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안쓰러운 기사를 읽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220318160030549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조현병환자의 방화와 무차별 공격으로
엄마와 조카를 잃은 충격,
그 날 목격한 처참했던 광경 때문에
3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정상생활을 할 수 없도록 고통을 겪고 있는 분의 이야기.
그 날의 사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그날 오전 4시 25분.
경남 진주시 A아파트.
조현병을 앓던 이 아파트 406호 주민 안인득(45)은
이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집 전체에 번지게 했다.
미리 준비한 흉기를 양손에 쥐고
비상계단에서 대기하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휘둘렀다.
화재경보음에 잠에서 깨 비몽사몽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얼굴, 목, 가슴 등에 상처를 입었다.
4시 32분, “누군가 흉기로 사람을 찌른다.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는 최초 112 신고가 접수됐다.
3분 뒤인 4시 35분
경찰 5명이 현장에 도착해 10분간 대치 끝에 안 씨를 검거했다.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뒤였다.
참 치밀한 가해자였네요.
불을 지른 뒤, 비상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다.
불을 지르면 일단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을테니
사람들이 비상계단을 이용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불에 놀라 대피하던 사람들이 무방비로 당하고...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기사를 접하면 참 두려웠었습니다.
이럴 수도 있구나...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끌려들어가는가?
이런 두려움.
운이 나빠 이리되는가?
뭐지?
같은 상황에서도 무사한 사람이 있는데, 왜 누구는 당하는가?
알 수 없어 갖는 두려움.
무작위라면
우연이라면
또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의미라도 있는 경험인가?
꼬리를 무는 의문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군요.
우선
우연이 아니라는 것.
운이 나빠 그리되는 것도 아니고.
그 모든 상황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동경험이었다는 겁니다.
정신증환자 본인과 가족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사람들...모두가 같이한 공동경험.
우리가 살아보는 것은 이번 삶만이 아니지요.
무수히 많은 다른 삶이 있어왔고
또 있을 것이구요.
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서
모든 삶이 동시에 펼쳐진다는데...이것은 참 이해하기 쉽지 않아 그냥 믿기로 하네요.
아무튼 다른 삶에서 뭔가가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 삶에서 어떤 상황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이
그 다른 삶들 속에서도 연루되었었구요.
그 때 뭔가가 있었었다...
그 때 아마 지금의 가해자에게
뭔가를 빚졌을 겁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무수히 많은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지요.
정말 오랫 동안, 무수히 여러번.
그래서 한스럽게 고통을 당하고 죽어간 사람들도 무수히 많구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냈던 사람들도 무수히 많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 바로 카르마의 균형잡기입니다.
잔인하다는 것은 이해부족 때문이지요.
공감능력부족 때문이고.
그 부족은 해결해야할 특성입니다.
이해를 넓히고, 깊게 해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하는 것.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입장을 바꿔보는 겁니다.
당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같은 종류의 경험을 해보는 것.
우리가 갖는 모든 상황은
아주 치밀하게 재단된 것들입니다.
바로 우리의 본 자아, 큰 자아에 의해서
배워야할 특성에 맞춰
치밀하게 만들어진 것들.
어떤 부모나 형제를 갖는 것도 재단된 것이고
어떤 이웃을 갖는 것도 재단된 거지요.
어떤 경험을 하는 것도 재단된 것.
단지, 그 어떤 경험도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것은 없구요.
얼마든지 달리 될 수도 있었던 것.
새로하는 선택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삶이니 말입니다.
어쨌든 어떤 상황, 어떤 사건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운도 없구요.
모든 사람은
해야할 경험을 하고 있는 것.
잔인하지요?
무참하게 살해되는 가족을 갖는 경험을 해야하다니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삶이 온통 뒤집어지고 망가지는 경험을 해야하다니.
그런 일을 벌이는 자식이나 형제를 가져야하다니.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 어이없이 죽어가야하다니.
이번 삶의 드라마에서는
그런 공연을 해야했네요.
그런 역할을 해야했던 것.
그런데 이것이 드라마연기인 줄 모르고
내 삶, 그것도 유일한 내 삶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그러면서 처절하게 빨려들어가는 것.
그런 과정에서 갖게되는 강렬한 감정과 무수한 생각들이
바로 영혼에 새겨지는 요소들이지요.
카르마를 해결해가면서
의식이 성장해가다.
이해를 넓히고, 깊게 만들고
공감하는 존재가 되어가다.
결국 우리는
빛이 되고
사랑이 되어야하는 존재이지요.
이해와 공감이 가득한 존재.
어떤 상황에서 처절하게 헤매이고 나면
커집니다.
이해와 공감이.
아마 이 사건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다른 삶에서
이번 가해자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직접적인 관여'를 했었을 겁니다.
다친 사람들은 덜 직접적인 관여를 했었을 것이고
이 상황에서 정신적인 충격으로 헤매이는 사람들은
아마 그 때 잔혹한 상황을 오히려 즐겼었을 수가 있구요.
이해부족
공감부족.
해결되어야할 특성들.
어느 한 삶만이 아니라
여러 삶에 걸쳐 누적된 것들을 한꺼번에 또는 아주 많이 해결하려는 삶이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아주 처절한 경험을 합니다.
어느 누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돌아가며.
바꿔해보는 경험
바꿔 살아보는 삶.
그러니 그냥
전생의 업보라고 말하며 포기하며 살아야하는가?
그건 아니지요.
지금 이 사건 때문에 제도나 법을 바꾸려는 여러 시도가 있듯
밝음을 추구하는 뭔가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비록 내 성장, 내 공부를 위해 당하고 있긴 하지만
내 경험을 통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
밝음과
사랑의 추구.
사실 모든 존재는 이 세상에 몸을 입고 들어올 때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 큰 밑그림을 갖고 들어오지요.
우리 사주에 그것이 대략 나타나고 있구요.
어떤 경험을 할지 그 '세세한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큰 가능성 뿐이기에 수정가능하기도 하구요.
이런 험악한 일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사주에
벌써 그런 조짐이 있었을 겁니다.
큰 가능성들이.
배움을 위해 갖고 들어오는
수업과목들,
수업시간표.
모든 이들은
스스로 결정한 시간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참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구요.
표면의식이 아닌 내면의식의 결정.
그래서 어떤 죽음은 안타깝고 억울해보이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몸을 떠나도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구요.
다른 차원에서 다른 상태로.
정말 섬세하고 치밀한
삶의 비밀들...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리하고 싶으면
그런 편안함과 행복감을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세상에 던질 일입니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더 넓은 범위에.
아름다움을
행복을
쏘아보내다.
우리가 쏘아보낸 것은
결국
우리자신에게 돌아오니 말입니다.
이번 삶이 아니면 다른 삶에서라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무엇을 만들어 던지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구요.
내가 던진 것은
다시 내게 돌아오게 되어 있고.
어제는 잡채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많들어
자그만치 9명의 친구와 이웃에 돌렸습니다.
^^
기분이 좋데요.
이렇게 작은 일부터
기분 좋아지는 일을 합니다.
제가 행복하고 싶어서.
그런데도 다가오는 불행이 있다면?
충격을 받겠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려 하구요.
그래, 내 다른 삶에서
뭔가가 있었을 게다...이렇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빛을 향해 가보렵니다.
어쨌든
지금 헤매이는 분들에게
위로가 있기를!
이런 기원을 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