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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s and Overview of Bossa Nova Music - 보사 노바 음악의 기원과 개요 - 2
Antonio Carlos Jobim은 리우데자네이로의 시쥬카에서 태어났지만 얼마되지 않아 이파네마로 이주하였다. 10세경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클래식 작곡까지 익혔지만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단순한 취미였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포기하고 20세경부터는 지방 나이트 클럽에서 취객을 상대로 매일밤 피아노를 연주하는 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52년 작, 편곡가겸 지휘자인 라다메스 지나타리의 권유로 컨티넨탈 레코드사의 전속작곡가로 취임하여 작곡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년시절부터 친했던 뉴튼 맨도사를 시작으로 빌리 브랑코,도로리스 듀란등과 공동 작곡한 곡이 인기가수들에 의해 레코딩되어 서서히 인
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대작은 56년 빌리 브랑코와의 공동작품인 "리오데자네이로 교향곡"이다. 15분이 넘는 이 대작은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산,태양, 바다등 3악장으로 구성된 심포닉한 조곡은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당시 음악관계자들에 크게 어필했다고 한다. 같은 해 시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레스와 만나게 되는데 그는 외교관으로서 파리에 3년간 근무하던 당시 쓴 희곡 "흑인 올페"의 음악을 조빔에 의뢰한것이다. 당시 콘티넨탈에서 이적이하여 오디온 레코드사의 작편곡가겸 지휘자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조빔이 었지만 단순히 돈이 된다는 이유로 청을 수락 보사노바 사상 최고의 작곡.작사 콤비인 조
빔- 비니우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3년후 59년 이 희곡으로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도 유명)에 의해 영화 흑인 올페가 완성되었다. 58년 에리체티 가르도조가 조빔- 비니시우스 작품집으로 레코딩하였는데 그 중 "셰가 디 사우다지"를 녹음할 당시 조빔이 한 뮤지션을 기용할것을 제안하였다. 그가 바로 바이아 출신 조안 질베르토였다. 여기서 조빔은 다른 기타리스트와 다른 독특한 리듬을 연주했는데 이는 삼바와 칸손전통에 입각한 연주로 보사노바 의 전형은 아니었지만 "바라손"이란 리듬으로 보사노바 리듬의 원점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빔은 오디온 레코드사와 담판하여 질베르토의 레코드 데뷰
를 실현시켰는데 이것이 58년 7월 조빔의 프로듀스로 싱글 "셰가 디 사우다지"와 "빈 본"을 녹음하였다. 같은해 11월 2번째 싱글 "데스피나도"와 "오바라라"를 녹음했는데 데스피나도의 가사중 보사노바란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보사노바는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조빔의 작곡 비니시우스의 작사 그리고 조안의 노래와 기타에 매료된 카를로스 리라, 로베르토 메네스칼, 나나 레온등 신인 3인방에 이어져 보사노바는 리오의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어갔다. 62년 11월 조빔은 조안 질베르토,세르지오 멘데스,카를로스 리라등과 함께 도미하여 카네기홀에서 개최된 보사노바 콘써트에 출연했다. 이 공연 이전 스탄 겟츠와 챨리
버드의 앨범 "재즈 삼바"에서 첫번째곡인 데사피나도가 대히트를 기록한 바 있기에 조빔은 미국 재즈맨 사이에서의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상당하였다. 63년 조빔은 크리드 테일러의 프로듀스로 3매의 앨범녹음에 참가하게 된다. 스탄 겟츠의 "재즈 삼바 앵콜 (흑인 올페 카니발의 아침을 작곡한 루이스 폼파도 참가)", 조빔의 기타와 피아노를 전면에 등장시킨 전곡이 연주곡으로 된 "The Composers of Desafinado Plays",그리고 조안의 부인 아스트라드 질베르토가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게 된 앨범 "겟츠/질베르토"이다. 이리하여 조빔의 음악은 세계로 확산되게 되었고 각계에서 작곡,연주 요청이 쇄도했다. 재즈 필드의 빅 네임들과의 공연
을 예를 들면, 67년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공연작 "시나트라 & 조빔"과 77년 사라 본이 리오에서 녹음한 "아이 러브 브라질"에서 두곡을 공연하고, 80년에는 엘라 피츠제랄드가 조빔의 작품집 "엘라 싱즈 조빔"을 녹음하였다. 1990년 미국 저작권협회 BMI 발표 자료에 의하면 1990년까지 "이파네마에서 온 여인"는 약 300만회 이상 연주되어 역대 5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외 데사피나도,원 노트 삼바, 하우 인세시티브, 웨이브, 워터 옵 마치 등은 100만회 이상 연주되는등 비영어권 출신 작곡가로는 최고의 히트곡을 보유한 인물이기도 하다.
