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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않고도 뱃살을 뺄 수 있을까?
살빼기에는 식사조절과 운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운동 않고도 체중을 5kg 이상 줄였다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비만 환자들 중 한 그룹은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해서 주 3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시행하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일상생활에서 평소보다 활동량을 늘리도록 권고한 다음 6개월 후 체중 감량 정도를 비교해 보니 두 그룹간 차이가 없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180분 이상을 걷기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당뇨병, 심장병 발병 위험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기적으로 헬스클럽을 찾아가 트레드밀에 올라 뛰는 것이나 평소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니 무조건 많이 걸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필자가 지냈던 뉴욕 맨해튼은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고 병원 아파트와 다니던 연구실 사이에 셔틀 버스가 운행되고 있어 차를 가지도 다닐 필요가 없었다. 점심시간에는 일부러 거리가 먼 식당을 골랐고 식사 후에는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를 한바퀴 돌고 난 다음 연구실로 들어갔다. 주말에는 일부러 센트럴 공원을 찾아 걷거나 맨해튼 시내를 걸어서 누비고 다녔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신체 활동량이 훨씬 많았지만 뱃살이나 체중은 전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하루 30분 이상 걷기가 빠진 뱃살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는지 몰라도 나온 뱃살을 빼는 데에는 적어도 단기간에는 뚜렷한 효과가 없어 보였다. 역시 운동을 해야 뱃살이 빠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병원 게시판에서 운동과 관련된 임상연구에 참여할 실험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나는 주저 없이 그 연구에 지원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관람에 재미를 붙이면서 용돈이 궁했던 터라 임상시험 대상자에게 400불을 주겠다는 글이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이다. 용돈도 벌고 운동도 공짜로....정말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비만과 관련된 연구가 아니라 운동과 자율신경 기능간의 관련성을 보는 연구였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운동 프로그램은 없었다. 단지 12주 동안 주 4회 이상, 한번에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라는 것이 피검자인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사실 어떤 운동을 하던 살을 빼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정해진 시간에 효율적으로 살을 빼려면 빠르게 걷기, 조깅, 고정식 자전거, 스테퍼 같은 유산소 운동이 가장 좋다. 나는 트레드밀(러닝머신)을 30분 간 하기로 했다. 우선 운동복을 갈아입고 트레이너에게 배운 스트레칭을 15분 간 했다. 본격적인 운동에 앞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은 워밍업(warming-up)의 효과와 근육의 유연성을 키워 운동으로 인한 부상 위험을 줄여준다. 트레드밀에 올라 처음 5분간은 보통 속도(시속 5~6 km)로 걸은 다음 빠르게 걷기(시속 7km)로 속도를 높여 30분을 채웠다. 중간중간 가벼운 조깅(시속 8~9km)을 시도해보고 숨이 턱까지 차면 다시 빠르게 걷기로 속도를 낮추어 숨을 골랐다. 마지막 5분은 다시 보통 속도로 걸었다. 가끔 트레드밀에서 조깅이나 러닝을 하다가 바로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는데 이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조깅이나 러닝을 하게 되면 혈액이 운동 중인 큰 하체 근육에 몰리게 된다. 근육운동으로 혈관을 쥐어짜 주기 때문에 하체에 몰려있는 혈액은 쉽게 심장으로 돌아와 전신 순환을 반복한다. 그런데 격렬한 하체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운동을 멈추면 하체에 몰려있던 혈액이 제대로 심장으로 돌아오지 못해 뇌로 가는 혈액량이 순간 부족해진다. 가벼운 어지럼증 정도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조깅이나 러닝을 할 경우 반드시 마무리운동(Cool-down이라 한다)으로 가벼운 걷기를 5~10분 정도 해주어야 한다. 평소 많이 걸어다녔음에도 막상 뛰어보니 5분 이상 뛰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많이 걸었을 뿐 체계적으로 심폐지구력을 높여주는 운동 효과를 얻지 못한 탓이다. 점차 익숙해질수록 조깅에 할애하는 시간을 서서히 늘려나갔고 8주가 지난 다음에는 15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었다. 운동강도를 낮추어 오랜 시간 할수록 체내 지방을 효율적으로 태워 체중 조절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운동에 투자한 나로서는 30분을 채우기도 벅찼다.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어제보다 조금만 더 힘들게' 전략으로 운동강도를 조금씩 높여나갔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바지춤은 전보다 헐거워졌음을 느꼈지만 체중계 눈금은 금방 줄어들지 않았다. 체내 지방은 줄었지만 동시에 운동으로 얻은 근육량이 늘었기 때문이었을까? 3주 째 되던 어느 날 평소 즐기던 술을 끊게 만든 작은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이틀 후부터 거짓말처럼 체중계 눈금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체중계 눈금을 150 파운드 아래로 떨어뜨리기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술이 뱃살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클 줄이야... 내려가는 체중계 눈금을 보면서 뱃살을 한번 본격적으로 빼보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다. 앞서 소개한 '건강 다이어트'를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운동이 끝나면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서 조금씩 줄어드는 눈금을 보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체중계 눈금은 다시 145 파운드에서 멈췄고, 그 이후에는 매일 1-2파운드 정도 오르락내리락 했다. 