 사랑하면 끈끈한 유대를 가진 사회와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비접촉 생활문화의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이웃과 갈등을 줄이고, 두루 원만하게, 모든 사람이 즐겁게 지낼 무언가가 필요하다.
언젠가 Homify, Eun-Young Kim이 제시한 『좋은 이웃이 되는 9가지 방법』에』 공감한 바 있어 추천드리고 싶다.
‘먼저 인사하기, 반상회에 참석하기, 비상 연락망 주고받기,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활용, 좋은 운전자 되기, 갈등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센스 있는 메모 활용, 층간소음을 막기 위해 방음에 신경 쓰기와 자녀교육’이 그 방안이다.
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9가지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면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는 이웃에게 어떤 문제로든 불편을 호소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아무래도 아파트 생활에서는 층간소음의 문제가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살면서 피아노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마늘 찧는 소리 등을 들을 때가 가끔 있었다. 소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용인한 것이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내는 소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너그러운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혹시 내가 보통사람보다 조금 예민한 건 아닌지,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보고 대응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제시한 방법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분쟁을 줄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이웃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아마 인생 최고의 행운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멋진 모습이 있다.
좋은 이웃을 찾으려 만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그러면 당신은 이해와 관용, 웃음과 사랑이 어우러진 세상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첫댓글 이웃 사촌이라 하지만 아파트에서 이웃과 잘 지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늘 이웃을 배려하면 알게 됩니다. 좋은 글 계속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