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 |
지난 8월 28일 친구와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여행을 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이모(22)씨는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실제 표시된 가격과 판매가가 달랐다. 화가 났지만 급하게 세운 여행계획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표를 구매했다. “인턴이 끝나자마자 8월 28일 출국하는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티켓 값을 알아보니 기본 운임이 25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실제 판매가는 36만원이 넘었습니다. 구입 전 ‘유류할증료, 공항이용료, 기타 세금, 수수료 미포함’이라는 글을 봤지만 이 정도로 가격이 차이가 날 줄 몰랐습니다. 세금 내역 중 유류할증료가 26달러(9월 3일 기준 약 3만600원)로 세금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급하게 세운 계획이라 비싸지만 어쩔 수 없이 표를 구매했습니다.”
왜 항공업계에만 특혜 주나
유류할증료는 유가 인상으로 운임에 추가적으로 부가되는 할증료를 말한다. 현재 유류할증료는 2008년 6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기준에 따라 책정된다. 국제선의 경우 싱가포르항공유 가격이 갤런당 150달러 이상일 경우 1단계 유류할증료가 적용되고 10달러 상승할 때마다 단계가 올라간다. 갤런당 470달러 이상일 경우 마지막 33단계의 유류할증료가 적용된다. 1단계일 경우 단거리는 2달러, 장거리는 5달러의 유류할증료가 부과되고 단계가 오를 때마다 단거리는 4달러, 장거리는 9달러가 추가된다. 33단계에서는 단거리는 129달러, 장거리는 293달러의 유류할증료가 부과된다. 2010년 9월 기준 유류할증료는 6단계가 적용돼 장거리는 50달러, 단거리는 22달러가 부과되고 있다.
유류할증료는 유가급등으로 인한 국적항공사의 부담을 완화하고 외국항공사와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시행됐다. 화물 운송에만 적용되던 유류할증료는 2005년 4월 15일 일부 여객노선에도 적용됐고, 2005년 7월부터는 모든 국제여객노선에 적용됐다. 2008년 7월에는 국내선에도 유류할증료가 부과됐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운송업의 경우 유류비용이 전체 비용의 35% 정도를 차지해 유가상승에 의한 유류할증료 부담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이하게 항공업계에만 적용되는 유류할증료 때문에 소비자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택시와 버스에서는 내지 않는 유류할증료를 왜 내야 하는지, 기준은 어떻게 측정되는지 충분한 설명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박이랑(24)씨는 “유가가 상승하면 항공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이 어려운데 왜 항공업계에만 특혜를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항공사마다 유류할증료 부과기준이 제각각이라 소비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회장 김재옥)은 지난해 3월 우리나라에서 발권, 출발하며 정기 운항하고 있는 45개 국제선 여객 항공사와 6개 국내선 여객 항공사를 대상으로 유류할증료 부과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45개의 국제선 여객 항공사 중 11개의 외국 국적 항공사는 유류할증료를 받고 34개의 항공사는 유류할증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또한 그 당시 국내 항공사들은 국제선에는 유류할증료를 받지 않으면서 국내선에서는 유류할증료를 받고 있었다. 부과되는 유류할증료도 2400원(이스타항공), 2700원(제주항공·진에어), 3300원(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으로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의 거리와는 상관 없이 동일하게 유류할증료를 부과하고 있어 유류할증료의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난 9월 1일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모든 항공사들의 국내선 유류할증료는 6600원으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항공사 흑자전환 불구 소비자만 덤터기
유류할증료가 2005년 처음 도입되고 2008년 확대시행된 이유는 고유가로 인해 국적항공사의 경영실적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글로벌 항공업계는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부과해야 할 유류할증료가 계속해서 부과되면 유류할증료의 상설화가 돼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항공사 적자를 메워주고, 항공사의 모럴 헤저드를 부추길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2008년 6월 세계 2위 항공사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고유가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자사 소유 저가항공사 ‘테드’의 문을 닫고 비행기 70대를 줄였다. 이에 비해 국적항공사들의 위기타개 자세는 소극적이었다. 대한항공은 2008년에 전년도 대비 항공기 보유수를 2대 줄인 반면 직원은 268명 늘렸다.
또 국적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와 더불어 과점적 시장지위와 담합을 통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외항사들과 유류할증료를 담합해 지난 5월 1억1000여만원의 과징금을 문 사례가 있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월 저가항공사들의 시장 진출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이유로 각각 103억9700만원, 6억4000만원 등 총 110억여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국적항공사들의 실적은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2008년과 2009년 유가급등과 경제 위기로 주춤했던 국내 항공업계의 영업이익은 2010년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치를 경신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공개한 경영실적에 따르면 상반기 영업이익은 각각 5723억원, 2928억원이다. 경제위기 당시 적자였던 영업이익이 대한항공은 2009년 3분기부터, 아시아나 항공은 2009년 4분기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국제민간항공운송협회(IATA)는 2010년 여객수요 7.1%, 화물수요는 18.5%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올해 입출국여행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1900만명(일평균 8만4000명)에 비해 24%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일일평균 해외여행자 10만명 시대를 맞게 됐다. 경영악화를 근거로 도입한 유류할증료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류할증료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국토해양부 국제항공과 관계자는 “유가가 떨어지고 영업이익이 올랐다고 유류할증료 제도를 무작정 바꾸는 것은 아니다. 아직 유류할증료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어려웠던 업계의 형편을 위해 유류할증료를 받아들여왔다”며 “전체적인 영업실적이 좋아지면 그동안 유류할증료로 보전해주었던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환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항공업계는 여전히 업계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정부의 기업 중심의 산업화 정책 내지 기업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소비자가 희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