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 수교와 민족통일
글 은호기/ 자유기고가, 샌디에이고 거주
지난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 교환, 발표함으로써 40여년의 '교전상태'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였다. 여기서 '교전상태'라 함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 휴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 이며, 휴전상태란 교전상태의 일시적 변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예상은 하였지만 이렇게 달리 이루어질 줄 몰랐던 한• 중 수교를 놓고 남한에선 북방외교의 승리라고 기쁨이 가득한 반면, 오랫동안 수교 이상의 관계를 맺어왔던 중화민국(대만정부)으로부터는 배신이라고 규정, 단교를 당했으며, 사전에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부터 통고를 받았음에 틀림없는 북조선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웃나라, 특히 역사적으로 아세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여 온 중국과 오랫동안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협력체제를 이루었다는 것은 일단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의 한• 중 수교가 남한이나 북조선 모두에게 이롭게 작용하고 꼭 이루어 내어야 할 민족 퉁일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어느 일방을 몰아세운다거나 퉁일아닌 공존체제를 굳히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수교 후의 역사적 부담이 커진다 하겠다. 더우기 중국의 현실적이고도 급한 욕구 를 이용하기 보다는 우리가 앞질러 서두른듯 하며 한• 일 회담 때의 조급함을 또 한번 느끼게 된다.
한• 중수교는 남한쪽 보다는 중국쪽에서 더 급한 일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사실, 중국으로서는 국내 • 국제적으로 한국과의 수교가 시급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등소평의 개방경책 이래 자본주의에의 길로 치닫고 있는 과정에서 한국과의 경제협력 및 교류가 절실해졌으며, 국제적으로는 냉전체제 봉괴 이후 새롭게 짜여져 가고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의 중국의 역할, 특히 모든 이해가 맞부딪치고 있는 극동에서의 역할을 포기할리가 없으며, 한국과 일본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밀착되어가고 있는 판에 일본에 지도적 역할을 넘겨줄 중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유럽경제공동체, 북미자유경제협정 등이 말해주듯 세계가 지역적으로 경제 집단화하고 있는 마당에 아세아경제권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픈 중국의 욕망 또한 뻔한 것이다.
따라서 성급하고도 현실적인 중국의 욕구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을 터인데도 앞질러서 20억불까지 얹어 주면서까지 (정부당국의 부인을 믿고싶지만)서두른 것은 아무래도 찜찜하다.
외교면에서 본다면, 한• 중 수교는 분단의 양쪽, 즉 남한과 북조선이 다 같이 중국의 분단은 거부한채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전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한 셈이어서 분단국가인 우리로서는 꼴이 우습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중국을 통해서 '둘'임을 확인 받는 반면, 중국은 남한과 북조선을 통해서 하나'임을 확인했다는 말이다.
이번의 한• 중수교는 박정희정권때 부터 줄곧 펼쳐온 교차승인에 더한 두개의 한국정책' (노태우정권에서는 '북방정책'이라 표현한다.)의 일단락이라 할 수 있다.
일찌기, 한국전 참전을 이유로 미국이 주도하던 유엔에서 중국은 '침락자'로 규정되어 (1950.12) 서방세계 로부터 따돌림 당하다가 이른바 닉슨독트린에 의하여 미• 중관계(1972. 2), 일•중관계(1972. 10)가 개선되고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면서 국제무대에 정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박정권은 북한을 인정, 유엔 동시가입안을 특별성명을 퉁하여 내놓았고(1973.6) 이 정책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1975.9)
이에 한국정부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4개국(미• 일•소•중)교차승인에 더한 두개의 한국정책 (분단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여 왔으며, 이러한 정책은 국제 정세의 변화에 힘입어 더욱 더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마침내 공산주의를 포기한 소련의 급격한 변혁은 한• 소관계 정상화를 촉진, 수교에 이르게 되었으며 (1990.9), 이에 힘입어 이듬해엔 유엔 동시가입을 이루어냈다. (1991.10)
이러한 한국정책의 발빠른 진전은 마땅히 한• 중 수교가 마지막 단계로서 목표시 되었으며, 이에 대하여 북조선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은 교차승인의 마지막 지렛대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즉, 북조선이 미•일과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지거나 수교가 확실히 담보되었을 때에 마지막으로 한국과 정식수교가 이루어져 남한, 북조선의 교차승인을 완결진다는 입장을 중국은 취해왔다. 이러한 기본입장을 버리고 이번에 한• 중수교를 서둘러 맺음으로써 북조선의 입지는 심히 약해지고 좁아졌다 하겠다.
