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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덕, 주거 24-1, 의논과 계획, 갈등
해가 바뀌고 백춘덕 아저씨와 거처를 의논했다.
작년, 아저씨는 추운 겨울을 월평빌라 302호에서 났다.
“아저씨, 올해는 겨울 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싶으신지요?”
“여 있어야지요. 내가 오데로 가겠어요? 출퇴근하만 좋겠지만 선생님들이 힘들 끼고, 사모님도 별로 안 좋아하니까 여기서 지내만 돼요. 침대가 따시서 춥은 줄도 모르겠어요. 많이 춥으만 난로 키만 되니까 괜찮아요.”
겨울이 시작되면서 난방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아저씨의 생각은 확고했다.
1월 10일을 넘기며 아저씨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구정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에서 일하고 생활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면서 지내고 싶다는 아저씨의 바람이 물거품이 되면서 아저씨 또한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아졌다.
걱정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에 아저씨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거처가 불안정하면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기 어려우니 우선 어디서 지내고 싶은지 찾아뵐 때마다 의논했다.
① 월평빌라에 들어와 산다.
② 배종호 아저씨와 삼아아파트에서 산다.
③ 자취방을 알아본다.
④ 조카 백지숙 씨가 있는 부산으로 간다.
⑤ 북상 고모님 댁 아래채에 산다.
⑥ 고제 큰집 근처에 산다.
여러 선택지를 두고 아저씨와 며칠을 궁리했다.
저축한 여유 자금이 있으니 전세 낀 달세 적은 삶터를 알아보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고, 그것이 시일 내에 힘들면 집을 구하는 동안만 ①②를 대안으로 삼기로 했다.
덕원농원 사모님과 가지리교회 목사님 내외와 성도들, 조카 백지숙 씨와 고모님, 김천리와 월평마을 어르신들과 부동산에도 자문을 구했다.
모두 내 일처럼 두루 알아봐 주시기로 했다.
“종호 씨하고 사는 게 제일 좋은데, 내가 집 구하만 종호가 이사 온대요. 그런데 쉽게 되겠어요? 거서 오래 살았는데 이사하는 게 쉽지 않지. 지 마음이 그렇다는 거겠지. 집을 구해도 혼자 살기는 좀 외롭아요. 누구 한 사람이랑 같이 살만 좋겠는데.”
삼아아파트에 사는 배종호 아저씨를 염두에 두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아저씨가 더 잘 이해했다.
그즈음 월평빌라 304호에 사시는 강석재 어르신도 자취를 계획한다고 들었다.
“석재 어르신하고 살아보고 싶어요. 그 분이 말씀도 참 잘하고 재미있어서 괜찮을 것 같은데. 종호 씨가 당장 나오는 기 힘드니까, 강석재 어르신이 좋다 카만 두 칸짜리 방 얻어서 같이 살지요. 나도 그분 좋으니까.”
강석재 어르신이 승낙하면 아저씨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연세 있을수록 거처를 옮기는 것의 결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리고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 덕원농원 사모님과 김천리 어르신, 윤영부 목사님의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 저번에 말했던 그 집은 벌써 나갔대요. 전세 500에 월세가 5만 원이고 방이 두 개라서 딱 좋았는데, 살던 사람들 나가고 바로 사람이 들어왔다네요. 다른 집 있는지 더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집 알아본다꼬 왔었지요? 김천리에 빈 집은 많은데 다 매매라 카네. 전세는 없지. 큰 나무 뒷집은 안 팔리만 달세로 준다 카는데 수리를 많이 해야 될 끼라. 이 동네 더러 빈 집은 있어도 지금은 들어갈 집이 마땅찮다. 이사를 나가야 집도 나지.”
“선생님, 백춘덕 씨 조건에 맞는 집이 두 군데 났는데 연락처 알려드릴 테니까 한 번 가보시지요.”
아저씨에게 소식 전하니 살만한지 먼저 알아보라셨다.
한 곳은 너무 외진데다 2층, 아저씨가 살기에는 부적절했다.
