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지 28달이 되는 날이다. 2년 4개월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대책은, 세가지 대응 원칙, 즉 '멈춰라'(핵분열 중지), '식혀라'(냉각), '닫아라'(방사성물질 유출 봉쇄) 중에서 '멈춰라' 밖에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냉각 시스템도, 봉쇄 대책도, 오염수 문제도, 대기 중 방사능 오염 확산도 수습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한 노동자가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이 처한 상황, 전세계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은폐 위한 안이한 사후 대응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그동안 수차례 지적돼왔다. 지난 4월 일본 원자력위원회 스즈키 다쓰지로 위원장 대리가 방미 기간 중 워싱턴에서 한 말은 그 '핵폭탄'에 대한 위험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조그만 쥐 한 마리가 전력 공급선을 절단할 수도 있다"며 불안한 후쿠시마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된 데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사고 당시 대응이 부실했던 점이 한 몫 했다. 간 나오토 전 총리마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에 대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대실패"라고 자평할 정도다.
히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조사.검증위원회는 그해 11월
보고서를 내고 사고 수습이 미흡했던 점을 지적했다. 당시 보고서는 도쿄전력이
비상발전기 훼손으로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사태에 대응하는 훈련이 전해 안 돼 있었으며, 냉각시스템 이상신호가 여러차례 감지됐음에도 막연히 정상가동을 하고 있다고 가정, 노심용융사태를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노심용융사태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모호한 표현을 쓰는 등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정부가 원전 주변 방사선량 데이터를 늦게 공개해 더 일찍 대피할 수 있었던 주민들이 피폭되는 일도 발생했다.
사고조사위원회의 국제자문위원 자격으로 외부인사 중 최초로 사고 원전 내부시설을 둘러봤던 장순홍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은 "일본 당국이 사고 직후 일주일간 대응과 판단만 잘 했다면 격납용기 손상으로 인해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 않고,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 수준에서 멈췄을 것"이라며 "초기 판단 미스가 40년간 수습해야 하는 대형사고로 키웠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사고를 키운 가장 큰 원인으로 일본 당국이 원자로 내 물 주입을 늦게 했다는 점을 꼽았다. 사고 후 3월 12일 1호기, 14일 3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있었고, 15~16일 사이 2호기 격납용기 내 압력이 떨어지는 폭발이 있었지만, 당국은 원자로 손상 등을 우려해 바닷물을 제때 주입하지 않았다고 장 회장은 지적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린 노심용융 사태를 사고 두달 후인 5월에서야 시인했다.
일본은 원자력 의존율이 30%를 넘는 국가인 만큼, 2년 넘게 원전을 가동하지 못한 데 따른 전력 수급난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모색하고 있는데, 원전 및 방사능과 관련한 이상 징후가 잇따르고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달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같은달 25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의 원자로 건물 5층 부분에서 전날 오전 4시15분께부터 수증기와 유사한 물질이 흘러나오는 것이
감시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이 관찰된 것은 지난 18일과 23일에 이어 세 번째였다.
관찰된 수증기에서는 시간당 2천170밀리시버트의 높은 방사능이 검출됐다. 이 수치는 지난 2011년 5월 후쿠시마 원전이 멜트다운되고 두 달이 지난 뒤 측정한 방사능 수치와 비슷하며, 방호복을 입고 8분 이상 작업하기 힘든 수준이다.
오염수 누출...매일 300톤씩 흘러들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일본 현지에서 현재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는 원전 오염수 누출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산에서 원자로 건물 주변으로 매일 1천톤 가량의 지하수가 흘러들고 있는데, 이 중 300톤 정도가 원자로에서 나온 오염수와 섞여 바다로 유출되고 있는 것.
일본 정부는 그동안 오염수 유출 가능성을 부인하다가 지난 7월, 2011년 3월 원전 사고 발생 직후부터 오염수가 매일 300톤씩 바다로 유출되고 있었다고 시인하는 발표를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산업상이 원전 관계자와 함께 후쿠시마 제1 원전 탱크 부지를 시찰하고 있다.ⓒ뉴시스/AP
오염수 처리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사후처리 과정에서 가장 난제로 꼽힌다. 파괴된 원자로 안으로 매일 400톤 가량의 지하수가 유입되고 있고, 도쿄전력은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해 매일 400톤의 물을 쏟아붓는다.
오염수는 오염수를 보관하는 지상 탱크와
저장 탱크를 통해 흘러나오는데, 문제는 소량 유출이 확인된 저장 탱크 속 오염수다. 저장 탱크에 보관하는 오염수는 원자로를 식히는데 사용했던 물이라 다른 유출 오염수에 비해 농도가 매우 높다.
당장 오염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대책도 없다. 후쿠시마의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서는 하루 400톤의 물이 필요한데, 냉각수가 원자로를 통과하면 고농도로 오염된다. 이 오염수 보관 장소가 포화상태다. 지상 저장 탱크 1천개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이는 도쿄전력이 오염수 유출을 시인한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계에 다다른 도쿄전력은 "무작정 저장 탱크를 더 만들 수 없다"며 정밀 정화 장치를 거친 저농도 오염수를 바다에 배출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다.
도쿄전력이 추진하는 대책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지하수가 원자로로 흘러들어가기 전 옆으로 빼 바다로 직행하게 하는 이른바 '지하수 바이패스'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어민들과의 이해관계 문제가 걸려 있다. 또다른 방식은 방사성 물질 대부분을 걸러내는 장치를 가동하는 '알프스'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시험운전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해 현재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오염수 유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1일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문가들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으며, 이번 사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 오염수 유출 사고에 대해 '중대한 이상 상태'를 뜻하는 3등급 평가를 내렸다.
