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를 좋아한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이란 부분까지 낭송하다 보면 눈물이 난다. 삼십 대에는 코끝이 찡했는데 지금은 눈물이 난다. 아내의 눈물과 누나의 거친 손마디와 땀에 찌든 어머니의 모시 적삼이 시가 되어 내 고막을 울린다.
사랑하기에 결혼했고 정과 믿음이 있기에 부부로 살아간다.
아내의 생각이 어떤지 앙케트(enquête) 했다.
하나, 시집에서 가장 힘들고 눈물이 났을 때는? 직장이 천안과 경주로 갈라져 있었던 주말 부부 때와 “친정에서 이것도 배우지 못했냐”는 시어머니의 말
둘, 시집에서 가장 좋았을 때는? “도련님들이 아이들에게 당신보다 잘해 줄 때”, “삼 형제가 모여서 웃고 즐길 때 가족의 정을 느꼈다.”
셋, 시집에서 가장 화가 났을 때는? “막내 시누와 관련된 일에 당신이 끌려 다닐 때"
넷, 결혼해서 좋았을 때는? “당신과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을 돌아다닐 때,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가족과 여행 다닐 때”
다섯, 남편으로 인해 가장 화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친구 보증을 서고 대책 없이 당했을 때, 내가 젖먹이를 업고 해결하러 다닐 때”, “나도 모르게 돈을 쓰고 통장 잔고를 마이너스로 만들었을 때”, “비싼 술 먹고 취하거나 취해 들어왔을 때”.
여섯, 남편으로 인해 가장 기분이 좋았을 때는? “좋은 곳이 있으면 함께 가자고 할 때, 음식을 맛있게 먹고 맛있다고 표현할 때”
일곱, 남편의 말 중 가장 기분 나쁜 말은? “무슨 소리 하나”, “내가 알아서 할게.”
여덟, 남편의 말 중 가장 기분 좋은 말은? “고생했어요.”
아홉, 부부란?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같이 살아가는 관계”
열, 가족이란?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
열하나, 우리 부부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서로에게 예의와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일을 존중하며 살아가자.”
열둘, 소망이 있다면? “주어진 시간 후회 없이 살기”(어떻게 하면 멋있게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하며 살기)
하루 중 가장 시원한 아침 6시경에 아내의 침대에 앉아 설문했다.
아내는 긍정적이고 활기차며 웃음이 아름답다. 그래서 ‘미소’라는 애칭도 있다. 생활 패턴은 ‘기브 엔 테이크(Give and Take)’ 형이다.
알파(최지훈)의 「위너러브」란 책을 보면 대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부부관계를 가꿔나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연예인 부부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가 있다. ‘가족 사이에 스킨십 하는 거 아니다.’, ‘각방 쓰는 게 마음 편하다.’, ‘말 안 해도 다 알지’ 등 우리도 흔히 하고 듣는 얘기들이다. 흔히 듣는 말이라고 해서 그게 당연하고 맞는 걸까? 어쩌면 부부 간의 무관심과 단절이 너무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닐까?
위기를 극복하고 소위 말하는 ‘잉꼬부부’로 변신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서로 애정이 넘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 있다. 늘 사랑을 표현하고 싸워도 따로 잠들지 않으며 주말에는 부부가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규칙들은 부부가 겪었던 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서로가 운명의 상대임을 확신하여 결혼했지만 20년 넘게 타인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장을 봐 온 물건을 두는 방식, 양말 벗어놓는 방법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맞는 게 없었다. 이때 부부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자고 합의한다. 서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존중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서로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대화가 쉬웠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바뀔 수 없는 것은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니 싸움이 줄어들었다.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대화’였다.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 주말에는 꼭 대화하는 시간을 만든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집안일을 논의하기도 하는 중요한 일정이다. 그리고 수시로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이 상했을 때는 감정을 내뿜는 게 아니라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이러한 대화가 하나둘 쌓여서 두 사람은 잉꼬부부가 되었다.
앙케트를 하면서 우리부부 사이를 짚어보고 나를 생각해 봤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 재미있고 즐거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를 응원할 수 있는가.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이 소중한 사람을 외면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도 아내에게 “고생했어요”라고 했는가.
2024.8.21. 김주희
첫댓글 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서로 이해하며 서로 양보하면 좋은 부부로 발전 할 수 있습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서민들에게는 좋은 말입니다.
매주 빠짐없이 글을 쓰시는 회장님 반드시 발전하고 훌륭한 작가가 되실 겁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