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 [아침시산책]웃음
웃음
/유병록
검은 행렬이 이동한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눈 쌓인 비탈을 지나 천천히 걸어간다
자꾸 무릎이 꺾여 주저앉는데 얼어붙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다 가슴을 치다 울음을 터뜨리는데
선두에서 죽은 입술이 피리를 부는가 관 속의 두 손이 북을 두드리는가 행렬은 멈춰서지 않고
앞세우고 가는 사진 속 얼굴은 웃고 있다 죽음이 틈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대, 살아서 이렇게 환하게 웃은 적이 있었던가
살아서 이만한 대열을 이끈 적 있었던가
바구니 같은 눈송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외투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웃음이 통곡의 대열을 이끌고 행진한다
또 한 사람이 주어진 시간을 다 소비하고 죽음의 문에 들어섰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그와 동행하며 삶을 좌우하다, 생명의 에너지를 다 쏟아낸 육체의 끝을 매듭지어준 것. 맞이하기 싫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해야하는 문. 그 문을 넘어가는데 그가 웃고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슬픔에 잠긴 대열을 끌고 가고 있다. 생전 환하게 웃은 적도 그만한 대열도 끌어 본적도 없는 것 같은데 죽음에 이르러서야 끌고 가고 있다. 삶과 죽음을 뒤섞으며 웃음과 울음을 뒤섞으며 액자 속 그가 앞장을 서고 있다.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나’ 괜찮다고 위로하듯 웃고 있다. 이별을 고하고 있다. /김유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