'사회주의의 몰락'이라고 까지 표현되고 있는 세계의 변화, 특히 사회주의국가 종주국의 양대 축인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변질은 인접국 북조선을 당황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소 수교, 한•중 수교는 사실상 군사동맹조약인 조• 소우호협력조약, 조•중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따라서 북조선의 군사적 입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점, 한-미-일 군사 삼각관계가 확고함에 비추어 볼때 북조선으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90년 한• 소 수교 이후 북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출구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조• 일회담이 급진전되면서 금방 조• 일 수교가 이루어지는듯 하였다. 그러나 북조선의 핵문제를 강하게 들고 나오는 미국의 입장을 일본이 지지하고 나옴으로써 조• 일회담은 일단 소강상태에 들고 말았다. 이것은 동복아세아 질서개편을 결코 일본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기도 하다.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느긋한 편이다. 한• 소, 한• 중 수교가 이루어진 이상 급할 것이 없다는 태도이다. 조• 미관계의 개선은 전혀 북조선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북 상호 핵사찰 수용, 무기수출 금지, 남북대화의 진전여하에 달려있다고 되풀이 하면서 오히려 요즈음엔 인권문제까지 추가시킬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며, 어떠한 형태의 조• 미, 조• 일관계를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우리민족의 통일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1988년 노태우 정부는 6개항으로 된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이른바 7• 7 특별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제5항 국제사회에서의 소모적 경쟁, 대결외교의 종결 및 협조, 제6항 북한의 미• 일관계 개선 협조 및 남한의 중•소관계 개선의 추구 등이 담겨져있는 특별선언이 얼마만큼 구현되느냐는 두고 볼일이다.
한• 소 수교, 한• 중 수교는 '남한만의 승리'여서는 안 된다. 전 민족의 승리'이어야 하며, 또한 경제논리에 정치논리가 밀려서도 안된다. 이 말은 국내문제든, 국제문제든 통일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2차대 전 후 세계질서 개편과정에서 비롯된 민족의 분단비극을 새로이 개편되고 있는 지금의 세계질서 속에서 극복하고 하나된 민족으로서 세계질서 개편과정에 참 여, 우리의 몫을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의 한• 소수교, 이번의 한. 중수교 과정은 경제논리가 앞서 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국 자본주의가 발 뻗을 수 있는 마당이 물론 필요하다. 제약과 장애가 많은 미국시장에 비하여 소련이나 중국은 군침도는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수교 전인 작년 한해만 해도 중국과의 교역량이 58 억불을 넘어섰으며(북조선의 대중국교역량은 6억 1천 만불), 금년에는 100억불이 넘어설 전망이다. 흑자시장이긴 하지만 대만과의 교역량 31억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의 운동을 보다 순조롭고 민첩하게 하기 위하여 정식수교를 서둘러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남한의 자본주의 논리에 민족전체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우리민족의 문제는 미국• 일본• 소련• 중국의 이해조정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는 그릇된 논리에 빠져든 일이 있었다. 이제 또 다시 미• 일•.소• 중 4자의 수렁으로 우리의 문제를 안고 빠져들 염려가 없지 않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풀 어야 하며, 그 대상과 협조자는 물론 북조선이다. 모 든 사고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
1.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1992년 8월24일자로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2.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헌장의 원 칙들과 주권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 간섭, 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
3.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합 법정부로 승인하며 오직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4.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5.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
6.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61년의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따라 각자의 수도에 상대방의 대사관 개설과 공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빠른 시일 내에 대사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199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