Roberto Carlos & Caetano Veloso - Wave
(로베르토 카를로스, 카에타노 벨로소 - 웨이브)
정보:
설명: 호베르투 카를루스 브라가는 브라질의 가수 겸 작곡가이다. 그의 음반은 전 세계에 약 1억 2,000만장에 달하는 앨범이 판매되었으며 1960년대 브라질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가수로 여겨진다. 위키백과
출생: 1941년 4월 19일 (83세), 브라질 이스피리투산투 주 카쇼에이루지이타페미링
배우자: 마리아 리타 시모에스 (1996년–1999년), 마이리안 리오스 (1980년–1989년), 클레오니체 로시 마르티넬리 (1968년–1979년)
자녀: 로베르토 카를로스 브라가 2세, 아나 폴라 로시 마르티넬리, 라파엘 카를루스 토레스 브라가, 루치아나 카를로스
부모: 로라 모레이라 브라가, 로베르티노 브라가
형제자매: 카를로스 알베르토 브라가, 노마 모레이라 브라가, 라우로 로베르토 브라가
직업: 싱어송라이터
출처 - 구글
정보:
설명: 카에타누 벨로주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작가, 정치 운동가이다. 벨로주는 1964년 집권한 브라질 군부독재 초기인 1960년대 연극, 시, 음악을 아우르는 브라질 음악 운동 트로피칼리아에 참여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위키백과
출생: 1942년 8월 7일 (82세), 브라질 바이아 Santo Amaro
연인: 파울라 라빈 (2016년–)
배우자: 파울라 라빈 (1986년–2004년), 안드레아 가델라 (1967년–1986년)
장르: 브라질 대중음악(MPB), 리저널 브라질리언, 브라질 펑크
출처 - 구글
정보:
발매일: 2008년
장르: 보사노바
Roberto Carlos & Caetano Veloso - Wave
(로베르토 카를로스, 카에타노 벨로소 -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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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포르투갈어 | 포르투갈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영어로 번역함 | 포르투갈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한국어로 번역함 |
Vou te contar Os olhos já não podem ver Coisas que só o coração pode entender Fundamental é mesmo o amor É impossível ser feliz sozinho O resto é mar É tudo que eu não sei contar São coisas lindas que eu tenho pra te dar Vem de mansinho a brisa e me diz É impossível ser feliz sozinho Da primeira vez, era a cidade Da segunda, o cais e a eternidade Agora eu já sei Da onda que se ergueu no mar E das estrelas que esquecemos de contar O amor se deixa surpreender Enquanto a noite vem nos envolver Da primeira vez, era a cidade Da segunda, o cais e a eternidade Agora eu já sei Da onda que se ergueu no mar E das estrelas que esquecemos de contar O amor se deixa surpreender Enquanto a noite vem nos envolver outro Sozinho Sozinho | I'll tell you. The eyes can no longer see Things only the heart can understand Love is the most fundamental thing It's impossible to be happy alone The rest is sea That's all I can't tell you These are beautiful things I have to give you It's like a breeze and it says to me It's impossible to be happy alone The first time, it was the city From the second, the pier and eternity Now I know From the wave that rose in the sea And the stars we forgot to count Love is surprised As the night comes to us The first time, it was the city From the second, the pier and eternity Now I know From the wave that rose in the sea And the stars we forgot to count Love is surprised As the night comes to us another Alone Alone Writer(s): Antonio Carlos Brazilian De Almeida Jobim | 내가 말해줄게 눈이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들 사랑은 정말 근본적이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나머지는 바다다 내가 말할 수 없는 모든 것 이건 내가 당신께 드릴 아름다운 것들이에요.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서 나에게 말한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첫 번째는 도시였습니다 두 번째부터 부두와 영원 이제 알았어 바다에서 일어난 파도로부터 그리고 우리가 세는 것을 잊었던 별들 사랑은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 밤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는 도시였습니다 두 번째부터 부두와 영원 이제 알았어 바다에서 일어난 파도로부터 그리고 우리가 세는 것을 잊었던 별들 사랑은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 밤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다른 홀로 홀로 |
