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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 되는 이유 요 5:25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몇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①날마다 정해진 시간 기도하십시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종교생활입니다. ②교회생활을 잘하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인간에게는 가정생활이 중요한 것처럼 신자에게는 교회생활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몸된 교회생활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③목회자를 사랑하고 존경하십시오. 왜냐하면 목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④전도와 선교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특정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명입니다. ⑤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성자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성령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 1:1을 보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제가 자주 언급하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①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지금도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②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령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계시록 2-3장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교회에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③설교로 말씀하십니다. 설교자의 사역은 대언사역입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설교자가 대신 전하는 사역입니다. 군대에서 지휘관이 단상에 서면 부하들은 지휘관에게 경례를 합니다. 이때 전체 부대원을 통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구령에 맞춰서 경례를 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경례를 받고 난 후에 보통은 지휘관이 “바로, 부대 열중쉬어”라고 작은 소리로 말합니다. 그러면 부대원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바로, 부대 열중쉬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부대원들은 그 통제자의 구령에 따라서 경례한 손을 내리고 열중쉬어를 합니다. 여기서 전체 부대를 통제하는 사람은 지휘관의 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설교도 이와 같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대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말씀입니다. ④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시19:1-4을 보겠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자연만물에는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 하나님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묵상을 통해서 받는 영감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양하게 말씀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믿음으로 받으면 복이 됩니다.
성경에 약속된 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영혼의 복입니다. ②평강의 복입니다. ③건강의 복입니다. ④가정의 복입니다. ⑤재정의 복입니다. ⑥형통의 복입니다. ⑦국가적인 복입니다. ⑧천국의 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복을 다 받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는 왜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 되는가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이유는 많겠지만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향수가 몸에 묻으면 몸에서 향기가 납니다. 하나님을 접촉하면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입니다.
요 5:2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기서 죽었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자들은 육체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자들과 영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자들을 모두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육체적으로 죽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몇 명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 만에 “나사로야 나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달리다굼”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면 육체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은 살려줘도 다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나사로도 다시 죽었고, 야이로의 딸도 죽었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영생입니다. 요 10:28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이 영생을 주시면 그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접촉합니다. 그리고 그 접촉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들어갑니다.
요 5:39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이유는 성경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요 20:31을 보겠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한 두 가지 목적이 나옵니다. 첫째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영생은 어떻게 얻습니까? 요 17:3에서 답을 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접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접촉합니다. 그리고 그 접촉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전깃줄을 잡으면 내 몸에 전기가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들으면 하나님을 접촉하게 되고 하나님을 접촉하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올바른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페니(Penny)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국 콜로라도에 큰 정육점을 냈습니다. 양질의 고기는 주로 호텔에 납품되었습니다. 그런데 호텔 주방장이 끊임없이 뇌물을 요구했습니다. 그에게 뇌물은 신앙 양심상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방장은 고기 납품을 중단시켰고, 온갖 악소문을 퍼뜨려 그의 사업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페니는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혼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대표적인 말씀은 마 6:33이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는 비록 사업은 망했으나 이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페니는 다시 잡화점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가게 문 앞에 마 6:33 말씀을 크게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정직함과 신앙에 감동한 사람들이 가게를 이용해 주었고 가게는 점점 놀랍게 번창했습니다. 그가 95세로 세상을 떠난 1971년, 미국 전역에 무려 1,660개의 백화점을 운영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가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딤후 3:16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서 성경의 유익 4가지를 말씀합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이 네 가지 유익 중에서 핵심이 바르게 함입니다. 바르게 하기 위하여 교훈하는 것이고, 바르게 하기 위하여 책망도 하고, 교육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바르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바르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성경이 바른 기준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우둔하여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잘 모릅니다. 사람은 선악의 기준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선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심각하게 다가오는 동성애 문제를 놓고 간단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이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중에 하나가 차별금지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독소조항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성애 합법화입니다. 이 동성애 합법화가 무서운 것입니다. 동성애 합법화가 무서운 이유를 몇 가지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국가적인 죄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레 18:22입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동성애가 가증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증한 일을 우리 대한민국에서 합법화 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처하는 일입니다. ②에이즈라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에이즈가 무서운 병이라는 것은 다 아시죠? 현재 우리나라의 남성 동성애자가 약 60만 명이라고 추정합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모두가 동성애로 인한 감염 때문입니다. 현재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에이즈 환자는 약 1만3천 명입니다. 국가에서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에이즈 환자는 약 3만 명입니다. 동성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5조원을 돌파했습니다. 1년에 에이즈 환자의 약값만 6,700억 원입니다. 