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가는 길***
11월 3일, 1박2일의 여정으로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경상북도 청도를 다녀 왔다.
청도는 나의 출생지이자 내 부모님의 고향...
일년에 두어번, 벌초와 성묘하러 청도를 내려가는 나와 달리 어머니나 동생은
수년만의 고향 나들이다.
평소의 고향방문은 집안의 대소사를 치루기 위해 하는 방문이기에 일정에 쫓겨
바삐 귀경하기 일쑤였지만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차근히 여유롭게 고향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어린 시절의 추억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애초부터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요근래 당뇨와 관절염 등의 지병으로 부쩍 보행이 불편한 어머님과의
고향방문을 더이상 미룰 수 없었고 한편으론 10월초 갑작스레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한 여동생을 위한 휴양의 의미이기도 했다.

은둔과 청정의 고장 청도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느리게,천천히 둘러보기

두 모녀

지금은 고속도로를 통해 바로 갈 수 있지만 예전엔 대구에서 청도까지
어느 길을 택하던지 높은 재를 넘어야 했다.
평소 이용하던 팔조령이 아니라 대구 가창저수지에서 진입하는 헐티재를 택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울 엄니의 친정이자 나의 외갓집인 각북면 삼평리에 도달한다.


헐티재 정상부근의 카페촌에서 소박하고 따뜻한 점심을 먹었다.

식당에서 바라본 비슬산(1,083m)


헐티재를 넘어 십여리를 달리니 드디어 외갓집 앞마당에 도착

2년전 외숙모님이 돌아가신 후 비어 있었는데...
뭔일일까? 수리하다 말고 방치된 듯 어수선하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창틀이 있는 방에서 내가 태어났다.
청도가 고향인 내 부모님은 결혼 후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는데
나를 잉태하고 출산이 임박하자 이 곳에 내려와 산고를 치르셨다 했다.

사랑채는 낡아 허물었는지 빈 터만 덩그마니 남았네.
중딩시절, 방학이면 내려와 머물던 사랑방이었고 이 방에서 중국소설 '스잔나'를 읽으며
슬프고 허무한 사랑을 막연히 꿈꾸었지.
외사촌형의 낡은 기타를 몰래 튕기며 "님은 먼곳에"를 부르다 줄을 끊어 먹곤 했는데
나를 혼내키던 그 형님은 퇴임을 앞둔 근엄한 교수님.....이젠 그 시절을기억이나 할까?

디딜방아와 뒷간이 있던 자리도 흔적없이 비워지고 늙은 감나무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물어진 담장 너머로 작은 외갓집이 보이는데

빼곰 들여다 보았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내 유년의 기억에 외갓집은 풍요의 집이었다.
동행한 여동생 역시 외갓집에 오면 항상 사람이 넘쳤으며, 재물도 넉넉했다 라고 기억한다.
의용 소방대장이셨던 외삼촌은 과수원을 운영했는데 60년대로선 귀한 참외,수박,복숭아 등을 우리 서울 촌놈들은 외갓집에 와서 처음 먹어 봤다.
허물어진 폐가를 둘러보며 외할머니,외삼촌 내외를 비롯한 이 곳에서의 모든 인연들이
너무도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구나 하는 맘이 들어 짠하다.
내 나이듦 탓일까...갑자기 이 분들의 빈자리가 더욱 공허하다.
인생무상...내 심사가 이럴진대 울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 허허로우실까.
우리 남매는 막내딸이 종갓집에 시집가서 낳은 귀한 종손의 대접을
외갓집에서 제대로 받은 듯 싶다.
***친가 가는 길***

외갓집을 둘러본 후 이십여리 떨어진 각남면 옥산2리 본가로 향했다.
양가에서 십여리씩 떨어진 중간 지점에 우시장으로 유명한 풍각장터가 있는데
어릴적 할아버지 손잡고 따라나서 구경하던 왁자한 풍경이 그려진다.
차근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장날이 아닌지라 그냥 스쳐 지나치고 말았다.
풍각장 가는 길 김중곤
낡은 시골 버스타고 오일장 풍각 가는 길
간이역처럼 초라해진 시골 버스 터미널
상처난 짐승처럼 크르릉 앓다 버스는 떠난다.
여남은 승객들 늙은 얼굴을 싣고
사라진 시간속 더듬어 가듯경산 남천 지나 문닫은 역마차가든 지나
버스는 낙엽처럼 가을 속을 구른다.
생각은 구불구불 사행의 재를 넘고
청도 중앙초등학교 옆 저수지
가을볕살이 가득하다.
한 손이라도 급한 가을 들판
늙은 경운기 혼자 투덜투덜 거리고
지천으로 널린 청도 가을 반시
작은 등 점점이 붉게 내걸렸다.
청자 빛 뿌리며 가을이 환한데
풍각장이 사라진 풍각장엔 가을도 파장처럼 신이 나지 않았다.
풍각장 인근 신당이란 곳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를 좌표삼아 시골 고향집을 찾아 갔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방학이면 어김없이 두 동생과 함께 엄마가 태워 주신 야간 완행열차를 타고
밤 새워 달려 청도역에 도착하면 새벽 4시...
역전에서 놀다 9시 첫 버스를 타고 은행나무가 있는 이 곳에 내린 후
한 여름엔 뙤약볕 어질한 십리길을 여치랑 개구리랑 물고기 잡으며 걸었고
한 겨울엔 칼바람 몰아치는 허허벌판 가로지르고 개울건너 어린 삼남매는 연어처럼 고향을 찾아 갔다.

