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대만족!
서울 유아교육 진흥원 가족 체험 프로그램에 다녀오다.
(2015년 5월 23일)
지난 5월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기이이이이이이일고 힘겨운 한 달이었던 것 같다. 싱글 시절에는 잔인한 4월이라는 시구에 격하게 공감하며 살아 왔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니 이젠 잔인한 4월이 아니라 잔인한 5월에 격하게 공감하게 되었다.
우선, 아이는 5월 중순부터 갑자기 장염과 기관지염에 걸리더니, 그것이 다 나아갈 무렵 손바닥에 올록, 발바닥에 볼록 영유아에게는 호환마마보다도 더 무섭다는 수족구까지 걸리게 되어 무려 13일을 집에서 나와 동고동락(?)하며 지내야만 했다.
그래서였는지 5월은 너무나도 느리게만 흘러 갔다.
더욱이, 5월은 가정의 달이자 감사의 달이니, 내 아이를 챙기고, 양가 어르신들을 챙긴 후, 교육 기관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로서 선생님들도 챙겨야 한다.
아무리 감사의 마음이 담긴 편지만 받겠다고 하시지만, 음대 출신이라는 출신 성분 탓에 뒷골이 자꾸 당겨 차마 편지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뭔가 부담이 되고 값이 나가는 선물을 산다는 것도 경우와 상황에 어긋나는 듯 하여 어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직접 수제 쿠키를 만들어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물건을 산 것이 아니니 교사들도 도덕적, 규범적 압박감 없이 편안하게 나의 작은 성의를 받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내 진심과 정성을 듬뿍 담을 수 있으니 그것도 만족스럽고…
그래서 아이가 장염과 기관지염에 걸려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잠을 줄여서 쿠키를 만들었다. 정작 그렇게 맛있게 만든 쿠키를 내 아이는 아파서 하나도 먹지 못했지만… 낱개 포장해 잘 두었다가 아이가 다 나은 후에 먹였다.
근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당분이 들어간 음식, 고기, 유제품을 모두 제한하고 오로지 흰죽과 야채 반찬으로만 연명하면서도, 엄마가 쿠키를 만드는 모습, 포장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배가 아프니까 꼭 참았다가 다 나으면 주세요.’ 라고 말하며 잘 참아 준 아이가 얼마나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장염이 좋아지자마자 잘 먹어야 낫는 수족구의 치료법을 따르는 차원에서, 그리고 전염성 때문에 다중 이용시설 등 어떤 놀이 공간에도 아이를 데려갈 수 없어 심심해 미칠 것 같아 하는 아이를 위해 함께 밥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 토르티아 피자도 만들어 먹었다. 집에서 놀이 삼아 지루함도 달랠 겸 영양 보충도 할 겸 요리교실의 향연을 버리며 지냈다.
한 편, 13일 동안 아이가 아프면서 우리가 3주 전, 예약해 두었던 체험 프로그램에 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 하며 지냈었는데, 다행히도 아이는 예약한 날짜 하루 전에 깔끔하게 나아서 체험 활동에 갈 수가 있었다.
