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함께’라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죄를 짓는 것도, 내가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 것도
모두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하는 가정 공동체, 같은 신앙을 가진 신앙 공동체,
지구라는 공동의 집을 사용하는 지구촌 공동체, 그리고 목적이나 취지에 따라 학교나
직장 등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늘 타인과 함께 사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합니다. 결코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주변을 경계하고 지키며, 공동체를 위해 위험을 경고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에제키엘은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경고의 말을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책임을
받은 것입니다. 가령 그 사람이 악인이라는 이유로 파수꾼이 경고를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악인이 죽은 책임을 파수꾼에게 묻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악인은 결국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파수꾼은 위험을 경고하는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에게 빚을 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거나 받는 것은 예외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받은 것이 없으니, 줄 것도 없다.’하고 말하는 관계에서
어떻게 ‘사랑’이 싹틀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마음은 하나 줄 것을 하나 더 얹어주는 마음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타이르는 것은 그 형제를 위한 길이고,
우리 자신에게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곳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며, 바로 교회입니다.
부족하다고 해서, 성격이 비뚤어졌다고 해서, 한 번 말했는데 안 들었다고 해서
포기하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 아래에 모인 죄인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서로의 상처를 돌보아주며 함께 걸어가는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정말 큰 기쁨이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를 각자의 자리에서 ‘파수꾼’이요 ‘사랑의 전파자’로 불러주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코로나19의 현실 속에서 서로 원망하는 요즈음이지만,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 같이 걸어갑시다!
글 : 윤대성(세례자요한) 신부 – 광주대교구
아주 특별한 휴가
8월 초 아주 특별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전반부 3박 4일은 가족여행을 했고,
후반부 2박 3일은 수도원에서 개인 피정을 했습니다.
아내 헬레나와 휴가 계획을 짜다가 큰아들에게 여행 대장을 맡겨보았습니다.
큰아들은 가족회의를 열어 의견을 모은 뒤
경주, 경산, 대구를 다녀오는 멋진 여행 계획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스물아홉이니 그럴만한 나이입니다. 맡기길 잘했습니다.
한결, 도운, 새온, 채운 네 아이와 엄마 아빠까지 여섯 명 한 가족이 토요일 오전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경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수학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요즘 수학이 궁금해진 아빠가 묻는 질문에 컴퓨터와 물리학을 전공한 아이들이
‘수학은 과학의 언어’, ‘수학은 사람들의 소통을 돕는 도구’라며 조리 있게 답을
했습니다. 아빠와 아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헬레나는 ‘아이들이 참 잘 컸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유적들과 맛집 탐방도 하고, 경주역 앞
성동성당에서 주일 저녁 미사도 드리고, 박물관과 전시관까지 알찬 경주 여행을
마친 뒤 헬레나의 고향인 대구와 경산의 선산까지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외가 선산은 첫 방문이었습니다. 땡볕 아래 땀 흘리며 산소까지 오르느라
고생했지만, 엄마 집안 어르신들의 삶과 역사를 접하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여행 일정 짜기와 숙소 예약에 맛집 찾기까지 아이들이 도맡아 하니 참 편안했습니다.
부모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이렇게 자식에게 믿고 맡긴 뒤 뒷전에 머물러도
됩니다. 렛잇비(Let it be)가 역시 정답입니다!
서울 오는 차 안에서 남은 휴가에 개인 피정을 하고 싶다했더니
헬레나는 바로 검색한 뒤 예약을 해줬습니다. 그 덕에 인천 계양산 아래
가르멜 수도원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성당에 홀로 앉아 기도드리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가만히 누워 쉬기도 하면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요즘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당신 음성을 들려주세요.
제게 바라시는 바를 말씀해 주세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피정을 하면서 다시
청했더니 주님께선 “성녀 데레사와 대화해보렴.” 하고 답해주십니다.
16세기 종교개혁 격동기에 가톨릭교회 개혁을 위해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17개 수도회를 창립했던 성녀 데레사를 오래전 스페인 아빌라 여행 때 처음
만났는데, 가르멜 수도원에서 이렇게 다시 만난 게 우연이 아니었나 봅니다.
주님 말씀대로 그분을 더 공부하고 기도 속에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수도회가 출간한 좋은 책들이 눈에 띄어 구입해 읽고,
성녀에 관한 강의 영상들도 찾아 들었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데레사 성녀의 이 말씀이 마음을 울립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 한순간도 눈길을 떼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계신 그분을 만나고 싶다면
그저 하느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여행 준비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대신 하느님께 한 걸음 다가갔던 아주 특별한 휴가였습니다.
글 : 정석(예로니모) – 서울시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