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도터에서 명상하던 가을 단상들 - 오산 사성암 정상 비박기행1 (신두류록 5)
일 시 : 2012년 10월 19일(금) ~ 21일(일)
장 소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산4
장성 백암산 오토캠핑을 다녀온 이후로 일주일만에 바로 행장을 꾸린다.
이번의 행선지는 사성암으로 유명한 구례의 오산에서 2박하는 일정으로 짜 보았다.
우리나라의 고승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셨던 6분의 선사들이 수도하고 오도하였던 최고의 승지에 있는 오산 사성암四聖庵!
원효와 의상대사 그리고 도선과 진각국사, 청화대종사와 연기조사의 숨결과 향기가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사성암이기 때문이다.
과연 오산에서 2박3일을 보내고나니 과거 선사들이 이곳에서 굳이 수행을 하려고 했던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산세와 천세天勢가 이렇듯 오묘한 곳이 또 있으랴.
낮으면서도 지리산의 능선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일등 품격을 갖춘 곳 오산鰲山!
그렇게 이번 비망록은 오산에 대한 예찬으로 엮어 나가련다.
오산과 매봉사이에서의 달콤한 하룻밤 비박은 나름대로 보람이 컸다고 자평해 보면서 서두를 연다.
어머니의 젖줄 같다는 유두乳頭 자리에서의 숙영이라 그랬는지 전혀 잠을 설치지 않고 포근하게 잠들 수 있었으니,
과연 도선국사께서 이곳에 이르러 땅의 기운을 사랑하며 깊은 수도를 하려했던 연유를 절로 깨닫는 듯 하다.
지세가 좋아 생각이 절로 풀리는 듯...... 명상이 잘되는 터였기에 좋은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드는 숙영이었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두고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백패킹을 시도했던 올해의 운수행각은 참으로 현실적이었으며, 보람찬 일정들로 채워져 가고 있는 듯 하다.
생각보다 완행버스와 직행버스 노선은 운행길이 편안하였기 때문에, 왜 이런 좋은 방법을 여태 잊고 살아 왔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없이 기다리기만 하며 연착을 용서해야 했던 완행버스에 대한 추억들......이 많았기 때문이어서일까.
아니면 그 추억 속에서 만원버스의 답답함에 대한 악몽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몇십년 동안 전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이번의 새로운 여행 방식은 참으로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워의 답답함과 장거리의 피곤함을 일시에 해소시켜 주는 좋은 여행방법이라는 생각이 또한 자리를 굳혀가는 요즘이다.
광주의 문화동 시외버스정류장에서 구례까지의 버스길은 섬진강을 감고서 아늑하고 감미롭게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자가용이 늘어나서 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의 승객들이 그만큼 줄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시도했던 이번 여정 동안 버스의 탑승인원이 삼분지 일도 채워지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으니 얼마나 여유가 있었겠는가.
굳이 비싼 기름 때가며 운전하는 피곤함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비결(?)을 이번에 터득한 셈이다.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핸들을 자꾸만 놓고 싶어하는 중에 발견한 커다란 소득이었다면 소득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쩐지 좀 씁쓸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이랴.
- 오산의 선바위전망대에서 숙영하며 맞이했던 섬진강의 야경 -
- 구례버스터미널은 깨끗하였고 한산했다 -
- 점심을 구례터미널 내 식당에서 순두부백반으로 해결하였는데, 노부부가 차린 음식이 맛갈스러웠다 -
- 문척 방면 버스를 기다렸다 -
구례의 오산 사성암은 오래 전부터 자주 다니던 코스였으나 이곳에서 비박을 결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불교의 내로라 하는 귀한 선사들께서 수도를 하며 오도의 경지에 든 사례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빼어난 승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찾아든 곳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순두류의 지맥인 지리능선에서 마지막으로 뭉쳤던 백두대간의 기운이 백운산 라인으로 그 지맥을 넘기는 그 중간 경유지에 바로 오산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리능선의 맥이 흐르고 흘러 무등산으로 백두대간의 기운을 넘겨준다고 한다면,
잠룡의 지맥을 타고서 섬진강을 건너 오산에서 한숨을 고르다가 백운산으로 넘겨주는 지맥의 기운 또한 수승한 곳이 바로 오산인 것이다.
풍수에서는 잠룡潛龍이라는 말이 종종 거론되기도 한다.
능선이 물을 만나면 그 기맥이 잠수하듯이 물밑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용솟음치는 용틀임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풍수에서는 흘러가는 순수 지맥과 함께 이를 차단하는 수계水界 또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법이다.
