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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과 전체>
- 하이젠베르크 (지식산업사, 2005)
12장 혁명과 대학생활(1933년)
- 1993년 초에 라이프치히 연구소로 돌아왔을 때 파괴는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내 세미나에 참석하던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독일로부터 망명을 하였고, 나 자신도 독일에 남아 있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강의를 듣고 있던 민족적 사회주의자인 어느 젊은이와 나눈 대화와 막스 플랑크와 나눈 대화가가 도움이 되었다.
- 젊은 민족적 사회주의자 : 선생님께서는 지금 독일에서 증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죄 없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또 독일로부터 추방되고 있다는 사실에 노하고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저 또한 그와 같은 부정을 선생님과 같이 매우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커다란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는 좀 지나친 일들이 뒤따른다는 것, 그리고 처음 단계의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는 못난 사람들도 이러한 과업에 끼어들게 마련이라는 점 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독일은 내적인 부패와 외부적인 압박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분명히 선의의 수단만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구태의연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개화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가 도무지 석연치 않은 수단을 사용하는 어떤 사람을 추종하고 있다고 우리를 비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구체제의 대표자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리고 현재의 혁명을 비판하는 늙은 교수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선의의 수단으로써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더 나은 길을 우리 젊은이에게 제시하려고 한 사람이 있습니까?
-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옛 형태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옛 형태들이 이미 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다만 일종의 타성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견지되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어째서 그러한 것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예를 든다면 교수들이 여전히 중세적인 가운을 걸치고, 대학의 식전에 나타나는 따위의 행위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이젠베르크 : 지금은 거대한 민중이 이 운동에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때에는 몇몇 학생들과 교수들의 의견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혁명의 지도자들은, 민중이 자기들과는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올 수 있는 이성을 가지라는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성인들을 경멸함으로써 확증하고 있습니다.
- 결국 먼 장래에 놓여 있는 목표달성을 위해 세운 정치적 계획에 대하여 가치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항상 매우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정치적 운동이란 큰소리로 외치며 실제로 달성하려고 하는 그 목표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실현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수단에 따라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사회주의자의 경우나 공산주의자의 경우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단은 참으로 졸렬한 것이며, 장본인들조차도 자기 이념의 실현을 위한 설득력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우리가 과학에서 혁명을 말할 때에는 그 혁명을 정확하게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에서는 사람들이 되도록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즉 우선 좁고 윤곽이 확실한 문제의 해결에만 한정시킬 때, 그때에만 결실 있는 혁명이 관철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난센스에 이르게 됩니다. 확립되어 있는 것을 모두 뒤집어엎으려는 짓은 자연과학에서는 다만 무비판적인 반미치광이 같은 광신자들만이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옛 형식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 형식들에 따라서 표현되는 내용이 문제됩니다. 학식과 우수한 사고력을 지니고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면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의 그룹이 인간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경험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가운은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하는 특수한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개인적으로는 그와 같은 요구를 다 충족시키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을 무식한 대중의 공격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오늘날에도 수백 년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 이후 당국의 대학에 대한 간섭은 차츰 심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훈장을 받고 지위도 법적으로 확고했던 동료 교수 수학자가 돌연 그의 지위에서 해제되어, 그때 젊은 교수들이 분노하였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교수직 사퇴하는 운동을 펼칠지 진지하게 고민 중에 막스 플랑크와 면담.
- 막스 플랑크 : 나는 아직 당신이 젊은 사람으로서 그와 같은 대처로서 파국을 저지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대학이나 정신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너무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사회에서는 당신들의 항의를 사실상 아무도 모를 것이며, 신문들은 물론 그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의 있는 논조로써 당신들의 사직을 보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신들의 계획은 이 파국이 끝날 때까지 당신들에게 반작용만 미칠 것이고 기껏해야 이 재난이 다 지나간 뒤에나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 선택1, 교수직 사직한다면 : 최상의 경우에는 외국에서 어떤 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 경우는 외국에 가면 이 같은 재난 밖에서 안주하면서 조용하게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파국이 끝을 고할 때 당신은 저 무법자들과 타협하지 않았다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귀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며, 당신는 지금의 당신과 많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때 과연 당신이 많은 변화가 일어난 이 땅에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 선택2, 사직하지 않고 그대로 머문다면 : 당신은 결국 이 파국을 저지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불변의 고도들을 이루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젊은 사람들을 당신 주위에 모을 수 있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학문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의 의식 속에 옛날의 올바른 가치척도를 심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정신을 가지고 이와 같은 공포시대를 끝까지 헤쳐나갈 수 있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파국이 끝난 뒤 이 나리의 재건에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인종 문제로 말미암아 이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 머물러 먼 미래를 위해서 무엇인가 준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위험이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여지없이 강요되는 타협 때문에 뒤에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며, 때에 따라서는 법의 제재를 받는 일도 있을 겁니다.
-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언어도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산다는 것 자체가 옳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어떤 부정과 관련을 맺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결국은 자기 자신만을 의지할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까닭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 파국이 끝날 때까지 여러 가지 불행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지 말라는 충고 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 하이젠베르크 : 사람들이 이민을 결심하였다면, “사람은 일반적인 최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에 맞도록 자기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칸트의 요구와는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사람이 이민을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그때그때의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쉴 새 없이 방황해야만 하는 것일까. 결국 사람이란 출생과 언어, 그리고 교육으로 말미암아 어느 특정한 나라에 소속되게 마련이다.