각남면 옥산1리 대산초등학교(현재 폐교)
나는 세살부터 일곱살까지 시골 내려 와 조부모님 품에서 자란 후 취학하러 서울에 올라 왔는데
내 후임인 막내 남동생은 어찌된 연유인지 이 학교를 한학기 다니게 된다.



학교가 있는 아랫마을 1리에서 서서히 다가서며 바라 본 옥산2리가 내 고향 마을인데
고즈넉한 가을 들녘이 참 평화롭다.
정면 산 밑자락에 숨어있는....끝마을인데 길도 없는 저 산을 넘으면 경남 밀양에 닿는다.



때마침 단풍고운 산허리에 퍼지는 저 연기는 누구의 혼을 싣고 떠나는 것일까?
또 하나의 육신이 고향땅에 몸을 눕히고 안식을 취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렇듯 고향이란 무심한 듯 넉넉하게 품어 준다.

고향마을 어귀에서 만난 배나무 터널

배나무 단풍과 벼이삭의 색감이 수채화를 보는 듯




11월초,이 맘때의 청도는 온통 감빛 투성이다.
마을도,들녘도,야산도,심지어 가로수까지 이 곳 저 곳 할 것없이 온통 감의 장관을 보여준다.
시장 어귀 자판에 놓인 한무더기 청도반시만 봐도 뭉클해지는 내 고향의 상징같은 것.

그냥 갈 수 없잖아.....동네 초입의 감나무밭으로 들어 섰다.
여행 내내 어머니의 구부정한 허리와 절룩거리는 보행에 마음 아팠다.


본디 풍성한 감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자고 들어섰는데


어디 그게 맘대로 되나요?
잘익은 홍시 몇 개 따서 맛보는데 인공 숙성이 아닌 자연 숙성된
씨없는 반시의 그 찰지고 감칠 맛은 형용불가!!!!
나 어릴 적 쌀독에 갈무리해 둔 귀하디 귀한 겨울홍시를 꺼내 먹여 주시던 할머니 생각난다.


감나무 사이 듬성히 심어 놓은 대추나무에 수확하고 남은 까치몫의 대추가 달려 있길래
맛을 보니 어찌나 여물고 달던지 .... "이삭줍기"를 하였더니 제법 실한 소득이 되었다.
의정부 딱정벌레 시절 어머니가 걸죽하게 달여 낸 대추차는 최고의 인기 메뉴였지.
감 대추 서리는 함부로 하면 안되지만 우린 체면불구하고 깔깔거리며 강씨 아재꺼 몇 개 털었다.
참, 내 조부께서 물려주신 이 산골 집과 전답에 감나무 수십 그루가 있는데 강씨 아재가 잘 관리해 주신다.
첫댓글 사진과함께 딱정님글을 읽어 내리자니 그동안 메말라 건조해있던 마음이 촉촉하며 풍요로워지네요


2편,3편을 빨리 읽어 보고픈마음에 서둘러 다음페이지로
아 갑장 요명님 오랫만입니다.
동시대를 살아오며 같이 겪어 봤슴직한 이야긴걸요.^^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한 고향 청도 여행, 그야말로 감회가 깊으셨겠네요. 몇년 전 딱정벌레님과 부산 함께 가다 잠시 들렀던 곳, 청도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가창저수지, 비슬산 등 제가 업무로 대구에 2년 정도 있을 때 자주 가던 지명이 나오니 반가운 마음.
모쪼록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의 건강이 조속히 회복되길 빕니다. 마치 저도 함께 여행을 떠난듯 가슴이 따듯해지네요.
대구에 근무하셨다니 청도가 낯설지 않을 겁니다.
글구 몇 년 전 함께 한 여행길에 스쳐 갔지요.ㅎㅎ 그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머니 여동생과 고향을 다녀오며 어릴적 추억담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직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내 고향 청도!
고향 분을 만나니 많이 반갑습니다.
저는 청도군 청도읍 음지동(한재)이 고향이지요.
각남은 저의 작은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저의 오빠들은 중고등 학교를 청도 중학교와 모계 고등학교를 나왔지요.
저는 경남과 부산쪽으로 가게 되었지만..
딱정벌레 어머님께서 홍시 드시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저도 저렇게 홍시를 많이 먹었지요.
이번 가을에도 친정에 가서 몇 일 묵으면서 아침마다 홍시를 따 먹었습니다.
싸아한 가을 아침에 먹는 홍시 맛은 정말 꿀맛입니다.
청도 반시는 오직 청도에서만 서식이 가능하다고 하지요.
청도 반시의 씨를 다른 곳에 심으면 씨가 생긴다고 하니.
객지에서 청도 분 만나기 쉽지 않은데 그린님과는 사오모에서 뵙고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참 반가웠답니다.
지명도 학교 이름도 익숙하네요.
말씀처럼 씨없는 청도 반시는 오직 청도에서만 생산되지요.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채가 곳곳에서 묻어나는군요.


참 아름다워요
연로하신 어머님과 여동생과의 청도 여행 다음 편 보러가야지
연중 가장 아름다울 때 다녀 왔습니다.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