다시 말해서 백두대간이 물을 만났다고 해서 그 흐름의 맥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 땅밑으로 잠수했다가 다시 솟구칠 방향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자라를 닮은 형국이라는 오산에서도 사성암은 백운산 지맥을 바라보는 남향으로 위치해 있어서 그 수승한 기운이 힘차게 뭉치는 양택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금상첨화로 금자라가 유장한 섬진강을 만났으니 얼마나 갈증이 풀리겠으며 행동 또한 얼마나 자유로워지겠는가.
그런 수승한 터에 오늘 올라가 숙영하겠다는 마음만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과연 그 터에서 숙박하는 동안 어떤 꿈나라가 필자의 품안에서 파노라마를 펼쳐줄 것인가.
자못 설레는 기분으로 오산을 바라본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파라슈터가 하늘에서 한마리 익룡처럼 선회하는 모습이 보인다.
맑은 가을날씨에 당찬 풍경을 바라보면서 구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드는 하오가 된다.
삼대삼미의 고장이라는 구례!
구례는 예로부터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땅’이라 하여 삼대삼미(三大三美)의 고장이라 불려 왔다.
삼대는 지리산, 섬진강, 구례들판, 삼미는 수려한 경관,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을 말한단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봄철의 논에 볍씨 한 말을 뿌려 가을에 예순 말을 수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소출이 많았던 고장이기에 인심이 후했고,
인심 후한 풍속은 아름다운 경관에 편승하여 더욱 입소문을 냈기 때문에 예로부터 구례를 명승지로 칭송하게 된 것이리라.
거기에 더해 남쪽의 따뜻한 기운이 함께하면서 봄철의 매화 소식 또한 빨리 맺히는 곳이니...... 과연 복받은 땅임에 틀림 없다.
그런 수승한 기운이 뭉친 대단한 양택지라는 오산 사성암을 오늘 오르게 되었다.
이번 여정은 가능하면 둥주리봉의 비박으로 마감을 하던지,
최대의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나름 간택했던 오산 정상과 선바위전망대에서 각각 일박을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떠나 왔던 것이다.
- 오산 사성암은 길이 불편해서 이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마을버스를 이용해야만 한다 -
- 오산활공장에서 날아오른 행글라이더가 가을빛에 더욱 청명하다 -
- 사찰에서 운영하는 마을버스 -
사성암은 해발 500여미터에 자리한 수도터이다.
예전에는 그냥 승용차로도 오르내릴만큼 인적이 한산하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널리 알려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계로 사찰에서는 마을버스를 운용하며 일반 차량의 출입을 금지하게 되었다.
왕복 3,400원에 편도 1,700원을 받는 마을버스에 올라 박배낭을 옆에 고이 모셔 둔다.
출발하기 전에 인원수를 확인하러 올라온 매표원과 운전수 간에 미묘한 기류가 흘러 의아했다.
따지고 본즉, 기사는 탑승인원이 14명이라 하고
매표원은 13명이라 하는 혼선이 생겨 잠시 출발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저 배낭도 사람이여?'
매표원의 지적에 탑승객들이 까르르 웃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옆좌석에 모셔두었던 배낭을 보고서 운전기사는 사람의 머리로 착각하며 산술하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박배낭이 사람몫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나의 박배낭!
2박3일의 여정에 숙소와 부엌과 서재를 제공해 주는 보급물류창고!
필자는 이후로 박배낭에 인격을 부여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내 생명을 담보하고 있으니...... 그만한 예우는 해 드려야 마땅하리라.
잘 부탁해! 미스터 박배낭!
- 이번 비박에 동행하여 각종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던 소중한 나의 벗 Mr. Sierra! -
- 사성암을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
- 사성암 아래 주차장 시설지구 -
- 그곳의 커피샵 -
- 항상 '처음처럼'만 마음먹고 산다면 어떤 마魔가 끼일 수 있을까 보냐 -
시심마(是甚摩)
1, 시심마(是甚摩)
'이뭣고'에는 의정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정疑情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스스로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의정이 없는 '이뭣고'는 화두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의 관법(觀法)입니다.
관법을 닦는 사람들은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고 있으라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관법은 처음이나 중간이나 항상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가 따로 있다고 설정하여 수행하므로 그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의심을 말하여 주체나 객체를 설정하지 아니하고 생각 속에 어떠한 가설도 짓지 않고 윈인을 생각해 본다면
마침내 스스로의 생각의 한계를 타파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회광반조는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뜻으로 돌이켜서 비추어 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 내외가 없는 데서 내관(內觀)을 찾고 외관(外觀)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회광반조가 밖을 향하거나 안을 향하는 것이라고 또한 할 수가 있습니까?
무릇 <이뭣고>라면 주관과 객관을 떠나 있어야 이뭣꼬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확실성과 불확실성
누구나 남의 글과 말을 듣고 곧 그들의 잘못을 압니다. 어디가 틀렸으며 어떤 상태로구나 하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을 알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도무지 자기의 허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고쳐지고 깨어지면 저절로 끝을 이루겠건만 자기의 견해의 잘못된 곳을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큰 병입니다.
