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화제 속에 9월 8일 0시를 기해 일제히 발매된 서태지의 솔로 2집은 첫날에만 72만 장이 출시됨으로써 음반배급계의 기록을 갱신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문화적 기린아는 다음 날 9월 9일 거의 10억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된 MBC독점 프로그램 무대를 가집으로써 4년 7개월 만에 본격적인 컴백이벤트의 막을 올렸다.
서태지의 두번째 솔로앨범은 세계 록음악의 신 주류인 하드코어의 지독한 수사학으로 범벅된 묵직한 메시지와 그르릉거리는 파괴적인 사운드,쏜살 같은 스피드로 시종하며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통해 연금했던 자신의 새로운, 그러나 결코 느닷없는 것이 아니라 면밀한 고려와 어쩌면 필연적인 귀결일 수밖에 없는 음악적 설계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현재의 음악시장 구조에서 단 만 장도 팔리기 어려운 이 어둠의 장르를 앞세워 이처럼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낼수 있는 것은 서태지가 아니면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울트라맨이야'를 위시한 여섯 곡의 보컬트랙을 통해 자신의 몸과 무의식을 관통하는 록음악의 본능적인 에너지를 성숙하게 발효시키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노래들의 전편에 걸쳐 발산되는 서태지 특유의 스타일,곧 묵시록적인 울림과 강인한 공격성은 치밀하게 배치된 팔색조의 사운드 테크닉과 조화를 이루며 혼돈 속의 질서, 질서 속의 혼돈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섬세하지만 마초적인 폭발력과 거세된 그의 보컬은 가학과 피학의 갈피를 어지러이 오가는 그의 텍스트 위에서 오히려 잘 어울린 옷처럼 앨범 속으로 녹아든다.
이 앨범은 90년대의 전반을 호령했던 그가 천의 무봉의 천재가 아니라 다만 한 사람의 불타는 가슴을 지닌 음악청년임을 증명하는, 그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의 최대 걸작이다. 모든 언론과 팬클럽은 적대와 지지의 스펙트럼 속에서 그를 신화화했지만 그는 이제 뮤즈의 별빛이 인도하는 자신의 길을 쫓는 한 사람의 뮤지션이기를 갈망한다.
그를 깜짝쇼의 기획자로 매도한다거나 신비주의 마케팅이 귀재라고 폄하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은 없다. 그것은 그 어떤 생산성도 없는 재뿌리기 이상 이하도 아닌 유치한 논리다.대중음악은 그 이름처럼 상품이면서 동시에 예술인 존재이다. 더군다나 서태지는 메시아도 혁명가도 흥행사도 아니다.그는 다만 10대들의 메시아를 꿈꾼, 혁명적인 흥행전략을 구사한 한 명의 음악가일 뿐이다.
울트라맨의 새로운 출사표
서태지 앞엔 수많은 음악의 천재와 수퍼스타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땅에서 서태지만큼 논쟁적인 지평을 제공한 대중음악가는 일찍이 없었다. 그의 프리즘을 통하여 이땅의 대중문화는 처음으로 지적 담론에 편입되는 기회를 포착했다. 물론 여기에는 80년대의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담론이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더불어 몰락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부상했던 90년대 초반의 상황적 조건이 강하게 개입하고 있다.그러나 일촉즉발의 국면에서 토론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결정적인 화두는 세대 문화으 상징적 아이콘으로서의 서태지 (혹은 서태지와 아이들) 였다.
그에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앨범을 관통했던 내면적인 주제인 청년의 무구한 밝음과 아웃사이더의 침잠한 어두움의 분열증적 징후처럼 단순한 찬반, 혹은 기호의 호불호를 넘어선 본능적인 자극이 있었다.
그는 92년 이후로 상업적인 랩 음악의 효시가 되는 '난 알아요'로 스타덤에 오르는 순간에도 '환상속의 그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내려온 비주류적 감수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형상화했고,1년 뒤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달콤한 자기과시를 꾀하는 지점에서 조차 '수시아' 에서 "쓰러지라"고 권고하며 자신이 더욱 공고하게 만든 댄스뮤직의 소비적 성격을 뒤집는다. 그런 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통일을 얘기하며 약간 기우뚱거리지만 '교실 이데아'와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내세워 기적적으로 균형을 잡는다.
