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비워 두었던 시골집 수도 계량기에 200톤이 검침되었다고 전화 오다. 동파로 인해 누수가 되었다고 한다. 시청에 전화하니 감면 신청을 와서 해보라고 달콤하게 설명해 준다.
해가 쨍한 날 골라 시청에 가다. 시청은 어마하게 크고 가로수부터 정원수, 녹지가 잘 가꿔져 있다. 점심시간인지 공무원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스웨터를 입고 팔짱 끼고 걷는 여자에게 묻는다. 1시까지 업무를 안 보나요 하니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며 쏘듯이 말한다. 나는 은행이나 백화점처럼 공백 없이 하는가 싶어 물었는데 과잉반응을 해서 살짝 언짢아졌다. 처음 퇴비 신청하러 면사무소에 갔을 때도 작업복 차림의 농촌 주민들은 왠지 주눅이 들어 있고 도시의 동사무소 보다 웃음이 없는 직원들은 대답도 제때 하지 않아 화가 나서 한마디 했는데 그 후 갈 때마다 내가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았다.
결과는 실외 파열이라 삭감이 안 된다고 한다. 그래도 신청서를 쓰고 수리비 영수증도 내고 나온다. 갑자기 모든 게 구차스럽게 느껴지고 손해 봤다는 억울함이 밀려온다. 소풍 왔다 치고 화창한 날 낯선 길을 무작정 걸어 보는 것도 의미 있겠지 싶어 역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저 산을 돌면 누각이 나오고요 또 다시 쭉 가서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 가보세요. 걷는데 자신이 있으면 한다.
성 밖 해자를 복원하여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시장을 지나니 강이 나오고 영남에서 가장 크다는 누각이 보인다.
노란 등산복 재킷을 입고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또래 여자에게 말을 붙인다. 서울서 왔다고 한다. 아들이 엄마 제발 좀 나가서 돌아다니다 오라고 방까지 예약해 줬고 10년 만에 나들이라고 한다. 얼굴에 비치는 그늘을 나는 외면하고 싶어진다. 여자들끼리는 직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생일 때 아들과 찍은 사진이라고 보여준다. 준수한 아들이라고 큰 소리로 감탄한다.
아들에게 보내라고 사진을 찍어 준다. 누각 기둥 옆에서 고운 웃음을 짓는다. 배낭을 메고 오시지 왜 불편하게 손가방을 들고 다니느냐고 쓸데없는 참견을 해본다. 아들이 사준 이 재킷은 주머니가 많아 괜찮다고 말한다. 아들은 엄마 인생을 지탱해주는 축과 같다.
건널목에서 허리를 숙여 작별 인사를 한다. 다시는 볼 수 없고 잊혀 질 얼굴을 서로 보면서.
다리 위를 걷는다. 배가 고프다. 지나가는 여자에게 묻는다. 먹을 만한 식당이 있느냐고, 자기도 손자 봐주러 온지 한 달밖에 안되어 모르지만 골목 안 국수집으로 가보란다.
너무 짜서 혀가 얼얼하다. 다 먹고 나서 주인 할머니에게 소문 듣고 찾아 왔다고 하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맛이 어떻소 한다. 너무 짠데요. 가감 없이 대답하니 매우 서운해 하는 눈치다.
두 시간 반 동안 걷고 또 걷는다. 역이 어디쯤인지 안보여 강둑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반복한다.
위가 계속 아프다. 양념이 맞지 않으면 통증이 생겼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주먹밥이나 떡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다.
오후 해가 가득한 철로를 따라 후줄근한 무궁화 열차가 들어온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케이오 당한 권투선수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다.
첫댓글 저는 외식을 하게되는 경우에...
식당을 잘못 찾아 맛 없는 음익을 먹게되는 경우에는 그 날 하루가 다 망가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맛있는 식사는 진짜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ㅎ.
언젠가 ...강원도에서 맛 본 산나물정식은 아직도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ㅎ.
각 지방마다 맛 있는 식사를 한 기억은 언제까지나 다시 한번 그 곳을 찾아가보고 싶게 하지요.^^*
생생정보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곳을 찾아가서 먹어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칩니다
그러나 가까운 곳이면 가보겠지만 언제나 마음뿐이랍니다.
객지에서 기대도 안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정성스럽고 깊은 맛을 내는 음식을 먹게 되면 대박이라고 외치고 싶어집니다.
저도 순천 송광사앞에서 산채비빔밥을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살기위해서 먹는다는 말도 있고
먹기위해서 산다는 말도 있는데...
둘다 맞는 말이죠 ? 한번씩 먹거리를 찾아 가까운 곳부터 가보시면 좋을겁니다..^^*
@산소년 네 먹기 위해 살고 싶고 살기 위해 먹고도 싶습니다.
믿을 수 있는 맛집소개 정보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즈녁하고 나른한 어떤 하루 일상이 그려집니다!! 아니~~특별하지...피같은 돈이 나가고
그닥 상태가 안좋은데다가 음식마저...... 피곤하다 피곤해 아~~함!!!
혼자 걷는 게 좋기도 하지만 집에 와서 되돌아 보면 묵직한 외로움을 안고 걸은 느낌이 듭니다.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잘 읽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편영화를 본 느낌이네요.
왜이렇게 쓸쓸할까요.
쓸쓸한 하루여서 글이 써지게 되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가평에 여행차 들렀다가 친구랑 정심을 해결할 데를 찾다가
국도변에 막국수집.. 차들이 많고 그 지역민들이 많이 찾는곳인듯하여 안심하고 들어갔다가
진한 조미료 맛에 기겁하고 오후 내내 트림으로 올라오는 그 역한 조미료 맛에 계속 시달렸던 기억이갑자기 나네요. ,
여행 가면 먹는 것을 선택할 때가 가장 망설이게 됩니다. 저도 경북 어느 식물원에 갔다가 길가 음식점에 들렀는데 상한 고등어 구이기름에 식도역류가 되어 혼이 난 적이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허름한 물회집에서는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답니다.
관공서에 계시는 분들의 애민, 선공후사등의 자세가 많이 필요하다고 공감됩니다.
식사 교대근무등을 시행하고 있지 않나 봅니다.
센~~ 곳인가 보군요.
설사 그런 제도가 없어도 그냥 식사시간입니다 라고 설명하면 될텐데요.
옳은 말씀입니다. 성실한 공무원도 많지만 그날은 성질이 차가운 사람을 만나 것 같습니다.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밀양인가요? 아주전에 저는 영화 "밀양"을 보고 문득밀양에 가고싶어 서울에서 ktx타고 혼자다녀온 기억이 있는데..글에나와있는 영남에서 가장크다는 누각도 올라보고 성곽도 한바퀴돌고..
예 맞습니다. 영남루였습니다.
밀양영화 촬영한 교회 등이 있었습니다.
수도세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
아직 고지서가 안 나왔습니다
수도세폭탄 / 차가운 공무원 / 짠국수
국수라도 맛있었다면 기분이 좀 풀리셨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