내가 확실한 곳에 앉아 있으면 남의 허물만 보이고 교만해져 나의 법은 불확실해지기만 하고
내가 불확실한 곳에 앉아 있으면 모두가 배울 바요 새로운 것이어서 자꾸 자꾸 나의 법은 확실해 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생각의 그림자를 쫓는 사람들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하고 자신이 믿고 자신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불확실한 근거에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런 꿈을 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 말을 들어 볼 필요도 별로 없고 내가 생각하는대로 꿈꾸고 내가 그린 그림에 내가 휩쓸려서 그 그림의 노예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태어나서 부모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자라서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책을 읽으면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친구가 장에 가면 거름지고 장에 가는 일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무슨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도둑이 내 마음에 들어와 주인이 되어도 우리 아버지인 줄 알고 따라 가는 꼴이 되었읍니다.
우리는 마음 속의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원인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출처가 내가 아니라 다른 것 때문인 것을 나로 인하여 그러했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관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윤회 (輪廻)
윤회는 돌고 또 돌아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육도 윤회, 생사 윤전, 윤회의 수레바퀴 등으로 쓰고 있지요.
얼핏 생각하면 무언가가 있어서 가만히 있다가 모든 것을 담아서 다른 생으로 나른다고 생각할 소지가 많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정해서 변치 않는 나(我)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하는 상식으로의 윤회는 참 모순스럽습니다.
담을 그릇도 없는데 인과가 분명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학자들이 수천년을 두고 논쟁해오던 사실이며
지금도 또한 아무도 정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적당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생각하고 적당히 믿고, 또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깨닫기만 하면 알 거라고 미루어 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큰 오해없이 윤회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속단을 내리지 않고 윤회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잘못된 윤회를 알아서 판단착오를 일으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우리 생각의 기준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언제나 하나의 윤회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선가에서 윤회를 부정한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한번 말해 본다면 윤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윤회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윤회를 부정한다는 것은 <윤회가 이러한 것>이라고 말할 그러한 윤회가 정확하게 한가지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도 됩니다.
말하자면 윤회의 모양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윤회의 모양을 찾아서 이론화하고 정형화하여 모델을 만드는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인터넷 上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정해서 변치 않는 나(我)란 없다>고 하셨으니 '이 뭣고'의 답 또한 이미 파악이 되리라 싶다.
삼라만상이 유정有情의 씨앗을 잉태하고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윤회로 진화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윤회 또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그러므로 시심마是甚摩는 대단한 명제라 아니할 수 없다.
너가 나의 인연사이클에 공명하면서 파장을 증폭하여 서로 끌리게 해 주는데...... 과연 이게 무슨 현상인고?
어찌하여 희로애락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우주 에네르기의 일부분인 기운을 형성하며 맴도는고?
보이지 않는 바람이 열기熱氣를 잠재우기도 하고 더 키우기도 해대니 이 기이한 조화를 무엇이라 정의할 것인고?
유정有情 가운데 무정無情을 지목하는 것 또한 지독히도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고, 살고, 간다는 것' 자체가 유정이자 무정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한 물건도 없다 한다면 무정이요,
삼라만상이 두 눈에 보이는데 어찌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고 우긴다면 유정이다.
따지고 보면 유정이나 무정 또한 없다 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고?
'도둑이 내 마음에 들어와 주인이 되어도 우리 아버지인 줄 알고 따라 가는 꼴이 되었읍니다.'
이 말 또한 필자에게 와 닿는 파장이 크다.
젊어서 문학청년의 꿈을 키울 때에 필자는 보들레르와 이상과 시인 고은의 사상을 한없이 존경하면서 따르고 있었다.
특히 현존하는 작가로서 시인 고은이 주는 파장은 그당시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남다르게 다가 왔었다.
어린 나그네가 주었던 구도행각(화엄경을 소설로 쓴 작품)과 많은 시어詩語들은 유신독재가 진리인양 행세하는 당시 사회에서
돌파구를 열어주면서 목마름에 대한 갈증해소의 구실을 하기에 한 점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던 1978년의 겨울에 필자는 외국에서 일 년을 머물러야 하는 숙명에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 화곡동에 있는 시인 고은 선생의 집을 친구 두 명과 함께 갑자기 방문한 적이 있었다.
