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2월23일
나의 10대 뉴스
다른 사람들은 연말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낼까? 생각나는 친구나 선배나 선생님께 전화로 안부 인사를 하면서 물어볼까?
한해도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줘서 수고했어,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지낸 것은 정말 잘했어. 힘든 시간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침묵의 지혜도 배웠잖아. 매일 운동하면서 마음의 근육도 키우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체력을 키우는데 열심인 너에게 칭찬하고 싶다.
2024년을 보내면서 우선 생각나는 대로 순위에 상관없이 적어보려 한다. 갑진년이 저물고 있다, 새해는 을사년이다. 푸른 뱀의 해이다. 첫날 친구랑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일 년이 지났다. 친구는 어떤 한 해를 보냈을까? 궁금해진다.
1.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나의 삶에 너무도 깊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준 선배님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일로 서로 소통이 없이 지냈는데 작년 연말에 연락이 닿아서 올해는 선배님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다. 젊어서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을 정년 이후에 다시 시작해서 이제는 개인 전시회까지 하셨다. 청주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무조건 축하해주러 갔다. 선배님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2. 다음은 26년간 함께 지낸 ‘지펠’냉장고와 이별 한 일이다. 3월 7일에 우리 가족과 헤어졌다. 사다리차에 실려서 가는데 아주 서운했다. 지금 살고 있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산 냉장고인데 지금까지 우리 식탁을 책임지고 신선함을 유지해 주던 고마운 친구다. 서비스 직원이 ‘인제 그만 보내주세요’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시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덕담을 해주던 직원 얼굴이 생각난다. 새로 들어온 냉장고는 삼성 제품인데 회색빛으로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다.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이 우리 주방을 떡하니 책임지고 있다.
3. 1월 12일이다. 연지못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몸집이 나만 한 누렁이가 논을 가로질러 나에게 돌진한 너무도 무서운 ‘개 사건’이 또 다른 뉴스다. 주인장이 개 목줄을 놓쳐서 무방비 상태로 당한 ‘개 사건’이다. 정말 뉴스에서나 본 적이 있는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구나 싶었다. 두려움에 논바닥에 쓰러져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큰 개는 무섭게 짖으면서 내 주변을 빙빙 돌았다. 점퍼 뒤끝을 물고 다행스럽게 더는 달려들지 않았다. 주인장이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걸어오는데 너무 무섭고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무서워한다. 어려서 동네 개에게 물렸던 기억이 있어서다. 이런 일이 또 생겼으니, 이제는 개라면 십 리 밖에서도 무섭다. “물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다.”라고 개 주인을 달랬다. 주인이 너무 미안해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니까 내가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 후로 한참을 연지못을 가지 못했다.
4. 다음은 5월18일 남편 생일 파티를 시골집에서 한 일이다. ‘촌캉스 파티’였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이라 쥐새끼 소리조차 없는 적막한 곳이다. 노란색 가로등이 조명처럼 비춰주고 있었다. 장작불을 피워서 삼겹살과 소고기를 구웠다. 와인과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깊은 밤까지 이야기 나누면서 보낸 남편의 생일파티가 기억에 남는다. 둘 다 술에 취해서 어찌 방까지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도 멋진 밤이었다. 다음 날 마당에 나가보니 정말 난리가 아니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도 궁금했다.
5. 남편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 부부 동반으로 옥천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옥천까지 간 길에 대전 현충원에 계시는 부모님 묘소를 참배했다. 자주 오지는 못해도 가끔이라도 찾아뵈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육영수 생가와 천상의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대청호의 아름다운 경관과 산책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작은 교회당도 인상에 남았다.
6. 주말에만 가는 시골살이지만 예쁜 이야기들이 많다. 힘든 일은 남편이 혼자 다 하고 나는 말 그대로 베짱이다. 방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쑥갓꽃이 텃밭에 노랗게 피었을 때, 쑥갓꽃이 그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다. 쑥갓 키가 얼마나 큰지 모두 베어낸다고 해서 꽃을 주전자에 담아서 옥상 계단에 놓고 보면서 오래도록 행복했던 추억이 있다.
