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이 막바지로 치닫던1972년 4월, 월남지형과 유사한 강원도 오음리에서 훈련을 마치고 춘천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부산항 제3부두에도착, 만21세의 나이로 미국무성에서 파견한 군함을 타고 전우들과 함께 입에 맞지않는 양식을 먹으며 원형 차창밖의 갈매기를 벗삼고 1주 여만에 베트남 중남부 퀴논항에 도착하였다, (훗날 30여년만에 퀴논에 있는 기술학교 파견근무,)
함께 훈련받은 1진 맹호병력을 퀴논에 내려놓고 기술병과였던 나는 다시 십자성부대로 알려진 100군수 지원사령부가 있는, 현지에서는 나짱 이라고 부르는 나트랑(Na Trang)의 3통신지원중대에 배속되어 근무가 시작되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포성을 자장가 처럼 들으며 몇달간 어둠속에 보초근무와 작전용 차량을 담당 하던 중 현재의 호치민시, 당시 자유월남 수도 사이공(Saigon)에 전속,주월사령부 공지단 파견 탄손누트 공항안내병으로 근무하다가 73년 3월 휴전으로 귀국하였다, 당시 호랑이 별명의 이세호 사령관 께서 "우리는 명예로운 임무 완수를하고 귀국" 을 강조" 하시고 완전군장으로 다낭에 주둔하여 용맹을 떨친 청룡부대의 100명을 남기고 특과병으로는 73년3월 15일 최후로 수원 공군기지에 민간항공기 DC8기를 타고 철수한 기억이난다,
그후 오래지않아 자유월남은 부패, 자유수호의지가 약한 틈을타 적색분자들의 선동과 사상혼란으로 패망하였고, 제대하여 국가 시책으로 기능인력양성을 위한 공공직훈 교사로 근무중 99년3월 희미하게 잊혀졌던 월남(베트남)땅, 그것도 처음 군인으로 도착했던 맹호 주준지 퀴논 앞바다 야자수 숲속의 기술학교에 전문가로 파견 근무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정서도 비슷하고 인정이 넘치는 그곳 사람들...
북부 하노이 공대 전기공학부 출신 미모의 후옹 여교장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과거 상흔은 잊고 무상으로 300만불상당의 국산장비, 인력을 지원하는 기술학교 개선사업으로 양국간의 관계개선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수도 하노이에도 동시 지원) 그후 그곳 교사들이 직종별로 한국의 초청연수 프로그램으로 국제 HRD센터에 연수도 다녀가고 2011년에는 개교 기념식에 교장으로부터 초청받아 퀴논 학교를 다녀왔다,
연수 기계교사 Mr, Ngo Xuan Thuy, 현재 퀴논 기술학교장이 된 친구로 올해 2013년 3월부터 수도 하노이 기술학교 파견 근무중인 나의 소식을 듣고 하노이까지 와서 감격적 해후를 하였다, 베트남 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얻은것은 "부패하고 혼란해지면 지구상에서 사라진 자유월남처럼 나라가 망한다는 타산지석의 교훈" 과 한편으론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오직 국익만이 있을뿐" 임을 다시한번 깨닱게 되었다,
옛 맹호 주둔지 퀴논 ! 갑판위에서 하선하는 맹호용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본인은 나트랑으로) 무운을 빌던 72년도 봄 ~여름 그날 !
학교 뒷쪽 먼 산.. 용맹을 떨치던 아직도 맹호용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
참전자로서 27년만에 3개월간의 기술지원을 위한 극과 극의 국제사회의 현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