화곡동 골목길의 그 집은 대문과 현관이 모두 열려 있어서 그대로 현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스승님! 급습하였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손님 한 분과 담론을 나누시던 스승께서는 매우 놀라는 양으로 그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대번에 옆에 있던 북채 닮은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급습이 뭐야! 도대체 급습이 뭐야!"하시던 스승의 대로大怒 속에는
철없는 젊은이에 대한 막막함과 함께 어떤 두려움도 어렴풋하게 교차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삶과 죽음의 화두가 촌각에 달려있다는 법거량法擧揚의 순간과 함께, 시세時勢를 마주했던 불판단도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필자는 목례만 하고는 두 말 없이 다시 나와 버렸고, 친구들도 바로 화곡동을 떠나왔던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태어나서 부모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자라서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책을 읽으면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친구가 장에 가면 거름지고 장에 가는 일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무슨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도둑이 내 마음에 들어와 주인이 되어도 우리 아버지인 줄 알고 따라 가는 꼴이 되었읍니다."라는 말이 된다는 경고를 말하고자 함인 것이다.
오죽하면 시인 고은이 일 년에 소주 천 병씩은 마신다는 자평의 글을 읽고서는 그대로 따라하기까지 했겠는가.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 년에 소주 천 병 마시기가 유행하기도 했으니,
'달을 보라고 가리키니, 달은 안 보고 가리키는 손만 바라다 본다.'는 우행을 우리가 저질렀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니 도둑이 들어와서 내마음의 주인이 된 격 아니겠는가.
이런 예제를 들어 가면서 대스승이셨던 고은 선생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진짜 공부를 하려는 이들이라면 제 마음에 도둑을 들이지 말고 참주인인 나를 바로 모셔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임을 절대로 알아야 한다.
필자는 그당시에 어느 곳에도 스승을 모셔두지 않는 건방진 객기를 부리고 있었으나, 고은 선생의 가르침만큼은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며 선생을 사숙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체성이 불확실하게 이런 저런 진리를 섭렵하다 보면,
'물을 마신 독사가 독극물을 침샘에 고이게 하듯이 스스로 오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를 조심할 일이라고 다시금 강조해 본다.
시심마(是甚摩)의 참주인을 바로 알고 모실 줄 알아야만,
'마치 산삼뿌리가 물을 흡수하여 최고의 명약을 만들어 내듯이 자신만의 참 자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는 요지의 말을 하고자 함인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그리운 생각이 드는 대스승의 건강을 빌어 본다.
너무 리얼하고 강하게 살아 오신 스승이기에 많이 쇠약하셨을 사대육신을 요즘은 어찌 감당하시는지 우선 걱정이 앞서기만 하는 것이다.
어쩼든 어려운 명상 줄기 하나 진짜 산삼처럼 캐어 들었으니, 오늘은 오산 정상에서 법리法理를 초청하여 논죄를 해 보리라.
그가 죄인 아니면 내가 죄인 아니겠느냐는 비장한 각오로 한번 맞붙어 보리라.
오산 사성암四聖庵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구례읍에서 약 2km 남쪽인 죽마리 오산(鰲山)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544년(성왕 22)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 사적(四聖庵史蹟)》에 4명의 고승, 즉 원효(元曉)·도선국사(道詵國師)·진각(眞覺)·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오산은 해발 530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경승지이다.
《봉성지(鳳城誌)》에 이르기를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옛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하였다.
암자 뒤편으로 돌아서면 우뚝 솟은 절벽이 전개되는데, 풍월대·망풍대·신선대 등 12비경으로 절경이 뛰어나다.
또한 송광사 제6세인 원감국사(圓鑑國師) 문집에도 오산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오산 정상에서 참선을 행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진각 양 국사가 연좌수도(宴坐修道)했던 곳”이라 하였다.
어쨌든 이와 같은 기록들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이래 고려까지 고승들의 참선을 위한 수도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찰은 조그마한 소규모의 목조 기와집이며, 암자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마애여래입상의 연대가 고려 초기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사성암의 창건 내력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 사성암 | 두산백과
- 오산과 솔봉, 둥주리봉이 어울려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
(사성암 위 오산 정상과 선바위에서 각각 일박을 하였다)
- 주차장에서 백여미터만 오르면 바로 사성암에 이른다 -
- 사성암 아래에는 오산활공장이 잘 다듬어져 있다 -
- 조금은 생경한 여러 수칙들 -
- 구례읍이 파노라마처럼 펼져지는 곳이다 -
- 유리광전의 기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
유리광전(瑠璃光殿), 약사전(藥師殿), 약광전(藥光殿)
동방 유리광정토의 교주이신 약사여래부처님(약 그릇을 들고 계심)을 모신 전각이다.
약사여래(藥師如來)는 동방 유리광세계(東方 瑠璃光世界)를 관장하며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 하는 등 12가지 큰 소원을 세워
중생의 질병이나 고난을 구제하려는 부처이다.
그래서 왼손에는 약 항아리를 들고 있는 상으로 표현하나 약 항아리를 가지지 않을 때에는 명문이 없으면 약사여래인지를 분명히 가리기가 어렵다.