새참으로 쑥갓꽃 튀김을 만들었다. 호박꽃과 깨꽃으로도 전을 부쳤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앉은뱅이 밥상에 마주 앉아서 막걸리를 먹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텃밭은 작은 채소 마트였다. 가지, 오이, 고추, 호박, 들깨, 호박잎, 깻잎을 밭에 나가면 한 소쿠리 채소를 담아왔다.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는지 정말 신나게 요리했다. 남들 보기에는 소꿉놀이처럼 생각이 들겠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내가 기대한 이상의 작품이 나올 때 마구 소리를 쳤다. 노란 쑥갓꽃, 하얀 들깨꽃. 보랏빛 가지꽃, 연보랏빛 얼갈이 배추꽃, 노란 호박꽃으로 전을 부친 기억이 올해 기억에 남는 사건이다.
7. 8월 5일에 여름휴가를 동해안으로 간 추억이 올해의 뉴스다. 연애할 때 말고는 남편과 단둘이 1박 2일로 여행한 일은 처음이다. 늘 그리움의 여행코스인 7번 국도 여행이었다. 한여름에 동해를 끼고 단둘이 여행을 한 추억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악산으로, 속초로, 강릉으로, 후포로 좋아하는 곳에서 원 없이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다. 낯선 도시 속초에서 남편과 호텔에서 보낸 시간은 청초항의 야경처럼 매혹적이었다. 바닷가 휴게소 식당에서 먹은 라면 맛은 그 어떤 요리보다 더 잊지 못할 맛이었다.
8. 10월10일 속보로 뜬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발표다. 속보로 화면에 뜨는데 얼마나 좋은지 장흥에 계시는 선생님께 축하 문자를 보내드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었는지 선생님이 다음날 장흥에서 인터뷰하시는데 선생님의 전화를 꺼놓고 계신다고 했다. 즐거운 일은 맞는 데, 너무 전화가 오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오니까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고 했다. 한강 작가를 알지는 못해도 선생님 따님의 일이니 그냥 좋았다. 선생님이 좋아하실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쁘실 것 같아서 그 후로 전화나 문자 메시지도 하지 않고 지냈다. 연말이니 안부 인사는 드려야 하겠다.
9. 10월18일 엘리베이터 교체 후 처음 가동한 날이다. 30년 가까이 오르내리던 엘리베이터를 한 달 가까이 교체 작업을 했다. 덕분에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고층에 사는 주민들은 특히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매우 힘드셨을 것이다. 어떤 분은 아들 집에서 보내기도 했고 어떤 분은 시댁에서 한 달을 보냈다고 한다. 계단 난간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오시던 어르신이 생각난다. 가을걷이한 것을 들고 올라가지 못해서 현관 입구에 쌓아두고 아들이나 손자가 들고 올라가는 일도 보였다. 부드럽게 오르내리고 속도도 빠르고 디자인도 세련되어서 삶이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다.
10. 열 번째 뉴스는 2월 3일에 일어난 금융사기 전화다.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통장 계좌번호부터 비밀번호까지 다 알려주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중지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통장도 새롭게 개설하고 주민등록증도 새로 갱신하고 휴대전화도 공장 초기화시키는 참으로 큰 사건이었다.
아들을 파는 수법이었다. 아들이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다고 문자로 연락이 왔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아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다가 무언가 이상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아들은 아무 일도 없이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들이 평소에 액정이 자주 깨져서 의심을 안 한 것 같다. 무엇에 홀리면 그렇다고 정말 아들인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저장 안 된 번호나 이상한 문자는 아예 받지도, 확인하지도 않는다. 저장이 안 된 번호는 받지 않으니, 친구가 무슨 일 있냐고 전화를 왜 받지 않으냐는 걱정의 문자가 오기도 했다. 초기화시키면서 아직 저장을 못 한 번호는 지금도 받지 않는다. 놀란 가슴이라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