1994년 조빙이 사망했을 때 그의 친구 중 한명이었던 미국의 프랭크 시나트라는 조빙에 대해 그와 "밤새 대화하며 깊은 생각을 나눴던 시간들 만큼이나 그와 함께 했던 음악적 경험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창조적이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시나트라는 그의 사망에 대해 "전 세계는 가장 재능있는 음악가 중 한명을 잃었으며 내 개인적으로는 큰 친구 한명을 잃은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던 톰 조빙의 본명은 안또니우 까를루스 브라질레이루 지 알메이다 조빙(Antô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으로 1927년, 세계 3대 미항 가운데 하나인 히우 지 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띠주까(Tijuca)구(區)에 살았으나 곧 조빙의 음악적 영감의 산실이 된 이빠네마(Ipanema)로 옮겼다. 14세가 되던 무렵 그는 뮤지컬에 종사하던 삼촌들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를 눈치챈 그의 의붓아버지가 한스 조아슁 쾰로이터(Hans Joachim Koelreuter)에게로 데려가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도록 해 주었다. 이 스승은 어린 조빙에게 고전음악의 대위법과 하모니의 개념을 깨우쳐 주었으며 그 결과 조빙은 자신의 음악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드뷔시(Debussy)에 심취하게 된다. 그 뒤엔 루씨아 브랑꾸(Lúcia Branco)에게서 피아노 공부를, 또마스 떼랑(Tómas Téran)에게서는 기타
를 배우게 되었다. 한때 그는 건축가가 될 꿈을 안고 건축사무실에서도 일하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재능이 음악에 있음을 알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949년, 조빙은 청년기때부터 연인관계에 있던 그의 첫 번째 부인 떼레자(Tereza)와 결혼을 하였으며 꼬빠까바나(Copacabana)해변의 야간 업소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년 뒤에는 꼰찌넨따우(Continental)라는 녹음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녹음을 위한 편곡일을 맡았다. 그 결과 1953년 그의 첫 작품이 선을 보이게 된다. 작품명은 Incerteza(불확실)로 뉴톤 멩동사(Newton Mendonça)와 공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마우리씨 모우라(Mauricy Moura)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또
이듬해 1954년, 빌리 블랑꾸(Billy Blanco)와 함께 작곡한 Teresa da praia(해변의 떼레자라는 뜻)가, 당시에 큰 인기를 모으던 딕 파니(Dick Farney)와 루씨우 아우비스(Lúcio Álves)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대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그 직후 그는 다시 빌리 블랑꾸와 Sinfonia do Rio de Janeiro라는 곡을 만들어, 꼰찌넨따우사에서 10인치 LP판으로 녹음, 찬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1956년경 부터는 빌리 블랑꼬(Billy Blanco), 돌로리스 두랑(Dollores Duran), 뉴톤 멘동사(Newton Mendonça)등과 함께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에게 정작 중요한 변화는 당대 유명한 브라질 시인이었던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
(Vinícius de Moraes)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조빙은 언젠가 "비니씨우스와 함께 하루에 3곡을 만들기도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두텁기 이를 데 없었으며 둘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Se Todos fossem iguais a você", "Amor em Paz", "Chega de Saudade", "Águas de Beber", 그리고 "Garota de Ipanema" 등 보사노바의 명곡들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든 "아 펠리시다지 (A Felicidade - 행복이란 뜻)"가, 프랑스의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고 헐리우드에서 오스카의 최고외국영화상을 수상한, 마르셀 까뮈 감독의 영화 "Orfeu do Carnaval"(카니발의
