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오기 전에 살던 동네는 지하철이 없었다. 대구지하철 2호선은 오래 전부터 공사는 하여 왔지만 개통된다던 시기에는 예산부족으로 못하고 올 가을 중으로 개통된다는 소식이다. 개통을 앞두고 이사를 왔으니 지하철 공사로 인한 복잡함에는 익숙해 있어도 정작 지하철 타는 것에는 생소하기만 하다.
지하철 하면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건과 동성로 지하철 화재 사건 같은 대형 사고만 떠오를 뿐 그다지 정감 있는 일은 없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탄 지하철은 부산에서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새댁이 잔치가 있어 부산에 갔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시부모님과 친지 여러 어른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사람이 여럿이 되다 보니 택시도 탈수 없고 빠르고 값싼 지하철을 타자는 의견이다. 어른들을 모시고 가야 하는데 지하철을 한번이라도 타봐야 알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어설픈 솜씨지만 타는 것에는 성공했다. 내가 길 잃으면 단체로 미아가 된다. 촌 늠 어깨가 무겁다. 목적지 역에 닿아서 우리는 무사히 내렸다. 출구를 빠져나갈 때 그 일만 없었더라면 시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게다. 눈치를 살펴보니 탈 때 사용했던 그 표를 검색기에 쏙 잡아넣더니 다시 받아 들고는 바쁜 걸음으로 사라지고들 한다. 쉬운 일이었다. 용감하게 개찰구에 표를 넣었는데 기다려도 내 표는 나오지 않는다. 한참 있으니 표하나가 나오고 사람이 따라 나온다. 나는 얼른 집어 들고 내 표라고 우겼다. 그 사람의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지금도 있을 수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 표는 일회용이었다.
"이구~ 무슨 망신이야" 함께 간 어른은 내가 미안해 할까봐서 웃음을 꾹꾹 눌러 참아 주었다. 울 어머님 며느리 망신에 어쩔 줄 몰라 하시고 한번씩 화나실 적에는 "똑똑한지 아닌지는 지하철 타보면 안다" 고 내 코를 납작하게 해주신다.
그리고 10년도 더 지난 후에 대구 지하철이 생겼는데 노선이 집하고는 상관이 없어 한 번도 탈 기회가 없었다.
내가 이곳 평택에 이사를 오니 서울 사는 언니가 이사온 선물로 실내 정원을 만들어 준단다. 나는 화분을 잘 키우지 못하고 죽이는데 선수라 언니가 사준다는 꽃이 부담스러울 뿐인데 나더러 서울로 오라 한다. 무엇이라 서울로 오라고? 덜컹 내려앉는 가슴, 서울이라고 몇 번 가보기는 했지만 서울 땅을 내 발로 딛고 구경한지는 중학시절 수학 여행 때뿐이고 남편이 나더러 서울 구경 시켜 준다 했을 적에도 올림픽대로 쭈욱 달려 놓고는 구경 다 시켜 줬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나 혼자서 서울을 오라고?
간 큰 여자 되어 보겠다고 만류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꼭 승리하리라 굳게 다짐하며 출전하는 선수처럼 용감하게 출발했다. 그런데 전철역에서부터 눈치 작전은 시작되고 내 가슴은 마냥 콩닥거리기만 한다. 신 도림 역에 내려 2번 노선으로 갈아타고 사당 역에서 만나자 고한 언니 말을 명심하면서 친절해 보이는 낮선 부인 옆에 딱 붙어서 신 도림을 물었더니 자기가 내리는 곳 다음에서 내리면 된다고 한다. 애들 표현으로 아싸....
기분이 좋았다. 신 도림에 도착해서 용감하게 내렸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 사람들은 내려서 다른 차를 타러 간다. 나는 신 도림 표를 샀으니, 거기서 내려 다시 사당 역까지 표를 사야 할 판이다. 잘 난 척 하지나 말 것을. 전화통에 불이 난다. 서울간 마누라 잃어버릴까 남편에게서 전화 오고 딸, 걱정하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전화 오고 언니, 도착 할 시간 지났는데 왜 안 오냐며 전화다. 서울 사람들은 다 지하철에만 있나? 다들 얼마나 바쁜지 옆에 눈길 한번 안 돌리고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만화에 나오는 람들처럼 무표정하다.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다니는 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발이 되고 시간이되고 삶이 되는 공간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어슬렁거리는, 아니 아주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혼자서 상경한 그 자체만으로 아주 특별한 이유가 되는 나는 작은 가방 하나를 울러 멘 모습으로 제법 여유를 부려 보지만 촌넘은 촌넘이다. 북새통을 이룬 지하철을 빠져 나와 지상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이 뿌듯함이란 나 혼자서 서울 왔다는 이 기쁨 아는 사람은 알게다. 얼마 전 아들이 혼자서 열차를 타고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에 다녀 온 적이 있다. 혼자서 대구 다녀왔다는 성취감에 즐거워하던 아들의 마음을 알 거 같다.
이곳에 이사 와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있다. 서울 지하철 노선이 그려져 있는 작은 쪽지다. 전철을 타고 하는 서울 여행을 기대 하니까 그 쪽지를 볼 때마다 이미 서울 가는 거처럼 기쁨이 있다. 마치 복권을 사서 다니는 사람들 그 희망처럼. 친구가 5박6일 동남아 여행길에 오르면서 기뻐하듯 내 가슴속에서도 일어나는 작은 설레임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첫댓글 ㅎㅎㅎㅎ 저도 그런 경험 한적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떨렸던지 길잃은 미아는 아니고 아줌마 될뻔했습니다 지금 서울은 더 많이 변했겠지요
엇, 평택으로 이사가셨네요.. 저도 얼마전 사당 역에서 2호선 갈아타야 했는데, 동료가 우기는 바람에 교대역으로 100미터 이상을 갔다가 돌아온 적 있어요.. 겸사겸사 가끔 지하로 서울 한바퀴씩 돌죠, 뭐.. 잘 지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