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7개월 아무말없는 남편옆에서 임수혁 부인 김영주씨 병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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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똑같은 마음인데….”
임수혁이 누워 있는 강동성심병원 병실이 최근 들어 부쩍 바빠졌다.
2000년 4월 18일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지 2년7개월여. 흐르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던 임수혁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동료와 선후배는 물론 최경주 이봉주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임수혁 돕기 자선경매에 참여하는 등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선후보들까지 다녀가는 등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임수혁의 동갑내기 부인 김영주씨(33)는 찬바람이 살을 에는 추위 속에도 세상에 아직 따뜻한 숨결이 살아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러나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커질수록 그 뒤에 찾아올, 잊혀갈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처음 임수혁이 쓰러지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그랬다.
‘다들 자기 일들이 바쁜데 당연한 거지’라고 자위하면서도 갑자기 척박한 동토에 홀로 서 있다는 느낌이 엄습하기도 했다. TV에 임수혁의 병실 모습이 나가고 나면 연락없던 친구들이 위로의 전화를 걸어온다. 아마도 TV에 나올 때만 마음고생을 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투병 간병에 눈물이 말랐다
처음 1년간은 금방 깨어날 것 같은 남편 옆에 붙어 하루 종일 울었다.
잠든 듯이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면서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하고 하늘도 원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눈물도 말랐다. 아니, 그보다는 보살핌이 필요한 세현(9)·여진(7) 남매를 키워야 하는 엄마의 책임이 있었다. 이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낮에 병원에 왔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간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도 있지만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 때문이다.
임수혁의 상태도 전보다 나아졌다. 호흡을 하고 하품을 하는 등 반사적인 행동 외에 자의식을 갖고 하는 행동은 하지 못하지만 시아버지가 장어, 붕어즙 등 몸에 좋다는 음식을 갖다 먹이면 여느 건강한 사람처럼 몸무게가 3~4㎏은 늘고 굵은 똥을 ‘응’하고 힘줘 눈다. ‘이제는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절망감이 들다가도 이런 모습을 보면 지금이라도 금방 “내가 왜 여기에 있지?”하며 깨어날 것 같다.
●엄마, 나 유치원에 안 갈래
여진이는 아직 유치원생이다. 유치원에선 ‘아빠수업’이란 게 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유치원에 나와 아이들과 놀아주고 가르치기도 하는 시간이다. 아빠가 갈 수 없다는 걸 아는 여진이는 “아빠가 못 가니까 나 연습 안해도 되지?”라고 말한다. 친구들의 아버지들을 보며 부러워 눈물 흘릴 것을 생각하면서 유치원에 빠지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젠 둘 다 많이 의젓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아빠다” 하며 부러운 눈길로 외치다가도 “우리 아빤 아프니까”라고 자위하며 엄마 눈치를 본다. 아빠 얘기만 나오면 우는 엄마 때문에 애들이 말을 조심하는 것이다. 세현이는 이제 3학년이 되고 여진이도 내년이면 오빠가 다니는 마북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젠 두 아이가 희망이 되고 의지가 된다.
아이들은 나이보다 훨씬 의젓하다.
●아이들 어떻게 키우나
세현이는 태권도장에 다니고 여진이는 학습지 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게 전부다. 남들은 피아노, 그림, 영어회화까지 애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주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하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남편을 수발하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니 이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자라 미래에 대한 준비를 못하는 아이들이 더없이 걱정스럽다.
●어째서 이런 시련이 나에게
89년 성신여대 섬유미술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그해 미팅에서 임수혁을 만났다. 잘 나가는 운동선수와 미모의 재원의 만남. 가정 형편도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집안이어서 주변의 시샘을 한몸에 받으며 달콤한 데이트를 즐겼다. 93년 축복 속에 결혼에 골인했다. 세진, 여진이를 낳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순풍에 돛단 듯 살아오던 인생이 거친 풍랑을 맞기 시작했다. 97년 시아버지가 70억원의 부도를 맞으며 집안이 쫄딱 망했다. 그러다 2000년 임수혁이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다.
●어떻게 살아갈까
밤에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무엇을 해서 아이들을 키울까. 집안살림 외에 집 밖을 나서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취직을 시켜준다는 제의도 있었지만 남편 수발에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주는 직장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직장에서 일한 경력도 전혀 없는 생짜주부에게 덜컥 만족할 만한 봉급을 안겨줄 회사가 있을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대학 시절 전공을 살린 미술학원 운영이다. 그러나 그것도 비용이 만만치가 않고 불경기라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안정적인 백화점 매장을 얻어 장사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엄마, 미안해
친정 어머니를 봐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부모가 모두 이제는 일손을 놓았지만 연금으로 편안히 여생을 즐겨야 할 때다. 그러나 막내딸의 불행 때문에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날마다 사위가 일어나길 기원하며 새벽기도를 다니랴, 낮엔 아이들 돌보랴 쉴 틈이 없다.
최근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다 발가락에 물건을 떨어뜨려 골절상을 입었다. 불효자가 된 자신이 너무도 죄스럽다.
●고마운 롯데, 얄미운 롯데
롯데구단은 1년에 5000만원이나 돈을 대주고 있다. 롯데선수 상조회도 달마다 200만원을 보내준다. 수입이 전무한 실정에서 선수단이 보내주는 200만원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이 돈으로 생활비에 아이들 학원비까지 충당한다. 그러나 이대로 마냥 살 수는 없다. 살길을 마련해야 한다. 롯데구단은 치료비와 생활비를 일시불로 지급하기를 원하고 있다. 임수혁의 상태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체 얼마를 요구해야 할까. 구단의 사정을 이해하지만 왠지 관계를 끊으려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하다. 흘러간 시간보다 앞으로의 삶이 더욱 어려워질 텐데. 임수혁에 대한 기억까지도 조금씩 희미하게 만들어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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