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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협 이정민 위원장, 민들레에 특별 기고문]
1년 전, 평온했던 토요일이 지옥의 불구덩이로
이 정권은 애초부터 참사 왜곡하고 책임 회피만
그런 태도가 고스란히 2차 가해 남발로 이어져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 만들 특별법 반드시 필요
권력과 고통스런 싸움…국민은 정의 외면 안 해
시민언론 민들레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인 이주영 씨(사망 당시 28세)의 아버지이자 유가족협의회 대표인 이정민 운영위원장의 특별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단지 거리를 걷다 159명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미증유의 사회적 대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새 1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정부‧여당의 완강한 반대 속에 특별법도 국회에 멈춰선 상태에서 유족들은 시민들에게 간곡히 연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는 29일까지 '1주기 집중 추모 주간'에 매일 저녁 추모제를 개최하고 유가족과 함께 10.29km 서울 도심 걷기, 진상 규명 과제 보고회, 학술대회, 구술기록집 발간 및 북 콘서트, 추모 다큐 특별시사회, 청년 100인의 대화 등 다양한 추모 활동을 진행합니다. 1주기 당일인 29일에는 4대 종교 기도회, 이태원-분향소 행진, 시민추모대회 등이 열릴 예정입니다. 시민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 유가협 이정민 위원장
술과 눈물로…유족들 만나 서로 위로하며 지난한 싸움 시작
2022년 10월 29일,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10월의 밤이었다. 평온하고 단란했던 토요일 오후가 지옥의 불구덩이로 변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잠시 TV를 보고 있던 중 딸아이의 약혼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로 흐느끼며 이태원으로 와달라고만 했다. 순간 불안하긴 했으나, 이렇게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그 아수라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혼란 상태였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참사 이후,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술과 눈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통해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유가족들을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정부가 이 참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정부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유가족들은 정부와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싸움이 될 줄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10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창립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2.10. 연합뉴스
처음부터 참사 왜곡한 정권, 끔찍한 2차 가해로 이어져
이 정권은 애초부터 이태원 참사를 부정했다.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왜곡된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을 왜 정부의 탓을 하느냐'며 역정을 내더라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부의 그런 태도가 고스란히 2차 가해로 이어졌다. '서양의 귀신놀이에 가서 그렇게 되었다' '무질서해서 그랬다' '놀러 가서 그렇게 된 거다' 등등….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을 폄훼하고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2차 가해를 남발하며,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고통과 슬픔을 야기하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가족들이 끊임없이 호소하고 외쳤던 이유는 분명하다.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한 진상 규명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참사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의혹투성이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참사 직후 정부는 유가족들과의 소통도 없이 영정, 위패가 없는 분향소를 차리고 일방적으로 애도 기간을 정해 놓고, 근조 리본을 '근조' 글자가 안 보이게 뒤집어서 달도록 지침을 내리는 듣도 보도 못한 행보를 보였다.
유가족들에게는 장례비를 지원한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허울뿐인 지원을 계속 홍보하였다. 그리고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했다는 듯 국민들을 호도하였고, 사람들이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면서 이태원 참사를 지우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3.7.25. 연합뉴스
국정조사 파행, 특수본과 검찰은 은폐 의혹만…특별법 꼭 필요
억울한 심정으로 국회를 찾아가 국정조사를 호소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국정조사는 파행을 겪으며 정해진 기간의 반을 허비하였다. 부실한 자료 제출, 증인들의 미온적인 증언 등으로 국정조사는 의혹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이후 꼬리 자르기식 수사의 전형을 보여준 특수본 수사와 미심쩍은 검찰의 희생자 및 생존자들의 카드 사용 및 계좌 내역 조사 등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은폐 의혹들은 더더욱 선명하게 진상을 밝혀야 하는 분명하고 확실한 명분이 되었다.
해외 사례에서도 유사한 사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도 그 진실은 정부나 경찰에 의해 밝혀지진 않았다.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독립적 조사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1989년에 발생한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 축구장의 94명 압사와 700명 이상이 부상한 참사는 경찰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관중 탓, 마약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였다. 하지만 참사 발생 20년이 지난 2009년에 구성된 힐스버러 독립조사위원회는 결국 진실을 밝혀냈고 경찰은 그 잘못을 인정하였다. 200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 시 불꽃놀이 축제 압사 사고 역시, 독립적 조사기구인 '제3자 위원회'가 진실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연계시키고, 끊임없이 왜곡된 메시지를 던지며 독립된 조사기구의 설치를 무력화하려 한다. 그러나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적인 조사기구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 구성과 활동에서 정부와 여당의 간섭은 철저히 배제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독립적이면서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와 각계 인사로 구성되어야 한다.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전체회의 종료 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이날 행안위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의결에 반대하며 퇴장했다. 2023.8.31. 연합뉴스
짧은 권력,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로…역사 심판받을 것
지금도 지속적으로 은폐를 하고 있고, 책임을 면피하려 하고 있다. 하루속히 특별법이 통과되어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국회는 그 직무를 다해야 한다. 2022년에 발간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운영백서에는 이런 글이 수록되어 있다.
"진실을 향한 작은 한 걸음, 기록의 한 조각 어느 하나도 국가나 국회의 선의나 조사위원회의 조사 권한을 존중해 순탄하게 이뤄진 적이 없었다. 한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온몸으로 길을 열어온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함께 연대하고 행동해 온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권력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짧은 권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은 엄청난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역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다. 지금 당장의 안위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이후에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힘 있는 권력과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아프지만 지난 1년 동안 버티며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진실을 위해 함께 싸워준 많은 국민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의와 역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힘으로 지켜내고 이겨왔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 역시 우리 국민들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위대한 국가의 위대한 국민은 결코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집중추모주간 일정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추진위원 가입 안내
출처 : 이태원 참사 1주기, 국민들과 정의의 힘을 믿습니다 < 이태원참사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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