그러나 이 90년대의 음악감독은 서두의 '슬픈 아픔'엥서 '필승'으로 출력을 승압시켜가는 필사의 로큰롤과 한동안 그의 적대자들과 지지자들을 흥분시킨 이른바 갱스터랩'Come Back Home'을 별렬시킴으로써 힙합과 얼터너티브라는 90년대 서구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두 하위문화의 정통적 우위를 이 땅의 10대 초반 세대의 가슴속까지 깊이 새겨놓는다.
서태지는 이 땅의 주류 대중음악도 하위문화의 공격적 본능에 의해 규정될수 있음을 명백하게 증명했다.그것은 70년대 청년문화혁명의 진원지였던 김민기의 전아한 문제의식과 신중현의 파란만장한 낙오자 정신, 그리고 80년대 들국화의 무명의 메탈 키드들이 주류 매체권력에 대해 자유분방하게 선언한 뮤지션십의 전통을 바탕으로 주류 경기장의 한복판에서 주류 질서의 전복을 일구어낸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얼터너티브 메탈과 랩이 잡종교배를 이룬 하드코어는 어저면 홀로 길을 떠나야 하는 ,그리고 넉 달 뒤면 우리 나이로 서른 줄에 접어드는 고독한 서태지의 필연적인 귀결이다.이 음악문법은 참새들이 짖어대듯이 새것 콤플렉스에 시달린 간교한 기획자의 깜짝상품이 아니라 8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의 밴드생활과 90년대 초반 댄스그룹의 화려한 성공의 퍼레이드, 또한 2년 전의 단신돌격이었던 솔로데뷔 앨범에서 이미 배양되고 예견되었던 것이다.
그가 90년대 내내 추구했던 대안의 발성법인 힙합과 록은 이렇게 새로운 세기에 이르러 통합을 이루었다. 그의 습관인 짧은 연주곡의 인트로를 지나면 지난 85년의 '슬픈 아픔'과 2년 전의 솔로앨범 'Take one'의 연장선에 놓인 육중한 기타 리프를 앞세운 '탱크'가 모습을 드러낸다.이 메탈의 무게중심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고 있으며 노랫말은 우리무중의 형해화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숨돌릴 틈없는 '오렌지'와 '인터넷 전쟁'. 혼란스러운 위악의 굉음 속에서 사운드의 중핵을 이루는 일렉트릭기타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지니고 흥분을 연출해내며 서태지 특유의 다채로운 이펙트들의 파노라마는 재치어린 위트를 자아낸다.
곧잘 한계로 지적되었던 보컬의 연약함도 여기에서는 아무런 위화감을 조성하지 못한다. 그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개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스튜디오의 마스터가 되었다.그는 재잘거리는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높이 솟구쳐 찢어지는 전율을 형성하기도 하고 속사포처럼 그의 선동문을 숭용자의 가슴속에 배달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그의 텍스트를 수용할 채비를 학숩받아왔다. 김건모와 신승훈, 그리고HOT와 조성모의 광범위한 팬들과는 다른 서태지의 지지자들은 서태지와 그의 동료들의행동반경 안에서 (아니 나아가 부재의 상황 아래서도)현실탈출의 해방감과 새로운 세계에대한 환상을 동시에 경험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앨범은 그러한 욕망을 대리충족 시켜주는 육체적 요소가 강했다면,악마주의 파동의 진원이 된 세번째 앨범은 거기에다 직설적인 현실비판이라는 무기를 추가로 탑재했으며, 공윤의 검열파동과 표절파동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네번째 앨범에 이르러 하나의 문화적인 전선을 형성하게 했다. 그와 동시에 이 댄싱그룹의 리더는 이 포맷의 내부적 한계를 절감했으며 적대자들의 완강한 프레싱 앞에서 후퇴와 침묵을 결심했다.
90년대의 작은 전복은 그렇게 4년 만에 제 1막을 내렸지만 그의 열혈 지지자들은 은퇴 이후에도 기념사업회 조직을 통해 그가 분만한 문제항들을 재생산하는 놀라운 지속력을 보인다. 이 지지층자들은 그들의 우상이 표표히 무대에서 사라진 뒤에도 앞서 열거한 90년대의 수퍼스타들의 추종세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의 전투적인 단결력으로 여론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이들에게 서태지라는 화두는 더 이상 성공한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이 화두는 자신들을 누르고 있는 모든 억압에대한 저항의 이름이며 이들의 내면을 가로지르고 있는 발산의 욕망을 응축시킨 이름이고, 나아가 앞의 세대와 자신의 세대를 확연히 구별짓는 정체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서태지라는 이미지의 화두는 이렇게 제도와 묙망과 세대의 불연속의 문지방을 밟고 서 있다. 이 첨단의 시대에 그가 숱하게 명멸해간 엔터테이너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앨범이라는 하나의 텍스트 속에 극단적인 양면성의 대립을 함축해왔다는 데 있다. 그는 성공을 유인하는 대중적인 취향과 독자적인 목소리를 양립시키는 데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유행을 쫓는 스타추종 그룹과 자신의 수용행위를 분석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매니아그룹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즐겨 감행한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결국 소란스러웠던 이 세기말 한국 대중문화가 요구한 욕망의 디스코그래피이다.하지만 그는 이번의 솔로앨범에서 바로 그러한 자신의 이미지를 폐기하고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려 한다.