다른 곳은 입지가 괜찮았다.
우체국 근처라 집을 찾기에도 수월해 보였고, 세 가구가 사는데 주변이 조용했다.
하지만 그곳 또한 2층에다 건물이 오래되어 수리할 곳이 제법 눈에 띄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의했던 부동산에 들렀다.
방 두 칸 한옥이 나긴 했는데 월세가 40만 원, 땅보다 낮은 지반에 수리할 곳이 많았다.
인사하고 돌아 나오려는데 “방금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집이 하나 있네요. 전세 1000에 월세가 40, 리모델링해서 새 집 같은데 나가기 전에 빨리 가서 보고 가격은 주인과 타협해 보시지요. 좋아 보이는데요.” 한다.
전화하니 주소(공수들 8길 60)를 알려주며 20분 뒤에 그곳에서 보잔다.
근처가 모두 주택이고 관공서와 강변 산책로, 병원이 가까워 도보로 다닐 수 있을 만큼 입지가 좋았다.
주인은 나이가 많지 않은 40대 젊은 분이었지만 배려와 선함이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남편이 건축하는 사람이라 2층 건물을 사서 이번에 리모델링했다고 소개했다.
자신이 사는 곳은 종합사회복지관 근처라 말하며 집 안을 보여주었다.
1층이라 좋았고, 앞 건물에 막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단점을 빼면 나무랄 데가 없는 집이었다.
도시가스, 전등은 모두 LED, 수도 등 2층과는 분리된 1층 독채였다.
아저씨 댁에 들러 내용을 전하고 농원 사모님에게 양해를 구해 17일 오전에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17일 오전, 백춘덕 아저씨 댁으로 향했다.
강석재 어르신이 동행했다.
집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춘덕이 가는 길에 나도 한번 가서 보지요. 집을 봐야 나갈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집 보고 쉼터 가도 늦지는 않겠지요.” 하며 나섰다.
집 바로 앞에 주차하니 “집이 여라요? 좋네.” 하며 아저씨가 내렸다.
조금 있으니 주인이 왔다.
어떤 분들인지 말씀은 드린 터라 보자마자 공손히 인사해주었다.
아저씨와 어르신 또한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주인은 현관을 열어 집 안을 소개했고, 어르신은 화장실과 싱크대 수도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계약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큰 방은 아저씨, 작은 방은 어르신이 쓰겠다고 한다.
“방에 매트 깔고 자만 따뜻하겠지요? 나는 농이 아직 없어서 작은 걸로 하나 사야 돼. 이짝으로 놓으만 입구도 안 막고 좋겠네. 싱크대에 물이 잘 나오네. 물이 이래 나와야지, 쪼매씩 잘잘 그래 나오만 안 되지. 화장실이 깨끗하네. 그런데 남자 소변기는 없어서 쪼매 그렇네.”
월평빌라 화장실을 생각하신 듯 양변기 하나 설치된 화장실을 두고 걱정한다.
“빌라는 그렇지, 일반 집에는 그런 거 없지.” 하고 아저씨가 웃으니 “그런가?” 하고 어르신이 대답했다.
“여는 쉼터하고도 가깝지요? 그런데 교회가 문제라. 이사 오면 교회를 우짜꼬 싶다.”
“어르신, 구체적인 것은 집을 계약하신 다음에 두루 의논해도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주인분과 만나 집을 보러 온 거니까, 이 집이 살기에 적당한지만 둘러보고 결정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집은 참 좋네요. 이런 집에서 살아보만 좋겠어요.”
“나도 그래요. 여기로 해요. 이사철도 아닌데 더 알아본다꼬 여 만치 좋은 집이 나겠소? 계약해요.”
두 분도 집이 마음에 쏙 드는 눈치다.
주인과 집세를 의논했다.
전세는 높이고 월세는 낮추는 조건으로 조율했다.
두 분이 결정하는 대로 전세금의 10% 정도 계약금을 걸기로 하고 돌아왔다.
어르신이 쉼터에서 돌아오는 시각을 기점으로 두 분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쉼터에서 돌아온 어르신의 생각은 확고했다.