올페라는 뜻)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면서 큰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듬해 1958년, 주엉 질베르뚜(João Gilberto)의 기타 연주와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엘리제찌 까르도주(Elisete Cardoso)의 Canção do amor demais라는 LP판에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든 여러 곡이 선보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브라질 음악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쉐가 지 사우다지 - Chega de Saudade(그리움은 이제 그만이라는 뜻)"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LP는 멜로디와 가사의 창작성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모든 면에서 향후 붐을 이룰 보사노바의 특징을 고루 갖춘 이정표로 간주되고 있다. 그 직후 "Chega de Saudade"는 주엉 질베르뚜
(João Gilberto)에 의해 78rpm으로 다시 녹음되었으며 이때부터 보사노바는 브라질 전역을 휩쓸 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톰 조빙은 국제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우선 1962년, 미국의 Audio Fidelity사의 초청과 브라질 외무성의 후원하에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가졌으며 이어 미국의 배우겸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초청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자신의 곡들을 녹음하면서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963년 처음으로 솔로 음반인 The composer of Desafinado Plays을 내고 Corcovado Music이라는 이름의 음반출판사도 열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
만 아이러닉하게도 그의 조국인 브라질에서는 그가 '미국음악'을 한다든가 아니면 미국 시장에 몸을 팔았다는 비난이 크게 일었으며 그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의 음반은 미국을 비롯한 각 국에서 상당한 판매를 기록한 반면 브라질 국내에서는 아주 저조한 판매실적을 나타내었다. 한편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빙은 아마존 밀림의 파괴와 대도시에서의 부동산 투기 등을 보며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Matita Perê", "Urubu", "Passarim"과 같은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에 들어서는 브라질 국민들로부터도 점차 사랑을 받기시작하면서 국내 활동도 강화하였으며 그 와중에 두 번째 부인인 아나 롱뜨라(Ana Lontra)
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부인과는 아들인 주엉 프랑시스꾸(João Francisco, 18세이던1997년 7월 교통사고로 사망)와 딸인 마리아 루이자(Maria Luísa)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과는 딸인 엘리자베찌(Elizabeth)와 아들인 빠울링뉴 (Paulinho, 피아니스트이자 현재 역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다니에우 조빙-Daniel Jobim의 아버지)를 두었었다. 노년기에 접어들었던 1992년 그는 그해 브라질 카니발에서 망게이라(Mangueira) 삼바스쿨의 주 테마로 등장하며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1994년 초, 방광암 선고를 받고 미국의 뉴욕에서 종양 제거를 위한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해 12월 8일 사망하고
말았다. 1994년 4월 6일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는 굴지의 재즈 레코드사 버브(Verve)의 창립 5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이 음악회는 전설이 되어버린 과거 거장들의 모습을 재현해냄으로써, 화려했던 재즈의 지난날들을 회고하게 해준 무대였다. 그러나 이 음악회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스스로 연주한 유일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브라질의 천재 작곡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었다. 50년대 말 브라질 음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포르투갈의
선율과 아프리카 리듬이 결합한 삼바라는 브라질 전통음악은 보다 유럽적이고, 미국적인 감수성으로 무장한 젊은 음악가들을 통해 변화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 하나가 1958년에 초연된 연극 <카니발의 오르페>였다(이 연극은 이후 <흑인 오르페>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영화화되었다). 이 연극은 루이스 본파가 작곡한 주제가〈카니발의 아침〉과 함께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실상 작품의 세련된 감수성은 젊은 시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에스와 음악을 담당했던 톰 조빔(톰은 안토니오 카를로스의 애칭)의 것이었다.
