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호화되느냐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달라진다
*(책)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욕망에 관한 문제의식은 보드리야르의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욕망은 그가 현대사회를 진단할 때 시뮬라크르나 하이퍼리얼리즘의 개념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개념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욕망은 이미 시뮬라크르나 하이퍼리얼리즘의 논의에서도 이론적 기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보드리야르에게 욕망이란 역사를 관통하는 상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분석에서 욕망이라는 중요한 요인을 간과해버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특징이자 한계를 자신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생산의 거울》(Le miroir de la production, 1973)이라는 개념으로 압축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에서 생산, 소비, 유통의 과정 중 소비와 유통을 자율적인 심급(審級)으로 인정하지 않고 생산의 심급으로 환원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경제학은 전적으로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 그대로 소비나 유통은 오로지 생산이라는 본질적인 심급을 반영하는 가상적인 이미지, 즉 거울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이 시대적인 적합성을 상실한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는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의 사회이며, 소비란 생산에 종속된 거울상이 아닌 독자적인 층위일 뿐만 아니라 생산보다도 더 중요한 층위로 부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아마도 보드리야르의 저작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Pour une critique de l'économie politique du signe, 1972)에서 매우 분석적으로 논의된다.
여기서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대한 보드리야르 비판의 핵심은 마르크스가 사용가치의 특성을 전적으로 도외시하였다는 점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는 교환가치로 전면화된다고 주장하였다.
원래 재화 혹은 용역은 경제적으로 볼 때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두 가지 가치를 지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의해서 추상됨으로써 교환가치가 곧 가치 일반이 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에게는 ‘가치=교환가치’가 되는 사회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서 사용가치는 단지 상품 자체가 가진 물질적 특성 혹은 사회적 관습에 따른 용도라는 불변적 요소로 간주되어 자본주의 경제의 분석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된다고 할 수 있다.
보드리야르는 자본주의 사회란 교환이 중심이 되는 교환체계의 사회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교환의 중심에는 오히려 사용가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때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사용가치는 윌리엄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 1835~1882)나 카를 멩거(Carl Menger, 1840~1921) 혹은 그레이엄 월러스(Graham Wallas, 1858~1932) 등 이른바 한계효용학파에서 말하는 양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한계효용으로서의 사용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사용가치란 곧 어떤 사물이 지닌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사물의 물리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서 하나의 기호(signe)라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구두’란 더 이상 물리적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동일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브랜드에 따라서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 사람들은 브랜드라는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지 실제 물리적 대상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시뮬라크르의 논의를 발견할 수 있다.
기호학적으로 볼 때 실재 세계를 레퍼런트(referent, 지시대상)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물리적 속성을 지닌 레퍼런트보다는 그것이 지닌 기호적 의미, 즉 상징에 더 관심을 갖는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교환관계란 마르크스가 힘주어 말한 상품에 투여된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라는 실체에 의해서 규제되는 것이 아닌 기호적 상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보드리야르는 오늘날의 교환체계를 ‘상징적’ 교환체계라고 명명하며, 이러한 상징적 교환체계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와는 다른 방식의 교환체계 방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언급하는 마르크스와 다른 방식의 교환체계 중 대표적인 교환체계는 이른바 ‘포틀라치(potlach)’의 형태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포틀라치란 특정 원시부족의 교환형태인데 증여나 선물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교환이 등가성의 형태를 띠지 않고 주는 사람의 지위나 감정을 나타내는 상징 혹은 기호로서 기능한다는 점이다.
다만 포틀라치의 체계와 달리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교환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사물이 지닌 경제적 가치는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욕망되는가에 따라서, 즉 어떻게 기호화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여기서 욕망은 생산이 아닌 소비와 직결된 것이므로 사물의 기호적 가치에 의해서 교환되는 사회는 당연히 소비의 사회인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생산이 지닌 절대적 지위는 무너지며, 보드리야르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오히려 소비가 가장 중요한 심급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는 곧 오늘날의 사회가 욕망이라는 메커니즘이 전면화된 사회라는 인식과 맞물려 있다.
보드리야르의 분석과 주장은 오늘날 어느 정도 상식적인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보드리야르의 이론에는 간과할 수 없는 매우 당혹스러운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소비사회의 교환체계를 분석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1900)과 같은 분석을 하나의 가능성 있는 모델로 제시한다.
프로이트의 꿈 분석은 현실과는 달리 매우 이질적이며 비체계적인 무의식적 욕망을 분석하고자 하는 모델이다.
보드리야르가 꿈의 분석 모델을 넌지시 소비사회의 분석을 위한 가능적 모델로 언급하는 것은 결국 그가 말하는 상징으로서의 교환체계를 분석하는 것이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함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