체중계 눈금이 0.5파운드라도 떨어지면 기분이 좋았지만 체중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증가한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다. 땀을 흠뻑 흘리고는 목이 말라도 우선 체중계 위에 먼저 올라갔다. 다만 몇 g이라도 줄어야 만족스러우니 말이다. 이러다가 정말 체중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나는 '체중 강박증'에 걸려있었다. 내가 나름대로 정했던 목표 체중은 63kg이었다. 20대 초반에 58kg이었으니 생리적인 체중 증가를 약 5kg 정도로 볼 때 63kg을 나의 적정체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중계 눈금은 65kg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내 몸에 맞는 적정 체중은 65kg인가 보구나. 내가 여기서 체중을 더 빼면 내 몸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날 이후부터 체중계에 오르지 않았다. 체중계 눈금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였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한지 10주정도 지나자 집에 있는 바지를 입을 수 없을 정도로 허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바지를 새로 구입했다. 평소 입던 바지보다 3인치 아래인 31인치 청바지를 사면서 느꼈던 그 뿌듯함이란... 12주 운동 프로그램이 끝나고 체중을 재어보니 136파운드(62kg). 허리는 30인치. 청바지가 이미 헐거워져 있어 예상은 했었지만 줄자로 측정한 내 허리둘레는 78cm였다. 조금 안돼 보인다고(?) 안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젊어 보인다는 부러움(?)에 찬 목소리가 더 많았다. 나도 나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었다. 몸이 전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고 활동량도 더 많아졌다. 12주 운동 프로그램이 끝난 다음에는 헬스클럽 출석을 체크하지 않고 자율에 맡겼다. 사실 12주간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구 대상자가 주4회 이상 헬스클럽에 출석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경고전화가 걸려올 뿐 아니라 연구 종료시점이 1주일 늦춰졌기 때문이다. 중간에 주 3회만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전화를 통해 운동을 1주일 더 해야 한다는 냉혹한(?) 통보를 해왔다. 400불이라는 '당근'도 연구가 끝나야 받을 수 있었다. 차라리 400불을 포기하고 예전처럼 편하게(?)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유혹도 몇 번 찾아왔었다. 감시하는 눈이 없어서일까? 연구 종료 후부터 헬스클럽 찾는 횟수가 점차 줄더니 결국 2주가 지나면서 더 이상 헬스클럽에 가지 않았다. 운동을 계속 하지는 못했지만 빠진 뱃살과 체중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서 일상생활에서 신체활동량을 의식적으로 많이 늘렸다. 끊었던 술도 다시 '적절한' 수준으로 시작했다. 운동을 하지 않은지 한달 째 되는 날 운동 전과 운동 프로그램 종료 직후에 시행했던 각종 검사를 다시 받아볼 기회가 생겼다. 이 가운데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심폐지구력과 체내 대사율을 보는 검사였다. 물론 한 달이라도 평소 규칙적으로 하던 운동을 하지 않을 경우 심페지구력을 포함한 체력은 운동으로 얻은 이득의 85% 이상을 잃게 된다(이를 'detraining effect'라고 한다)는 상식은 있었지만, 운동 대신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기에 설마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체중은 운동 프로그램을 끝낸 다음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심폐지구력과 체내 대사율은 운동 전 수준으로 돌아가 있었다.
<운동 전후의 체내 대사율 변화>
안정시 맥박수: 최대 산소섭취량: 안정시 호흡교환율: 무산소성역치: 운동을 하지 않는 대신 일상생활에서 신체활동량을 늘이기 위해 많이 걸으려고 노력했음에도 운동으로 얻은 심폐지구력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체중의 변동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운동 후 내 몸은 체내 지방을 운동 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쓰는 체질로 바뀌어 있었지만 운동을 하지 않은지 한 달만에 운동 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운동을 하지 않고도 체중은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체력까지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운동을 안하고 음식조절 만으로 체중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운동으로 얻은 이득을 지켜나가진 못한다. 더구나 뱃살을 빼겠다고 결심했다면 운동은 필수적이다. 뱃살 (복부 내장지방 비만)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 요인으로 나눈다. 자신의 체형과 살찌는 체질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 물만 먹어도 살찐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찌고 싶다고 진료실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나이도 뱃살의 중요한 원인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복부비만이 더 잘 온다. 하지만 여성도 폐경이 지나면 남성형 체형으로 바뀐다. 이런 요인들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환경 요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해결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환경 요인에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신체 활동량 부족이다. 따라서 운동을 하지 않고 뱃살을 빼겠다는 것은 원인 치료도 않고 병을 고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밖에 과다한 음주, 흡연, 무리한 다이어트와 요요 현상의 반복 등도 뱃살의 원인이다. 자, 이번에는 필자가 여러분에게 묻겠다. 오늘부터 운동을 당장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다이어트(음식 조절)만 하면서 버틸 것인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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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 박사 성균관대 가정의학과 부교수 강북 삼성병원 비만 클리닉 (ywoopark@unitel.co.kr">ywoopark@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