Carmen Monarcha, Carla Maffioletti, Suzan Erens - Manhã de Carnaval
(카르멘 모나르카, 칼라 마피올레티, 수잔 에렌스 - 카니발의 아침)
정보:
설명: 영어에서 번역됨-Carmen Monarcha는 브라질의 소프라노입니다. 브라질 북부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의 아버지는 작가이고 어머니는 유명한 브라질 가수인 Marina Monarcha입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고 처음에는 콘서트 첼리스트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위키백과(영어)
원문 설명 보기
출생: 1979년 8월 27일 (45세), 브라질 파라 벨렘
배우자: 옥타비오 아우구스토 카밀로 드 올리베이라 (2016년–)
출처 - 구글
정보:
설명: 영어에서 번역됨-칼라 마피올레티(Carla Maffioletti)는 브라질의 소프라노이다. 그녀는 브라질 남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과이바 강의 항구 도시인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는 클래식 기타로 바꾸기 전에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위키백과(영어)
원문 설명 보기
출생: 1980년 (45세),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뽀르뚜 알레그리
장르: 클래식
음반사: Carla Maffioletti, Tratore, Almeh Music, Carla Maffioletti Creations
학력: Conservatorium Maastricht, Zuyd Hogeschool
국적: 브라질, 이탈리아
출처 - 구글
정보:
출생: 1976년 11월 11일 (48세), 네덜란드 헬렌
국적: 네덜란드
배우자: 미치 물데르스
출처 - 구글
Carmen Monarcha, Carla Maffioletti, Suzan Erens - Manhã de Carnaval
(카르멘 모나르카, 칼라 마피올레티, 수잔 에렌스 - 카니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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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작곡: Luis Bonfa (루이스 본파)
원곡: Astrud Gilberto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Manha Tao Bonita Manha
카니발의 아침 아침,너무나 아름다운 아침
Ee Um Dia Feliz Que Chegou
다가왔던 행복한 날 태양과 하늘이
O Sol, O Ceu Surgiu E Em Cada
높이 솟았고 그것은 모든 현란한 색채로
Cor Brilhou Voltou O Sonho Entao
빛을 내지 희망(꿈)이 가슴 속에 다시 파고들었지
Ao Coracao Depois De Este Dia
이러한 행복한 날 뒤에
Feliz Nao Sei Se Outro Dia
나는 또 다른 이를 그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Vera Em Nossa Manha Tao
우리의 아침에 오, 너무나 아름다운 끝
Bela Fimal Manha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내 마음에 노래가...
Canta Ao Meu Coracao
행복은 되돌아왔어
Alegria Voltou Tao Feliz A Manha
오, 너무나 행복한
Desse Amor
사랑의 아침
이때부터 조빔은 자신의 작품들을 연속해서 발표했다. 〈음이 맞지 않아요 Desafinado〉〈한 음으로 된 삼바 Samba de Una Nota So〉〈블루스는 이제 그만 No More Blues〉등 그의 걸작들은 이미 1958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곡들을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가수는 당시 무명이었던 주앙 질베르토였다. 이들이 빚어낸 협력은 보사노바(새로운 경향)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브라질 음악의 일대 혁명이었다. 그것은 삼바에 인상주의적인 세련미와 도회적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미국의 색소폰 주자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의 신선함을 최초로 간파한 재즈 연주자였다. 그를 비롯한 몇몇의 재즈맨들은 보사노바를 불러들여 60년대 초 미국을 강타했는데,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이는 케네디 정권으로 상징되는‘젊은 미국’의 감수성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João Gilberto & Tom Jobim - Desafinado
주앙 질베르토 & 톰 조빔 - 음이 맞지 않아요)
(톰은 안토니오 카를로스의 애칭)
정보:
설명: 주앙 지우베르투는 브라질의 보사노바 연주가이다. 브라질 북동부의 바이아주 출신. 그의 부친은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위키백과
출생: 1931년 6월 10일, 브라질 바이아 주아제이루
사망 정보: 2019년 7월 6일,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
배우자: 미우샤 (1965년–1971년),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1959년–1964년)
자녀: 베베우 지우베르투, 주앙 마르셀로 질베르토, 루이사 카롤리나 질베르토
장르: 브라질 대중음악(MPB), 삼바-파고지, 리저널 브라질리언, Musica tropicale, POP, 재즈, 록
출처 - 구글
정보;
설명;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은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가수, 피아니스트로 보사 노바의 전설을 만든 인물이다. 통 조빔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섬세한 멜로디와 하모니로 유명한 조빙의 곡들은 브라질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음악가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위키백과