그 곳이 어디냐 하면 이 포스팅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서울 유아교육진흥원 가족체험 프로그램이다. 아이가 아프면 다음에 가면 되지 왜 노심초사까지 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한 번 예약한 날짜를 어기고 가지 않으면 90일 동안 그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가 없는 규정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깐 서울 유아교육진흥원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2009 년에 설립된 서울시 교육청 산하 기관으로, 누리과정 커리큘럼 개발, 유치원 교사 연수, 유아 교육 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일환으로, 토요일에는 진흥원을 가족들에게 개방하여, 숲 체험 프로그램, 좋은 아빠 되기 수업, 우리가 참여했던 가족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 체험프로그램은, 신체운동. 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를 중심축으로 한 누리과정에 맞추어요리, 목공, 음률, 신체활동, 사회영역, 숲 체험 등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활동 중 두 가지 영역을 골라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각 체험 영역별 참여 인원을 유아를 동반한 어른들을 포함하여 40 명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영역 별로 한 시간씩 진행되는 프로그램임에도 어수선하지도 않고, 체험의 시간도 부족하지 않아 매우 만족스러웠다 단적인 예로, 아인이 네 살 여름에 한참 여러 가지 직업에 관심을 보이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데려갔던 타임스퀘어 키즈앤키즈(Keys and Keys)에서는, 개장시간에 들어가서 끝나기 30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9개 직업 영역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곳의 체험은 훨씬 여유로우면서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더 많은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의 체험 활동을 리드해 주시는 선생님뿐만 아니라 체험 영역 곳곳에 새싹도우미들이 배치되어 있어 나같이 어리버리한 시각장애 엄마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체험을 할 수 있었던 점도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익적인 공공기관이다 보니 더 많은 서울시의 유아들에게 기회를 나누어 주기 위해 한 번 체험 프로그램을 다녀가고 나면 90일 이내에는 다시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도 이러한 유아교육진흥원들이 있다고 하니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참고하여 방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아인이의 특성과 우리의 특성을 고려하여 신체영역과 사회영역을 골라 체험했다. 사실,가장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은 요리와 목공이었는데, 요리야 나랑 집에서 거의 생활처럼 하고 있고, 목공은 남자 아이라 체험해 주고 싶었지만, 우리의 시각적 제한성 때문에 아이와 함께 해 보기가 아직은 조심스러워 아쉽지만 아인이가 좋아하는 것들과 우리가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의 교집합을 뽑아 이런 선택하게 되었다.
신체영역에서는 작은 도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교통 정리를 하거나 교통 질서를 지키며 자동차나 바이크를 운행해 볼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작은 집을 꾸며 놓고 그 곳에서 침대 정리를 해 보거나 요리를 해 보는 등의 가사에 연관된 활동을 해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또한, 미니축구와 농구를 해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평소 공 차기를 매우 좋아하는 아인이는 농구는 안 하고 축구를 선택해서 아빠랑 미니 게임을 했다. 평소 숫자와 수 개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아이 특성 때문인지 골 득점에 따라 점수판을 바꾸어 표기할 수 있는 것에 아인이는 무척 성취감을 느끼며 좋아했다.
병원과 신생아실을 시뮬레이션해 놓은 공간도 있었는데,이 곳에서 아이들은 작고 여린 아기를 돌보기 위해 근육의 힘을 조절하여 조심조심 아기들을 안아 주고 목욕 시키는 등의 활동을 해 볼 수 있다. 특히 이채로웠던 것은, 이 곳에 인큐베이터 모형까지 있었던 것인데, 덕분에 그 기회를 잘 살려 아인이에게 내 장애 원인에 대해 실감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인공 잔디로 꾸며진 미니골프존과 바이크를 탈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사회 영역으로 넘어오자 내 맘을 설레게 하는 녀석이 등장했으니 그건 바로 실제 비행기를 유아들의 눈높이에 맞게 축소해 놓은 비행기였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조종사 체험을 해 볼 수도 있고, 승무원 복장을 착용하고 모형 기내 카트에 모형 기내식까지 실어서 서빙해 볼 수도 있었다. 아직 비행기를 직접 타 본 적이 없는 아인이이지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할 동기 부여는 확실히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영어로 나는 배고파요, 아파요, 이거 얼마에요 같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얘기를 아인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엄마가 비행기 타고 외국에 데려가 주겠다고 작년부터 이야기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본 아이들에 비하면 거의 방치 수준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인이지만, 유일하게 이 조건 하나를 걸고 나랑 하루 10분 하는 엄마표 영어만 하고 있는 중인데, 그나마 진짜 토마스 기차를 보러 영국에 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 디즈니랜드에 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감언이설(?)에 놀기 좋아하는 아인이가 10 분 정도는 따라와 주고 있는 실정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건 어쩌면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저 모형 비행기를 보고는 엄마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여권 발급과 공항 검색대 통과를 빼먹고 다짜고짜 비행기 먼저 체험한 후에 거꾸로 비행기 티켓 발권과 여권 발급, 공항 검색대 통과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아! 결혼 전에는 툭하면 에어텔만티케팅해서 눈도 나쁜 내가 혼자서 휭하니 여기 저기 잘도 돌아다녔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국내 여행조차 혼자 한 적이 최근 5년 내에 한 번도 없으니… 엄마의 자리는 이다지도 무겁고도 힘든 자리인가?
