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기억의 한계가 있게 되고...
저편의 기억들을 이편으로 불러오는 사명!
그것은 오직 기억의 당사자만 할 수 있는 법.
세월의 오랜 과정을 거치며 힘들고 어려운
삶의 고비를 넘긴 뇌사장기기증 유가족들.
그들을 위한 특별 공간으로 '나누고 더하는
사랑'의 조형물이 보라매공원에 조성되었다.
홍익대학교 환경미술연구소 이수홍교수의
심혈을 기울인 이 작품..! 유가족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으며, 단색 위주의 공원에 여러
색을 입힌 조형물이 등장하게 되어 현재는
서울특별시와 보라매공원의 자랑이다.
여기에 대한 의미를 나름 붙여본다면...
(1) 먼저 훌쩍 하늘나라로 떠난 가족을 기억,
기념, 추억하는 곳으로서의 유일무이한 장소.
(2) 현재 남은 가족들이 살아가며 위로받고
희망을 누릴 수 있는 맘편한 장소로서,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공 장소로의 기념공간.
(3) 스쳐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장기기증에
대한 교육적 공간, 전혀 예기치 못한 때에
사건사고가 찾아올 수 있다는 가시적 경종,
동시에 그런 경우라도 절대 당황치 말고
도움 받아야 된다는 예방적 삶의 차원...
등등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어쨌든 유가족 스스로도 자문자답하면서~
* 그래도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 가치!
** 또 생존하며 느끼는 현재적 삶의 의미!
*** 지속적으로 기억나고 추억되는 가족의
연대관계 등등을 묻고 답해보게 된다.
그렇기에 여기야말로 과거가 소환되며,
현실에의 극복을 지나 미래로 승화되는,
놀라운 기적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모든 일체의
사업들은 사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시작되었다. 박진탁이사장님의 헌신적이며
열성적인 뜻은 1991년부터 세상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지금까지 계속 지켜지고 있다.
특히 뇌사장기기증인들의 모임인 '기증자의
어머니들의 모임(기증자 어머니회, Mother
Of Donors, MOD)'은 정말 기념비적이며
획기적인 모임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이란 주제로 제6회 장기주간
행사 진행시에, 그간 준비해온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유가족 모임을
정식 발족시켰다. 그렇게 본부에서
유가족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한 2002년
9월 10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997년 뉴욕 알바니에서 이미 'The Mothers
of Donors Squad'들이 활동하는 것을 본부에서
우리나라 형편에 맞도록 벤치마킹하여 자조적
모임으로 활동하게 한 것이다. 선경험의 아픔을
먼저 지나온 가족들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줄 수 없는 정신적 위로, 가족들에게 필요한 도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병원 안에서의 보살핌 등등
시간과 인내심 및 주의를 가지고 역할하게 된다.
하지만 본부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MOD 모임에
참석했던 카페지기도 당시에 활발히 활동하지
못하게 된 사실들을 지금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열심히
활약하고 노력했으면 우리나라에서 더 커다란
성과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미한 활동 이유들을 찾아본다고 하면...
(1) 가장의 역할을 갑자기 담당하게 되면서 준비
안된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 (2) 친인척
가족들의 이해부족으로 MOD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 (3)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및 그에 따른 자기 자신 혼자의 힘으로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모임에 더이상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경우 등등으로 집약해 본다.
결국 함께 하던 모임은 빈약해지고 참여 열성도
떨어지게 되면서 그 원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타오르지 않는 불씨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타개책을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펼쳤다.
본부 회의실에 모여서(2005.4.21.) 회의한
내용을 보면 당시의 심경을 잘 알 수 있다.
(1) 조직의 정비-기존회원 참여 독려, 신규회원
참여 요청 (2) 모임의 정례화-정기모임 강화,
친목과 교육활동으로 자긍심과 보람을 고취,
(3) 각 병원 장기이식센터 코디네이터 방문 및
상담을 통해 MOD 임원들과의 연계활동 강화
결국 MOD 모임은 이렇게 재정비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1년까지도 명분적 조직은
있되 활동이 미미한 존재로 전락되었다.
돌이켜보면 본 카페지기도 더 열심히
참석하면서 회원들의 열성적인 집결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제일 후회가 된다.
또한 모일 때마다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컨텐츠를 통해 자꾸만 구심점을 넓혀가지
못한 사실들이 아쉽기에 깊이 반성하며
마음 깊이 자각하는 심정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