이 세상은 이제 나를 붙잡아 가두려 하고 있어
경쾌함과 둔중함,밝음과 어둠, 순정적인 것과 악동적인 것이 어지러이 뒤섞인 솔로로서의 두 앨범은 완전주의자로서으 서태지의 결벽증의 산물이다. 이것을 '신비화'를 이용한 '얄팍한 상혼'으로 몰고가려는 논리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그의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답례인 솔로 1집의 'Take Five'조차도 스타덤의 절정에 있었던 93년의 '우리들만의 추억'의 나르시즘에 비하면 훨씬 성숙해 있으면서 훨씬 대자적이다. 그는 이 위험한 컴백앨범 내내 단 한 트랙도 여의도 라디오 방송국의 PD들이 흔쾌히 선곡할 만한 순응적인 노래에 할애하지 않았다. 무엇이 '상업적'인가?
그는 앨범 발매일 전에 단 한 곡도 방송과 신문사에 제공하지 않으면서 15만장 에 달하는 앨범 예약판매(1집)와 72만장 의 첫날 배급물량(2집)이라는 획기적인 마케팅을 완성시켰다. 이미 불법음반이 시장의 유력분을 잠식한 복마전적인 상황에서 최소한 예약 판매분만큼은 마피아 유통에서 보호하지 않았는가? 이걸 두고 '상업적'이라고 이른다면 그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그의 컴백의 기조는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산한 지 몇 달 뒤인,음반의 사전심의 폐지된 직후에 나왔던 싱글'시대유감'원곡 버전의 부클릿에서이미 암시되었따. 그것은 시장을 지배하는 어둡고 집요한 권력과 싸우는 것이다.
...더러운 '쓰레기통'에 처박힌 나. 위로 보이는 칙칙한 회색 천장이 비웃으며 말했다.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튀지 마라...
그는 자신의 솔로 1집으로 열일곱 살때 썼던 비주류의 무대로 되돌아갔다.그리고 그 시나위 시절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치면서 단련한 홍소의 로큰롤을 자신의 음악의 뿌리로 정의했다. 그가 '판을 팔아먹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 포장만 입힌다는 비난은 조용필더러 90년대에 이르러서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에 당신은 트로트만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것만큼이나 모욕적이다.
그가 세계 록 음악사를 흥분시킬 만한 독창적인 아티스트로 등재된 것은 명백히 아닐지 모른다.그러나 그는 헤비메탈과 사이키델릭, 펑크,랩,리듬앤블루스를 주유하면서 90년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당대적 욕망을 견인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의 시뮬라르크들의 속류적인 모방의 물결 속에서 수많은 수용자들로 하여금거개의 비주류 장르들을 청각적인 경험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그의 동료들을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바로 그 자본과 거대매체를 배신하면서 상처로 얼룩진 대중음악가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으 독립을 주류 시장의 영역 안에서 해맑은 미소와 섬뜩한 기획 마인드로 획득해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무슨 뜻일까.
적대자들의 크고 작은 흠집내기에도 불구하고 서태지는 이 절대절명의 시점에 발표한 신작을 통해서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한번 스스로 증명시켰다.음악감독 서태지는 이번 신작앨범의 전편에 걸쳐 지난 앨범에서는 잽을 던지는 정도로 그쳤던 현실질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그 특유의 중의적인 문법과 직설적인 화법을 통해,그리고 의미사슬의 파괴를 통한 의미의 충격요법으로 풀어놓는 한편, 록의 이름으로 가능한 모든 음악적 양식에 대해 전반적인 검토에 돌입했다. 아마도 이앨범은 그의 음악적 이력의 출발점이어던 록이라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이정표일지도 모른다.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지나간 과거의 가난한 풍경으로서의 록이 아니라 낡은 억압의 틀을 부수는 새로운 문제제기의 정신으로서의 록음악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그 자신의 본질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