매우 액티브하면서도 예쁜 것도 좋아하고, 요리놀이나 마트놀이 같은 역할놀이도 매우 좋아할 만큼의 의외의 여성성도 가지고 있는 아인이는 미용실 체험을 하면서 열 손가락에 그야말로 현란한 색깔들을 골라 알록달록 매니큐어를 발랐다. 물론, 내가 발라줄 수는 없었기에 선생님께서 발라 주셨다. 심지어는 어른들 네일샵과 똑같이 매니큐어 바르고 나서 말리는 기계도 있었다. 전공 특성상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기는커녕 반지조차도 끼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잘 꾸며진 네일샵을 보니 나도 손톱을 예쁘게 꾸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사용되는 매니큐어는 당연히 어린이용 매니큐어라 아이들에게 무해하다고 한다.
직업 체험의 꽃, 적어도 남자아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그러한 소방관 체험 공간도 있었다. 역시나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걸 아시기에 이 체험 때에는 별도의 포토타임도 주셨다.
다음은 여자 아이들의 체험의 꽃인 쿠키 만들기! 집에서 나와 종종 하기 때문인지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다소 시크한 반응을 보였던 곳이지만, 그래도 워낙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여 그 바쁜 아침에 같이 주먹밥을 만들어 먹고 가자고 할 정도이니 그래도 열심히 참여했다.
이 밖에도 우체국 체험, 집짓기 체험 등을 해 볼 수 있었다. 뉴스앵커 체험 부스도 있었지만,시간이 부족해져서 아쉽게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열심히 체험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진흥원 앞 야외 공간에 아이들이 깜빡 넘어가는 기차가 있었다.
토마스 캐릭터 중의 제임스였는데, 토마스를 특히 좋아하는 아인이로서는 엄청나게 신나는 일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기차를 좋아하지만, 이 기차가 특히 매력적이었던 점은, 제법 빠른 속도로 그것도 야외를 달린다는 것이었다. 사직 공원 내에 진흥원이 자리하고 있다 보니 진흥원 외부 전경도 매우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시냇물도 있고, 아인이가 좋아하는 공룡 모형도 있고, 자연 친화적으로 꾸며져 있어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멋지고 예쁜 공간이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감안할 때, 부모들은 물론이려니와 아이들도 매우 만족하는 공간이었다. 아인이도 90 일을 기다려야 한다며 아쉬워하면서도, 어서 빨리 8월이 되어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다녀와서 남편이와 이야기를 했었지만, 정말이지 이번 체험은 남편이가 진흥원 사이트를 몇 번이고 들락거리면서 신경을 많이 써 가며 예약을 했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했던, 110% 만족스러웠던 곳이었다는 데에 서로 격하게 공감했다.
만 3에서 5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꼭 한 번 가보시라고 적극 추천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특히, 이번 방문을 통해 내 나름으로 생각한 점이 하나 있는데, 장애 부모의 경우 부모의 장애 특성상 휠체어를 사용하여 이동에 제한성이 있다던지, 보이지 않아 단독으로는 아이를 핸들링하며 체험을 함께 하기가 불편하다든지 등등의 여러 가지 제한성 때문에 자유로이 아이와 키즈카페나 직업체험 테마파크 등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진흥원 평일 기관 대상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장애 부모들의 육아를 돕는 사업을 하는 장애인 복지관 등이 사전 예약해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몸에 벤 본능적인 모니터링 결과, 2009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기본적으로 편의증진법을 잘 따르고있고, 유모차 등등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으로 보아 휠체어 사용에 무리가 없어 보이는 공간이며, 새싹도우미들이 잘 배치되어 있어 시각/청각 등의 감각장애 부모들에게도 체험 중 불편한 부분이 생길 경우 잘 대처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된다. 이런 이유로 다녀오고 나서 주변의 시각장애 부모들에게 열심히 홍보 중인데, 다들 너무 좋을 것같다며 꼭 가보겠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공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데, 그나마 진흥원 예산도 8억이 삭감되어 물밖에 못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진흥원장님을 통해 들은지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교육은 백 년을 준비하는 일이라고들 말하는데, 이런 맥락에서라도 좀 더 많은 지원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좋은 교육,좋은 체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