에이즈환자의 약값은 모두 국민 세금에서 지출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금으로 에이즈환자의 치료비를 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군동성애 합법화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에이즈 환자는 엄청나게 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것입니다. ③역차별입니다. 소수의 인권을 위하여 다수를 역차별 하게 됩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설교자는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동성애를 비판할 수 없게 됩니다. 동성애자가 목사님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했을 때 거부하면 그 목사님은 차별금지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됩니다. 동성애자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겠다고 하는데 허락하지 않는다면 차별금지법에 의해서 벌금을 내야 합니다. ④더 많은 사회악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나라들 중에는 짐승과 성관계를 하는 수간이 합법화된 나라들이 있습니다. 동성애가 합법화 되니 소아성애자들도 자신들의 성적취향을 합법화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여성 커플이 아기를 갖기 위하여 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그 커플은 남편이 둘입니다. 남자 남편과 여자 중에 남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동성애 커플이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니까 자녀를 입양하기도 합니다. 입양된 아이들은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 왜곡된 성생활과 왜곡된 가정생활을 배우게 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대학교에 매춘학과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매춘을 가르친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차별금지법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법안을 우리나라 정부와 국가 지도자들이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국가인권위원회가 군대 내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고 하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그들에게는 선악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가증한 일이라고 지적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의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과 악에 관하여 선명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면 우리는 삶에 올바른 기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금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름대로 시간관념이 있습니다. 제가 스톱워치로 1분을 재겠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감고 자기가 생각할 때 1분이라는 시점에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 생각의 1분과 실제 시간의 1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스톱워치로 1분이 되면 스톱시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나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기준이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올바른 기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 칼럼리스트 시드니 헤리스는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가판대에서 신문을 한부 샀습니다. 친구는 신문 파는 사람에게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문 판매하는 사람은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헤리스는 친구에게 “저 사람 태도가 너무 오만 불손하지 않아?”라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그 사람은 늘 그래.”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대답했습니다. 헤리스는 “그런데 자네는 왜 그 사람에게 그리 친절하게 대하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친구가 헤리스에게 한 대답이 놀랍습니다. “왜 내 행동이 그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상대가 어떠하든 언제나 변함없이 행동하는 헤리스의 친구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람이나 환경 그리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고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수 1:8-9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엔진이 돌아가려면 연료통에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연료통에 있는 기름이 엔진의 실린더 속으로 들어가서 폭발을 하면서 자동차의 엔진을 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딤후 3:17을 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여기서 모든 선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힘없고 무능한 장갑 속에 사람의 손이 들어가면 그 손의 힘과 능력만큼 장갑이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사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때문에 선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간증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강천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교회 집사님이었던 친구 아버지를 통해서였습니다. 6.25를 당해 피난 가서 살던 동네에 4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그 중 예수 믿는 가정이 딱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집 맏아들이 이 목사님의 또래 친구라 그 집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이 목사님은 몸이 약해서 병이 들었고, 죽을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친구의 아버지가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교만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친구 아버지의 전도를 무시하며 좀처럼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집사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전도를 하셨고, 결국 집사님의 정성에 못 이겨 교회에 다니게 됐습니다. 어느 날 자기를 전도한 친구 아버지 집사님에게 “집사님, 1년 동안 교회 다녔는데 하나님이 없습디다. 집사님은 한번이라도 하나님을 만나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결판을 낼 양으로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아,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닐세. 나는 하나님을 매일 만나네.” 집사님의 너무 당당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잔머리를 굴려 두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날마다 만나신다고요? 그럼 집사님, 날마다 만나는 그 하나님, 한 번만 면회시켜 주시지요.” 집사님은 “면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하나님께 자네를 면회하시도록 주선해 놓을 테니 하나님 만나 뵐 준비를 하게나….”, “면회 준비요? 그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무슨 하나님 만나는 데 면회 준비가 필요합니까?”, “일국의 대통령을 만나려 해도 인사법을 배워야 하거늘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는데 예법도 모르고 어떻게 만나 뵙나. 하나님 면회 준비법은 이 성경책 안에 쓰여 있네….” 집사님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경을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속는 셈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성경을 읽는데, 요일 2:11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읽는데, 가슴이 뜨끔하더랍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는 술주정뱅이인 아버지를 미워하여 함께 밥상도 마주하지 않고 지내던 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 ‘내 인생이 어두운 인생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랍니다. 그러면서 양심에 갈등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미워하지만 형제는 미워하지 않아….’ 양심의 가책을 일부러 모른 척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요일 3:15을 보니까,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나오는 게 아닙니까? 속으로 ‘아니. 한술 더 뜨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라고….’ 또 양심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나는 형제는 미워하지 않아. 웬 살인자…. 4:20에 이르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마음이 아려 왔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양심의 소리를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 미워해도 아버지나 미워하지, 형제는 미워하지 않는다구….’ 그 때였습니다. 양심에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형제만 미워해도 어두움 속에 있는 자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 이겠거늘, 너를 낳아 양육하신 너의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어디로 도망치려 하느냐.”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입에서 “오!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고백이 흘러 나왔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 없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사람을 미워하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꿔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 되는 이유를 세 가지 나눴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올바른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고 자연만물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