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디스커버리
피터 매시니스지음
이 책에는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호기심, 지적 갈망이 이루어낸 100가지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방사능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원자가 나눠질 때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점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식물에서 생물학적 활성을 갖는 화학물질을 추출하는 방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우주에서도 비행하는 방법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전기를 만드는 방법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등 평소 궁금했던 과학적 상식들로 과학의 발전사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하고 기억해야할 것들이다.
이는 공학, 의학, 탐험, 기원전 농경의 발전부터 중력에 대한 설명, 빛의 속도를 측적하는 망원경의 발명, 그리고 생명체 유전자의 발견과 조작에 이르기까지 지난 1만 연간 인간이 이룩한 역사를 바꾼 발명들이다. 게다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은 알기 힘든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인내,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함께 덧붙여져서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매시니스(Peter Machining)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과학 전문 작가로 과학사나 공학사에 대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의 유래를 과학 기술 발전사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알려주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그의 저서는 이미 국내에서도 꽤 많이 소개되어 있을 만큼 그는 과학 분야를 집중적으로 집필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위대한 발견과 발명 중 이 100가지를 엄선하는데 많은 고심을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과학적 식견으로 선정된 100가지 발견을 읽다 보면 그의 선택에 금방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했지만 그가 후보로 생각했던 다른 과학적 발견과 발명들을 책의 부록에서 목록을 살펴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난롯가에 앉았다가 주전자 뚜껑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영감을 받아 증기 기관을 발명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발명은 토머스 세이버리(Tomas Savery)보다 80년가량이나 늦은 것이었다. 또한 콜럼버스가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당시에는 그가 말하기 이전에도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워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또한 피타고라스가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니다. 이 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이럴 것이라고 어렴풋이 저장되어 있는 과학적 고정관념도 이 책을 통해 깰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읽다보면 몇 가지 일관적인 주제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난로와 창고, 동네 인근 논밭과 같은 일할 곳이었고, 두 번째로는 음식, 유리, 금속, 도자기와 같은 물질이며, 세 번째로는 용해, 문자, 농업, 측량, 공학과 같은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네 번째로는 힘과 에너지, 상호의존 같은 갖가지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합한 것이 의사소통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습득한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과학자가 모든 것을 측정하기 위해 익힌 방법을 눈여겨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경험 법칙으로 발전했고 훗날 하나의 원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측정과 통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측정과 통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과학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사에서 발견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과학은 새로운 발견으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발전해왔고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발견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에도 자극제가 되거나 또 다른 발견의 실마리가 되어주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아놀드 토인비는 말했다. 이 책을 통해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왔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분명 우리의 미래 모습을 조망해보는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
대부분의 사람들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훨씬 현명한 행동을 했다. 진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낸 것이다. 그는 자연 선택으로 진화론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진화론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자연 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자세한 증거를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로써 생물학 지식은 더욱 발전했다. 자연발생론은 폐기되었고 과학자들은 세포가 이전에 존재하는 세포에서만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1859년에 종이 진화한다는 개념은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실질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종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종이 바뀌었음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알고 있었다. 1680년 에드워드 타이슨(Edward Tyson)은 돌고래를 해부하여 돌고래가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임을 증명했다. 