점점 커지는 방사능 확산의 공포이렇게 유출된 오염수는 해류를 통해 태평양으로 확산된다. 대기 중의 세슘 등 방사성 물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페이스북 등 SNS를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방사능 지도'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전세계핵무기 실험 금지 감시를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IMS(The International Monitering System) 시스템에 포착된 세슘137과 요오드131, 제논133 등의 대기중 수치가 표시된 방사능 확산도다.
세슘137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증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가며 일단 흡수되면 배출이 잘 되지 않고 주로 근육에 농축된다. 세슘이 많이 침투하면 불임증, 전신마비, 골수암, 폐암,
갑상선암,
유방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세슘137의 반감기는 30년인데, 정상적 대사과정을 통해 방출되고 몸에 남는 양이 극히 적어 실제 생물학적 반감기는 100~150일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체에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반감기 자체가 지수함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세슘에 노출될 경우 완전히 없어지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축적된다는 지적이다.
이 '방사능 지도'에는 일본 후쿠시마 인근에서 발생한 세슘137 등 방사성 물질이 태평양을 넘어 미주 대륙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후쿠시마 사태 직후 나온 방사성 물질 세슘이 5년 후 미국 서해안에 도달한다는 시물레이션 결과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이 같은 방사능 확산 정도를 추정할 수 있는 방사성 세슘 검출 사례는 지난해부터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잡은 참다랑어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누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된 것.
당시 뉴욕 스토니 브룩스 대학 연구진은 "샌디에이고 해역에서 잡힌 참다랑어 15마리를 조사한 결과, 모두 체내 함유 세슘134와 137 수치가 지난해보다 10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AP통신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누출된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참다랑어가 태평양을 건너 미 연안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내에서는 최남단 규슈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방사성 세슘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물레이션 결과가 일찌감치 나왔었다.
사고 직후 나고야대학 국제연구팀의 방사성 물질 오염 시물레이션 결과 세슘 오염도는
홋카이도의 경우 동부지역에서 토양 1㎏당 최대 250베크렐, 주코쿠.시코쿠 지방의 산악지역에서 최대 25베크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 지역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방사성 물질 측정에서 오염되지않은 것으로 조사된 곳이다. 이는 규슈를 제외한 일본 거의 전역이 세슘에 오염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본 후쿠시마현 대피소에서 방사선 검사를 받고 있는 아기.ⓒ뉴시스/AP
연구팀의 야스나리 테쓰조(安成哲三) 교수는 당시 "방사성 세슘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국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핫스팟이 나올 우려도 있는 만큼 전국적으로 토양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사성 세슘 및 요오드의 축적으로 나타난다는 갑상선암 발생이 후쿠시마 거주 미성년자들에게 높게 나타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일 후쿠시마현민건강관리조사 검토위원회는 보고회를 열고 원전사고 당시 현내에 거주하던 18세 이하 미성년자 중 18명이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두 달 전인 6월 12명보다 6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검토위는 암 의심환자도 25명으로, 6월(15명) 발표 당시보다 10명이나 늘었다고 덧붙였다.
후쿠시마현은 2011년 3월11일 원전사고가 발행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미성년자 36만명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2년 전 조사에서는 갑상선암 환자 9명, 의심환자가 4명이 나왔으나 지난해 의심환자가 21명으로 늘었고, 이번에는 암환자 및 의심환자가 43명으로 급증했다.
물론 갑작스런 갑상선암 발병률 증가가 우연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증가세가 매우 급격하다. 유럽방사능위기대책 위원회(ECRR) 소속인 크리스토퍼 버스비는 "이런 증가율이 우연이라고 칠 수도 있다"면서도 "후쿠시마는 갑상선 암의 발병 원인인 방사성 요오드가 대량 검출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7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이어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신화도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되면서 세계 원전사에서 일대 전화점이 될 가능성도 크다.
우리 식탁은 안전한가
원전 고농도 오염수 누출과 방사능 확산도가 퍼져나가면서 국내에서도 일본산에 대한 공포까지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에서는
수산물에 이어 과자, 맥주와 같은 가공식품,
화장품까지 일본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식탁 공포는 일본산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해류를 타고 태평양으로 오염수가 확산되고 있어 태평양 등 더 광범위한 지역의 수산물이 방사능에 오염될 가능성이 대두된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배출을 인정한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특별시의회 본관 앞에서 환경운동연합, 녹색당, 핵 없는 세상 등 18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후쿠시마 앞바다를 통해 북상한
오징어떼 중 일부가 9~11월 쓰가루해협을 통해 우리나라 동해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방사능 오염 수산물이 근해에서 잡히게 되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는 일본 쿠슈 남부해역에서 월동하다 5~6월 한반도 주변 해역 및 일본 태평양측 후쿠시마 해역으로 각각 북상한 뒤, 8~9월 러시아연안, 훗카이도 해역까지 북상했다가 남하해 내년 1~3월께 월동장인 쿠슈 남부 해역으로 회유한다.
이와 관련해 수과원 관계자는 "오징어 중 일부가 쓰가루해협을 통해 동해로 오기 때문에 방사능 검사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뿐 아니라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참다랑어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동일본 해역을 출발해 태평양으로 빠져나간 뒤,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 3~4년 내 일부 한반도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고등어의 경우 일본으로 회유하는 어종을 우리 측이 잡지 않지만, 수입 금지 대상이 8개현 생산 고등어로 제한돼 있어 전면 금지하지 않는 이상 우리 식탁에 올라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환경단체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즉각 중단과 태평양산 수산물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방사능 피해예방 모임 '차일드 세이브'는 지난 1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과 먹거리 안전 확보를, 환경운동연합 등 18개 환경시민단체는 26일 각 지자체에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