이 여래를 모시는 전각을 약사전(藥師殿), 약광전(藥光殿) 또는 유리광전(瑠璃光殿)이라 한다.
약사여래부처님은 모슨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며 재앙으로부터 구해주고 나아가 무상보리를 얻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다.
「약사경」에 의하면 약사여래는 약왕보살로 수행할 때 12가지 대원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병 뿐 만 아니라
의식주 등 모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 주고 결국 깨달음을 얻게 도와주신다.
약사여래의 협시보살로는 일광보살(해를 보관에 얹음, 삼족오), 월광보살(달을 보관에 얹음, 토끼)이 있다.
출처 : 인터넷 上
유리광전瑠璃光殿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
금강산 보덕암의 달밤, 67cmx110cm, 조선화, 황학
금강산 보덕암
구례 오산에 올라가 사성암을 살펴본 이들은 유리광전이 금강산 만폭동 계곡의 보덕암과 비슷한 이미지를 풍긴다고 말하기도 한다.
유리광전의 건축 기법이 표훈사의 대표 암자인 보덕암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보덕암은 고구려 때 보덕화상이 창건한 암자로 알려져 있는데 아래에서 보면 3층 기와집이요 위에서 보면 단층누각으로 보이는데
이 누각을 받치고 있는 길이 7.3m 구리 기둥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개방된 내금강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자면 절묘한 힘의 균형을 이용해서 누각을 지탱시켜온 조선의 건축술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고 한다.
출처 : 인터넷 上
- 유리광전의 마애불은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바위에 새긴 거라는 속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
- 절벽에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진 부위를 근래에 유리광전을 지어 보존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
구례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 求禮四聖庵磨崖如來立像 ]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사성암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성암에서 약간 내려와 50m 정도 남쪽으로 돌면 높이 20m가 넘는 벼랑의 암벽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안쪽면에 서 있는 부처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이 마애여래입상이다.
전체높이는 390Cm로, 주형거신광배에 두광이 있으며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의 모양은 원만하며 눈과 양미간, 코, 입 등은 선각으로 간략히 나타냈으나, 그 기법은 옛 전통을 따랐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잡고 왼손은 손가락을 벌려 가슴 앞에 대고 있는데, 아미타수인으로 보인다.
법의(法衣)는 통견으로, 전체적으로 파상문을 이루고 있어 사실적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의자락 밑으로 나타난 발등은 양각으로 표현하여 양감이 없으며 다소 도식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법은 아마 도상의 불꽃무늬, 불신(佛身)을 중앙에 놓고 대칭으로 새긴 거신광의 인동무늬와 함께 매우 인상적이다.
조성연대는 구례 대전리 석불입상과 같은 고려 초기 10∼11세기로 보인다.
비록 음각으로 새겨진 불상이지만, 군의에 나타난 파상문, 발등의 사실적인 표현,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등이
고려시대에 조성된 다른 불상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처 : 두산백과
- 이곳이 오산 정상으로 향하는 입구이다 -
구례 오산의 사성암은 연기조사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사성암의 백미는 기다란 기둥 세 개에 의지해 깍아지른 절벽에 붙어있는 유리광전이다.
원효가 손톱으로 약 25m의 기암절벽 위에 새겼다는 마애약사여래불을 지키기 위해서 지어진 전각으로서 근대의 건축방식이지만,
주변 기암절벽과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면서 일약 사성암을 유명하게 해준 근대의 건축물이 되었다.
지장전, 산왕전 등 6채의 누각이 바위를 병풍 삼아 올망졸망 바위틈새에 들어서 있는 모습 또한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용의 형상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돌계단을 따라 지장전에 올랐을 때는 위대한 자연 앞에서 저절로 합장이 나오게 된다.
출처 : 인터넷 上
- 어느 예술가가 이렇게 담백한 선으로 평안을 그려 주었을까 -
- 수령 800여년 되었다는 귀목나무 -
- 지장전에 이르렀다 -
- 중생을 모두 제도한 연 후에 자신도 해탈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감격적이다 -
- 소원바위에서 민간신앙의 모태를 들여다 본다 -
- 원래의 우리 종교는 산에 대한 숭배가 모태가 되었다 -
- 그 효험이 소문난 산왕전의 산신님 -
- 섬진강을 끼고 도는 구례읍이 풍요로움! 그 자체로 다가 온다 -
- 도선국사의 비책이 잉태되었던 도선굴 -
약사전을 나와서 지정전과 삼신각으로 올라가면 바위 사이의 좁다란 동굴로 이어지는 데 이곳이 도선국가가 풍수지리를 연구했다는 도선굴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산 마루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틈이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중 도선이 일찍이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를 그렸다’라고 되어있다.