이후 죽은 침팬지 새끼를 해부했고 인간이 다른 동물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설명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이동시켰다면 타이슨은 호모사피엔스를 창조의 중심에서 이동시켰다. 이것은 인간과 열등한 생물 전체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였고 어류 형태의 돌고래를 바탕으로 하여 환경이 생김새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은 몸의 어떤 부위를 쓰거나 쓰지 않아서 사람들이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는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근육이 탄탄한 대장장이는 튼튼한 자녀를 낳는 경우가 많았고 이래즈머스는 운동으로 얻은 근육이 어떤 식으로든 후손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대장장이가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직업을 택했고 탄탄한 근육을 만든 유전자를 자녀에게 전한다고 여긴다. (p.337~338)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는 동킨스 힐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다. 이 지명은 브라이언 동킨(Bryan Donkin)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그가 존 홀(John Hall)과 함께 영국에서 고기 통조림을 만들어 먹은 동킨의 고기 통조림을 기념하는 명칭이다. 고기 통조림은 당시에도 신기한 물건이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서 보존 식품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음식을 보존하고 저장할 수 없었을 때에는 음식을 찾아 이동하며 유목 생활을 해야 했다. 사람들이 한 곳에 살았다면 식량을 저장하고 식량의 부패를 막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유목민들도 뭉근한 불에 고기를 훈제하거나 햇빛에 말려 육포로 만들었고 생선도 말리거나 훈제하는 조리법을 이용했다. 세균의 존재가 알려지기 오래전에도 염장은 고기에서 세균 증식을 막는 실용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은 등장인물인 노아와 마가 어떻게 고기를 염장했는지 잘 묘사하고 있다. 노아가 고기 덩어리를 작게 자르자, 마는 작은 자른 고기를 통에 넣으면서 서로 닿지 않도록 사이사이에 소금을 뿌리고 빈 공간에 소금을 채워 넣었다. 이런 방법으로 저장한 고기는 소금으로 인해 부패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p.27~28)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특정 식물이 특정 질병을 치료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많은 약은 전통적으로 농경 초기부터 텃밭에서 나왔다. 대부분이 유독한 허브는 텃밭에서 재배됐고 그 소량이 약으로 이용됐다. 좀 더 공식적인 약초 사용은 아마도 퀴닌(quinine)이 말라리아 병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발견과 함께 시작됐을 것이다. 사실 유럽인들은 1638년경 기나피(cinchona bark)가 이런 작용을 한다는 점을 발견했지만 훨씬 나중인 1820년에야 기나피에서 퀴닌을 추출했다. 이 일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퀴닌 덕분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살아남기는 더 쉬워졌지만 느린 진화적 변화 덕분에 대부분 말라리아에 저항력이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으니 말이다. 학자인 앨퀸(Alcuin)은 8세기 프랑스 통치자이자 제자였던 샤를마뉴(Charlemagne)에게 허브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제대로 교육 받은 왕은 의사의 친구이자 요리사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코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기원전 400년부터 버드나무 잎을 씹으면 두통이 완화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버드나무 잎에 있는 화학성분을 합성하고 개량한 형태를 이용하며, 그것을 아스피린이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 연구원들은 그 밖에도 아스피린을 섭취해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효과를 수없이 발견했다. 심지어 아주 친숙한 약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p.69~70)
앙리 베크렐의 방사능 발견은 독일에 대한 프랑스인의 반감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빌헬름 뢴트겐은 음극선뿐 아니라 관련된 엑스레이 역시 형광을 일으키며 한 파장의 방사선을 받고 다른 파장에서 빛을 발한다. 베크렐 가문은 언제나 광물의 형광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1890년대 중반 영국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다섯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적대감이 가장 심했다. 독일이 놀라운 새 방사선을 차지하면 프랑스는 그만의 방사선을 요구했고 베크렐은 형광염, 즉 우라늄 황산칼륨에 비친 햇빛이 새로운 방사선을 발산하리라 생각했다. 뢴트겐은 음극선이 엑스레이로 바뀌는 것처럼 보이듯이 광선이 엑스레이처럼 관통하는 선으로 전환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햇빛을 막을 만큼 충분히 두꺼운 검은 종이로 감광판을 쌌다. 그 다음 검은 종이로 싼 감광판에 우라늄염 한 조각을 올리고는 햇빛 속에 두었다. 감광판을 현상한 그는 그 위에서 염의 영상을 발견했다. 이 일은 햇빛이 형광염으로 하여금 투과성 방사선을 발생시키도록 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또한 뢴트겐선처럼 동전과 금속 물체가 방사선을 차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안 좋은 날씨 덕분에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다. 2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구름이 꼈기 때문에 그는 서랍에 감광판과 광석을 치워두었다. 해가 계속 나오지 않자 그는 3월 1일에 감광판을 현상하면서 결정이 햇빛을 많이 쏘이지 못했기 때문에 의미한 영상이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대단히 선명한 영상을 보았다. 다른 이들은 이 경우 실수라고 생각했겠지만 베크렐은 이를 통해 기회를 보았다. 그는 즉시 어둠 속에서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실에서 그 실험을 반복했고 비슷한 영상을 얻었으며 결과를 발표했다. (p.158~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