출생: 1927년 1월 25일,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 Tijuca
사망 정보: 1994년 12월 8일, 미국 뉴욕 뉴욕 더 마운트 시나이 병원
배우자: 아나 론트라 조빔 (1986년–1994년), 테레자 헤르마니 (1949년–1978년)
자녀: 마리아 루이자 조빙, 주앙 프란시스코 조빙, 파울루 조빙, 엘리자베스 조빙
국적: 브라질
João Gilberto & Tom Jobim - Desafinado
주앙 질베르토 & 톰 조빔 - 음이 맞지 않아요)
(톰은 안토니오 카를로스의 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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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내가 음조가 틀렸다고 말하면, 자기야
Se você disser que eu desafino, amor
이것이 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Saiba que isto em mim provoca imensa dor
오직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당신과 같은 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Só privilegiados têm ouvido igual ao seu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만을 소유한다
Eu possuo apenas o que Deus me deu
굳이 나를 분류하려고 한다면
Se você insiste em me classificar
나의 반음악적 행동
Meu comportamento de anti musical
나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 논쟁을 벌여야만 한다
Eu mesmo mentindo, devo argumentar
이게 보사노바구나
Que isto é bossa nova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Que isto é muito natural
당신이 모르는 것, 심지어 감지하지도 못하는 것
O que você não sabe, nem sequer pressente
단지 음조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É que os desafinados também têm coração
내 Rolley-flex를 타고 당신의 사진을 찍었어요
Fotografei você na minha Rolley-flex
그의 엄청난 배은망덕이 드러났다
Revelou-se a sua enorme ingratidão
내 사랑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Só não poderá falar assim do meu amor
그 사람은 당신이 찾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사람이에요, 그렇죠?
Ele é o maior que você pode encontrar, viu?
당신은 음악을 가지고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Você com a sua música esqueceu o principal
그건 음이 맞지 않는 가슴에 있어
Que no peito dos desafinados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뛰네
No fundo do peito bate calado
음조가 맞지 않는 이들의 가슴에도 심장이 뛰고 있다
No peito dos desafinados também bate um coração
보사노바 열풍의 정점을 만들었던 1963년 음반《게츠와 질베르토 Getz / Gilberto》는 게츠의 감미로운 테너 색소폰과 당시 부부였던 주앙과 아스트루드의 달콤한 목소리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걸작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실질적으로 조빔의 음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음반에 담긴 여덟 곡 중 여섯 곡을 썼기 때문이다. 이 음반에서 그의 작품들이 들려주는 기적적인 역설(소박하면서도 지극히 세련된)은 결코 모방될 수 없는 미감이다. 지난 세기가 저물어가자 많은 언론들은 보사노바를‘만인의 취향’으로 만들어놓은 조빔을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소박한‘딴따라’로 여겼던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1994년 12월 뉴욕에서 그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Caetano Veloso & Gilberto Gil & Ivete Sangalo -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카에타노 벨로소, 질베르토 길, 이베테 상갈로 -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정보:
설명: 카에타누 벨로주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작가, 정치 운동가이다. 벨로주는 1964년 집권한 브라질 군부독재 초기인 1960년대 연극, 시, 음악을 아우르는 브라질 음악 운동 트로피칼리아에 참여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위키백과
출생: 1942년 8월 7일 (82세), 브라질 바이아 Santo Amaro
연인: 파울라 라빈 (2016년–)
배우자: 파울라 라빈 (1986년–2004년), 안드레아 가델라 (1967년–1986년)
장르: 브라질 대중음악(MPB), 리저널 브라질리언, 브라질 펑크
출처 - 구글
정보:
