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레바논에 UN 평화유지군'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평화유지군은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군대라고 합니다. 절대적인 강자인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함부로 침략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이스라엘은 평화유지군을 향해서 공격했고, 탱크로 진격했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평화유지군이 부상했다고 합니다. 유엔은 이스라엘에 강력하게 경고했고, 평화유지군에게 속했던 나라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레바논에서 철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군인들은 평화유지군에 남아서 끝까지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위험할지라도, 전투 중에 목숨을 잃을지라도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유엔에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아일랜드 군인들이 레바논에 남도록 했을까요? 그것은 아일랜드도 영국으로부터 침략받았던 약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가정 방문 중에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청년은 3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청년은 우크라이나로 가서 봉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말렸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년은 우크라이나로 떠났고, 안타깝게도 청년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한 후에 사망했습니다. 무엇이 청년을 우크라이나로 떠나게 했을까요? 미국에 있으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죽음의 덫이 놓여있는 우크라이나로 떠나게 했을까요? 그것은 더 높이 날아오르려는 갈매기의 꿈과 같은 겁니다. 그것은 벗을 위해서 목숨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던 부모님도 이제는 슬픔을 딛고,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은 목숨을 바쳐서 이웃을 돕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는 신앙이기도 합니다.
사랑에는 4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을 받는 단계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들숨이 있어야 날숨이 있습니다. 한동안 많이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셨습니다. 흙 속에 있는 씨앗은 물과 햇빛을 받아야 싹이 나옵니다. 사랑받는 아이는 면역력도 강해지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도 생깁니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기가 남을 생각하며 감동할 수 있고, 자신의 애정을 특별한 존재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느낌은 사랑받은 것보다 한결 흐뭇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그것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도, 역경도, 굶주림도, 죽음까지도 이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의 애정을 남에게 투사하고 나면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쏟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단계의 사랑은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과 비교할 때 한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든, 받기 위해서든, 남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주거나 받는 존재에게 실망하거나 배신당할 염려도 없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주거나 받는 존재에게 실망하거나 배신당할 염려도 없습니다. 네 번째 보편적인 사랑의 단계입니다. 이는 무제한의 사랑입니다. 애정을 받고, 남에게 투사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나면, 사랑을 자기 주위의 사방팔방으로 전파히기 시작하기도 하고 사방팔방에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이 보편적인 사랑을 부르는 이름은 생명, 자연, 대지, 우주, 기, 하느님처럼 문화와 민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합니다. 지금 나의 사랑은 어떤 단계의 사랑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사랑이 부족해도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사랑이 식어 하느님 아버지를 잠시 외면한다고 해도 끝내 우리를 버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면 기다리지 못하곤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식어 버리면 그들 역시 사랑이 식어 버리곤 합니다. 2024년도 이제 2달 남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미워한 이웃을, 나를 미워한 이웃을 용서하고 넓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용기와 힘을 청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 십자가로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셨고, 우리의 이웃과 이웃을 화해시키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