- 도선굴을 돌아 저 낭떠러지 길을 지나가야 한다 -
- 이곳 경계에서 역대 선사들께서는 무슨 생각을 다듬었을까 -
- 산신각(산왕전) 위 편에는 진각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가 있다-
이곳 좌선대는 그 형상이 정말로 평평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천하를 굽어보며 선정에 들기에 너무도 좋은 좌대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천하지명당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좋은 참선터가 사성암 곳곳에 있었으니,
문명과 유리된 이 척박한 절벽에서 시도했던 선사들의 고행이 눈으로 읽혀지는 듯 하다.
어찌 바위를 깎지 않고서 위대한 조각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며,
어찌 자신의 마음을 갈지 않고서 대오각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사는 이와같이 정성으로 이루어져야만 침몰이 없이 그 과보가 빛나게 맺힌다는 동서고금의 진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 참선터에 걸터 앉아 궁둥이의 궤를 선사들과 같이한다는 생각으로 원효와 의상과 진각과 도선 그리고 보조 지눌들의 생각을 읽어 본다.
그리고 그 훨씬 이전에,
지리산 천왕봉 밑의 법계사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또한 지리산 화엄계곡에 화엄사를 창건하던 연기조사의 뜻을 헤아려 본다.
그 이듬해인 서기 544년에 연기조사는 이곳에 이르러 암자를 창건하게 되니 그것이 사성암의 시원이 된다.
필자가 가장 비중을 두는 한국불교계의 거목으로 두 분을 생각하고 있으니 바로 신라의 자장율사와 백제의 연기조사가 그분들이다.
해동海東의 8보처八寶處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던 그분들의 정성이 없었다면 우리의 기운이 오늘날 이렇게 융성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는 정성을 말하고자 함이고 다른 뜻은 없다.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사자산, 태백산, 영축산, 지리산 등지의 수승한 명혈에 부처의 진신을 봉안하던 그 지극한 정성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런 정성 없이 어찌 한겨레의 시원과 미래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불교라는 종교 자체를 논하고자 함이 아닌, 그 정성을 말하고자 하는 이 기행문의 속셈을 읽어 주시기 바란다.
마치 여름날 하오에 편상에서 낮잠을 자는 자식에게 모기가 달라붙지 않게 해주기 위하여,
어머니! 당신은 모기에 물려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하염없이 아기의 피부에 부채질을 해 주던 그런 지극한 정성을 말하고자 함인 것이다.
어찌 그 정성 앞에서 산천초목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1,500년 전의 그분들 정성 앞에서 천지가 감동하지 않으랴?'
- 어찌 추하게 물든다고 저 낙엽을 비방하랴. 삶은 모두가 감동! 그 자체인 것을...... -
- 천길 낭떠러지의 꿈이 이곳에 있었다 -
선사들이 노닐던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앉기도 하며 저곳에서 멍때리기도 하면서 노니는 마음이 청량하다.
한줄기 감로수를 마시고 마음의 깊은 속진을 씻어 내린 듯 청량한 이 기분은 바로 사성암의 지기地氣가 선물하는 맑음이리라.
그렇기에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께서는,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라고 노래하셨으리라.
맑음이 노니는 곳에 늘상 가까이 하려고 애를 쓴다면 절로 맑음으로 채워질 수 있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세상 일도 이와 같아서 항상 맑음만 원한다 한다면 맑음만 노니는 곳에 주거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은자나 선사들께서는 맑은 터에 머무르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속세를 떠나지 않았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오산을 오르는 중에 문득 몇년 전에 보았던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떠 올렸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 눈을 멀게 하신 것에 자주 감사를 드립니다.
제 영혼의 성숙을 위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자비로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하느님에 대한 모든 감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예요.
참으로 안타까워요.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좋은 분이시고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서이다.’는 원리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행복해야하며 절대 불행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이고 우리에게 오로지 선하고 좋은 일만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 말입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믿어야할 전부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프랑스 알프스(샤르트뢰즈 산맥) 정상에 있는 그랑드샤르트뢰즈 수도원에 사는 카르투시오회 수사들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는
영화 위대한 침묵은 필립그로닝 감독이 촬영 제의 후 16년 만에 허락을 받고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감독 혼자서 촬영 녹음을 했으며,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음향효과나 나레이션 없이
수도 생활의 영상과 소리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위대한 침묵은 영화라기보다는 마치 기도서 같다.
영화 '위대한 침묵'은 눈이 먼자들에게서 '세상에 제일 재미없는 영화'라는 혹평을 얻어냈다.
그러나 침묵을 사랑하고 맑음을 사랑하는 수도의 눈이 트인 자들에게서는 지극한 감동으로 환호받았던 양면성을 지닌 작품이다.