설명: 지우베르투 파수스 지우 모레이라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정치인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브라질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위키백과
출생: 1942년 6월 26일 (82세), 브라질 바이아 살바도르
배우자: 플로라 질 (1988년–), 산드라 가델라 (1969년–1980년), 나나 카이미 (1967년–1968년), 벨리나 길 (1965년–1967년)
자녀: 프레타 질, 벨라 질, 페드로 길, 호세 질, 나라 질, 마리아 질, 마릴리아 질, Bem Gil
장르: 무지카 포풀라르 브라질레이라, 삼바, 트로피칼리아, 보사노바 · 더보기
손주: 프란시스코 뮐러, 플로어 길, 니노 길 드마시, 주앙 질, 벤투 길, 페드로 길, 가브리엘 길, 루카스 길
출처 - 구글
정보:
설명: 이베치 상갈루는 브라질의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사회자, 배우이다. 위키백과
출생: 1972년 5월 27일 (52세), 브라질 바이아 주아제이루
배우자: 다니엘 캐디 (2011년–), 다비 모라에스 (2002년–2004년)
부모: 마리아 이베트 디아스 드 상갈루, Alsus Almeida de Sangalo
형제자매: 모니카 상갈루, 헤수스 상갈루, 신시아 상갈루, 리카르도 상갈루, 마르코스 상갈루
출처 - 구글
Caetano Veloso & Gilberto Gil & Ivete Sangalo -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카에타노 벨로소, 질베르토 길, 이베테 상갈로 -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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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s
포르투갈어 | 포르투갈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영어로 번역함 | 포르투갈어를 구글을 이용해서 한국어로 번역함 |
Meu coração, sem direção, voando só por voar Sem saber onde chegar Sonhando em te encontrar E as estrelas que hoje eu descobri no seu olhar As estrelas vão me guiar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perdesse os sonhos dentro de mim E vivesse na escuridão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não visse flores por onde eu vim Dentro do meu coração Hoje eu sei, eu te amei no vento de um temporal Mas fui mais Muito além do tempo do vendaval Nos desejos, num beijo Que eu jamais provei igual E as estrelas dão um sinal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perdesse os sonhos dentro de mim E vivesse na escuridão Se eu não te amasse tanto assim Talvez não visse flores por onde eu vim Dentro do meu coração | My heart, without direction, flying just to fly Not knowing where to get Dreaming of meeting you And the stars that today I discovered in your eyes The stars will guide me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 lose the dreams inside me And live in darkness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n't see flowers where I came Inside my heart Today I know, I loved you in the wind of a storm But I was more Far beyond the time of the gale In desires, in a kiss I've never tasted the same And the stars give a sign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 lose the dreams inside me And live in darkness If I didn't love you so much Maybe I wouldn't see flowers where I came Inside my heart | 내 마음은 방향도 없이 그저 날기 위해 날아가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 당신을 만나는 꿈을 꾸어요 그리고 오늘 당신의 눈에서 발견한 별들 별들이 나를 인도할 거야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안의 꿈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왔던 곳에서는 꽃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내 마음 속 오늘 난 알아요 폭풍바람 속에서도 당신을 사랑했다는 걸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이었다 강풍의 시대를 훨씬 넘어서 욕망 속에서, 키스 속에서 같은 맛을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별들이 신호를 보내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 안의 꿈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요 내가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왔던 곳에서는 꽃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내 마음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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