13장 원자기술의 가능성과 소립자에 관한 토론
14장 정치적 파국에서 개인의 행위
- 내가 독일에서 보냈던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직전의 몇 년 동안은 항상 무한한 고독 가운데서 시달리는 그러한 기간이었다. 나치는 더 경직되어 갔으며, 내부로부터 개선 같은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도 없었다. 독일 안에서는 개개인의 고립화가 심해지고 있었으며, 서로 간의 이해는 차츰 어려워져만 갔다.
- 나는 1937년 어느 음산하게 추운 겨울 아침, 라이프치히 중심가 노상에서 동계빈민구제사업에 기장을 팔고 있었다. 이런 활동도 그 시기를 참고 견디어야 했던 사람들의 굴종과 타협에 속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금상자를 들고 서성거리면서 완전히 절망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강요에 못 이긴 나의 굴종적인 제스처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내 활동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완전한 무의미성과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내 심정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하게 무시무시한 정신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 그날 밤 출판업자의 실내음악 연주에 초대받아서 연주, 초대된 청중 가운데 한 젊은 여성과 첫 대화를 나누자 그 여성은 그날 내가 빠져 있던 환상의 피안과 현실 세계 사이에 교량 구실을 해 주는 것이었다. (몇 달 뒤 결혼) 다가오는 폭풍에 맞설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 한스 오일러는 여전히 우리 집에 초대되는 정기적 손님이었다. 어느 날 오일러는 근교에서 며칠 동안의 강사와 조교들의 합숙훈련에 참가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나는 그에게 조수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그 훈련에 참가할 것을 권하였다. 오일러가 돌아왔을 때 그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 한스 오일러 : 그 합숙훈련의 인간 구성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처럼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참가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히틀러 유겐트 지도자가 끼어 있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진실로 민족적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있었으며 거기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 젊은 나치당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저 자신과 같은 것을 바라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또한 물리적인 번영과 피상적인 명성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척도로서 통용되고 있는 경직된 사회를 견딜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이런 공허해진 형식을 더 완전한 것, 그리고 더 생동하는 것으로 대체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저 또한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시도가 있었음에도 어떻게 저런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그리고 있었던 전체적인 상에 커다란 혼란과 의문이 찾아 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좌익운동이 성취될 것을 희망해 왔습니다. 운명이 그렇게 이루어졌더라면 아마도 행복과 불행이 인간사회에 달리 분배되었을 것이고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비인간적인 면이 지금보다 더 적어졌겠는지 지금의 저로서는 분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공동화된 옛 형체를 그냥 지켜나가는 것이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며, 그런 일들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은 무엇을 바라야 하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 H : 사람들이 다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며, 그때까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영역에서 질서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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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절지백>
9장 개미혁명 (후반부)
349 죽음은 이렇게 생겨났다
- 죽음은 지금으로부터 7억 년 전에 출현했다. 40억 년 전부터 그때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단세포에 한정되어 있었다. 단세포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똑같은 상태로 무한히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죽음을 모르고 살아가던 어느 날, 두 세포가 만나, 서로 도우며 함께 생명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에 따라 다세포의 생명 형태가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죽음도 생겨났다. 두 세포가 결합하자면 소통이 불가피하고, 그 결과 더 효율적인 생명 활동을 위하여 자기들의 일을 분담하게 된다.
그 후로 세포들은 더 큰 규모로 결합하게 되었고 각 세포의 전문화가 더욱 진전되었다. 세포들의 전문화가 진전될수록 각각의 세포는 더 허약해졌다. 허약성이 심화되어 마침내 세포의 본래의 불멸성을 잃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죽음이 생겨났다.
- 죽음의 필요성은 다른 관점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죽음은 종들 간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만일 영원히 죽지 않는 다세포 종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 종의 세포들은 전문화를 계속하여 계속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고, 생명 활동이 너무나 효율적인 나머지 다른 모든 생명 형태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암세포가 활동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다른 세포들은 고려하지 않고 불멸성을 헛되이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증식하다가 마침내는 자기 주위에 모든 것을 죽여 버린다.
351 샤머니즘
- 샤머니즘은 인류의 거의 모든 문화가 경험한 신앙 형태다. 샤먼은 지배자도 사제도 마법사도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단지 인간과 자연을 화해시키는 데에 있다.
- 샤먼의 입문 과정은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던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적응하느냐 사라지느냐 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습생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잊고 정신을 비워내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무엇을 판단하거나 분별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 인격을 해체하여 야성의 동물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수련 과정이 오히려 수습 샤먼을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훌륭한 인격자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수련 과정을 다 마치고 샤먼이 되면 자기 자신을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지력과 직관력이 우수해지고 도덕성도 한결 강해진다.
- 오늘날에는 샤먼들이 접신을 준비하면서 마약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을 사용하는 일이 점점 빈번해지고 지고 있다고 한다. 그 현상은 샤먼들의 수련 과정이 예전의 특질을 잃고 있으며 그들의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