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
이미순
한파로 길이 꽁꽁 언 아침나절
동서연합의원 쪽으로 두 노인이 걸어간다
지팡이를 든 노인이 한 노인의 어깨를 감싸고
감싸인 노인의 팔이 한 노인의 팔을 잡고가다
전봇대 아래서 빙판에 두 발이 엉켜 넘어진다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촬영중입니다 적발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오니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맙시다
이것도 무단투기는 무단투기인지라
과태료 100만원에 덜컥 겁이 난 노인이 자빠진 생의 등을 잡고 일어선다
아이고
세월 빠진 소리를 내며 일어선 노인이
다른 노인에게 지팡이 끝을 빠르게 들이밀고
일어선 두 노인이 한 목숨처럼 붙잡고 간다
말이 먼저일까, 문자가 먼저일까? 물론, 말이 문자의 기원이고, 말이 없으면 문자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말이 있기 때문에 사물을 인식하고 사물의 이름을 명명하며, 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건과 현상들을 탐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말은 형체가 없으며,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감정과 그 의미들을 우리 인간들의 기억 속에만 간직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 기억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노래의 형태로 ‘구비문학’이 창출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기억은 유효기간이 아주 짧고 변형되기가 쉬운 것임에 반하여, 문자의 출현은 마치 천지창조와도 같은 대사건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자는 천지창조이며 신세계이고, 언제, 어느 때나 젖과 꿀이 흐르는 행복에의 약속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문자는 인간의 사유를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준 것은 물론, 인간과 인간들의 수명의 한계를 초월하여, 고대와 현대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사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문자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며, 언제, 어느 때나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주재하며,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주왕복을 가능하게 해준 신이라고 할 수가 있다.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인 소쉬르는 ‘문자는 언어의 장식이자 옷’에 불과하다고 역설한 바가 있지만, 그러나 그의 ‘말중심주의’는 문자의 타락만을 강조했을 뿐, 문자의 창조성과 그 중요성을 간과한 오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말이 없으면 문자도 없고, 문자가 없으면 말도 없다. 이제 문자는 말의 육체가 되었고, 말은 문자의 영혼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이 말과 육체의 결합에 의하여 우리 인간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고, 오늘날의 시와 예술, 혹은 그 모든 문화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순 시인의 [과태료]는 말과 문자의 절묘한 결합이며, 과태료의 안과 밖에 얼킨 어떤 사건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너무나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전개시켜 나간다. “한파로 길이 꽁꽁 언 아침나절/ 동서연합의원 쪽으로 두 노인이 걸어간다//지팡이를 든 노인이 한 노인의 어깨를 감싸고/ 감싸인 노인의 팔이 한 노인의 팔을 잡고가다/ 전봇대 아래서 빙판에 두 발이 엉켜 넘어진다.” 하필이면, 그곳이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촬영중인 곳이었고, “적발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촬영중입니다 적발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오니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맙시다” 라는 구어체의 경고를 읽은 노인이 자기 자신의 몸을 쓰레기로 생각하고, 너무나도 깜짝 놀라 “아이고” “세월 빠진 소리를 내며” “두 노인이 한 목숨처럼 붙잡고” 그곳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때는 한파로 길이 꽁꽁 언 아침나절이었고, 장소는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촬영중인 곳이었고, 이미순 시인의 [과태료]의 주인공은 두 노인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두 노인은 쓸모 없는 인간이 되었고, 쓸모 없는 인간은 쓰레기가 되었다. 한겨울이 불모의 계절이고 그 어떤 꿈과 희망도 없는 계절이라면 세월이 빠져 달아난 두 노인은 이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인간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촬영중인 곳과 두 노인은 어떤 사법적인 관계도 없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쓰레기로 인식한 두 노인의 자괴감은 너무나도 이상야릇한 행동과 그 웃음을 유발시킨다. 요컨대 두 노인의 실족은 너무나도 뜻밖에 유쾌한 웃음을 야기시키지만, 그러나 그 두 노인이 [과태료]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그 웃음은 진정으로 웃을 수도 없는 실소失笑가 된다.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이 세상의 모든 노인들을 쓰레기로 만들고, 우리 노인들의 삶이 수많은 복지비용의 과태료가 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과태료, 과태료, 과태료----.
우리 노인들의 영원한 형벌이자 전인류의 문화유산(벌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