세상에 침묵으로 일생을 일관하면서 경건한 맑음을 유지하며 산다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를 예증해 주는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개봉되었다는 것을 이번 인터넷 검색 중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꼭 보아야 할 리스트로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인연이라는 것이,
이렇듯 묘하게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항상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런 인연의 묘한 뉘앙스를 이번 오산 비박기행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3부에서 다루겠다.
<위대한 침묵> 그 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랑의 침묵>
침묵하는 수도자들의 일상을 다룬 <사랑의 침묵>은 <위대한 침묵>과 많이 닮아 있지만, 다른 지점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위대한 침묵>이 침묵 수행하는 수도자들의 반복되는 일상과 자연의 소리, 시간의 흐름을 통해 소음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침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면
<사랑의 침묵>은 더불어 여전히 바쁘고 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춰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손짓하는 영화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랑의 침묵>은 온화하며, 엄마의 품에 있는 듯한 따뜻한 모정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위대한 침묵>이 수도자들의 내적 여정으로 관객과 함께 호흡했다면 <사랑의 침묵>은 삶과 죽음,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
수녀들에 관한 오해와 진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신념 등에 대한 수녀들의 진솔하고 위트 있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감동을 더합니다.
<사랑의 침묵>을 연출한 마이클 화이트 감독은 두 작품 모두 수도사의 삶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만
<사랑의침묵>은 수도자의 삶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 통찰력 있는 이해를 도왔다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영상! 두 감독 모두가 똑같이 고민한 지점인 “침묵을 어떻게 영상 속에 담을 것인가”입니다.
두 작품 모두 자연의 빛이 인위적인 화려한 조명을 대신하고, 사운드는 자연의 소리와 일상의 소리로 대신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관찰자의 시선을 넘어 수도자들과 함께 내적 여정을 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점은 <위대한 침묵>은 168분동안 단 30분만 보더라도 침묵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면
<사랑의 침묵>은 영화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의 감동과 용기를 건네준다는 것입니다.
세상 일과 단절한 채 오랜 수련을 통해서 얻어낸 삶에 대한 보석 같은 이야기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출처 : [사랑의 침묵] 10월11일 개봉 - '위대한 침묵' 그 후, 또 다른 이야기 (인디영화를 사랑하는 무비꼴라쥬 IN) |작성자 트리플
- 드디어 오산 정상에 이르렀다 -
섬진강과 지리산을 바라보는 최고의 전망대 오산 12대
오산은 '섬진강 물을 마시는 자라형국'이라 하여 자라 오鰲자를 써 오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금자라 형국이라 해서 금오산金鰲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오산에 오르면 성인들이 즐겨찾던 참선하기 좋은 명당일 뿐만 아니라 그 즐거움의 하나가 넋을 빼앗는 조망의 아름다움에 있다 하겠다.
오산 정상이 아니더라도 산왕전에 오르면 지리산 만복대,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 등 지리산 능선의 웅장한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과 소설 ‘토지’의 무대인 구례 들녘을 한없이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인 이곳에서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이라고 한 섬진강, 지리산, 널찍한 들판을 볼 수 있다.
가만히 있다 보면 수려한 경관, 넉넉한 인심, 그리고 넘치는 소출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성암 주변의 수직 바위들을 오산 12대라 부른다.
'봉성지(鳳城誌)'에 의하면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마치 금강산과 같아서, '소금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람이 쉬어갈 수 있도록 평평한 쉬열대, 거센 바람 불어대는 풍월대, 화엄사를 향하여 절하는 자리의 배석대, 향을 피워 놓은 향로대,
진각국사가 참선했다는 좌선대와 우선대, 석양을 감상하기 좋은 낙조대,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병풍대, 선녀가 비단을 짠 신선대, 하늘을 향하는 앙천대,
연기조사가 마애불로 화했다는 아미타불 닮은 관음대, 크고 붉은 색을 띤 괘불대가 그것이다.
부채꼴처럼 펼쳐진 소원바위에서는 동전을 바위에 붙이며 서로들 소원을 빌었다.
일명 뜀바위로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바위이다.
지리산 노고단이나 천왕봉에 올랐을 때의 감흥이 531m의 오산 사성암에서도 느껴진다.
출처: 인터넷 上
- 해발 531미터의 오산 정상에 세워진 정자인데,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기울어져 출입이 금지되었다 -
- 오산 정상에 있는 정자와 그 앞의 참선바위 -
송광사 제6세인 원감국사의 문집에는 ‘오산 정상에서 참선을 행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 진각 양 국사가 연좌수도 했던 곳’이라 하였다.