며칠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셨는데, 집을 본 뒤에 마음을 굳히신 것 같다.
백춘덕 아저씨에게 소식하니 주인과 계약하라셨다.
주인과 통화하고 농협 계좌로 계약금 200만 원을 넣었다.
“그분들 보는 순간 느낌이 오더라고요. ‘아, 이분들하고 인연이 닿겠구나.’ 하는 느낌이요. 지금 사는 집에도 연세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세 들어 사시거든요. 그분 처음 뵐 때도 그랬어요. 두 분 다 인상이 참 좋고 선한 분들이라 마음이 더 쓰이더라고요. 집이 가까이 있으면 도와드릴 수가 있는데, 집이 떨어져 있으니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그렇더라고요.”
주인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참 좋은 분을 만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18일 오전, 농원 사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생님, 아저씨가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으시대요. 아저씨가 집 계약했다고 말하더라고요. 어제 아저씨 내라주고 갈 때 우리 아들 내외 온 거 보셨지요? 아들한테는 아저씨 일 그만두는 거 말 안 했거든요. 아들이 나를 막 뭐라 카더라고요. 이때까지도 잘 참고 지내놓고 아버지 건강 안 좋은데 그런다고, 사과 농사는 접었지만 복숭아 농사는 안 지을 거냐고. 밭에 약을 한 번 쳐도 아저씨가 있어야지, 자기가 때마다 어떻게 도울 수 있냐고. 그래서 일손 딸릴 때는 외국인 노동자를 들인다고 했더니 몇 만 원 일꾼하고 몇 십만 원 일꾼하고 어떻게 비교하냐고 그러면서 아버지가 일을 완전히 놓으실 때까지는 아저씨가 계속 일하시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아저씨가 계속 일한다고 하면 여기서 그냥 살아도 되고, 계약한 집에 나가서 살아도 되고, 그건 아저씨하고 의논해 보세요. 아저씨는 출퇴근하고 싶은 눈친데, 선생님들이 힘들지 않겠어요?”
전화를 끊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아저씨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일은 계속하고 싶지만 집은 나가 살면서 출퇴근하고 싶어 했다.
그러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른 선생님들과 의논하고 사모님 만나 조율하기로 했다.
그날 오후, 소식을 전해 듣고 아저씨와 사모님의 의견을 수렴하려 박시현 선생님과 임우석 선생님이 아저씨 댁을 찾았다.
결론은 아저씨의 주장이 너무나 확고해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사장님과 사모님은 출타해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아저씨는 출퇴근이 어려우면 일을 그만두겠다는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고 한다.
19일 오전, 사모님의 의견을 들으러 다시 농원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않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날 오후, 아저씨의 뜻이 분명하니 사모님과의 만남은 무의미하며 이제부터는 아저씨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 내용을 가지고 저녁에 아저씨 댁에 잠깐 들러 소식을 전했다.
아저씨는 출퇴근한다면 일은 계속하겠지만, 못한다면 일은 구정까지만 하신단다.
사모님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니 아저씨 생각대로 의논해서 결정하라고 했단다.
아저씨의 진심을 알면서도 다시 여쭐 수밖에 없었다.
이사 나가는 것은 분명해졌지만 농원 일은 며칠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생각한 후에 사모님 만나 의논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2023년 1월 22일 월요일, 김향
백춘덕 아저씨, 농원 사장님과 사모님, 김향 선생님…. 신아름
선하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고 간구합니다. 월평
첫댓글 기록의 길이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기록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의 깊이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좋은 집을 찾은 것, 좋은 사람을 찾은 것, 일을 계속 하실 수 있게 된 것이 모두 그 고민에서 비롯된 바람이 이루어낸 작품인 듯합니다.
거처 옮기는 일도 당사자의 일이게, 지역사회 사람살이이게 풀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집주인 만난게 복이라 생각해요. 이런 일은 순리대로 풀어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김향 선생님의 몸과 마음 보살펴 주시길 기도합니다.