- 정자 옆의 전망대에 오른다 -
- 이곳에서 더러 비박하는 분들이 있다 -
- 지리산의 전체 능선을 관람할 수 있는 빼어나고 귀한 조망처이다 -
- 뒷편 능선 좌측부터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 그리고 왕시루봉 상중단에 천왕봉이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다 -
- 우측으로는 계족산이 자리하고 있다 -
- 계족산 우측으로는 백운산 라인이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
- 지리능선 아래로는 하동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유려하다 -
- 좌하단의 저수지 위로 평사낙안의 길지라는 운조루가 위치해 있다 -
- 한마리 기러기처럼 출입이 자유로운 애호가의 여유가 느껴진다 -
- 천은계곡의 물이 합쳐지는 구례읍의 섬진강 두물머리 -
- 오산 정상과 매봉 사이의 아늑한 터를 찾아 둥지를 틀기로 한다 -
- 오산 정상은 그 기운이 너무 강해서 조금은 부드러운 유두 줄기의 능선을 택하기로 하였다 -
- 우측이 바로 정상 가는 산길인데, 아마 멧돼지도 왕래하리라 싶다 -
- 일찍 나오신 초승달이 '어서 둥지를 완성하라' 이르신다 -
- 햇님은 '내일보자'며 궁금한 이별을 준비하시고 -
- 그렇게 구례구역 방향으로 낙조가 걸렸다 -
-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컷 텐트 내부를 담아 두었다 -
- 이튿날의 일출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2부로 계속 됨) -
오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유숙할 예정이었지만 그 계획을 변경하기로 한다.
마침 산책중이시던 스님을 만났기 때문에 적당한 야영장소를 물어 본다.
"스님, 혹시 매봉 가는 길에 텐트 칠만한 적당한 숙영지가 있는지요?"
스님은 맑고 정갈하신 행색을 지니신 분이라 더욱 신뢰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글쎄요, 험준한 능선 길이라 비탈져서 마땅한 자리가 없겠는데요. 그리고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분답니다."
스님의 말씀은 십분 일리가 있다.
"바람이 차겠지요...... 그래도 이곳에서 일박을 해야 하는데 어쩌지요?"
"그러시면 매봉 쪽에 한자리는 나올만 한 곳이 있는데요."
"그래요? 그런데 매봉은 '매'자가 좀 그런데요."
"......"
수리과의 매자가 좀 그런다는 말에 스님은 미소로 묵묵부답이시다.
스님은 이곳에서 수행하기를 오래하신 분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까 지나쳤던 산왕전 위 좌선대에서 좌선하던 승려의 뒷모습을 누군가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본 기억이 떠 오르는데 바로 이분이 아닐까 직감을 한다.
그만큼 맑고 기운찬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니 말이다.
"아침에는 이곳 정상에 사람들이 몇시부터나 올라 올까요?"
이 질문은 필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만일 전망대에서 숙영하고 있는데, 새벽부터 올라오는 참배객들이 많다 한다면,
잠을 설치는 일보다도 그분들에게 동물원의 원숭이꼴을 당하기가 아주 쉬운 일(?)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런다.
"글쎄요? 내일이 토요일이라 한 여덟시부터는 붐빌텐데요?"
스님과의 대화 후에 내린 결론은,
태풍 볼라벤으로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정자를 곁에 두고 있는 불안정한 전망대에서의 비박은 안 될일이라 작정해 본다.
또한 북향자리에 있는 지리산 주능선들의 강한 기운이 너무나 세게 다가오는 곳이라 북풍의 횡포 또한 주저하게 만드는 감점 요인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물색한 곳이 어머니의 유두 아래 위치한 순탄한 능선길이다.
북으로는 나무들이 지리산을 차일처럼 가려줘 아늑함을 주었으며,
남서쪽으로는 빼어난 조선솔숲이 그 자태를 자랑하며 그 틈새로 백운산과 섬진강을 보여주고 있어서 명상터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산책길에서 귀로에 오르신 스님이 그 터에 놓여진 필자의 박배낭을 보면서 빙그레 웃고 가신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이 대우주의 지구라는 별자리에서 한 점 먼지같은 인연이었을 법도 한데, 우연찮게 맞닥뜨린 오늘의 조우가 필자를 숙연하게 만들어 준다.
수도자에 대한 예우라고나 할까.
이렇듯 모든 인연은 숭고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다시금 일어난다.
맑음을 사랑하며 지향하듯이 우연히 만난 인연도 정성을 다해 보듬어 보자고 다짐을 해 본다.
그렇게 오산 정상에서의 밤은 깊어만 갔다.
연기조사와 도선국사께서는 무언의 말씀으로 왔다 가시고,
청화선사께서는 너무 늦게 왔다고 꾸중을 하시니...... 좀처럼 생각이 잡히지를 않는다.
그렇게 초승달을 마주하며 긴긴 밤을 적막과 맑음으로 노닐던 조요로운 밤으로 기억의 자수를 놓게 되었다.
맑은 밤!
그 자체를 선물로 주신 대자연에 감사를 올린다.
- 2012년 10월 22일 완성하다 -
小鄕 權大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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